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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 호텔에서 새벽에 잠이 깨니 3시였다.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인천 아시안 게임 어떻게 됐어?.” 아내는 “아직 발표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조금 지나 휴대전화가 울렸다. 아침 6시. 아내가 말했다. “인천이 됐다는 TV 자막이 막 나오네요.” “야, 참 잘 됐다. 신위원장 참 잘 됐다” 나는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 유치위원장 신용석씨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나왔다. “축하 한다.”는 녹음을 남겼다. 지난 2년간 신위원장이 표를 얻기 위해 아시아 각국을 누비고 다니던 모습이 떠올랐다. 60대 중반의 신위원장에게 오늘은 ‘생애 최고의 날’일 것이다. 신위원장은 조선일보 주불 특파원으로 날린 기자였다. 유럽문화를 한국으로 소개하는 데 중요한 파이프 라인이었다. 1981년 독일 바덴바덴에서 서울올림픽 유치에 성공할 때 그는 기자로서 현장에 있었으나 박종규씨(전 경호실장)와 함께 득표공작에도 참여했다. 그는 한국의 국제화 1세대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한국 안에 있을 때보다 함께 유럽을 여행할 때 더 크게 보인다. 그러지 않아도 그는 거인이다. 키가 190cm 가까이 되고 몸무게가 100kg을 넘는다. 영어, 불어에 능하고 무엇보다도 독서, 집필, 번역, 그리고 여행을 통한 교양과 생생한 현지 정보의 축적이 그를 ‘당당한 국제인’으로 만들었다. 그는 인천 토박이이다. 할아버지는 한국 최초의 선장이고 작고한 아버지는 유명한 의사, 어머니는 유명한 재불화가이다. 나는 신위원장과 여행을 자주 하다가 2002년에 상미회란 여행 클럽을 만들었다. 2004년부터는 여행사로 발전했다. 여행이 인간을 성숙시켜 준다고 믿는 그는 유럽·일본 여행중엔 ‘가이드’가 되어 안내도하고 강연도 한다. 한국에서 가장 거대하고 무거운 ‘가이드’일 것이다. 그의 몸과 경력 때문에 여행객들은 어려워하다가도 금방 친해진다. 모임의 분위기를 ‘화제’ 만발로 만드는 데 능숙한 愼위원장이다. 그동안 쌓아 올렸던 국제적 감각과 인맥, 그를 활용한 인천시의 안목이 이번의 성공을 가져왔다. 이런 일을 위해 준비된 사람. 그가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을 서울 올림픽에 못지않은 걸작품으로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인천은 동북아에서 가장 잘 나가는 도시가 아닌가? 이 아시안 게임을 올림픽 수준으로 준비하자. (조갑제, https://www.chogabje.com/)
△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고 있는 한국유치단.(왼쪽부터 이현정소장, 장창선前선수촌장, 조배숙의원, 박창규시의장, 안상수시장, 신용석위원장)
△ 아시안게임유치위원장의 프레젠테이션이 스크린을 통하여 NOC 대표에게 보여주고 있다.
△ “The host city of 2014 Asian Game is Korea's Incheon.” 인천의 2014년 대회 개최를 공식 선언하고 있다.
△ 초조하게 발표를 기다리던 유치위 참관단에 한데 엉켜 얼싸안으며 대회 개최의 기쁨을 만끽했다.
△ 아시안게임유치위원회 사무총장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피어오르는 봄
1. 비목 2. 보리밭 3. 가고파 4. 동심초 5. 바위고개 6. 옛동산에 올라 7. 성불사의 밤 8. 봉숭아 9. 목련화 10. 동무생각 11. 선구자 12. 봄처녀 13. 고향의 봄 14. 결혼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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