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헌금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결코 교회의 한 성원인 성도가 교회의 재정을 충당하기 위하여 의무적으로 내는 물질이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바 은혜에 대한 감사의 응답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의 표이다. 이 점에 있어서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드린 십일조(十一租; 우리말 국한문성경의 ‘十一條’는 잘못이다)와도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런데, 한국 교회의 많은 교인들이 오늘날의 교인들의 헌금의 기준을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십일조인 줄로 잘못 알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물질생활은 그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중요한 것인 만큼 우리는 그것을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바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마 6:19-21, 24 참조).
구약시대의 십일조는 그 시원은 아브라함에게서 볼 수 있으나(창 14:20), 그것이 율법의 규정으로서는 기업이 없는 레위 지파를 위한 다른 지파들의 의무로서 시행된 것이다. 따라서 이 십일조는 일종의 종교세로서, 오늘날 한 나라의 국민이 국가에 대한 의무로서 납부하는 세금과 유사한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의 소득에서 그 십분의 일을 바치는 것은 고정된 한도액으로서, 누구든지 그 이상을 낼 필요도 없는 동시에, 한 푼이라도 그 이하를 내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신약시대에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그것이 율법 안에서 의무적으로 바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대한 감사의 응답으로 드리는 것이므로 그것에는 10분의 1이라는 한도액이 있을 수가 없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의 은혜가 무한하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응답과 헌신의 표로서, 그가 가진 물질이 풍족한 경우에, 10분의 1 뿐 아니라 10분의 2, 10분의 3 또는 그 이상도 얼마든지 내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흔히 교역자들 중에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의 의무로서 부과되었던 십일조가 오늘날 신약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으로 가르치는 것을 보는데 이것은 전적으로 성경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그 성경적인 근거로 드는 것은 마태 23:23으로서, 예수님께서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그들이 십일조는 형식적으로 드리면서 율법에서 더 중요한 정의와 긍휼과 믿음의 생활은 하지 않는다고 책망하시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예수님께서도 십일조를 하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상은 율법을 철저히 지켜야 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며, 그 당시는 아직도 율법이 그들의 유일한 규범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은 결코 그들처럼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도 아니며, 구약의 많은 말씀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에게 문자적으로 적용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십일조의 규정도 적용되지 않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께서도, 또 바울도 십일조에 대한 분명한 언급을 하였을 것이나, 우리는 그러한 언급을 볼 수가 없고, 단지 그 점에 관한 포괄적인 교훈을 볼 수가 있다. 예수님은 물질이 하나님에 우선할 수 없다는 기본정신을 가르치셨고, 바울은 구체적으로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각각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고후 9:7) 라고 하고, 그 한도에 대해서는 마게도냐 교인들의 예를 들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하라고 한 것을 볼 수 있다(고후 8:3). 우리는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으며, 그 은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은 것에 비교할 수 없게 큰 것이다. 따라서 그 은혜에 대한 감사의 응답으로서의 헌금은 그 한도액이 10분의 1에 한정될 수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