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누이
김 능 자
“오빠야, 우리 요즘 학교도 학원에도 못 가는데 시골 할머니께 가 있을까?”
“아 맞다. 그래 그러자. 이렇게 늦어질 거였으면 진즉 갔을 건데 그랬다 응! 그럼 누이야, 엄마 아빠께 전화로 여쭈어라. 오빠는, 우리 가족 신분증 모두 챙겨가지고 동사무소로 달려가서 가족관계 확인서 마련해 약국에 들러 마스크 다 사 올께.”
서둘러 돌아오니 마침 전화가 울려왔다.
“오! 사랑하는 우리 아들 딸, 뭔 그런 기특한 생각을 다하고. 그럼 있잖아 책가방이며 옷가지들 잘 챙기고. 냉장고에서 갓김치며 할머님께서 좋아하신 굴젓이랑 아이스박스에 잘 담아 조심이 들고 가거라. 마스크 쓰는 거 잊지 말고. 버스 안에서는 꼭 거리를 두고 앉아야 한다.”
“네. 네 그럴게요. 엄마.” 오누이는 대답이 합창으로 나왔다.”
“그리고, 할머님께는 너희들 곧 도착 할 거라고. 바로 전화 해 놓으마.”
너희들 내내 입을 옷들은 주말에 엄마 아빠가 챙겨가마. 맛있는 것들 듬뿍 마련해갈께.”
오빠와 누이는 신바람이나 두 손을 번쩍 들고 손뼉을 마주쳤다.
오누이를 실은 버스는 시골로 가는 신작로를 달리고 달렸다. 버스가 도착하자 미리 마중 나오신 할머님은 후루룩 다가오셔서 얼싸 안으며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요 이쁜 것들 어서 어서 오너라.”
사뭇 반가워하신 할머니 그리도 반가우실까. 저렇게나 좋으실까.
이윽고. 마당에 들어선 우리 할머님.
“얘들아, 웃옷 벗어 툭툭 털고. 안으로 들어가 손 먼저 잘 씻고 앉아라.
네 엄마한테 연락 받고. 냉동고에 얼려둔 옥수수 꺼내어 삶아 내놓았으니 어서들 앉아 먹어라. 애써 오느라고 배고프겠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찰옥수수를 함지박 가득 담아 내 놓으신 할머님은. 텃밭에서 미리 솎아놓은 푸성귀들을 철철 흐르는 물에 말끔히 헹구시며
“낮에는 상추쌈이 제일이지!”
“할머니도 그만하시고 이리 앉으세요. 찰옥수수 참 맛있어요. 할머니!”
할머니는 연신 이야기를 하신다.
“동네 회관에서도, 절대 모여 있지 말라고 신신당부해서 집콕. 방콕 하려니 너희들 생각이 절로 났었는데. 이 할미가 코로나19 덕을 톡톡히 보는구먼.”
“할머니, 저희들도요. 시골에 오니 공기가 해맑으니 참 좋아요.”
마당가 풀꽃 사이로 노란 병아리들이 삐악삐악 어미닭 따라 잘도 뀌어 다닌다. 빨강벼슬이 큰 아빠 닭도 ‘꼬꼬’ 지켜보고.
새벽잠이 없으신 우리 할머님. 살며시 일어나 늘 운동 삼아 걷던 뒷산 추녀 길을 돌아오시며, 머위며 산취랑 보이는 데로 골고루 캐서 담아 어께에 메고 문안에 들어서기 바쁘게
“애들아, 새나라 어린이는 일찍 일어나야지!”
우리 할머님은 예나 지금이나 어린애로만 여겨지시나 보다.
마당을 쓸다가 잽싸게 숨은 오누이. 금방 달려 나와 할머니 눈을 가리고
“누구 게요?
“요 깜직한 것들 이제 그만, 할미가 얼른 나물 무쳐 줄게. 맛있게 아침 먹자.”
도란도란 함께 지은 아침 밥상, 나물반찬에 오복조복 마주앉아 할머니가 밥 수저에 얹어주신 굴비 살 발라 얹어주거니 받거니 이렇게도 맛있을까.
오누이는 불울 지펴 지은 검은 솥 밥, 누룽지 숭늉이 너무 고소해서 저절로 키가 쑥쑥 커가는 것 같단다.
“사랑하는 울 할머니, 설거지는 언제나 우리들이 할래요.”
“그래, 그러고 싶으면 그러려 무나.”
울 할머님. 좀 쉬시는가 싶더니만. 보자기며 멜빵이랑 담을 것들을 주섬주섬 배낭에 챙겨 넣으시며
“얘들아, 우리 둥굴레 차 한 잔씩 마시고. 싸목싸목 산에 올라가 볼거나, 운동이랑 할 겸 산나물이며 약초 뿌리랑 골고루 캐 말려서 주말에 다니러 온 아빠 차에 실어 보내면 참 좋겠지?”
“네, 할머니 그래요 좋아요.”
신바람이 난 오누이 신발 끈을 단단히 조여 묶고. 배낭 하나씩 나눠 메고는
“할머니! 산에 오를 땐 마스크가 필요 없겠죠?”
“그래도 등산객들이 혹 나타날지 모르니 주머니에 넣고 가보자.”
할머님은. 늘 오르시던 산길이어서인지 연분홍 진달래가 만발한 산 능선, 골자기 이리저리 잘도 뀌어 다니신다.
“할머니 진달래꽃이랑 찔레꽃 따다가 그때처럼 떡 만들어 먹을까요?”
“그래 그러자꾸나. 맛있는 부침개도 부쳐 먹자.”
할머니는 산 더덕이이랑 산도라지, 원추리, 씀바귀, 양지버섯, 망개, 두릅, 고사리, 산마늘 골고루 채취한 것들을 나눠 담아 어깨에 짊어지고 내려오는데. 할머님은 다리 아픈 줄도 모르시는지. 허리 다리 아프시다는 말씀 한마디도 안하신다.
이어, 집에 돌아와 보따리를 채반에 풀어놓고는. 할머니 따라 부지런히 멍석마다 펼쳐 널어놓고 보니 마당 하나 가득 이다.
“애들아 오늘 정심은 텃밭에 상추 뜯어다 맛있는 된장에 쌈 싸먹고. 저녁은 쑥밥을 지어서 달래 양념간장에 맛있게 비벼먹을거나?”
“할머니! 오늘 낮에도 또 상추쌈이에요?”
할머님은 하얀 민들레 잎이랑 달래를 이따 만큼 앞에 놓고 다듬으시며
“상추는 말이다, 옛날 옛적엔 씨앗구하기가 너무 어려워 천금을 주고 사왔다 하여 천금채라 했다는데 그 천금채라는 상추에는, 겨울 봄 내내 쨍쨍 햇볕에 자라 유황이 들어있어 홧병, 불면증, 갖은 잔병치레에 치료효과가 있었기에 약방이나 병원이 멀고 성글었던 할머니의 세상에서는 두루 단방약이 되어 주었단다. 요즈음 밤잠 못 드는 이 할미도 즐겨 먹는 채소란다.
“정말 그래요? 할머니, 참 많이 흥미로운걸요.
“그리 궁금하면, 할미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에서 동의보감을 찾아 보거라.”
할머님 얘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오누이는 건넌방 할머님 책장 앞에서 서로 먼저 찾으려고 야단법석이다. 해묵은 책장엔 육아전서, 고문진보 인문학 꿈 사전, 백과사전 등 모두가 옛날 옛적 책들로 가득이다.
그날로부터 오누이는, 낮엔 들로 산으로 할머니를 따라 다니며 산채나. 약초의 생김새를 눈여겨보고 약효를 귀담아 새겨들으며 기록하고. 밤이면 할머님의 손때 묻은 책들을 뒤져보고 펼쳐보다가 잠이 들면 하늘나라 선녀들도 만나보고. 잠꼬대하다 이부자리를 차버리면. 할머니는 늘 치켜 올려 덮어 주시며
“잠이 들면 체온이 내려가기 마련이고 몸이 차면 감기 들기 십상인데. 몸 온도 36점5도를 유지해야 충분한 면역력으로 코로나19를 거뜬히 이겨낼 수 있을게다.”
아침이면 대나무 소금통을 들고 생수가 방글방글 솟아오른 뒤란 샘가로가 양치하고 세수하고. 밥상 앞에 앉으면 밥맛이 꿀맛이다.
동녘에서 솟아오른 해님은 돌아올 길 하나 없는 하늘 길을 갠 날에도 궂은날에도 쉬지 않고 서산을 넘고 다시 떠오르고.
“오빠야, 오빠는 의사 할래? 난, 약사가 되고 싶은데. 제약회사 연구실에서 열심히 노력하며 연구해서 코로나 백신도 만들고 특효약도 만들어 보게.
있잖아 우루사라는 간장약도 은행잎 수출물로 만들었다 그러잖아.”
“그래, 계속 말해봐.”
“그런데 있지 목련이나, 벚나무나 두루 종류가 다양한데 모든 식물들이 그렇다는데 은행나무만은 딱 한가지뿐이라네. 오빠야 그거 신기하지 않나 궁금하지 않아.?
“얘들아! 뭐하냐? 하루에 세끼는 꼭꼭 시간 맞춰 챙겨먹어야지.”
“네. 할머니 울 할머니는 내내 힘들지도 않으신가 봐요.”
“얘, 이 할미는 너희들이랑 함께 있으니 아픈데도 하나 없고 사람 산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해서 너무 좋기만 한걸!”
"할머니, 저희들도 할머니랑 지내는 게 아주 많이 좋거든요!”
한낮의 햇살이 좀 더웠는지 해묵은 뽕나무 그늘엔 어미닭 날개깃 속으로 노란 병아리들이 오종종 모여 들었다.
“오늘 정심은 지난주에 엄마아빠가 사다 숙성해 놓은 삼겹살 파티 할 거나?”
“ 네, 그래요 좋아요 할머니. 오이랑 부추, 천금채는 제가 잘 씻어 올게요.”
“얘들아, 이 무서운 코로나19를 이겨내기 위해 정부에서, 그리고 많은 의료진들리 곳곳에서 도움의 손길들로 최선을 다해 고생하시는데. 우리 다함께 준칙 잘 지켜가며 내 몸, 내가 챙키기. 내가, 내 몸 지키기. 열심히 해 보자꾸나.”
“그래요 할머니! 우리 다 함께 아자, 아자 파이팅!”
- 2020년 전남여류문학 연간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