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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트레일 8구간 제1부
충의사-의상암터-원효암터-옥계저수지
20260716
1.예산 가야산의 정기, 매헌의 민족혼과
의상·원효의 불교사상을 꽃피우다
지난 5월 7일 동서트레일 9구간 탐방을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윤봉길 의사 유적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홍성군 홍북면 중계리 고암 이응노생가기념관에서 마쳤다. 그로부터 2개월이 넘어서 윤봉길 의사 유적 주차장에 다시 왔다. 이번에는 동서트레일 8구간 탐방을 역방향으로 출발한다. 8구간 역방향 탐방은 예산군 덕산면의 시량리, 대치리, 옥계리, 상가리 지역을 통과하여 충남 서산군으로 넘어가 운산면 원평리를 지나 용현리 마애삼존여래상 출입구에서 마치게 된다. 주요 경유지는 가야산 원효봉의 의상암터와 원효암터, 덕산천의 옥병계와 석문담, 예산 가야사지와 남연군의 묘, 서산 보원사지와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이다. 동서트레일 8구간 역방향 탐방을 3부로 나누어 정리한다.
제1부(충의사~옥계저수지) : 윤봉길 의사 유적 주차장 남쪽 덕산온천로 옆에 동서트레일 8·9구간 시종점이 있다. 윤봉길 의사 유적은 덕산온천로 북쪽에 윤봉길 의사 영정을 봉안한 충의사와 윤봉길 의사의 유품을 전신하는 윤봉길 의사 기념관 등이 자리하고, 그 남쪽에 성장가인 저한당과 생가인 광현당 등이 자리한다. 동서트레일 9구간은 덕산온천로를 건너 윤봉길 의사 성장가 저한당 방향으로 이어가고, 8구간 역방향은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덕산온천로를 따라 시량초등학교 방향으로 서진한다.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멀리 용봉산과 그 능선이 북쪽으로 이어지며, 저한당 가까운 남쪽에 수암산이 보인다. 서쪽에는 수덕사가 자리한 덕숭산이 솟아 있고, 그 북쪽에 가야산 능선의 원효봉이 우뚝하다.
윤봉길(尹奉吉, 1908~1932) 의사는 대치천이 흘러가는 덕산면 시량리 목바리(沐溪)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광현당 그리고 야학과 계몽운동을 펼쳤던 부흥원은 대치천과 호곡천이 에워싼 삼각주 지역에 자리하는데, 윤봉길 의사는 이곳을 일제의 침략도 막아낼 수 있는 곳이라고 하여 도중도(島中島)라 불렀다고 한다. 그는 1930년 3월 6일 대장부 집을 나가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는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이란 유서를 남기고 중국으로 망명하여,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나 한인애국단에 입단하였다. 그는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홍커우공원에서 침략국 일제의 상하이 사변 승전 축하 기념식에서 일제 수뇌부를 향해 폭탄을 던져 세계 만방에 일본의 조선 침략을 알리고 그해 12월 19일 일본 가나자와에서 25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하였다. 그의 뜨거운 민족혼이 하늘로 치솟아 세계에 메아리쳤다. 그의 짧은 생애가 가슴에 사무친다.
지도에는 충의사회전교차로, 도로표지판에는 시량교차로라고 적혀 있는 덕산온천로의 교차로를 건너 덕산온천로를 따라 올라가면 왼쪽(서남쪽)에 덕숭산이 솟아 있고, 그 북쪽에 원효봉이 우뚝하며, 그 동남쪽 자락에 시량초등학교가 자리한다. 시량초등학교는 1962년 12월 19일 덕산초등학교 시량분교장으로 설립되어 1966년 3월 16일 시량국민학교로 승격 개교하였다고 한다. 시량초등학교 교가 첫 구절은 '가야산 줄기줄기 정기가 어려/ 매헌의 충의정신 꽃피는 터전'으로, 이 지역의 명산 가야산의 정기와 매헌의 충의정신을 본받는 내용이다.
덕산면 시량2리 산골짜기에는 목조주택과 전원주택들이 자리하고, 아람아파트는 파수꾼처럼 그 출입구를 지킨다. 계속 따라온 덕산온천로는 국도 제19호선 윤봉길로에 자리를 내어주고, 대치1교차로를 지나 상왕산원효암(象王山元曉庵) 표석 앞에서 동서트레일은 윤봉길로와 헤어져 대치6길을 따라 원효암 방향으로 올라간다. 여기서 상왕산(象王山)은 가야산(伽倻山)을 이르는데, 가야산은 가야봉 또는 상왕산이라고도 이른다고 한다. 대치6길을 따라 펜션들이 즐비한 곳을 지나 언덕길을 올라가면 사방댐이 나오고, 그 위쪽에 원효암이 자리한다.
사방댐 입구에서 동서트레일은 골짜기의 다리를 건너 원효봉 등산로 나들목으로 진입하는데, 만약 단축하고자 하려면 골짜기의 다리를 건너기 전에 원효암 방향으로 올라가면 원효봉의 원효암터를 오르지 않고 우회할 수 있다. 또 다른 곳의 단축로는 원효봉 등산로 나들목에서 올라가면 충의사 3.2km, 원효암터 1.1km 지점, 해발 237m의 갈림목에서 왼쪽 원효암터로 오르지 않고 곧장 올라가면 원효암터를 들르지 않고 우회할 수 있다. 이 갈림목부터 원효봉 아래의 의상암터 오르기가 몹시 힘이 들다.
가야산의 한 봉우리인 원효봉 8부 능선쯤에 자리한 의상암터와 원효암터는 의상(義湘, 625~702)과 원효(元曉, 617~686)가 머물렀던 암자라고 한다. 그 유래는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가야산을 경유하였으며, <밤이 늦어 이곳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었는데 잠결에 목이 마른 나머지 해골에 괸 물을 모르고 마시게 되었다. 날이 밝자 원효대사가 마셨던 시원한 물이 해골에 고여있는 썩은 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확인한 원효대사는 구토를 시작했다. 구토를 하던 원효대사는 실체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이 세상의 온갖 현상은 모두 마음에서 일어나며, 모든 법은 오직 인식일 뿐이다. 마음 밖에 법이 없는데, 어찌 따로 구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원효대사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이다. 원효대사는 유학길을 멈추고 고향으로 돌아가 대중들 속에서 깨달음을 전파하며 많은 공을 세웠다.>(설명안내판) 반면에 의상은 당나라 유학을 마친 후 671년(문무왕 11년)에 신라로 돌아와 우리나라에서 화엄종을 최초로 일으켰다.
원효암터가 과연 원효가 해골물을 마시고 깨달은 곳일까? 서해랑길을 탐방할 때 평택시 포승읍 수도사를 지나는데, 수도사 근처의 암굴이 원효대사가 해골의 물을 마시고 깨달은 곳이라고 알림막을 걸어놓은 것을 보았으며, 아산만 평택호변에는 혜초가 비단길을 열었다는 혜초비가 세워져 있다. 혜초가 비단길을 연 곳이 평택과 화성, 과연 어느 곳이며, 의상과 원효가 당나라 유학길에 해골물을 마신 곳이 평택과 예산 어느 곳일까? 이곳은 오직 전설로 내려오는 곳이며, 추정하는 곳일 뿐이다. 아득한 천삼백 오십년 전의 일을 어떻게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을까? 내포문화숲길에서는 내포불교순례길을 개통하여, 인도의 불교가 당나라를 거쳐 내포 지역을 통해 한반도로 전래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그래서 가야산을 중심으로 한 보원사지와 서산 마애여래삼존불이 이를 증거한다는 것이다.
원효암터는 이층으로 되어 있다. 위층에는 산신각과 원효득도굴이 있고, 아래층에는 법당이 있었을 것이라 추정한다. 원효암터 아래층의 은술샘 물을 한 바가지를 떠 마셨다. 물이 맑고 차갑게 시원하다. 일체유심조의 깨달음이 전달되는 것 같다. 과연 원효암이라는 암자는 언제 지어졌을까? 원효 생전에 지어져 원효가 머물렀을까? 아니면 원효 사후에 원효를 기리기 위해 지어졌다가 어느 시기에 사라진 것일까? 원효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가야산 원효봉이라는 지명과 의상암과 원효암은 한국 불교사상의 큰 맥이 내포 지역에서 꽃피었음을 분명히 암시해 준다.
원효암터에서 원효봉 동쪽 능선을 따라 계너미로 내려가 이곳에서 왼쪽으로 꺾어 예산군 덕산면 옥계리 계너미골로 내려간다. 계너미골을 건너면 풍경이 열리고 옥계리 중개골 마을이 보이며, 북쪽으로는 넘어가야 할 예산과 서산의 경계를 이루는 산줄기가 이어져 있다. 옥계가야길을 따라 옥계리 중개골 마을을 내려가면 아래쪽에 덕산천의 물을 가로막은 거대한 옥계저수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2.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20.4km
전체 탐방 시간 : 6시간 23분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예산 윤봉길 의사 유적 주차장에 도착하여 윤봉길 의사 영정을 봉안한 충의사와 홍살문을 올려보았다. 충의사 참배는 생략하고 예산 윤봉길 의사 유적 안내판 및 종합안내도를 살피고 동서트레일 8·9구간 시종점을 찾아간다.
예산 윤봉길 의사 유적(禮山 尹奉吉 義士 遺蹟)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윤봉길(1908~1932) 의사를 기리고자 1972년에 그의 출생지와 농촌계몽운동이 펼쳐진 지역 일대를 사적으로 지정한 곳이다. 영정을 봉안한 충의사(忠義祠), 윤봉길 의사 출생 이후 4세 때까지 살던 생가 광현당(光顯堂), 중국으로 망명하기 전 23세 때까지 살며 성장한 저한당(抯韓堂), 윤봉길 의사의 유품을 전시하고 있는 윤봉길 의사 기념관이 있다. 윤봉길 의사는 1908년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현 광현당)에서 윤황과 김원상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8년 11세에 덕산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이듬해 식민지 교육을 받지 않겠다고 자퇴하였다가, 13세에 한문 공부를 시작한 후 성주록 오치서숙에서 수학했으며 이때부터 한학과 더불어 신학문과 민족문제, 농촌문제를 고민하게 되었다. 20세에는 야학교재로 3권의 농민독본을 저술하여 농본국가의 당위성을 강조하였으며, 부흥원 설립 및 월진회를 조직하는 등 문맹 퇴치운동과 농민운동에 전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과 감시 속에 농촌계몽운동만으로는 식민지의 삶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독립운동의 길을 찾아 1930년 3월 고향을 떠났다. 1931년 상하이에 도착하여 김구 선생이 이끄는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된 이후, 1932년 4월 29일 일본 국왕의 생일인 천장절과 일본군의 상해사변 전승 축하식을 겸한 기념식장에서 폭탄을 던졌다. 이로 인해 상해 파견군 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 대장을 비롯한 여러 명의 일본인 수괴를 죽이고, 부상 입혀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세계에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해 12월 19일 25세의 나이로 일본 가나자와에서 총살형으로 순국한 윤봉길 의사의 유해는 1946년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유해와 함께 환국하여 현재 서울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 안내판
충의사 해설안내소를 지나 장애인 전용 주차 구역 앞에 설치되어 있는 윤봉길 의사 기념관 안내판 앞으로 이어간다. 왼쪽 맨 뒤에 동서트레일 9구간에서 탐방한 용봉산이 가늠된다.
정면 뒤에 덕숭산이 솟아 있고, 정면 앞쪽에 윤봉길의사기념관, 주차장 바로 뒤에 윤봉길의사기념관 안내판이 서 있다.
윤봉길의사기념관은 민족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매헌 윤봉길(1908~1932) 의사의 생애와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1년 건립되었으며, 2021년 제1종 전문 박물관으로 등록되었습니다. 이곳에는 윤봉길의사 유품인 보물 65점을 비롯하여 윤의사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여러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윤봉길 의사는 농촌계몽운동과 야학을 통해 농촌부흥운동을 주도하다 일제의 탄압으로 국내에서 활동의 한계를 느끼고, 1930년 3월 6일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이란 비장한 유서를 남기고 중국으로 망명하였습니다. 망명 이후,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나 한인애국단에 입단하였으며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홍커우공원에서 열린 일왕 생일 겸 상하이 사변 승전 축하 기념식에서 일제 수뇌부를 향해 폭탄을 던져 대한의 민족혼과 독립 정신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25년의 짧았던 삶을 뒤로한 채 군법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윤의사는 그해 12월 19일 일본 가나자와에서 순국하셨습니다. 윤봉길의사의 삶과 업적을 올바로 알리고, 농촌계몽과 의열투쟁을 위한 애국 애족의 나라 사랑 정신을 선양하고자 1968년부터 성역화 사업이 진행되었으며, 기념관을 비롯해 충의사, 광현당(생가), 저한당(성장가) 등은 사적으로 지정, 윤봉길 의사 유적으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윤봉길의사기념관은 윤의사의 고귀한 애국정신을 체계적으로 계승·발전시키고, 윤의사의 삶과 업적을 기리며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노력해 나가겠습니다. - 안내판
기념관 뜰에 세워진 매헌윤봉길의사사적비(梅軒尹奉吉義士史蹟碑)가 매헌의 성장가 저한당과 생가 광현당을 바라보고 있다.
오른쪽은 윤봉길의사기념관으로 이어지고, 왼쪽은 동서트레일 8·9구간 시종점과 매헌의 성장가 저한당으로 가는 길이다.
정면에 윤봉길의사기념관이 자리하고, 오른쪽에 예산군관광시설 사업소가 있다.
왼쪽 앞 뜰에 동서트레일 8·9구간 시종점이 있고, 덕산온천로 건너편 오른쪽에 매헌의 성장가 저한당이 자리한다.
윤봉길의사기념관 주차장 뜰 앞 동서트레일 8·9구간 시종점에 안내판과 이정목이 서 있다.
동서트레일 8·9구간 시종점은 내포역사인물길 1코스 시종점이며, 내포천주교순례길 3·4코스 시종점이기도 하다.
동서트레일 8구간 탐방을 이곳에서 역방향으로 출발하여 서산마애래삼존상에서 마친다.
수덕사가 자리한 덕숭산이 정면에 솟아 있고, 동서트레일 8구간 역방향은 덕산온천로 보도를 따라 서진(西進)한다.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왼쪽에 매헌 윤봉길의사 어록탑이 있다. 지난 9구간 탐방 때 자세히 기록하였기에 그냥 통과한다.
매헌윤봉길의사 어록탑을 지나며 동서트레일 8·9구간 시종점과 덕산온천로 동쪽 덕산온천 방향을 뒤돌아보았다.
덕산온천로를 따라 서진(西進)하며 덕숭산을 다시 바라본다. 오른쪽 보도에 시량1리 버스정류소가 있다.
덕산면 둔리 방향 덕산온천로 보도의 충의사(시량1리) 버스정류소를 지나간다.
덕산온천로 건너편에 매헌의 성장가 저한당이 자리하고, 왼쪽 뒤에 260.1m 수암산(秀岩山)과 그 능선이 이어진다.
충남 예산군 덕산면 사량1리 지역을 이곳에서는 목바리(沐溪)라 이르는데, 구체적으로는 매헌의 생가 광현당(光顯堂)이 있는 대치천 삼각주 지역을 이른다고 한다.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는 조선시대에 덕산군(德山郡) 현내면(縣內面)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궁평리(宮坪里), 신동(新洞), 노곡리(蘆谷里), 조량리(鳥梁里), 소시촌(小柿村)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소시(小柿)와 조량(鳥梁)의 이름을 따서 시량리(柿梁里)라 하여 예산군 덕산면에 편입되었다. 시량리는 덕산면의 중동부에 자리하고 있으며, 동쪽으로 삽교읍 신리, 서쪽으로 대치리, 남쪽으로 광천리·둔리, 그리고 북쪽으로 옥계리·사동리·신평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행정리는 시량1~3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새재벌, 고용나무골, 목바리, 수암산골 등이 있다. 국도45호선[윤봉길로]이 시량리의 남부와 동부 일대를 동서 방향으로 지나고 있다. 군도16호선[가야산로]이 시량리의 중부를 남북 방향으로 지나고 있고, 군도21호선[덕산온천로]이 시량리의 서부와 중부 일대를 동서 방향 및 남서-북동 방향으로 지나고 있다. 주요 시설로는 시량초등학교, 윤봉길의사 생가지 등이 있다. 유적과 유물로는 예산 윤봉길의사 유적[사적 제229호], 윤봉길 의사 유품[보물 제568호] 등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지도에는 충의사회전교차로, 도로표지판에는 시량교차로라고 적혀 있는 교차로를 건너 덕산온천로를 따라 올라간다.
충의사 0.3km, 원효암터 4.0km 지점, 시량교차로의 시량보부상로 횡단보도를 건너 원효암터 방향으로 올라간다.
덕산온천로에서 건너온 시량교차로(충의사회전교차로)와 중앙 뒤의 수암산을 뒤돌아보았다.
덕산온천로 북쪽 보도를 따라 올라가며 비닐하우스 봄봄꽃농원과 서북쪽에 우뚝 솟은 604.7m 원효봉을 확인한다.
덕산온천로 북쪽 보도에서 남쪽 보도로 건너가 농부이야기 딸기농장과 그 뒤쪽에 솟은 덕숭산을 확인한다.
시량초등학교 후문에서 시량초등학교와 원효봉을 바라보았다. 시량초등학교 뒤쪽 건물 이름 '꿈샘둥지'가 예쁘고 의미있다.
시량초등학교는 1962년 3월 5일 덕산국민학교 시량분교장으로 인가받아 설립하였다. 1966년 3월 4일 시량국민학교로 승격되어 1966년 3월 16일 덕산면 시량리에 개교하였다. 1996년 3월 1일 시량초등학교로 개칭되었다. 1984년 3월 15일 병설유치원 1학급을 인가받았다. 2017년 2월 10일 제51회 졸업식을 거행하였으며, 총 2,085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교가[작사 박경순 / 작곡 이창남] "가야산 줄기줄기 정기가 어려 / 매헌의 충의정신 꽃피는 터전 / 슬기와 꿈을 키워 배우고 나가 / 고향을 빛내리라 새나라 일꾼 / 우리는 자란다 새역사 위해 / 그 이름 떨치리라 빛나는 시량"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덕산온천로 북쪽 보도를 따라 시량교회 앞을 통과한다. 동서트레일은 원효봉 8부 능선을 오른쪽으로 돌아 옥계리로 내려간다.
덕산온천로 남쪽에서 대치천 하류 방향을 살폈다. 뒤쪽에 수암산과 오른쪽 뒤의 용봉산이 가늠된다. 대치천은 아래쪽 시량1리 목바리에서 매헌의 생가 광현당이 있는 작은 삼각주(도중도)를 이루고, 그 아래서 덕숭산과 용봉산 사이에서 내려오는 호곡천을 합수한다.
가야산과 덕숭산에서 흘러내리는는 물을 합수한 대치천이 대치리 지역과 시량2리 지역을 흘러온다.
오솔길너머 카페 앞을 지나 아람아파트 앞으로 올라간다. 동서트레일은 원효봉을 넘어 덕산면 옥계리 옥계저수지로 내려간다.
동쪽으로 내리벋는 원효봉 능선 남쪽 자락에 예산군 덕산면 시량2리 마을이 자리한다. 전원주택과 목조주택 단지인 듯.
덕산온천로 북쪽 보도를 따라 시량리 아람아파트 앞을 지나 대치1교차로로 올라간다. 오른쪽에 원효봉이 솟아 있다.
덕산온천로는 대치1교차로에서 국도 제45호선 윤봉길로에 이어지며 끝난다. 동서트레일은 대치1교차로를 지나 오른쪽으로 이어간다.
시량리에서 대치리로 넘어와 대치1교차로 국도 제45호선 윤봉길로에서 오른쪽 대치6길을 따라 원효암 방향으로 올라간다.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대치리는 조선시대에 덕산군(德山郡) 현내면(縣內面) 지역일 때 큰 고개 아래라고 하여 한티, 한티골 또는 대티라 부른 데서 대치리(大峙里) 지명이 유래되었다. 백제 때는 마시산군에 속했다가 신라 때는 이산군에 속했으며 고려 때는 덕풍현에 속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덕산현에 속했고, 조선 후기에는 덕산군 현내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중치리(中峙里), 삼승리(三僧里), 약동(藥洞), 신치리(新峙里), 소시촌(小柿村) 일부를 병합하고, 대치리라 하여 예산군 덕산면에 편입되었다. 대치리 남동부 일부를 제외한 전 지역에 해발고도 100~600여m의 구릉지가 발달되어 있는데, 북서부 경계의 가야산(伽倻山)[677.6m]이 일대에서 가장 높고, 북부 경계의 원효봉(元曉峰)[604.7m]이 그다음으로 높다. 대치리는 덕산면의 서부에 자리하고 있으며, 동쪽으로 시량리, 서쪽으로 서산시 해미면, 남쪽으로 광천리, 그리고 북쪽으로 상가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행정리는 대치1~2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느락골, 노류목, 한치골, 사기점, 중치 등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충의사 1.9km, 원효암 1km, 원효암터 2.4km 지점, 대치6길 출입구에서 대치6길을 따라 상왕산 원효암 방향으로 올라간다.
대치6길을 따라 원효암 방향으로 올라간다. 왼쪽은 덕산면 대치리, 오른쪽은 시량리 지역이며 뒤쪽에 원효봉 능선이 내리벋는다.
대치6길 28호 민가의 돌담이 예쁘다. 앞쪽에 아틀리에7 펜션이 있으며, 대치6길 주변에 여러 펜션들이 자리한다.
대치6길을 따라 아틀리에7 펜션을 지나면 왼쪽에 아리아오투 펜션, 그 위쪽에 숲속의정원 펜션이 있다.
숲속의정원 펜션 문주에 능소화 주홍빛 꽃들이 환하게 불밝히고 문주 앞 글씨바위에 '자신의 꿈에 키스할 수 있는 사람만이 그 꿈을 이룬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왼쪽 위에 숲속펜션이 있으며 동서트레일은 숲속펜션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숲속의정원 펜션 앞쪽에 숲속의정원 표석이 서 있고, 주차장이 있으며, 그 위쪽에 펜션 사장집이 있다.
숲속의정원 위쪽의 숲속펜션을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대치6길 오른쪽에 동서트레일 이정목이 서 있다.
충의사 2.3km, 원효암터 2.0km 지점, 숲속펜션을 오른쪽으로 돌아 대치6길을 따라 원효암 방향으로 올라간다.
펜션들이 즐비한 곳을 지나 대치6길을 따라가며 604.7m 원효봉을 올려보았다. 원효봉 9부 능선을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대치6길을 따라오르다가 덕숭산을 뒤돌아 보았다. 아래쪽에 지나온 아람아파트가 보인다.
덕숭산(德崇山)[495.2m]은 예산군 덕산면 광천리의 중앙부에 있는 산으로, 수덕산(修德山)이라고도 부르는데, 덕숭산의 지명 유래는 수덕산의 지명 유래에서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수덕산 지명은 “옛날 이 지방 현인들이 모여 수양을 하다 산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라는 데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며, 「수덕 도령과 덕숭 낭자의 전설」에서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덕숭산 일대는 1973년 3월에 인접한 가야산(伽倻山)과 함께 덕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덕숭산은 기암괴석이 많고 경관이 아름다워서 ‘호서(湖西)의 금강산’이라 불린다. 남쪽 기슭에 수덕사(修德寺)와 정혜사(定慧寺)가 있다. 천년고찰 수덕사는 우리나라 선종의 유서 깊은 수선도장이며, 예산 수덕사 대웅전[국보]이 유명하다. 이응로 유적지 등 많은 국가유산이 있고, 주변에 덕산온천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대치6길에서 왼쪽 다리를 건너 원효봉 등산로로 진입한다. 단축하려면 직진하여 원효암을 거쳐 원효봉 동쪽 능선으로 올라간다.
원효암터 1.6km, 원효봉 1.71km 지점, 다리를 건너 원효봉 등산로로 진입한다.
다리를 건너며 사방댐과 그 위쪽 원효암을 가늠한다. 단축코스는 오른쪽 길을 따라 왼쪽 원효봉 능선으로 올라가는 듯.
대치6길을 따라 펜션들을 지나 사방댐 앞으로 올라와 대치골의 다리를 건너왔다.
사방댐의 다리를 건너 원효봉 등산로로 진입하여 산길을 올라간다.
사방댐 위쪽의 상왕산원효암(象王山元曉庵)은 최근에 세워진 듯하며, 상왕산(象王山)은 가야산을 이른다.
가야산(伽倻山)과 상왕산(象王山)은 인접한 서로 다른 산이지만, 두 산을 하나의 산체로 인식해 부르기도 하는데, 두 산을 합쳐서 가야산이라 부른다. 또한, 가야산은 가야봉이라고도 부르는데 상왕산을 포함한 가야산과 상왕산을 제외한 가야산 모두 가야봉으로 부른다. 가야산은 가야봉이라고도 부르지만 상왕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앞쪽의 갈림길에서 동서트레일과 원효봉 등산로는 왼쪽으로 꺾어 올라간다. 직진하면 단축할 수 있다.
충의사 3.2km, 원효암터 1.1km 지점, 왼쪽으로 올라간다. 단축하려면 직진하여 원효암터 동쪽 아래쪽으로 올라간다.
시량리 입구 1.36km, 원효봉 1.20km 지점, 해발 237m에서 해발 604.7m 원효봉까지 오르기가 몹시 힘들다.
충의사 3.4km, 원효암터 0.9km 지점, 갈림길에서 200m 올라온 이곳에서 등산로는 오른쪽으로 굽이돌아 올라간다.
곡각지에서부터 가파른 비탈길을 힘겹게 올라 국가지점번호 다바/2184/5578, 가야산 13-3 표지목을 지나간다.
바위들이 흩어져 있는 이곳에서 10여 분 휴식을 취한 뒤 출발하며 뒤돌아보았다.
산비탈길이 지그재그로 굽이돌아 올라간다. 굽이도는 곳에서 위쪽 의상암터를 올려보았다.
의상암터로 올라와서 의상암터 설명안내판이 서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의상암터가 너무 좁아 보인다.
의상암터 옆쪽 갈림길에 동서트레일 이정목이 서 있다. 왼쪽은 금술샘 방향, 오른쪽 윗길이 원효암터 방향이다.
가야산의 한 봉우리인 원효봉의 8부 능선쯤에 의상암터가 자리 잡고 있다. 의상암터는 20여m 높이의 기암단애 아래 정성스레 석축을 쌓아 만든 암자터로서, 덕산에서 서산의 해미로 가는 길목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곳에 고즈넉하게 터를 잡고 있다. 의상암터 왼편 위쪽으로 서해바다까지 시원스레 볼 수 있는 이름 모를 묘지가 있는데, 서해바다를 운행하는 배들이 가야산을 이정표로 방향을 잡았다는 이야기를 증명하는 듯하다. 또한, 이곳 가야산 원효봉엔 원효대사와 의상대사 이야기가 세월 따라 끊임없이 이어져 전해오고 있다. 원효대사와 함께 우리나라 불교의 기틀을 세웠던 의상<義湘(相), 625~702>은 통철을 중시한 길을 걸었으며 원효대사와 함께 떠났던 당나라로의 유학길에 가야산을 경유하였으며, 유학 후 671년(문무왕 11년)에 신라로 돌아왔는데 <삼국유사>에는 당나라 군대가 신라를 공격하려 한다는 정보를 알리기 위해 서둘러 돌아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화엄의 교리를 널리 전파하기 위해 이곳에 암자를 건립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암자 북쪽의 거대한 의상바위엔 수도했던 '의상굴'이 있으며 바위 틈에서 약수가 흘러나와 금술샘이 자연적으로 만들어졌다. - 안내판
왼쪽 의상굴의 금술샘으로 내려가 금술샘을 살피고, 전망바위에서 조망한 뒤 되돌아와 오른쪽으로 올라간다.
기암단애 아래의 금술샘 앞에 설명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의상암터의 절벽 안쪽으로 좌측에 '금술샘'이 있다. 금술샘은 속이 뚫려 있는 암석굴로서 그 안에서 물이 솟아 나오는데 종유석이 아래에서 솟구쳐 올라 있는 모습이 특이하며, 특히 우기에 수량이 풍부할 때는 금가루를 뿌려 놓은 것같이 금빛으로 변하는 샘물을 맛볼 수 있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금술샘'의 이름에 신비감을 느낄 수 있게 한다. 꽃쟁이 절터라고도 불리는 의상암터는 암자를 비운지 오랜 후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이곳에 터를 잡고 그림을 그리며 살았다는 유래에 의해 환(꽃)쟁이 절터로도 불리는데, 금술샘 주변에서 발견되는 기와 와편들로 유추해 본다면 물이 귀한 가야산 암자들에 식수를 공급하는 금술샘의 앞쪽에 보호각을 세웠을 것이라 생각된다. - 안내판
금술샘에 사는 개구리 한 마리가 놀란다. 금술샘물 한 바가지를 마셨다.
금술샘 앞 전망바위에서 주변을 조망한다.
맨 오른쪽 앞에 덕숭산이 살짝 보이고, 오른쪽 뒤에 용봉산, 왼쪽에 수암산이 보인다. 수암산 뒤쪽에는 충남도청이 자리한 내포신도시가 펼쳐져 있을 것이며, 수암산 앞쪽에 매헌의 성장가 저한당, 중앙 왼쪽에 시량초등학교, 중앙에 아람아파트, 왼쪽 아래에 원효암이 보인다.
원효봉 능선이 동쪽으로 벋어내리며, 그 뒤쪽으로 예산군 덕산면 지역이 펼쳐져 있다.
동서트레일은 원효봉 능선을 넘어 뒤쪽 아래 덕산면 옥계리 옥계저수지로 내려간다.
충의사 3.8km, 원효암터 0.5km 지점, 금술샘을 살피고, 전망바위에서 조망한 뒤 되돌아와 원효암터 방향으로 진행한다.
충의사 3.9km, 원효암터 0.4km 지점, 이곳에서 왼쪽 길은 원효봉으로 올라가는 길이며, 동서트레일은 직진한다.
원효봉 갈림길에서 원효봉 아래 산길을 따라 국가지점번호 다바 2164/5585, 가야산9-11 표지목을 지난다.
원효봉 아래 산길에 돌탑 한쌍이 세워져 있으며, 오른쪽에 바위전망대가 있다.
바위전망대에서 오른쪽의 덕숭산, 맞은편의 용봉산, 왼쪽의 수암산을 조망한다. 그 사이에 덕산면 시량리와 둔리 지역이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펼쳐져 있으며, 수암산과 용봉산 능선 뒤쪽에 예산군과 홍성군에 걸쳐 내포신도시가 조성되어 있다.
용봉산 능선이 동쪽으로 벋어내리고, 예산군 덕산면 지역이 펼쳐져 있다. 수암산 뒤쪽에 내포신도시가 흐릿하게 보인다.
왼쪽 전망바위에서 조망한 뒤 내려오다가 돌탑 한쌍을 뒤돌아보았다.
원효봉 아래 원효암 위쪽 암자터에는 산신각이 있었다고 하며, 이 아래 원효암 아래쪽 암자터에 법당이 있었다고 한다.
원효암 위쪽 암자터에서 오른쪽 아래로 내려가서 왼쪽으로 돌아가면 원효암터가 나온다.
원효봉 아래 원효암터 위쪽 신신각터에서 내려오면, 그 아래쪽 법당이 있었던 원효암터와 은술샘이 있다.
충의사 4.3km, 내포문화숲길 예산센터 5.1km 지점, 원효암터&은술샘 설명안내판과 동서트레일 8구간 안내도가 서 있다.
해방자였고 자유인이었던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617~686)가 머물렀던 곳이다. 661년 의상대사와 함께 당나라에 유학을 하기 위해 길을 떠날 때이다. 밤이 늦어 이곳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었는데 잠결에 목이 마른 나머지 해골에 괸 물을 모르고 마시게 되었다. 날이 밝자 원효대사가 마셨던 시원한 물이 해골에 고여있는 썩은 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확인한 원효대사는 구토를 시작했다. 구토를 하던 원효대사는 실체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이 세상의 온갖 현상은 모두 마음에서 일어나며, 모든 법은 오직 인식일 뿐이다. 마음 밖에 법이 없는데, 어찌 따로 구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원효대사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이다. 원효대사는 유학길을 멈추고 고향으로 돌아가 대중들 속에서 깨달음을 전파하며 많은 공을 세웠다. - 설명안내판
원효대사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원효암터에 은술샘이 있다. 원효암터는 그 배경으로 자리잡은 20여m 높이의 기암단애 아래쪽에 석축을 쌓아 가야산에 있는 100여 개의 암자터들 중에 비교적 넓은 터를 마련하고 있다. 2단으로 구성되어 있는 원효암터는 암자터에서 발견되는 와편과 탑 부재들로 볼 때 위쪽 암자터에 산신각이 위치했으며, 아래쪽 암자터에 법당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래쪽 암자터에는 사시사철 물이 나오는 은술샘이 흐르고 있다. 원효대사가 해골에 든 물을 마시고 일체유심조의 깨달음을 얻었다는 원효득도굴이 위쪽 암자터에 있고, 그 아래쪽에 있는 은술샘은 건기에 비교적 수량이 풍부하지는 않으나 아마도 원효대사의 득도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은술샘은 가야 산중에 사는 많은 동물들에게 식수원으로 사용되는 소중한 샘이다. - 설명안내판
바위 틈에서 솟아 오르는지, 바위 위쪽에서 흘러내리는지, 은술샘물이 금술샘물보다 더 차갑고 깨끗하다.
원효봉 아래 추락주의&미끄럼주의 안내판이 서 있는 바위를 지나간다.
바윗길을 지나와 추락주의&미끄럼주의 안내판과 바윗길을 뒤돌아보았다.
원효암터 0.1km, 내포문화숲길 예산센터 5.0km 지점, 이곳에서 왼쪽길은 원효봉 오름길인 듯. 오른쪽으로 내려간다.
원효암터 0.5km, 내포문화숲길 예산센터 4.6km 지점, 오른쪽길은 원효암터를 오르지 않고 곧바로 올라오는 등산로인 듯.
원효암터 0.5km, 시량리 입구 1.98km, 원효봉 0.82km 지점, 원효봉 등산로의 원효암터 갈림길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인 듯.
원효암터 1.0km, 내포문화숲길 예산센터 4.1km 지점, 오른쪽 길은 대치리 사방댐에서 원효암을 거쳐 올라오는 등산로인 듯. 덕산면 대치리 지역에서 이 갈림길을 지나 덕산면 옥계리로 넘어간다.
덕산면 옥계리 계너미에 쉼터가 조성되어 있고, 동서트레일은 왼쪽으로 꺾어 내려간다.
원효암터 1.8km, 내포문화숲길 예산센터 3.3km 지점의 계너미에서 왼쪽 계너미골로 내려간다.
예산군 덕산면 옥계리 계너미골을 건너 옥계리 중개골로 내려간다.
예산군 덕산면 옥계리 북쪽 지역에 산들이 에워싸고 있다. 오른쪽 개울의 다리를 건너 소나무숲길을 따라 내려간다.
덕산면 옥계리 소나무숲길에서 옥계가야길로 내려가 오른쪽 옥계리 중개골로 내려간다.
원효암터 2.5km, 내포문화숲길 예산센터 2.6km 지점, 소나무숲길을 따라와서 그윽한 숲길을 뒤돌아보았다.
옥계가야길을 따라 덕산면 옥계리 중개골을 지나며 옥계저수지(玉溪貯水池)를 내려보았다.
충남 예산군 덕산면 옥계리에 있는 1종 저수지 옥계저수지(玉溪貯水池)는 덕산저수지(德山貯水池)라고도 부르는데, 관개면적, 유역면적 등의 제원상의 규모 순위로는 예산군의 여러 저수지들 중 두 번째에 해당된다. 옥계저수지는 지역 주민들의 농업용 저수지이자 상수원으로서 옥계리를 비롯하여 읍내리, 신평리, 송산리, 상하리, 북문리, 시량리, 역리 등 8개 마을에 농업용수와 식수를 공급하고 있다. 1957년 10월 4일 착공하여 1957년 6월 29일 준공하였다. 1987년에 증축하였고, 2008년 12월 18일 수리시설의 개보수를 시작하여 2015년 12월 20일 완료하였다. 옥계저수지의 제방 높이는 14.8m, 제방 연장은 160.0m이다. 옥계저수지는 덕산면 중심지에서 약 2㎞ 떨어진 지점에 있으며, 저수지 전체가 가야산을 중심으로 한 덕산도립공원에 포함되어 있어서 경관이 수려하고, 덕산온천과 예산 윤봉길 의사 유적[사적 제229호]이 인근에 있다. 덕산면 옥계리는 시냇물이 옥같이 맑으므로 옥계리라 하였다. 옥계리는 원효봉, 가야봉, 석문봉 등의 산지로 둘러싸인 산촌이어서 고개와 골짜기가 발달해 있고, 마을 앞으로 덕산천이 흐른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