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직그림의 이름 :「지식채널e - Knowledge of the channel e_이것은 동화가 아니다_#001」
- 움직그림이 올라온 곳 :
https://www.youtube.com/watch?v=s2Fg-LDt_eo
* 옮긴이(잉걸)의 말 :
참고로 한국 만화인『야후(Yahoo)』와 일본 만화영화인 <천공(天空)의 섬 라퓨타>가『걸리버 여행기』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전자는『걸리버 여행기』제 4부에 나오는 ‘야후’에서 영감을 받았고, 후자는 같은 책의 제 3부에 나오는 ‘라퓨타’ 국(國)에서 영감을 얻었다.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이야기를 다 베낀 건 아니고, 다만 이야기에 나오는 낱말이나 설정을 뽑아내, 그것들을 새롭게 고치고 다듬어서 - 그리고 온갖 ‘살’을 덧붙여서 -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만든 것임을 덧붙인다)
(나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게서 등을 돌린 지 오래지만 - 그가 <바람이 분다>를 내놓은 뒤, 끝 간 데까지 실망/분노해서 그렇게 했다 - , 그래도 그가 <천공의 섬 라퓨타>를 내놓은 건 사실이기에, 화를 참고 <천공의 섬 라퓨타>가『걸리버 여행기』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임을 밝힌다)
참고로 이 움직그림에는 ‘속편’이 있다. 나는 열두 살 때, 그러니까 서기 1990년에『걸리버 여행기』를 처음 읽었는데, 그 책은 원본의 1부와 2부, 그러니까 ‘소인국’과 ‘거인국’ 이야기만 실렸을 뿐, 3부와 4부는 아예 소개되지도 않은 책이었다. 그래서 나도 이 책이 동화인 줄 알았다.
그러다가 대학교에 들어가서 완역본을 읽고 나서야, 이것이 동화가 아니며, ‘즐거운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속은 기분이었다.
도대체 한국 출판사는 왜 3부와 4부를 나한테 소개하지 않았던 것일까?
나는 이 문제에 대답할 능력이 없지만, 내가 열두 해 전, 그러니까 스물여덟 살 때 읽은 글에 나오는 사실을 인용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자 한다.
(< > : 인용문. 그러나 내 기억이 정확하지 않으므로, 세부사항이 틀릴 수도 있다. 부디 너그럽게 받아들여 주시기 바란다. 만약『걸리버 여행기』의 완역본을 구해서 다시 읽어본다면, 이 글을 고칠 수도 있음을 밝힌다 - 잉걸)
<『걸리버 여행기』3부에 따르면, “라퓨타”의 임금은 하늘에 떠 있는 ‘원반’인 라퓨타 국(이자 도시)을 다스리는데, “얼마 전”, 자신을 거스르고 반기를 든 “지상의 한 작은 도시”에 라퓨타 시를 갖다 놓고는, 그 도시 위에 라퓨타의 과학기술을 총동원해서 온갖 병기로 그 도시를 공격했고, 결국 그 도시를 폐허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위’에서 “온갖 병기”로 자신에게 반기를 든 “지상(아래쪽)의 한 작은 도시”를 쳐서 폐허로 만든 임금의 이야기라? 왠지 낯익은 이야기가 아닌가?
맞다. 서기 1980년에 광주시[오늘날의 광주광역시]를 피로 물들인 신군부[당시 서울을 점령하고 있었다]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이제 군사정권 시절,『걸리버 여행기』의 완역본이 나오지 않은 사실 - 특히 제 3부의 이야기는 ‘어른용’인 책으로도 소개되지 않은 까닭 - 이 아주 잘 이해되실 것이다.
서기 1980년 이후의 군사정권은 이 이야기를 차마 사람들에게 소개할 수 없었고, 그래서『걸리버 여행기』에서 3부와 4부를 빼 버리고 소인국과 거인국 이야기만 소개하도록 명령함으로써, 책의 허리를 잘라 버리고, 중요한 내용은 다 빼고, 사실상 ‘금서’로 지정한 것이다.>
(참고로 내[잉걸]가『걸리버 여행기』의 완역본을 처음 접한 해가 신군부의 일원이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물러난 지 다섯 해가 흐른 뒤인 서기 1998년[그러니까 내가 대학생이 된 해]이었다. 그 해는 전두환과 노태우가 감옥에 간 지 두 해가 흐른 뒤이기도 하다. 신군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진 다음에야 한국 사회에『걸리버 여행기』의 완역판이 소개된 것이다. 검열은 서기 1726년의 잉글랜드 사회에만 있었던 게 아니라, 그로부터 264년이 흐른 뒤인 서기 1990년의 한국 사회에도 있었다)
그럼 4부는 왜 금서였냐고? 내가 들은 바에 따르면,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성직자들이 말(馬)인 ‘휴이넘’을 ‘거룩하고 신성하고 깨끗한 짐승’으로 그리고, 반대로 사람을 닮은 ‘야후’는 ‘추악하고 더러운 족속’으로 그리며, 전자가 후자를 다스리는 나라라는 설정이 ‘신성모독’이라고 비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그리스도교[개신교/성공회/천주교]의 가르침을 거스르는 설정이었으니까!).
아마 한국의 종교 지도자들이나, 인본주의자들도 같은 생각을 했기에(서기 1970년대 ~ 서기 1990년대 중반에는 오늘날[서기 2018년]과는 달리, 한국사회에 ‘종교는 거룩한 것’이며, ‘함부로 거슬러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서기 1990년대 초까지는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은 욕을 먹었지만, 성직자나 종교인이나 학자는 존경받았다), 『걸리버 여행기』의 4부를 잘라내 버림으로써 책의 4분의 1을 사실상 ‘금서’로 정했던 건 아닌지.
(참고로, 나는 무신론자가 아님에도, 스위프트가 현실세계의 모순과 인간의 더러움을 비꼬고 고발하려고 일부러 그렇게 설정했다는 걸 알기에,『걸리버 여행기』완역판의 4부를 읽었을 때 아무런 거부감이 안 들었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 소개된 외국 고전들은 개화기나 대일(對日)항전기(이른바 ‘일제 강점기’/식민지 시대)나 냉전시대에 ‘가위질’을 당하고, ‘검열’로 내용이 바뀌거나 줄어들거나 사라져서 소개된 것들이 많다(뭐 조선 공화국(수도 평양)도 그건 마찬가지지만!). 요즘은 그런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으니, 그건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