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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때로 아이러니하게 만들어진다.
태안반도의 리아스식 해안의 해송(海松) 숲속에 길이 생긴 것이 그렇다.
지금이야 자연의 비경(秘景)을 간직한 생태탐방로가돼 전국의 수많은 도보도행객들이
몰려들지만 예전엔 그저 한적한 어촌의 아낙들이 나물을 뜯으러 다니는
길이었을 것이다.
그 길이 도보여행길이 된 것은 2007년 발생한 태안 유조선 기름유출사건 때문이다.
해안을 검게 물든인 기름띠를 제거하기 위해 전국의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태안반도에 몰려왔다. 그러면서 자원봉사자들 때문에 해변가에 자연스럽게 길이
생기고 그 길이 솔향기길이 된 것이다.
기름유출이라는 환경파괴와 미중유의 재앙(災殃)을 사람들의 따뜻한 힘으로 극복하면서
아름다운 바닷길이 열린 것이다.
그 길은 계속 이어졌다. 이원면 만대항에서 마라톤 풀코스와 비숫한 42.5km를
4코스로 나누었으나 최근에 태안읍 냉천골까지51.4km에 5코스로 늘어났다.
해안을 따라 걷는길은 제주 올레길부터 시작해 전국에 산재(散在)해 있지만
태안솔향기길은 시작부터 이런 뜻깊은 스토리텔링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더 걷는이의 마음을 매료시키는 것은 억지로 길을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조성된 길이라는 것이다. 숲길을 걷다가 끊기면 파도가 넘실대는 바위길로
넘어가면 된다. 해송은 울창해 햇볕이 뜨겁지 않고 솔향기는 코끝을 자극한다.
쭉쭉뼏은 소나무 사이로 바닷바람이 불어오고 얼굴이 까많게 그을린 아낙들이 바위틈에서
굴을 따는 한갓진 풍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태안군 이원면 만대항에서
꾸지나무골 해수욕장의 중간에 있는 餘(여)섬이다.
우리가 간날은 물이 빠져 섬까지 길이 열렸다.
검은 기름띠가 여섬을 덮쳤을때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걸레를
들고가 늦가을 찬바람을 맞으며 바위돌 하나하나 정성껏 닦아냈다.
태안사람들에게 6년전의 악몽은 마음속의 상처로 남아있다.
하지만 그 사건을 계기로 '솔향기길'이 살아났다.
솔향기길 1코스는 만대항에서 출발해 꾸지나무골해수욕장으로
가는길이 정코스다. 하지만 우리는 거꾸로 갔다.
어차피 5코스를 하루에 걷지 못할바에는 아무곳에서 출발해도
트레킹의 진한 여운을 남길 수 있다.
태안 솔향기길은 이름처럼 솔내음이 코끝을 자극한다.
또 송림이 울창해 햇볕이 따가운 한 여름에도
시원할 것 같다. 무엇보다 숲길을 걷다보면 파도소리와
새소리가 마음을 편하게 한다.
한달만 일찍 왔으면 들꽃들도 반겨주었을 것이다.
태안의 리아스식 해안엔 검푸른 바위가 바다에 접해있다.
소나무 숲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낮은 산을 내려오면
백사장을 따라 걷는길이 펼쳐진다.
소나무 숲길에서 바라본 여섬은 면적 1ha, 높이 20m의 작은섬이다.
이원방조제 축조로 제방 안쪽에 있는 섬은 모두 육지로 편입
되면서 이 섬만 남았다. 재밌는것은 옛사람들이
섬이름을 지을때 남을 여(餘)를 붙였다는 점이다.
이 섬만 유일하게 남을것을 예견한것 같다.
솔향기길에는 해변 바로 옆에 펜션촌도 간간히 보인다.
이국적인 스타일의 펜션은 휴가철에는 호황을 누릴듯 하다.
하지만 생태환경을 생각하면 이런곳에 숙박시설을 과도하게
허가한것이 과연 바람직할까...난개발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여섬 부근에 낚시배가 지나가고 있다.
이곳은 루어낚시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농어, 광어, 우럭, 삼치, 학꽁치등이 잘잡혀
낚시배들이 종종 눈에 띤다.
만대항에 정박해놓은 낚시배.
요즘 만대항은 주말이면 트레킹족과 관광객이 몰려
작은 항구가 시끌벅쩍하다. 몇곳 안되는 휫집들은 몰려오는
손님들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솔향기길이 조성되면서 한적한 어촌풍경도 크게 변한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