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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든 반려동물과 행복하게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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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나라 문화살롱 스크랩 영화 로드킬과 풍장
더불어밥 추천 0 조회 104 07.03.20 10:5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3월의 따뜻한 주말 오후.

수 많은 약속이 얽혀있는 복잡한 광화문 네거리에 위치한 일민 미술관에서 로드킬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어느 날 그 길에서>를 봤다.

 

 

그들의 죽음에도 사연은 있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

10 cm도 되지 않는 도로턱을 넘지 못하고 위험한 고속도로를 헤매고 있는 남생이가 등장하는 티져 영상에서부터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

영화 속 카메라는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 팀의 지리산 일대의 로드킬 조사.연구를 뒤따르고 있었다.(한국에서의 로드킬 조사는 이번이 최초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국토 면적당 도로의 총연장 길이는 OECD국가 중 당당히 6.

바쁜 사람도 많고, 바쁘게 할 일도 많은 나라이니 이 정도 순위는 당연한 것일까?

예상대로 90분 내내 이어지는 도로 위 동물들의 죽음에 눈 말똥말똥 뜨고 화면을 응시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람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도로 위 동물들의 그것에도 다 사연이 있었다.

엄마 너구리가 로드킬로 죽자 그 곁을 떠나지 못하고 지키던 새끼 너구리가 또 로드킬로 죽고,

배가 터져 죽은 고라니의 배에서는 새끼 고라니들이 튀어 나왔다.

영호남을 잇는 88고속도로에서 차에 치여 의식불명인 삯을 구조해 한 달 여간 치료한 뒤 방사했으나 그 삯은 일주일 후 구조되었던 그 도로에서 다시 로드킬로 죽는다.

그 삯의 이름이 팔팔이였다.

88고속도로에서 구조되어서 팔팔이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으니 팔팔하게 다시 살라고 팔팔이였다. 그런데 그 팔팔이가 결국 88고속도로에서 죽고 만다.

그렇다면 88고속도로는 얼마나 유용한 고속도로인가? 88고속도로는 만들어 놓았지만 이용률 적은 고속도로 중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쌀쌀한 가을 밤 미처 온기가 식기 않은 도로 위에 올라와 온기를 즐기던 뱀이 차에 치여 내장이 밖으로 튀어나오자 입을 벌려 절규하며 처절하게 죽어가는 모습에서는 온몸에 소름이 다 돋았다. 그래, 너의 저주를 인간에게 다 퍼부어라.

 

생태도로에서 텐트 치고 야영하는 사람들

이번 조사가 환경부의 의뢰에 의해 이뤄진 우리나라 최초의 로드킬 조사였다고 한다.

소득 2만불을 코 앞에 둔 나라에서 많이 늦다는 생각이지만 중요한 건 과연 이 조사가 앞으로 생태도로를 조성하는데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이냐는 점이다.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몇 개 안 되는 생태 도로도 로드킬 감소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전시행정에다가, 행락철이면 관광객들이 그곳에 텐트 치고 야영을 하기도 했다니 인식 부족 또한 심각한 수준인 상태에서 과연 이 연구가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게다가 멀쩡한 도로 옆에 또 도로를 놓고 있는 무분별한 도로 건설에 제재를 가할 수 있겠는가? 국회의원들이 상임위 나눌 때면 가장 경쟁률이 치열하다는 곳이 바로 이 건설교통부. 돈 많은 건설 회사들의 로비가 판치는 그곳에 과연 이런 미약한 연구가 명함이나 내밀 수 있을 것인가?

그저 로드킬 연구를 시작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할까?

 

동물들에 대한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책임감

영화가 끝나고 눈물, 콧물 훌쩍이며 밖으로 나오니 3월 대낮의 햇살에 눈이 시렸다.

함께 영화를 본 분들과 차라도 나누려 길을 건너려다가

초록불이 몇 개 안 남아 깜빡 거리는 것을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에고~ 이러다 이순신 장군 면전에서 로드킬 당할라.

그래, 인간은 이리 넓은 광화문 16차선도 죽지 않고 건널 수 있다.

하지만 야생동물들에겐 국도 2차선도 목숨을 걸고 건너야 하는 죽음의 도로다.

동물 세상에 인간들이 마음대로 도로를 놓고, 그 때문에 동물들이 죽어가고 있다면 펜스를치던, 생태통로를 만들던 그 책임은 반드시 인간이 져야 한다.

그게 함께 사는 동물들에 대해 져야 하는 인간의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책임이다.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먼지가 되어 날리는 시체

휴가철, 단풍철, 스키철, 신나게 고속도로를 달렸던 그 차 밑으로 이렇게 수 많은 생명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불편한 진실 하나를 알게 되었구나.

차창룡 시인은 자유로에서 본 고양이의 로드킬 풍장에 비유했는데

이번 로드킬은 조사연구한 최태영 연구원도 영화 속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다른 곳에서 죽으면 썩어 흙이 되어 다시 자연의 흐름 속에 들어가게 되는데

로드킬은 수 많은 바퀴에 계속 짓밟혀 납작해지고, 가루가 되어, 먼지처럼 날아가버려 아무 의미 없는 죽음이 된다고……

날씨 화창했던 봄날, 누앞에 펼쳐진 수 많은 주검 앞에서 과연 나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기러기 뱃속에서 낟알과 지렁이가 섞이고 있을  –차창룡

강가에 물고기 잡으러 가던 고양이를 트럭은
놀라서 엉덩이를 약간 씰룩거렸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북으로 질주한다
숲으로 가던 토끼는 차바퀴가 위를 지나갈 때마다
작아지고 작아져서 공기가 되어 가고 있다
구름이 토끼 모양을 만들었다
짐승들의 장례식이 이렇게 바뀌었구나
차량 행렬이 조문 행렬이었다
시체를 밟지 않으려고 조심해도 소용없다
자동차가 질주할 때마다 태어나는 바람이
고양이와 토끼와 개의 몸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고양이와 토끼와 개의 가족들은 멀리서 바라볼
시체라도 거두려고 하다간 줄초상 난다
장례식은 끝나지 않는다
며칠이고 자유로를 뒹굴면서
살점을 하나하나 내던지는 고양이 아닌 고양이
아닌 토끼 아닌 토끼인 채로 하루하루
하루하루 석양만이 얼굴을 붉히며 운다
남북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기러기의 뱃속에서
낟알과 지렁이가 뒤섞이고 있을
출판단지 진입로에서도
살쾡이의 풍장風葬이 하루째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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