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의 가족 나들이는 영주 뜬바우골(浮石마을) 기행이다. 오늘 여행을 위해서 서울에서 둘째 민희가 내려오고 포항에서 막내가 왔다. 멀리 가 있던 세째도 다시 돌아와서 가족 전체가 모였다. 5.4일 아침 느즈막히 경주를 떠난 가족은 포항-북대구-금호분기점-안동-영주-풍기로 해서 바로 사과꽃축제가 열리는 뜬바우골로 향했다. 부석사 경내에 있는 떠 있는 바위 부석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된 뜬바우골은 기대와는 달리 이제 사과꽃이 막 지고 있었다. 하긴 꽃 피는 시기를 맞추기가 어디 쉬우랴! 우리는 먼저 부석사로 들어갔다.
부석사 앞 寺下村에 모인 나의 아이들.....막내는 저 모자를 무척 좋아해서 모자 속에 head를 푹 담구었다.
나에게 또 다른 세상에 눈을 뜨게해 준 고마운 아이, 막내다. 원중이는 평생을 고생할 병을 앓고 있지만 나에게는 가장 소중한 아이이다.
제각기 생김이 다른 세 딸들. 가운데 큰 딸은 여러가지 큰 악재로 어려웠던 가정을 살려준 그야말로 맏딸이다. 동생들에게는 엄마의 역할도 하고 있는 집안의 대들보이다.
부석사로 올라가고 있는 가족들. 부석사는 이렇게 줄곧 올라가야 한다. 백두대간 소백산을 지나 좀 가다보면 선달산 못 가서 봉황산이라는 중산이 있는데 그 밑에 이 부석사가 있다. 부석사 입구에는 '태백산 부석사'라는 표지가 있는데 그것은 잘못되었다. 여기서 태백은 너무나 멀다. 오히려 '봉황산 부석사'하든지 아니면 더 크게 범위를 잡아서 '소백산 부석사'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단미는 겉 보다는 속이 아름다운 여자이다. 늘 말없이 잘 참으며 항상 웃음을 잃지 않으니 아름다운 것이 아니겠는가?
부석사 주변의 마을이 뜬바우골이다. 浮石을 그대로 풀었다. 마을 온 천지가 사과밭인데 이제 사과꽃이 막 지려한다. 대구 사과는 이제 옛말이다. 온난화 현상 때문인지 이제 사과산지도 북으로 올라와 군위, 의성, 안동, 영주가 사과의 주산지이다.
부석사 막 들어가기 전 아름다운 누각문 앞에서.....계단 오르기 전문가인 막내는 계단을 오르고 싶어 앙탈이다.
가족이 모두 약수를 마실 때 막내 원중이는 벌써 혼자서 계단을 오르고 있다. 물론 경내에는 막내가 가장 먼저 들어갔다.
우리나라 건축사에 이름도 유명한 부석사 무량수전이다. 초등학교 미술책에서 마르고 닳도록 보았던 그 건축물이다.
이 부석은 공중에 떠 있단다. 부석이라는 글이 위에 보이고 밑에 원중이가 특유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저것은 곤란할 때 취하는 포즈이다.
부석사를 내려오면서 한장.
원중이를 가장 사랑하는 둘째 민희. 둘이서 먼저 내려가 얘기를 나누고 있다. 둘째는 영문학 전공하다 그만두고 다시 단국대학에서 특수교육학을 전공하고 있다. 물론 막내의 영향이다.
풍기 선비촌에 온 가족.
선비촌 내 장터식당에서 파전을 먹고 있다. 원중이는 먹는 데에는 아구중천이다.
선비촌 내.
조선시대 촌을 그대로 재현한 선비촌. 볼거리가 꽤 된다.
널뛰기를 하는 아이들.
어느 고가의 내부 마당 풍경
여기는 소수서원. 조선 중종 대 고려의 유현 안향을 기리기 위해 풍기군수 주세붕이 세웠다는 소수서원이다. 역시 지도자의 역할은 너무나 커 풍기, 이 척박한 소백산 자락에 위치한 마을에 부임한 군수 주세붕은 바로 소백산 기슭에 산삼을 심어 조선 최대의 인삼단지를 만들어 주민들의 소득을 올리고 여러군 데에 설치한 문화적 치적도 많아 이제는 명승지가 되었다. 주세붕 뒤에 풍기순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이 조정에 상주하여 이 서원을 허가 받고 최초의 사액서원이자 공인된 사학이 되었다. '소수서원'이라는 편액은 조선 명종의 친필이다.
소수서원 내.
소수서원 내에 있는 내와 정자. 저 내는 소백산 초암사옆을 흐르는 죽계구곡에서 흘러 내려온 물이다.
소수서원 내의 꽃이 핀 마당에서.....
경주로 내려오는 중 군위군 효령의 어느 마을 정자에서 찌개를 끓이면서.....
첫댓글 행복한 가정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