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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까운 길은 언제나 곡선이다" | ||||||
송광근 시인, 첫시집 내고 8월 8일 출판기념회 | ||||||
13.07.30 14:54 | 최종 업데이트 13.07.30 14:54 | 정만진(daeguedu) | ||||||
싱싱한 활어 한 점 먹다가 활어 눈이 껌벅거려 잘 익은 삼겹살 한 점 먹다가 숯불이 붉어 가두어 사육한 것 같아 촘촘히 썰린 해부, 목으로 넘기지 못하고 까만 눈, 붉은 숯불이 명치 끝으로 치민다 강물에 실어 보내고 바람에 떠나보내도 머무르는 아이야 - 불망 송광근의 시집 <가장 가까운 길은 언제나 곡선이다>에 실려 있는 시 '불망' 전문이다. "강물에 실어 보내고 바람에 떠나보내도 머무르는 아이"이기에 잊을 수 없어(不忘) 남은 사람들은 고통스럽다. 그 아이가 마치 눈을 껌벅이는 활어만 같아서, 가두어 사육당한 가축만 같아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명치끝을 자극한다. 어떤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버린 모양이다. 그런데 송광근은 아이가 오롯이 스스로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죽음을 맞이했다는 점을 짚고 있다. '사육'이라는 소설적 어휘가 시어로 선택된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 활어와 삼겹살이 어찌 제 발로 인간들의 밥상에 오르겠는가. 정신적 육체적 질병 등이 주요 원인인 노인 자살과 달리, 청소년의 자살은 대체로 스트레스나 촉발 사건에 기인한다. 예를 들면, 아침 식사를 하지 않으면 인간의 몸을 스트레스를 받는데, 우리나라 15~19세 청소년의 29.4%가 아침밥을 굶는다. 운동하면 스트레스가 해소되는데, 청소년의 74.7%가 운동을 하지 않는다. 새벽부터 밤까지 학교 교실에 가두어 놓으니 아침밥을 먹을 수 없고, 운동을 할 시간도 없다. '사육'이다. 게다가 우리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하는 것은, 4명이 시도하여 1명이 사망하는 노인 자살과 달리, 청소년은 200~400명이 시도하여 1명이 목숨을 잃는다는 사실이다. 청소년 자살은 꼭 죽겠다는 결심을 하고 시도되는 것이 아니라 "도와 달라"는 신호를 보내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어른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대화와 소통을 일상화하면 해결될 일이 그렇게 하지 않아 불행으로 이어진다는 이야기이다. 외로움 속에서 죽어가는 우리나라 청소년들 통계청은 고민이 있을 때 누구와 상담을 하느냐는 질문에 청소년들이 "스승 1.3%, 아버지 3.2%"라고 대답했다고 밝혔다(2013년 5월 2일). 어머니는 18.5%. 그래도 어머니는 괜찮은 편이다. 대부분 친구였다. 46.6%. 그러나 "가정 생활에서 42.1%, 학교 생활에서 56.9%"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우리나라 청소년들 중에는 고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가 22.0%나 되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정지용이 너무나 아끼던 후배 윤동주의 죽음을 애도하며 외친 "무시무시한 고독 속에서 죽었구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도 없이!"라는 절규가 무색할 지경이다. 닭집 사장이 1년 365일 새벽 세시에 퇴근하더니만 몇 달 전에는 바다 보러 가자 해서 새벽 울산 방어진을 갔다 왔다 계획했던 바다낚시는 아침나절에 접고 소주만 서너 병 까고 하루 종일 취했다 올봄에는 지리산을 가잔다 산을 못 탄다고 우겨도 무작정 가자기에 그러마 했더니만 가기 전날 닭집 사장 아버지가 암인 것 같단다 봄바람 날 듯한 계획은 사라지고 오늘 병원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1년 365일 하루도 쉬지 못하는데 오늘 오후에도 아버지 남겨두고 닭 팔아야 한다 아버지 소식 듣던 날 같이 밥 먹으며 한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 아버지 오래 살아야 하는데 고생 무지 했는데 씨발 지리산은 언제 가보나 세상 참 -지리산 산행 '지리산 산행' 전문이다. "씨발"과 "세상 참"을 통해 마무리를 짓는 솜씨를 보여주는 이 시는 송광근의 시적 표현력을 잘 드러내주는 작품이다. 소설의 주인공에 해당되는 시 속 '닭집 사장'은, '후포항'의 정양 같은 대부분의 서민들이 그러하듯이, 정치적 경제적으로는 이름이 없다. 그는 가난한 서민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1년 내내 쉬지 않고 일하며, 그의 아버지 또한 대한민국 사람들의 사망 원인 1위인 암을 앓고 있다. 그런 그가 가보고 싶은 곳은 지리산. 지리산도 마찬가지이다. 지리산을 에베레스트산으로 바꿔놓고 읽으면 이 시는 난해시(難解詩)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불가해시(不可解詩)가 되고 만다. 아니, 백두산 정도로만 바꿔도 읽어내기가 어렵다. 송광근은 시어 하나를 선택할 때에도 상징과 비유의 무늬와 결을 적절하게 살려내고 있다는 말이다. 이름 없는 서민들, 지리산 산행 한번도 힘들어 송광근의 가족사인 듯 읽히는 '여자' 역시 가난한 한국여성사의 세파를 노래하고 있으면서도, 신변적 서술을 뛰어넘는 시적 일반화를 보여준다. 외할머니는 "햇볕 따가운 늦봄에 낫처럼 기역자로 신녕 양파밭에 누워"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내림굿에 한동안 대나무 꽂았다가" 오십부터 아들. 며느리, 손자 치다꺼리하는 처지에 있으며, 아내는 "버릴 수도 없는 남편을 데리고" 살아가고 있다. 열일곱 시집와서 열두어 마지기 농사지으며 바람 잘 날 없는 칠 남매 외지로 다 내 보낸 후 밭두렁에 푸른 쓰레빠 한 짝 벌러덩 던져두고 낫처럼 기역자로 신녕 양파밭에 누워 오십부터 꺾어진 허리 펴지 못한 채 햇볕 따가운 늦봄에 홀로 떠난 외할머니 서른여섯 남편 잃고 아이 둘에 빚만 넘겨받아 공사판 함바집, 성당시장 밥집, 평리지하도 포장마차 내림굿에 한동안 대나무 꽂았다가 이 집 저 집 식당일 기웃거리더니 오십에 손자 떠맡아 아들, 며느리, 손자 치다꺼리하는 어머니 열아홉 철없는 삼월 그 봄 현기증 나는 라일락만 아니었다면 만났다 하더라도 잊어버렸을 천지 쓰잘데기 없는 인연으로 먹고는 살아야겠기에 직장 하나 잡아 이십년 지나도록 결근 한번 없는 오십을 바라보며 어디 갔다 버릴 수도 없는 나를 데리고 사는 아내 '불망','지리산 산행','후포항','여자'만이 아니라 송광근의 작품에는 사회적 발언이 많다. '도색공', '최저 임금' 등 제목만으로도 짐작이 되는 경우도 그렇지만, '개화','고독 예찬','이별'처럼 서정적 심상이 물씬 풍겨나는 시제의 작품들도 사회적 비유를 노래한다. 그러다 보니 그는 일상에서도 "선거 유세차가 찾아오지 못하는" 산골짜기에 봄나들이를 가서도 "기어이" 정치 이야기를 하게 된다. 봄꽃 흐드러지는 오후 마음은 하늘로 날아가고 선거 유세차 찾아오지 못하는 욱수골 벚꽃 아래에서 봄바람 나겠다고 작정한 놈들과 막걸리 나눈다 어릴 적 기억에 술잔 돌아 기어이 정치 이야기하다가 또 돌아 내 마음 같지 않은 마누라 이야기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날 좋은 봄날에 기억 가물가물 취하는 봄 봄 - 봄 봄 '봄 봄' 전문이다. 하지만 '나비'에 이르면 이제 송광근의 시세계는 변혁을 맞이하는 듯 나아간다. 얼핏 보면 단순 서정시인 듯 여겨지지만 "아가씨 향에 젖어" 재를 넘어가다가 "남은 분내 씻어 도랑으로 흘려" 보낸 뒤 "거미줄 자욱한 뿌연 산으로 들어간다"는 표현을 보면 그리 단선적(單線的)인 작품이 아니다. 사뭇 의미심장하다. '후포항'의 "이름도 없는 정양"이 이미 "분내 날리며 물커피 나른다"고 하지 않았던가. 정치 이야기하면 답답해져서 또 술 한 잔 봄비 오는 날 아가씨 향에 젖어 등 떠미는 바람으로 재 하나 넘고 감자 꽃 무더기에 쉬었다가 남은 분내 씻어 도랑으로 흘려 튀어 오른 물방울 한 조각만 이고 거미줄 자욱한 뿌연 산으로 들어간다 - 가지꽃 송광근의 시가 이런 경지에 도달한 것은 그의 감수성이 주관적 서정에 매몰되는 데 멈추지 않은 덕분이다. '가지꽃'의 "길 따라 흐르는 동안 / 나만 혼자가 아니었구나 / 일렁이는 달빛 따라 너도 외로웠구나"같은 절창을 보라. 혈압 비만에는 좋지 않은데도 당신이 즐기신다고 달달한 도너츠를 계속 사드려 어머니를 병원에 다니게 하는 아들과, 비싼 과자는 못 사 주지만 그래도 엿은 계속 입에 달고 살게 하여 아들의 이빨을 뽑게 만드는 '가난한 집' 사람들의 어리석은 '사랑'를 보라. '허락'에서 글과 말이 가지는 사회적 도구성은 포기하더라도 "사람들 사이에 끼여 / 수고로운 노동을 하게만 허락하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그를 보라. 송광근은 가장 가까운 거리를 향하는 길은 / 언제나 곡선이라고 말한다. 그는 '길'에서 "길을 걷는 사람들"이 "지금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였고, 그들이 지금은 틀린 답을 말하더라도 / 놓친 막차를 기다리듯 /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려야"한다고 말한다. 물론 이는 사회적 발언이지만, 문학적으로는 시인 본인이 스스로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인지도 모른다. 이제 첫 시집을 내고 공개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하는 만큼, 여느 시인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시 역시 시집에 실린 작품들이 하나같이 수작일 수는 없으므로, 그는 자작시 속의 인식처럼 "곡선"을 걷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 길은 "가장 가까운 거리를 향하는 길"이다. 그가 앞으로 더 좋은 시를 많이 써서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에게 마음의 위로가 되고, 많은 대중들까지도 치유할 수 있게 된다면, 그가 오늘 걷는 이 길은 척박한 우리 세상에서 보기 드문 "직선"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의 '서시'를 읽어본다. 구름으로 살아가리라 바람이 이끄는 대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흰털 날리는 양 떼도 되었다가 검게 드리는 까마귀 떼도 되었다가 하얗게 웃다가 까맣게 울다가 오도 가도 못하게 무거워 지면 하늘에서 땅으로 천 길 낭떠러지 하염없이 수직으로 떨어지리라 형체도 없이 부서져 땅으로 가만히 스몄다가 강으로, 바다로 흘러서 떠미는 땅의 소리 들리면 세상 구경 다하면서 공기 중에 떠돌아다니리라 하늘이 하라는 대로 땅이 하라는 대로 바람에 이끌려 구름으로 살아가리라 덧붙이는 글 | 송광근 시집 <가장 가까운 길은 언제나 곡선이다>(샘커뮤니케이션즈 2013년 7월 10일 발간, 122쪽, 8천 원) 출판기념회가 오는 8월 8일 대구시 수성구 고산로 121-11번지(3층) 대구시민의료생활소비자협동조합 사무실에서 열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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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댓 글 하나 없이
고맙소
2집 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