로마서12:1-8
로마서 1-11장이 복음의 내용을 설명했다면 오늘 부터 시작되는 12장에서 15장은 복음으로 의롭게 된 자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즉 그리스도인의 삶의 실천적 부분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12장을 시작하면서 본문은 “그러므로” 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1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오늘 이 시대를 크리스챤으로 살아간다는 것,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오늘 로마서12장은 예수를 믿고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크리스챤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곧 ‘산 제물이 되는 것’이라고 가르쳐줍니다.
1) 제물은 스스로를 위한 목적이 아닌 하나님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됩니다.
제물은 제단위에 올려져 피흘려 죽임을 당하는 흠 없는 동물을 가리킵니다. 흠없는 동물은 반드시 죽게 되는데 이 죽임을 당한 동물이 제단 위에 올려져 하나님에게 드려질 때 이 동물을 가리켜 제물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에게 드려진 존재가 제물입니다. 제물의 삶의 존재 이유는 하나님께 드려지기 위해서입니다. 크리스챤으로 살아간다는 것, 곧 하나님께 제물이 된다는 의미는 우리의 삶의 목적이 제물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고 제물을 받으시는 하나님께 있음을 말합니다. 우리의 삶의 결과가 우리 자신의 성공이나 목적달성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있음을 제물은 일깨워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희생되는 제물이 되기 보다는 하나님을 우리의 제물로 삼으려 할 때가 참 많지 않습니까? 우리의 목적과 성공을 위해서, 우리의 행복과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의 성공과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을 우리의 제물로 삼으려 할 때가 참 많습니다. 크리스챤은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드리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2)제물의 참된 의미는 죽음에 있습니다.
제물이 죽어야 하는 이유는 제물을 가지고 온 사람을 살리고 용서함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제물이 살아 있어서는 용서함이 없습니다. 화해가 없습니다.
히9: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제단위에 드려지는 제물이 죽어 피를 흘려야 죄사함이 있다는 말입니다. 제물이 죽어서 피흘림이 있어야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이 용서함과 화해를 얻습니다. 회복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운데 화해와 평화가 없고, 다툼과 불평과 잡음이 가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 스스로가 제물로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제물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제물 삼으려고 혈안이 되어있지 스스로 제물되는 사람이 드뭅니다. 스스로 제물이 되는 사람이 적기에 분쟁과 다툼이 가족안에, 우리의 모임안에 여전히 있는 것입니다.
제물은 죽는 것이 마땅하고 당연한데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합니다. “산 제물로 드리라”(1절) 죽은 제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제물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Living sacrifice”
3)예수 그리스도가 ‘산 제물’의 본이 되셨습니다.
우리에게 ‘살아있는 제물’이 되라고 가르치는 성경은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살아있는 제물의 본보기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이 제물로서 죽었으나 지금도 살아있는 제물이 되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만에 다시 살리’셨습니다. (행10:39-40) 하나님께서 죽음에서 일으켜 세우신 예수는 죽었으나 사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죽었으나 살아계신 산 제물의 원형입니다. 자신의 옛 자아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예수안에서 새로운 자아로 태어난 인생이 바로 산 제물입니다. 나의 옛 자아는 죽고 예수가 내안에 사시는 새로운 피조물, 그가 바로 산 제물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본받아 ‘산 제물’로 살아가는 주의 사람은 바울의 고백처럼 고백하게 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라디어서2:20) 자신은 죽고 예수는 사는 삶. 이것이 바로 크리스챤의 삶이요, 곧 거룩한 산 제물로서의 삶입니다.
4)산 제물로 드려지는 인생이 되어야 주님은 뜻을 분별할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주님께 드려진 거룩한 산 제물로 살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주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2절). 주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드려진 거룩한 산 제물로 살아갈 때 주님의 뜻을 분별허게 될 뿐 아니라 공동체안에서의 자기의 역할도 깨닫게됩니다. 자신의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더 큰 공동체의 부분이요, 한 몸의 작은 지체임을 인식하게 되고 따라서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3-8절).
이제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십시다. 우리의 마음의 결단을 주님은 요구하십니다(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라
우리 스스로 마음의 결단을 하십시다. 마음을 새롭게 하십시다. 우리를 거룩한 산 제물로 변화시키기 위해 기다리고 계신 주님의 능력에 우리 자신을 맡기십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제물로 드릴 때 주님은 우리를 통해서 이 삭막한 광야에 소망의 길을, 이 메마른 사막에 생명의 강을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그럴때 우리는 산 제물되신 예수님처럼, 용서함이 필요한 곳에, 화해가 필요한 곳에, 죄사함이 필요한 곳에, 구원이 필요한 곳에, 회복이 필요한 곳에 주님의 도구로 쓰임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주의 거룩한 산 제물로 사용하기 원하시는 주님의 목적을 이루어 드리는 오늘 하루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희생제물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산 제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친히 보여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 거룩한 산 제물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결단과 새로운 마음의 다짐을 원하시는 주님앞에 우리 자신을 던져, 우리를 변화시키는 주님의 손길에 우리의 인생을 맡기오니 주여 우리를 변화시켜 주옵소서. 진정 산 제물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무자비한 테러로 생명을 잃고 부상당한 지구 건너편 프랑스의 많은 사상자들과 유가족들을 주님 위로하여 주옵소서. 고귀한 생명을 아무 가책없이 살상하는 악한 무리들을 주님 심판하시고, 복수와 살상의 악순환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주님 이 땅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신념과 사상과 가치관의 명목으로 사람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어리석음이 이땅에 반복 되지 않도록 주님 이땅의 영혼들을 전쟁과 악에서 구원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깊은 묵상을 위한 질문
1) 나는 하나님을 나의 제물로 삼아왔습니까? 아니면 내가 하나님을 위한 제물이 되어 살았습니까?
2) 제물로서 죽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면 아직 죽지않은 나의 옛 자아나, 옛 습성, 버리지 못한 과거의 태도는 무엇입니까?
3) 거룩한 산 제물의 본보기이신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하신 일은 무엇인지 묵상해 봅니다.
4) 새롭게 변화된 삶을 원하시는 하나님이 나에게 바라시는 결단이나 결정이 있다면 그것을 기록해보고 오늘 그 실천을 시작해 보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