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따뜻한 주말 오후. 수 많은 약속이 얽혀있는 복잡한 광화문 네거리에 위치한 일민 미술관에서 로드킬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어느 날 그 길에서>를 봤다.
그들의 죽음에도 사연은 있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 채 10 cm도 되지 않는 도로턱을 넘지 못하고 위험한 고속도로를 헤매고 있는 남생이가 등장하는 티져 영상에서부터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 영화 속 카메라는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 팀의 지리산 일대의 로드킬 조사.연구를 뒤따르고 있었다.(한국에서의 로드킬 조사는 이번이 최초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국토 면적당 도로의 총연장 길이는 OECD국가 중 당당히 6위. 바쁜 사람도 많고, 바쁘게 할 일도 많은 나라이니 이 정도 순위는 당연한 것일까? 예상대로 90분 내내 이어지는 도로 위 동물들의 죽음에 눈 말똥말똥 뜨고 화면을 응시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람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도로 위 동물들의 그것에도 다 사연이 있었다. 엄마 너구리가 로드킬로 죽자 그 곁을 떠나지 못하고 지키던 새끼 너구리가 또 로드킬로 죽고, 배가 터져 죽은 고라니의 배에서는 새끼 고라니들이 튀어 나왔다. 영호남을 잇는 88고속도로에서 차에 치여 의식불명인 삯을 구조해 한 달 여간 치료한 뒤 방사했으나 그 삯은 일주일 후 구조되었던 그 도로에서 다시 로드킬로 죽는다. 그 삯의 이름이 ‘팔팔이’였다. 88고속도로에서 구조되어서 팔팔이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으니 팔팔하게 다시 살라고 팔팔이였다. 그런데 그 팔팔이가 결국 88고속도로에서 죽고 만다. 그렇다면 88고속도로는 얼마나 유용한 고속도로인가? 88고속도로는 만들어 놓았지만 이용률 적은 고속도로 중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쌀쌀한 가을 밤 미처 온기가 식기 않은 도로 위에 올라와 온기를 즐기던 뱀이 차에 치여 내장이 밖으로 튀어나오자 입을 벌려 절규하며 처절하게 죽어가는 모습에서는 온몸에 소름이 다 돋았다. 그래, 너의 저주를 인간에게 다 퍼부어라. 이번 조사가 환경부의 의뢰에 의해 이뤄진 우리나라 최초의 로드킬 조사였다고 한다. 소득 2만불을 코 앞에 둔 나라에서 많이 늦다는 생각이지만 중요한 건 과연 이 조사가 앞으로 생태도로를 조성하는데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이냐는 점이다.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몇 개 안 되는 생태 도로도 로드킬 감소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전시행정에다가, 행락철이면 관광객들이 그곳에 텐트 치고 야영을 하기도 했다니 인식 부족 또한 심각한 수준인 상태에서 과연 이 연구가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게다가 멀쩡한 도로 옆에 또 도로를 놓고 있는 무분별한 도로 건설에 제재를 가할 수 있겠는가? 국회의원들이 상임위 나눌 때면 가장 경쟁률이 치열하다는 곳이 바로 이 건설교통부. 돈 많은 건설 회사들의 로비가 판치는 그곳에 과연 이런 미약한 연구가 명함이나 내밀 수 있을 것인가? 그저 로드킬 연구를 시작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할까? 영화가 끝나고 눈물, 콧물 훌쩍이며 밖으로 나오니 3월 대낮의 햇살에 눈이 시렸다. 함께 영화를 본 분들과 차라도 나누려 길을 건너려다가 초록불이 몇 개 안 남아 깜빡 거리는 것을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에고~ 이러다 그래, 인간은 이리 넓은 광화문 16차선도 죽지 않고 건널 수 있다. 하지만 야생동물들에겐 국도 2차선도 목숨을 걸고 건너야 하는 죽음의 도로다. 동물 세상에 인간들이 마음대로 도로를 놓고, 그 때문에 동물들이 죽어가고 있다면 펜스를치던, 생태통로를 만들던 그 책임은 반드시 인간이 져야 한다. 그게 함께 사는 동물들에 대해 져야 하는 인간의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책임이다. 휴가철, 단풍철, 스키철, 신나게 고속도로를 달렸던 그 차 밑으로 이렇게 수 많은 생명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또 ‘불편한 진실’ 하나를 알게 되었구나. 차창룡 시인은 자유로에서 본 고양이의 로드킬 ‘풍장’에 비유했는데 이번 로드킬은 조사연구한 다른 곳에서 죽으면 썩어 흙이 되어 다시 자연의 흐름 속에 들어가게 되는데 로드킬은 수 많은 바퀴에 계속 짓밟혀 납작해지고, 가루가 되어, 먼지처럼 날아가버려 아무 의미 없는 죽음이 된다고…… 날씨 화창했던 봄날, 누앞에 펼쳐진 수 많은 주검 앞에서 과연 나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기러기 뱃속에서 낟알과 지렁이가 섞이고 있을 때 –차창룡 강가에 물고기 잡으러 가던 고양이를 친 트럭은 |
출처: 동물과 사람이 더불어, 동물행성 원문보기 글쓴이: 더불어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