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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애굽에 대한 교훈
본문 : 이사야 19장 16-25절
우리가 계속해서 이사야 말씀을 살펴보고 있는데, 오늘은 19장입니다. 1절에 “애굽에 관한 경고라. 보라.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리니-” 하는 말씀으로 시작을 하는데, 이는 ‘애굽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세부적으로 나눠본다면, 1-5절까지 ‘애굽에 임하게 되는 재앙이 어떤 것인지를 소개’하고 있으며, 16-25절까지는 ‘멸망할 줄 알았던 애굽이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회복하리라 예언하고 있다’는 것이 19장 전체 내용입니다. <참고로 애굽은 이스라엘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야곱의 70명의 가족들이 기근으로 고통 받을 때, 받아주고 고센 땅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탄생하도록 도와주었던 나라입니다. 애굽이란 나라가 있었기에 70명의 사람이 장정만 60만 명에 이르는 민족이 될 수 있었습니다. 물론 40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 삼아서 고생을 시켰지만‚ 그 후에도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었고, 앗수르와 바벨론으로부터 공격을 당할 때, 도와주었던 우방국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시간 상 다 살펴 볼 수가 없어, 우리가 읽었던 본문을 중심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1.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심판이 이르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1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 날에 애굽이 부녀와 같을 것이라.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흔드시는 손이 그들 위에 흔들림으로 말미암아 떨며 두려워할 것이며-” 여기서 ‘그날에’와 ‘여호와께서 흔드시는 손’이란 말은 둘 다 ‘하나님의 심판 날’을 말하고 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날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당시 애굽은 에스겔 29장 3절에 나오듯이 ‘큰 악어’라고 불리울 정도로 모든 나라들이 두려워 하는 강대국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에 저들이 어떻게 된다고 하나요? “부녀와 같을 것이라-” 다시 말해서 ‘강대국이었던 저들이 연약한 여인과 같이 연약하게 되었다’는 말이요, 더 나아가 ‘연약한 여인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큰 재앙이 몰려 왔을 때 저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여호와께서 흔드시는 손이 저들 위에 흔들릴 때에 감당할 수 없어 엄청난 공포에 처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시 강대국이라 자부했던 애굽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 것입니다. 심판의 날에 저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자 여러분! 지금 애굽에게 왜 “부녀와 같을 것이라”고 하며, 또한 “떨며 두려워 할 것이라” 말을 하고 있을까요? 저들은 그런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다가 그날이 닥치니, 저들이 감당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손을 흔드실 그날, 심판의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날을 준비하지 않으면, 저들과 같이 될 수 있다는 말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마태복음 24장 40-41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을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여기서 ‘그 때’란,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로,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그날에’요, ‘하나님의 손이 흔들리는 날’을 말합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나나요?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한다는 말입니다. 쉽게 말해 ‘한 사람은 심판을 받아 지옥으로 가게 되고, 한 사람은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간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데려가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버려둠을 당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똑같이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자부하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했을까요? 그날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데려감을 당한 사람은 삶이 달랐을 것입니다. 밭에서 일을 해도, 또 맷돌을 돌리고 있어도, 주님이 오셨을 때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그날을 준비하는 사람, 주님이 오시기를 준비하는 자의 삶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자 보십시오. 오늘 본문 19절에 “애굽 땅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고, 그 변경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기둥이 있을 것이요.” 말씀이 나오는 것을 봅니다. 이 말은 ‘우상으로 만연된 애굽 땅에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있었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성전을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또한 21절에선 “그날에 애굼이 여호와를 알고, 제물과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경배할 것이요”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애굽 사람들 중에 그날이 있음이 믿는 사람들이 있었고, 하나님께 예배하며, 하나님이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때를 대비하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래야 할 줄 믿습니다.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있다가, 그날이 되었을 때에, 버려둠을 당했을 때에 그때서 울고불고 두려워 떨 것이 아니라, 미리미리 그날을 준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2.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중에 참 놀라운 내용이 나오는 것을 봅니다. 20절에 보면 “그들이 그 압박하는 자들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겠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한 구원자이자 보호자를 보내사 그들을 건지실 것임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 여기서 ‘그들’이 누구를 말할까요? ‘애굽’을 말합니다. 애굽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민족입니다. 그런데 애굽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게 되자, 여호와께 부르짖었다는 것입니다. 이방민족이 하나님께 부르짖었다는 것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것은 저들의 부르짖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한 구원자이자 보호자를 보내어 구원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한 구원자이자, 보호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장차 이스라엘 백성은 물론이요, 세상 모든 민족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십니다.)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22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이므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 주시리라.” 자. 여기서 ‘하나님의 계획은 애굽을 치시는 것’입니다. 아주 멸망시키시는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셨어요? “치시고는 고치신다.” 하신 것입니다. 분명 하나님의 계획은 이방 나라 애굽을 치셔서 아주 멸망시키려 했는데, 그리하지 아니하시고 고쳐주신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심판하시기는 하는데, 아주 멸망시키지 아니하시고, 다시 회복시켜 주셨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처음부터 하나님의 계획이 잘못된 것 이었을까요? 아닙니다. 분명 하나님의 계획은 애굽을 치시고 멸망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들이 무엇을 했느냐? 하나님께 부르짖어 간구한 것입니다. 저들의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의 마음이 녹아지신 것입니다. 그래서 22절에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 주시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선 우리를 심판하고 정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할 것 없이 잘못을 돌이키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의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혹시 오해하실까봐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 애굽 사람들 전부를 고쳐주신다는 말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치심으로 인해 고난을 당한 자들 중에 하나님을 찾아 기도한 자들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가운데 있었지만, 하나님을 찾아 부르짖어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멸망시키려는 무리들 가운데서 구원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을 하면 어떤 말씀이 될까요? ‘하나님께서 멸망시키려던 이방사람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계획까지 바꾸시는데, 오늘 우리는 얼마나 기도하고 있느냐?’ 이것입니다. 분명 우리가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고 하셨는데, 여러분은 기도하고 계십니까? 물론 집에서도 기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것은 21절에 “그날에 애굽이 여호와를 알고, 제물과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경배할 것이요” 말씀에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성전에 나아가 제물과 예물을 드리며,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짖는 기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지금 나라가 망하게 되었는데, 태평하게 집에서 기도하겠습니까? 분명 23절에 “그들의 간구함”이라 하였습니다. ‘애끓는 기도, 부르짖는 기도, 죽기 살기로 하는 기도’를 말합니다. 혹시 여러분에게 어떤 문제나 어려움이 있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기도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의 표현입니다. 때론 우리의 몸을 치시고, 물질을 치시고, 환경을 치심으로 삶을 힘들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도 부르짖어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회복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3. ‘하나님은 우리들이 사람들의 복이 되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복이 된다’는 말이 무엇 말일까요? 자 우리 함께 25절을 읽겠습니다.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 여기서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는 말은 이해할 수가 있겠지만, ‘내 백성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24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지금 이 말은 ‘하나님께서 저들을 특별하게 복이 되게 세우셨다’는 말입니다. ‘특별하게 세우셨다’는 것은 ‘받을 만한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쉬운 예로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창세기 12장 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여기서 ‘너는 복이 될지라’는 말이 나오는데, 옛날 성경에는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복을 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당시 아브람이 누구에요? 갈대아 우르에서 살고 있던 촌부였습니다. 그런 아브람을 택하여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그랬고, 애굽이 그랬고, 앗수르가 그랬습니다. 저들은 분명 멸망해야 할 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복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자 보세요. 하나님께서 애굽을 ‘내 백성 애굽이여’ 하질 않습니까? 멸망시켜도 시원치 않을 앗수르를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말씀하지 않습니까?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이라고 다를까요? 하나님을 떠나 범죄하는 바람에 곧 멸망하리라 하셨던 것 아닙니까? 그런 저들을 “나의 기업”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자일까요? 애굽과 앗수르와 이스라엘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복이 있을지어다” 말씀하셨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왜 이 세 나라에 복을 주셨을까요? 왜 아브람을 택하여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을까요? 이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복을 흘려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저는 오늘 여러분도 복의 근원이 되길 소원합니다. 여러분이 복의 근원이 되어, 복을 흘려보내는 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 가정이 복을 받고-, 여러분 때문에 교회가 복을 받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런 여러분이 되시길 원하신다면, 큰 소리로 ‘아멘’하시길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23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날에 애굽에서 앗스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무슨 말이냐면, ‘선택 받은 애굽 사람을 통하여 앗수르 사람이 함께 하나님께 경배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복입니다. 내가 받은 은혜, 내가 만난 하나님을 다른 사람에게도 흘려보내 저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도록 한 것이 진정한 복의 근원인 줄 믿습니다. 이렇게 복의 근원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사실 애굽은 심판을 받아 멸망을 해야 할 나라 중에 하나였습니다. 1-15절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저들을 심판하신다고 예언하셨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저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구해주셨습니다. 구해주신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시고, 복의 근원이 되는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이 애굽이 오늘 저와 여러분입니다. 우리가 죄악 가운데 살다가 심판의 날에 멸망을 당했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그날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날을 대비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부르짖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복의 근원으로 만들어 주실 줄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을 통하여 복을 흘러가게 하고, 또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가 많아지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