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프티콘 선물 소동
박 동 조
휴대폰에 카카오 선물창이 뜨고 이어서 후배의 메시지가 떴다. 후배의 메시지로 앞서 온 창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제과점 매장에 가시면 케이크로 교환되고 금액만큼 다른 빵으로 교환이 가능합니다.’라는 아리송한 문자였다.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잘못 배달된 문자 같다’는 주석을 달아 후배에게 전송했다.
곧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잘못 배달된 문자가 아니라 수필집을 보내주신 것에 감사하는 뜻으로 키프티콘 선물을 드린 거라며, 표시된 상표의 제과점에 가서 바코드를 보여주면 알아서 해줄 거라고 했다. 뭔 말인지 접수가 되지 않았지만, 요즘 전화기는 그런 장치가 있나 보다고 생각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때부터 머리가 복잡해졌다. 초고속으로 발전하는 스마트한 세상에 도무지 발맞추지 못하는 주인을 만난 내 폰은 갖가지 첨단 기능을 장착하고서도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기껏 음성통화, 문자, 카카오 톡 주고받는 것으로 휴대폰의 체면치레를 하는 처지다. 그런 내게 키프티콘 선물은 낫 놓고 기역자 겨우 깨친 사람에게 수필집을 보내온 거나 다르지 않았다.
혹시나, 어디엔가 있을 바코드를 찾아 휴대폰을 뒤졌다. 어쩌나! 바코드는 어디에 숨었는지 찾을 수 없었다. 고민 고민하다가 문자만 보여주면 가게 직원이 알아서 해줄 거라던 후배의 말에 의지하기로 했다.
이왕이면 한해를 시작하는 첫날, 케이크에 불을 밝힌 인증 사진을 보내주면 후배가 많이 기뻐하리라는 생각에 발걸음도 당당히 가까운 빵집으로 향했다. 정월 초하루여서일까, 평소에 근무하던 젊은 직원은 보이지 않고 주인으로 보이는 오십 대의 여자가 나를 맞았다. 후배가 일러준 대로 문자를 보여주었다. 그녀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그런 선물이 있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다고 했다.
도리 없이 되돌아 나오는데 쉴 새 없이 웃음이 나왔다. 누군가 히죽거리는 나를 봤다면 맛이 간 할머니로 오해했을 것이다. 아날로그 시대에서 뼈가 자란 나는 디지털에 눈 밝은 사람을 만나면 괜스레 움츠러든다. 나보다 열댓 살은 아래인 사람이 그런 방법의 선물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게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사람은 자신과 동류인 사람에게서 위로를 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실제로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이왕 나선 걸음, 큰 길 건너에 있는 빵집으로 가보기로 했다. 알바직원이 여럿인 그곳에는 키프티콘 바코드를 찾아낼 실력 있는 직원이 한 사람쯤 있을 것 같았다. 웬걸, 그곳에도 쉰 넘어 보이는 여인 둘이 가게를 지켰다. 내 말을 들은 그녀들은 아주 유쾌하게 그런 방법으로 전하는 선물이 있다고 했다. ‘이제 됐구나!’ 안도의 숨을 쉬며 휴대폰에 담긴 문자를 보여주었다. 문자를 읽어본 그녀들은 바코드가 어디 있느냐고 되레 물었다.
“어디엔가 저장돼 있을 거예요. 찾는 방법을 몰라서 그러니 잘 찾아봐 주세요.”라며 전화기를 건넸다. 전화기를 받아든 두 여자는 번갈아서 요모조모 클릭하며 주물럭거리더니 선물한 분이 바코드 보내는 걸 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바코드를 전송한다 했으니 찾아보면 있을 거예요” 확신에 차서 하는 내 말에 그녀들은 도리질을 할 뿐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저들도 모르기는 아날로그 세대인 나나 도긴개긴이구나!’
두 여자의 눈길을 꼭뒤로 느끼며 되돌아 나왔다. 그때, 옆에 있는 휴대폰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옳다구나! 저곳이라면 휴대폰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곳이니 어느 파일에 바코드가 저장돼 있는지 알 수 있을 거야!’ 쾌재를 부르며 문을 밀고 들어섰다. 모니터에 얼굴을 박고 있던 중년의 여인이 고개를 들었다.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여차여차한 사유로 바코드 찾는 방법을 알고 싶어 들렀다고 했다.
“우리 그런 거 몰라요” 여자는 바깥의 쌀쌀한 날씨 같은 음성으로 대꾸하고는 모니터 화면에 다시 눈을 박은 뒤로 줄곧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나는 졸지에 투명인간이 되었다. 사람을 앞에 두고 쳐다보지도 않는 여자를 보면서 또 속으로 어림짐작했다. ‘알아야 할 것을 모른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부러 냉정한 척하는 거야!’라고.
어쨌거나 새해 첫날, 후배를 기쁘게 하리라는 내 계획은 바람 앞에 움츠러든 애벌레 꼴이 되었다. 첨단 기기 사용법이라면 처음부터 아예 배울 생각은 안 하고 나이를 핑계 대어 도리질부터 했었다. 후회를 막급으로 한들 버스 지나고 손 흔드는 짓이었다.
집에 돌아와 뒤듬바리 같은 자신이 부끄러워 얼굴을 화끈거리며 후배에게 문자를 쳤다. ‘빵집에서 문자만으로는 알 수 없다고 하네요. 후배님이 그 빵 찾아 드시면 안 될까?’ 문자를 보내고 일 분이 채 안 되어 카톡 음이 울렸다. ‘**님이 선물과 메시지를 보냈습니다.’라는 알림 창이 휴대폰에 떴다. 이어서 ‘즐거운 우리 집 고구마 케이크’ 사진이 전송돼왔다.
짚이는 게 있어 지나간 카톡 창을 쭈르르 내려 검색했다. 맙소사! 광고 취급하여 보지 않고 닫은 카카오 선물 창에 금방 후배가 보내온 것과 똑같은 내용이 담겨 있지 않은가. 순간 자신의 부주의와 무식이 부끄러워 지구에서 칵 사라지고 싶었다. 정월 초하루 아침부터 바코드 운운하며 설레발친 가게들에도 너무나 미안했다. 뒤통수에 대고 정초부터 재수 없다고 투덜거렸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선물함으로 가기’를 클릭해 회원 가입을 하자 그토록 찾아 헤맨 키프티콘 바코드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내 눈에는 마치 여러 개의 검은 바늘 병정들이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나는 벌떡 일어나 춤추는 바코드에 맞춰 ‘아싸’를 외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후배님 덕분에 신문화 하나를 접수했습니다. 억수로 감사’ 내가 보낸 문자에 후배는 손뼉 치는 ‘이모티콘’으로 응원을 보내왔다.
(2022수필오디세이 봄호)
첫댓글 상황을 눈에 보는 듯합니다. 기프티콘을 사용할줄 아는 젊은 할매 멋지십니다.^^
소희 작가님,
이삿짐 정리는 다 하셨나요?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하면 상황이 선명히 전달되더군요.
댓글 감사해요.
나날이 좋은 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