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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강해(26) 2026. 9. 2
땅을 되찾은 수넴 여인
왕하8:1~6
오늘 본문에서 갑자기 수넴 여인의 이야기가 삽입되어 있습니다.
<수넴 여인은 누구?>
왕하4:8~37에 나온 이야기를 잠시 복습해 보겠습니다.
엘리야의 뒤를 이어 북이스라엘의 선지자가 된 엘리사는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이곳저곳을 순회하며 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수넴’이라는 작은 동네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한 귀한 여인’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엘리사를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으로 귀히 여겼습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수넴 지역을 지날 때마다, 강권하여 음식을 대접하였습니다.
이 여인은 남편의 동의를 받아 엘리사가 올 때마다 머물 수 있도록 아예 옥탑방(다락방)을 만들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게스트하우스를 만들어서 엘리사가 마음 놓고 쓰도록 배려한 것입니다.
엘리사가 너무나 고마워서 수넴 여인에게 보답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특별히 원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환 게하시와 상의하던 중, 이 여인에게 아이가 없음을 알아챘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이미 늙어서 생식 능력이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이 여인을 다시 부른 후, 놀라운 예언을 합니다. “한 해가 지나 이 때쯤에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4:16)는 예언이었습니다. 수넴 여인은 엘리사의 이 예언을 ‘속이는 말’, 곧 ‘놀리는 말’로 들었습니다(아브라함과 사라가 하나님의 예언을 들을 때와 같음. 창18장). 하지만 정확히 1년 뒤에 이 여인은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약속이 이루어지자, 수넴 여인은 이 아이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선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얼마나 기쁜 일이었을까요?
이대로 이 이야기가 끝나면 해피엔딩일 텐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하루는 이 아이가 아버지를 찾아 추수하는 현장까지 왔다가 갑자기 “내 머리야 내 머리야” 하며 두통을 호소하는 것입니다(일사병). 아버지는 단순한 두통으로 생각하고, 아이를 어머니에게 보냈는데, 그만 어머니 무릎에 앉아 있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노릇입니까?
이때 수넴 여인은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대개의 사람은 통곡하며 울었을 텐데, 수넴 여인은 울지 않습니다. 철저히 아이의 죽음을 숨깁니다. 엘리사가 쓰던 침상 위에 눕히고 문을 꼭 닫았습니다. 그녀는 엘리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만이, 생명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믿었습니다. 불임인 자신에게 생명을 잉태하게 하신 분이라면, 죽은 아들의 생명도 돌려주실 수 있을 것이라는 분명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사환 한 명과 나귀 한 마리’를 달라고 하고는 엘리사가 있는 갈멜산으로 쉬지 않고 달렸습니다(약 40km).
수넴 여인은 엘리사를 보자마자 엘리사의 “발을 안았습니다.” 발을 안은 것은 도움을 요청하는 심정의 간절함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은 전혀 ‘귀한 여인’ 답지 않은 행동입니다. 아무리 예언자이지만, 다른 남자의 다리를 붙잡는 것은 부끄러운 행동입니다(가나안 여자의 믿음 - 마15:21~28 “주여 옳소이다 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27).) 모욕적인 말씀에도 굴하지 않은 것도, ‘귀한 여인’이 발을 안은 것도 ‘어머니’였기 때문입니다. 이 수넴 여인은 엘리사에게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라고 말하고는 자신의 아들이 죽었음을 알렸습니다. 엘리사는 게하시를 통하여 지팡이만 보내면서, 자기 대신 속히 가서 지팡이를 아이의 얼굴에 놓으라고 명합니다(29절). 그러자 그 여인은 당신이 직접 가지 않으면 다리를 놓지 않겠다고 합니다. 수넴에 온 엘리사는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렸던 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그 아이를 살립니다(왕상 17:21). 아들의 입과 눈과 손을 맞대고 그 아이 위에 엎드립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죽었던 아들의 살이 차차 따뜻해지더니, 죽은 아이가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수넴 여인에게 7년 기근을 피하게 한 엘리사>
이후, 수넴 여자의 이야기는 더 이상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8장에 갑자기 등장합니다. 4장과 8장 사이에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정확히 언제 있었던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엘리사와 꾸준한 교제가 있었음은 확실합니다.
1절 “엘리사가 이전에 아들을 다시 살려 준 여인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서 네 가족과 함께 거주할 만한 곳으로 가서 거주하라 여호와께서 기근을 부르셨으니 그대로 이 땅에 칠 년 동안 임하리라 하니.”
아마도 엘리사는 자신을 극진히 대접해 준 수넴 여인에게 늘 빚진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는 당연합니다. 순회하며 전도하는 선지자에게 정기적으로 먹을 것과 머물 곳을 대접하는 이를 만난다는 것은 큰 은혜입니다.
오늘날 선교사들의 고민은 고국에 돌아왔을 때, 머물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생활 기반이 다 선교지에 있기에). 그래서 교단적으로(개교회적으로) 선교사들의 안식처를 마련하는 일은 매우 귀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웨슬리 하우스).
그런데 엘리사는 앞으로 7년 동안 이스라엘 땅에 기근이 있을 것을 알았습니다(4:38 “엘리사가 다시 길갈에 이르니 그 땅에 흉년이 들었는데...”). 그래서 수넴 여인 7년 기근이 있을 동안, 어디든지 피해 있으라고 미리 알려주어 자신을 섬긴 일에 대한 보답을 한 것입니다.
이 흉년 기간 동안, 엘리사는 길갈의 선지 학교에서 두 가지 기적을 행했습니다.
1) 선지 학교에서 솥에 들포도 넝쿨의 열매를 넣고 끓여 독이 생김, 가루를 넣어 해독.
2) 어떤 사람이 선지학교에 보리 떡 이십 개와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보내왔는데, 엘리사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고 명하자 무려 100여 명이 먹고 남음).
<엘리사의 예언에 순종한 수넴 여인>
엘리사의 권면대로 수넴 여인은 이주를 합니다.
2절 “여인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행하여 그의 가족과 함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땅에 칠 년을 우거하다가.”
가족을 이끌고 가는 주어가 ‘여인’입니다. 이것은 그녀의 남편이 이미 죽고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왕하 4:14에서 그녀의 남편이 매우 늙었다고 했는데, 그동안 그 남편은 죽고 이제 과부가 된 수넴 여인이 혼자가 가족을 부양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인 혼자서 7년 기근을 견디기 쉽지 않으니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통해 그 기근을 피할 길을 미리 알려주신 것입니다. 여인이 피신한 곳은 블레셋 사람들의 땅입니다. 이 당시의 블레셋은 쇠퇴기에 접어들어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여인이 일시적으로 체류하기 딱 좋은 환경이었고, 위치적으로도 유다의 남서쪽 해안가(가자 지구)에 있어 기근을 극복하기 좋은 지역이었습니다.
<다시 돌아온 수넴 여인>
7년이 지나자 이스라엘 땅에 기근이 그쳤습니다. 수넴 여인은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3절 “칠 년이 다하매 여인이 블레셋 사람들의 땅에서 돌아와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호소하려 하여 왕에게 나아갔더라.”
돌아와서 보니 깜짝 놀랄만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자신의 땅이 다른 사람의 소유로 넘어간 것입니다. 땅을 버리고 타국으로 이주한 것으로 오해했던 것입니다. 그런 경우 그 사람의 집과 토지가 왕실 소유가 됩니다.
수넴 여인은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왕에게 아뢰고(엘리사의 권유로 기근을 피해 블레셋 피신), 자신의 집과 토지를 돌려달라고 호소하기 위해 왕에게로 간 것입니다.
<엘리사가 행한 일에 대하여 묻다>
한편 그때 왕궁에서는 왕과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를 불러, 엘리사를 통해 일어난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에 대해 묻고 있었습니다.
4절 “그 때에 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 게하시와 서로 말하며 이르되 너는 엘리사가 행한 모든 큰 일을 내게 설명하라 하니.”
여호람 왕은 중요한 사건마다 엘리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1) 즉위한 직후, 모압의 배반(왕하 3장) – 연합군 형성(남유다 여호사밧, 에돔 왕) - 에돔 광야에서 물이 떨어짐 – 엘리사의 말씀대로 골짜기에 구덩이를 파니 다음 날 물이 고임).
2) 아람 군대가 북이스라엘을 공격할 때마다 그 위치를 미리 알려줌(6:8-23절). 이후 엘리사를 잡으려 했으나 눈이 멀어, 사마리아 성으로 이끌려 들어옴, 물과 떡을 대접하고 돌려보냄.
3) 아람 군대에 포위되었던 사마리아 성읍(왕하 7장) – 엄청난 인플레이션과 자식을 잡아먹는 비극적인 사건 - 네 명의 나병 환자를 통해 아람 군대가 물러갔다는 소식을 들음 – 완전한 해방 – 엘리사의 예언 적중 “내일 이맘 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 비웃은 장관의 죽음.
엘리사의 예언 성취는 여호람 왕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을 것입니다.
여호람은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를 불러, 엘리사를 통해 그동안 일어났던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에 대해 묻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끝내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음 – 가족의 배경이 중요 - 아버지 아합, 어머니 이세벨).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마침 게하시가 수넴 여인의 아이를 다시 살려낸 이야기를 하는 ‘바로 그 순간’에 수넴 여인이 왕에게 호소하러 도착하였습니다.
5절 “게하시가 곧 엘리사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린 일을 왕에게 이야기할 때에 그 다시 살린 아이의 어머니가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왕에게 호소하는지라 게하시가 이르되 내 주 왕이여 이는 그 여인이요 저는 그의 아들이니 곧 엘리사가 다시 살린 자니이다 하니라.”
타이밍이 기가 막힙니다. 여호람 왕이 게하시에게 마침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린 일을 이야기할 때에, 수넴 여인을 들어온 것입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땅을 되찾은 수넴 여인>
수넴 여인은 왕 앞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아뢰었습니다.
6절 “왕이 그 여인에게 물으매 여인이 설명한지라 왕이 그를 위하여 한 관리를 임명하여 이르되 이 여인에게 속한 모든 것과 이 땅에서 떠날 때부터 이제까지 그의 밭의 소출을 다 돌려 주라 하였더라.”
왕은 신기하여 그 여인에게 정말로 죽은 아들을 살린 것이 맞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수넴 여인은 엘리사가 자기의 죽은 아들을 살린 일을 왕에게 모두 설명하였습니다. 자기가 만난 부활의 하나님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러자 왕은 한 관리를 임명하여 수넴 여인이 본래 가지고 있던 모든 집과 토지를 돌려주고, 그 여인이 떠나있을 동안에 그 토지에서 수확한 모든 소출물도 돌려주라고 명하였습니다.
<배우는 교훈>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희생과 사랑의 봉사를 한 자녀들을 잊지 않으십니다.
수넴 여자는 엘리사의 사역을 알뜰하게 도운 자였습니다. 엘리사에게 방도 지어주고 숙식도 제공하며 사역의 쉼터를 제공하였습니다.
당시 기근은 징계의 성격을 띤 것입니다. 언약 백성들에게 기근은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데 대한 저주의 목록에 들어가 있습니다(신 28:22-24, 시 105:16). 그래서 엘리사는 “여호와께서 기근을 부르셨다”(8:1)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내릴 기근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해 불러일으키는 재앙이었습니다.
당시의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 숭배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수넴 여자처럼 우상 숭배를 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기근으로 벌하실 때 수넴 여자에게 피할 길을 주셨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성경 말씀을 통해 약속의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을 기억하시고 반드시 갚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계2:23b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리라.”
계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기억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작은 선행까지도 기억하시고 나를 개인적으로 친밀하게 대해 주신다는 것은 얼마나 마음 훈훈한 일인지 모릅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 속에서도 같은 내용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고후5:9~10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갚아 주심을 믿고,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둘째, 우리는 이 땅에서 영원히 머물 수 없는 나그네란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수넴 여인은 엘리사의 지시대로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녀가 정착한 곳은 블레셋 사람의 땅이었습니다. 블레셋 사람의 땅은 비옥한 곡창지대로 기근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식량이 풍부한 곳입니다. 그러나 수넴 여인은 블레셋 땅에서 계속해서 살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7년의 기근이 끝나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즉 수넴 여인은 블레셋 땅에서 정착민의 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다시 돌아갈 본향을 그리며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이런 수넴 여인의 태도는 오늘 우리 성도들이 이 땅에서 가져야 할 삶의 태도입니다.
고후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벧전1: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히11:13~14(믿음의 조상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셋째,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성도에게도 뜻하지 않은 어려움이 온다는 것입니다.
수넴 여인은 7년 기근이 끝나자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자신의 땅의 소유권이 다른 사람(왕실)에게 넘어간 것입니다. 얼마나 당황스러운 일이겠습니까?
말씀대로 순종했음에도 시험이 온 것입니다.
크게 당황한 수넴 여인은 왕을 찾아 호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에 왕을 찾아간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적극적으로 대처한 것입니다.
때로 오늘 우리에게도 시험은 옵니다. 주님의 사랑과는 별개로, 우리는 여전히 한계와 죄악이 존재하는 불완전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1) 하나님은 우리가 시험당할 때, 감당할 힘과 피할 길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고전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2) 우리의 신앙의 단련하시려는 뜻도 있기 때문입니다. 금이 불을 통해 순수해지듯, 시련은 성도의 믿음을 더 깊고 순수하게 만듭니다(벧전 1:7).
2)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당장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일지라도, 하나님은 모든 것을 협력시켜 궁극적인 선을 이루어가십니다(로마서 8:28).
그러므로 고난, 환난, 기근이나 위험도 결코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롬 8:35-37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생략/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넷째, 하나님의 세밀하신 손길이 역사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본문 5절에서 “게하시가 곧 엘리사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린 일을 왕에게 이야기할 때에 그 다시 살린 아이의 어머니가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왕에게 호소하는지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운이 좋았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섭리’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신론(理神論)자들의 말대로 이 세상의 통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분이 아니라 이 세상을 당신의 뜻에 따라 간섭하시고 이끌어가시는 분이십니다(신 29:29). 그러므로 성도들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이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임을 깨닫습니다(대상 29:11~12).
성경에는 적시 적소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수없이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 이삭 대신 양을 준비하심.
에스더는 파사(페르시아)왕 아하수에로의 왕비로 간택이 되었습니다. 하만의 음모로 유대인들이 전멸된 위기에 몰렸을 때, 에스더의 사촌오빠이자 양아버지 같은 모르드개가 이 음모를 알고, 급히 왕후 에스더를 찾아가 이 사실을 알리고, 왕에게 나아가 이 조서를 거두어달라고 부탁하라고 합니다. 에스더는 처음에는 주저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궁중의 법에 따르면,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무턱대고 왕을 찾아가면 죽임을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르드개는 “네가 왕후가 된 것은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에4:14)고 말합니다. 그러자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이라”하고 왕에게 나아갑니다.
다행히 왕은 기쁨으로 에스더를 받아 주었고, 에스더를 통해 하만의 계략이 개인의 증오심에서 비롯된 음모였음이 드러납니다. 결국, 하만은 자신이 모르드개를 달아 죽이려고 세운 나무에 달려 죽고 맙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생명을 보전하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이 날을(12월 13일) 기념하여 부림절로 지킵니다.
에스더가 왕후의 자리에 오른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그 민족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일입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뜬금없이 삽입된 내용입니다. 그러나 열왕기 저자(신명기 기자)는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여기에 삽입시켰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하나님을 순전한 마음으로 열심히 섬기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호하시고 전화위복의 역사로 함께 하시는지를 보여주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려 하십시오.
하나님을 섬기려는 열망이 우리 안에 충만하게 채워지도록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갚아 주시고, 우리의 삶에 전화위복의 역사로 함께 하실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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