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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토픽] 연구윤리: STAP 세포의 비상(飛上)과 추락(墜落)
Research integrity: The rise and fall of STAP
생명과학 양병찬 (2014-07-07 09:27)
"세상을 놀라게 했던 STAP 세포의 진실이 밝혀지자, 많은 이들은 이렇게 묻는다: 연구의 진실성을 보장할 안전장치는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철회된 STAP 관련 논문. 맨 위에 RETRACTED라는 붉은색 글자가 아로새겨져 있다.
(http://www.nature.com/nature/journal/v505/n7485/full/nature12968.html)
말이 씨가 된 걸까? 엉겁결에 "너무 훌륭해서 믿어지지 않을 정도야"라고 말했더니, 일이 정말 그렇게 돼 버렸다. 줄기세포 분야의 획기적인 업적으로 칭송받았던 두 편의 논문(참고 1, 2)이 거듭된 논란 끝에 7월 2일자로 철회되면서, 많은 일본 과학자들의 얼굴에 먹칠을 했다.
이번 사건은 전세계의 과학자들로 하여금 10년 전의 고통스런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 2004년 2월, 대한민국의 황우석이란 연구자가 "복제된 인간 배아에서 줄기세포주를 만들어(참고 3), 모든 환자들에게 맞는 다재다능한 치료용 세포(versatile, therapeutic cells)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고 호언장담했던 일 말이다. 그 후 열화와 같은 성원 속에 추가 논문이 발표됐지만(참고 4), 연구 데이터가 조작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성원은 더 큰 비난으로 돌변했다. 그 결과 두 편의 논문은 철회됐고(참고 5), 수십 명의 연구자들은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고 구만 리 같은 앞길이 가로막혔다.
그 후 이어진 자아성찰 과정에서 연구의 진실성(research integrity)이 핫토픽으로 떠올랐고, 과학자들은 과학자들대로 '저자(著者)의 책임을 재인식하겠노라'고, 연구기관들은 연구기관들대로 '연구원 단속을 강화하겠노라'고 맹세했다. 『Nature』를 비롯한 유력 저널들 역시 '향후 원고 심사를 보다 철저히 하겠노라'고 철석같이 맹세했다. 당시 『Nature』의 사설은 "획기적인 주장은 획기적인 증거를 필요로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그 원칙을 거의 지키지 않았다"고 자아비판했다(참고 6).
그로부터 1년 후, 오리건 보건과학대학의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교수가 "원숭이로부터 배아줄기세포를 복제했다"고 주장했을 때(참고 7), 『Nature』는 "독립적인 검사를 통해 그 세포주가 공여자 원숭이(monkey donor)로부터 나온 것임을 입증하라"고 요구했다. 검사 결과는 해당 논문과 나란히 출판되었고(참고 8), 검사를 도왔던 캘리포니아 재생의학연구소의 앨런 트라운슨 소장은 저자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제 연구의 진실성 문제는 물 밑으로 완전히 가라앉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웬걸. 몇 년 후 또 일이 터지고 말았다, 그것도 한국과 바다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일본에서... 올해 1월 일본 이화학연구소(리켄) 발생생물학센터(CDB)의 젊은 생화학자인 오보카타 하루코는 『Nature』에 기고한 논문에서, "마우스의 세포에 간단한 스트레스(예: 물리적 압력, 酸 노출)를 가함으로써 배아유사상태(embryonic-like state)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주장했다(『Nature』 505, 596; 2014 참고). 자극촉발 만능성(STAP: stimulus-triggered acquisition of pluripotency)이라고 명명된 이 과정은 너무나 혁신적이어서, 일부 과학자들은 "솔직히 공저자들의 네임밸류만 보고 발표 내용을 받아들였다"고 고백할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공저자로 내세운 사람들은 하나같이 줄기세포 연구 및 복제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권위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논문 발표 직후부터, STAP의 기술적 부분을 다룬 논문(참고 1)이 구멍투성이인 것으로 드러났다. 논문의 텍스트에서는 표절이, 도표에서는 조작의 흔적이 발견됐다. 또한 일부 이미지는 논문의 다른 부분 및 다른 논문에 사용된 것과 (거의) 동일한 것으로 밝혀졌다. 더욱 황당한 것은, 유전자 분석 결과 STAP 세포의 출처가 불분명한 것으로 판명됐다는 것이다(☞【참고】). 게다가 STAP 세포를 만드는 방법은 간단명료하다고 선전되었지만, 지금껏 아무도 그 과정을 재현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6개월도 채 못되어 오보카타는 리켄으로부터 연구 부정행위 판정을 받았으며, 일본의 존경받는 과학자들(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노요리 료지 리켄 소장 포함)이 기자들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마침내 두 편의 논문은 철회되었고(참고 9), STAP 세포의 증거는 너무 엉성하여, 많은 이들이 “황우석 사태 이후 『Nature』가 강조했던 ‘철저한 감독’과 ‘철저한 증거’는 어디로 갔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번 사건은 '연구의 품질'과 '전문가 심사'를 둘러싼 난맥상을 다시 노출시켰으며, 공저자, 연구기관, 저널의 책임 문제를 수면 위로 재부상시켰다. 또한 이번 사건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의 사례를 극명하게 보여 준 모범 케이스로 여겨지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스크립스 연구소의 잔 로링 박사(줄기세포생물학)는 "나는 학생들에게 과학윤리를 가르칠 때, 이번 사건을 거론하며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으라고 신신당부하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을 정도다. 아래에서는 이번 사건의 전말(顚末)을 찬찬히 복기(復棋)해 보고, '이번 사건에서 잘못된 것은 무엇이고,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사건의 전말
STAP의 전설(傳說)은 10여 년 전에 제기된 논란 많은 가설에 뿌리를 두고 있다. 2001년 미국 브리검 여성병원의 찰스 바칸티 박사(마취학)는 "거의 모든 포유류의 조직에서 포자 유사세포(spore-like cells)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참고 10). 그는 "'포자 유사세포'는 만능성(인체의 모든 세포로 발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평소에는 휴면상태(dormant)에 있다가 질병이나 손상이 발생할 때만 활성화되어 조직을 재생한다"고 설명했다.
바칸티 박사는 지난 1월 『Nature』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연구실에서는 2006년까지 '포자 유사세포'를 대량으로 배양해 왔지만, 우리 자신도 그 세포의 특성을 완벽하게 파악하지는 못했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그가 이끄는 연구진은 2006년까지 '포자 유사세포'의 만능성(pluripotency)을 입증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2008년 오보카타라는 일본 출신 대학원생이 그의 연구실에 들어오면서, '포자 유사세포'의 만능성을 입증하는 중책을 떠맡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세포의 만능성을 입증하는 방법은, '문제의 세포를 발생중인 마우스의 배아에 주입하여 키메라(chimaera)를 만든 후, 키메라의 운명을 추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오보카타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녀는 지난 1월 『Nature』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키메라 마우스를 만들어 줄 신의 손(god’s hand)을 찾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구글링을 통해 (당시 CDB에 재직 중이던) 저명한 마우스 복제 전문가 와카야마 테루히코 박사(現 야마나시 대학교 교수)를 찾아냈고, 2011년 교환교수 자격으로 와카야마 박사의 연구실에 발을 들여놓았다. 성체 마우스를 이용한 실험에서 수백 번의 실패를 경험한 후, 오보카타와 와카야마는 신생 마우스로 연구대상을 바꿨다. 그러자 연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 즈음, 바칸티와 오보카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세포를 분리하는 과정에서 가해진 스트레스가 만능세포를 만든 것임에 틀림없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오보카타는 『Nature』와의 인터뷰에서, "(마치 아르키메데스처럼) 목욕을 하면서 인생의 스트레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던 중, 문득 그 생각이 떠올랐다"고 능청을 떨었다.
욕실을 나온 오보카타는 리켄의 연구실로 달려가 곧바로 실험에 착수했다. 그녀는 신생 마우스의 비장 세포(spleen cells)를 산(酸)에 담가 스트레스를 가한 다음, 두 명의 베테랑 연구원(사사이 요시키, 니와 히토시)과 함께 그 세포가 '배아 유사상태'로 전환되었는지를 검사했다. (두 사람은 CDB에서 알아주는 줄기세포 생물학자였다.) 검사 결과, 그 세포는 STAP 세포의 2가지 특징(① 만능성을 보유했음, ② 스트레스 조건에서 탄생했음)을 가진 것으로 밝혀졌고, 오보카타는 그 결과를 1월 30일 세계적 과학 잡지 『Nature』에 발표했다(참고 1, 2)
그 후 오보카타는 일본에서 일약 유명인사로 떠올랐다. 일본 언론들은 그녀를 상세히 취재하여 시시콜콜한 내용들(예컨대, 연구실의 실험 장비에 ‘무민 캐릭터’를 붙여 놓았다든지, 할머니가 주신 요리용 앞치마를 실험복 대신 착용한다든지 등등)까지 기사화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몇 주 후, 익명의 관찰자들이 논문의 오류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내용 표절과 이미지 조작 및 중복사용에 관한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go.nature.com/e4dwry 참고). 한편 연구자들은 “‘그렇게 간단한 실험과정’을 재현할 수 없다니 말이 되냐”고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4월 1일, 리켄의 조사위원회는 “오보카타가 과학적 부정행위(scientific misconduct)를 저질렀다고 결론지었다. 그녀는 ”연구결과는 사실이었다“라고 주장했지만, 공저자들이 하나둘씩 꼬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본래 『Nature』는 모든 공저자들이 동의했을 때만 논문을 철회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이례적으로) 한두 명의 공저자들만이 거부할 경우에는 직권으로 논문을 철회할 수도 있다. 6월이 되자, 궁지에 몰린 오보카타는 두 편의 논문을 모두 철회하는 데 동의했다(go.nature.com/wsfox5). 그녀는 지난 4월 이후 여러 차례에 걸친 인터뷰 요청에 철저한 무반응으로 일관했지만, 리켄이 벌이고 있는 검증활동에는 - 관계기관의 감시 하에 - 참여해 왔다.
문제의 논문들이 과연 출판되어야 했을까? 비판자들은 “상당수의 문제점들이 『Nature』에 의해 사전에 발견되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2005년 다른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참고 11)의 내용을 17줄씩이나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베낀 것을 발견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대부분의 저널들은 『크로스체크(CrossCheck)』라는 서비스를 이용하여 표절을 적발한다. 『크로스체크』는 의뢰받은 논문을 (약 10만 개의 출판물에 실린) 약 4,000만 편의 논문과 일일이 대조하여 일치하는 문구를 찾아낸다.
『Nature』의 편집진은 『크로스체크』를 이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표절을 적발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오보카타가 베낀 논문이 실렸던 『『In Vitro Cellular & Developmental Biology - Animal』이라는 저널은 당시 『크로스체크』에 등재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의 데이터베이스는 매우 방대하며 계속 확장되고 있지만, 그래도 한계는 있기 마련이다. 이런 문제가 일 년에 10건 정도씩 발생하지만, 얼마나 많은 표절 사례가 우리의 감시망을 뚫고 나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크로스체크』를 운영하는 크로스레프(CrossRef)의 레이첼 래미(제품관리자)는 말했다.
더구나 다른 논문에서 일치하는 구절이 발견됐다고 해서, 즉시 표절로 단정하고 출판을 중단시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상당수의 일치 사례들은 오리지널 논문을 주석 없이 인용했을 뿐, 표절이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리켄은 문제의 인용구(방법론에 관한 서술 부분)에 대해 “단지 주석이 누락된 것으로, 부정행위라고 볼 수는 없다“고 판정했다.
리켄의 조사위원회가 문제삼은 것은 표절이 아니라 이미지의 조작 및 중복사용이었다. 오보카타는 상이한 실험에서 나온 젤레인들(gel lanes)을 오려붙여 하나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또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에 첨부됐던 테라토마(다양한 형태의 조직을 포함하는 기형종) 세포의 이미지를 재탕하여 사용했는데, 이미지에 딸린 캡션을 읽어 보면 다른 종류의 세포를 설명하는 데 사용됐던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조사위원회는 “두 가지 사례 모두 - 결론을 호도할 의도가 없었을 수도 있지만 - 저자가 위험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하고, 부정행위 판정을 내렸다. 오보카타는 끝까지 “실수였다”고 주장하며, 부정행위를 완강히 부인했다.
(2) 불완전한 그림
하나의 원고 안에서 이미지가 조작되거나 중복사용된 것은 탐지가 가능하며, 유력 저널들은 이 같은 문제에 대한 체크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EMBO 출판사(독일 하이델베르크 소재)에서 편집자로 일하는 야나 크리스토퍼에 의하면, 그녀는 모든 논문이 출판되기 전에 포토샵 이미지들을 샅샅이 분석한다고 한다. 그녀는 미국 연구윤리국(ORI: Office of Research Integrity)이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는데, 이것을 이용하면 색상과 대비(contrast)의 조작을 쉽게 적발할 수 있다고 한다(ori.hhs.gov/actions 참고).
그녀는 『EMBO 저널』 베른트 풀버러 편집장의 지시에 따라 -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 오보카타의 논문을 검사한 결과 3개의 문제점(젤레인 조작, 이미지 중복사용, 세포군락 이미지 합성)을 찾아냈다. 이미지 중복사용은 무죄로 추정되었고, 이미지 합성(composite image)은 공간절약을 위한 편법으로 생각되었지만, 젤레인 조작은 연구부정 행위가 분명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Nature』 논문에서 발견된 문제점은 매우 전형적인 것들이다”라고 풀버러는 말했다. 그에 의하면, 이미지 검토제도가 도입된 2011년 이후 약 20%의 원고에서 그러한 문제점이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록펠러 대학교 출판부에서 발행하는 『The Journal of Cell Biology(JCB)』의 경우 2002년 이후 모든 논문의 도표와 이미지들을 체계적으로 검토해 왔는데, 『EMBO 저널』과 비슷한 수준의 문제점이 발견됐다고 한다.
그러나 도표와 이미지에서 문제점이 발견됐다고 해서 곧바로 연구 부정행위로 낙인찍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젤레인을 오려붙이는 행위는 데이터를 간단명료하게 제시하기 위해 종종 사용되는 수법이다. “대부분의 경우, 이미지 조작 행위는 ‘보다 예쁘고 유익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시도로 간주하여 무죄로 판정한다. 그러나 납득할 만한 설명이나 근거자료가 제시되지 않는 경우에는 좀 더 깊이 파고 든다”고 풀버러는 말했다. 『JCB』의 주필인 리즈 윌리엄스에 의하면, 이미지나 도표 문제 때문에 기각되는 논문의 비율은 약 1%라고 한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검토방법은 완벽함과는 거리가 멀다. 일각에서는 “저자들에게 이미지와 관련된 문제점을 통보할 경우, 학습효과를 통해 ‘미래의 위조 전문가’를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또한 이미지 조작을 적발하는 것은 쉬울지 모르지만, (특히 다른 논문에 실린) 이미지 중복사용을 찾아내기는 훨씬 더 어렵다고 한다. "문헌간 비교(cross-literature comparisons)를 수행하려면 초강력 알고리즘과 - 아마도 - 슈퍼컴퓨터가 필요하다. 이는 지난 수년 동안 논의된 사항이지만, 지금껏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라고 풀버러는 말했다. STAP 관련 논문의 경우, 현행 이미지 체크절차를 갖고서 테라토마 이미지의 문제점을 적발하기는 어렵다. 정밀조사를 받았던 주요논문(STAP의 이론을 다룬 논문; 참고 1)에서는 그밖에도 많은 문제점들이 발견됐는데, 이중 상당수는 현행 체크절차로 적발하기 어려운 것들이라고 한다.
『Nature』의 편집장인 필립 캠벨은 “STAP 논문의 치명적 문제점을 발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항변했지만, 과학자들과 출판 관계자들의 의견은 다르다. 그들에 의하면, “일단 ‘덜 심각한’ 문제점을 찾아내더라도, 조사를 진행하다 보면 더욱 심각한 문제점이 추가로 발견될 수 있다”고 한다.
많은 이들은 “모든 논문들에 대해 전수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크리스토퍼에 의하면, 그녀는 EMBO 출판사가 발행하는 4편의 저널에 실릴 논문들을 모두 검사하는 데 근무시간의 1/3을 소비한다고 한다. 『Nature』와 그 자매지들의 경우, 논문 원고들을 무작위로 추출하여 이미지 검사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Nature』의 앨리스 헨츨리 대변인은 “우리는 자원의 한계 때문에 모든 논문의 이미지를 검사할 수 없으며, STAP 논문의 경우 검사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편집진은 표본검사 비율을 높이기로 결정했으며, 구체적인 검사 비율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STAP과 같은 획기적인 주장(extraordinary claims)의 경우, 이미지와 텍스트를 검사하는 것만으로는 논문의 진실성을 입증하기에 역부족이다. 세계 최초의 복제양 돌리의 경우, 독립적인 유전자 분석을 통해 오리지널 양(羊)의 유선세포(mammary-gland cells)와 유전적으로 일치하는 것으로 입증됐다(참고 12, 13). 그리고 황우석이 만든 스너피도 이와 유사한 절차를 거쳐 최초의 복제견(犬)으로 인정받았다(참고 14, 15). 돌리와 스너피에 관한 검증은 모두, ‘논문이 출판된 후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실시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검증을 출판 전에 실시하면, 논란이 일어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
『Nature』는 2007년 그런 조치를 취한 선례가 있다. 당시 『Nature』는 미탈리포프 교수가 만든 원숭이 줄기세포주에 대해 독립적인 검사를 받으라고 요구했었다. 검사 결과 합격 판정이 나왔지만, 연구자들은 세포주의 외부 반출을 통제하기 위해 갖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미탈리포프 교수에 의하면, 독립적 검사에 소요된 기간은 무려 4개월이었다고 한다.) 후에 미탈리포프가 ‘대박 논문’인 인간 복제배아 줄기세포에 관한 논문을 - 『Nature』를 젖혀 두고 - 『Cell』에 발표한 것은, 부분적으로 『Nature』의 까다로운 요구조건을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Cell』은 문제의 논문을 승인 후 12일 만에 출판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익명의 비판자들이 ‘이미지 중복사용’과 ‘도표의 라벨기재 오류’를 지적했지만, 미탈리포프 교수는 그것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사소한 오류라는 것을 입증했다(http://doi.org/mnk 참고).
혹자(或者)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논문을 제출하기 전에, 공저자들을 대상으로 보다 엄격한 검증절차를 밟는 것이 최선이다.” 이는 와카야마 교수가 쌍수를 들고 환영할 만한 의견이다. 그러나 STAP 논문의 경우, 그게 과연 가능했을까? 양(羊), 개(犬), 영장류와는 달리, 유전형이 동일한 마우스와 배아줄기세포주는 어디서나 구할 수 있으므로, 대충 정확해 보이는 샘플을 제시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동일한 혈통의 마우스에게서 나온 줄기세포와 STAP 세포를 유전적으로 구분하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고 화이트헤드 생의학연구소의 루돌프 예니시 박사는 말했다.
그렇다면 연구부정을 적발하는 최선의 방법은 사후 유전자분석(post-hoc genetic analyses)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와카야마 교수는 'STAP 세포로 추정되는 세포‘에 대한 유전자분석을 외부기관에 의뢰했다(http://doi.org/tf8 참조). 분석의 초점은 세포의 원천(source)을 밝혀내기 위해, ’형광단백질 유전자의 삽입 지점이 어디인지‘를 밝히는 것이었다. 분석 결과 지난 6월 와카야마 교수가 발표한 대로, ’STAP 세포로 추정되는 세포‘의 원천은 와카야마 교수가 (STAP 세포를 만드는 데 사용하라고) 오보카타에게 제공했던 마우스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참고】).
(3) 재현성 문제
사후 유전자분석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시험 과정을 독립적으로 재현(再現)하는 방법도 있다. 이 방법은 재현을 담당한 과학자들에게 자칫 지나친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MD 앤더슨 암센터의 리처드 베린저 박사(발생생물학)에 의하면, 저자들에게 직접 “당신의 연구실에서 한 명 이상의 연구자들이 재현에 성공했나요?”라고 질문하는 것도, 논문의 데이터와 이미지들의 확고함을 확인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한다.
『Nature』는 편집자와 저자 간의 교신내용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캠벨 편집장은 “4팀의 독립된 연구진이 두 편의 논문 작성에 관여했으며, 연구결과가 독립적으로 재현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STAP 세포를 둘러싼 의혹이 처음 제기되었을 때, 공저자들은 단호하게 “연구의 재현 과정을 내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컨대 사사이는 “내 연구실에서 STAP 세포가 탄생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진술했지만, 조사 결과 오보카타에게 “STAP 세포 생성의 첫 번째 과정(즉, Oct4가 발현되는 과정) 하나만 재현해 보라”고 요청하고 동영상을 촬영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기자의 거듭되는 추궁에 “그 세포들(Oct4를 발현한 세포들)이 당연히 STAP 세포로 전환될 거라고 생각했으며, 다른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었다”고 변명했다.
와카야마는 “내가 독립적으로 STAP 세포를 만들어 보니 배아줄기세와 완전히 똑같아 보여, 연구과정이 확고하다고 믿게 되었다”고 말했는데, 그가 만들었다는 STAP 세포는 사사이가 봤다는 것보다는 진일보한 형태였다. 처음 문제가 불거졌을 때, 와카야마는 『Nature』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내가 리켄 연구진과 별도로 STAP 세포의 생성에 성공했으므로, 이번 연구의 진실성을 100% 믿는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그는 최근의 인터뷰에서는 이렇게 말을 바꿨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내 실험은 완전히 독립적인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오보카타가 내 곁을 지키며 전(全)실험과정을 지켜보고 일일이 훈수를 뒀기 때문이다.” 그런데 와카야마는 그 실험이 끝난 직후 야마나시 대학교로 적(籍)을 옮기는 바람에 세포의 특징을 분석하지 못했다. 따라서 실험 과정에서 세포가 뒤바뀌었거나 오염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대해 리켄 조사위원회는 “사사이와 와카야마는 연구부정 행위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이번 사태가 발생한 데 대해 중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공저자들 중에서 오버액션을 통해 재현성의 이슈를 가장 헷갈리게 한 인물은 바칸티다. 그는 STAP 논문이 발표된 지 일주일도 안 되어, 자칭 ‘인간 STAP 세포’라는 것의 사진을 『New Scientist』에 보냈다. 다른 사람들이 STAP 실험의 재현에 실패하자, 그는 2월 중순 『Nature』 기자들에게 “그 실험은 하나도 어려울 것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다면, 어느 누구도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호언장담했다. 3월 중순에는 「STAP 세포 제작 요령」이라는 제목의 글을 온라인으로 배포하고, “세포의 종류에 관계없이, 모든 성체세포를 STAP 세포로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연구실에서 STAP 세포를 만들었음을 입증하는) 추가 증거를 내놓지 않고 있다. 그는 7월 2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원고에서 발견된 오류 때문에 논문 철회에 동의하긴 했지만, ‘STAP의 핵심 개념이 리켄과 다른 독립 연구팀에 의해 입증됐다’는 확신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STAP 세포를 둘러싼 논쟁에서 많은 줄기세포 연구자들을 경악하게 만드는 부분은, ‘니와, 사사이, 와카야마와 같은 대가(大家) 들이 줄줄이 이번 사건에 연루됐다’는 사실이다. “그런 중요한 논문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다면, 연구결과를 독립적으로 재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번 사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싱가포르 생물의학연구소의 데이버 솔터 박사(발생생물학, 줄기세포생물학)는 말했다. 와카야마는 오보카타의 연구를 좀 더 확실히 체크하지 않은 데 대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 같다. 예컨대 리켄 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오보카타의 노트북 컴퓨터에 저장된 자료들의 관리상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엉망이었다고 한다.
세 명의 거물 과학자들에게 동정의 눈길을 보내는 전문가들도 있다. 그들은 - 부주의였든 고의였든 - 초보 연구자에게 농락을 당한 피해자라는 것이다. “연구과정에 대한 감독도 중요하지만, 과학에 대한 신뢰도 중요하다. 연구자를 신뢰하지 않는다면 시스템이 통째로 붕괴될 수 있다. 말단 연구원들이 피페팅하는 과정까지 일일이 감시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라고 EMBO의 마리아 렙틴 소장(분자생물학자)은 말했다.
그러나 고참 연구자들의 감독소홀뿐만 아니라, 『Nature』의 엉성한 심사 및 편집 과정을 질타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Nature』는 확인도 하지 않고 성급히 출판을 감행한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캐나다 어린이환자병원의 재닛 로산트 박사(줄기세포 연구자)는 말했다. (로산트 박사는 국제 줄기세포연구학회의 회장을 역임했다.) 이에 대해 캠벨은 “『Nature』는 결코 경계를 늦춘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일각에서는 “심사과정을 명백히 밝히기 위해, 심사위원들의 코멘트를 논문에 병기하자”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캠벨은 “심사위원들의 코멘트를 병기하는 방안을 고려해 봤지만, 오해의 소지가 있는 데다가 많은 심사위원들이 비밀유지를 원하는 등 문제점이 많아, 시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키는 놈 열이 도둑 하나를 잡지 못한다”는 속담을 인용하며, 연구부정의 불가피성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우리는 ‘연구가 있는 곳에는 연구부정이 있기 마련’이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많은 연구기관들은 연구부정을 예방하기 위해 교육훈련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정책, 교육훈련, 행정조치도 연구부정을 근절할 수는 없다”고 호주 멜버른 대학교에서 연구윤리를 자문하고 있는 폴 테일러 교수는 말했다.
“이번 사태에 대한 리켄의 반응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리켄은 ‘데이터관리의 허점’과 ‘부풀린 보도자료’ 등을 시인했다. 리켄의 반응은 이례적으로 신속하고 효과적이며 투명했다. 오보카타에 대한 조사과정에서, 노요리 소장은 모든 리켄 연구원들에게 ‘기존에 출판된 (수만 편에 달하는) 논문들을 모두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STAP 관련 스캔들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라고 테일러는 덧붙였다.
줄기세포 연구자들에게 있어서, 이번 사건은 황우석 사태에 이은 또 하나의 경고 메시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사건은 ‘철저한 기록관리’와 ‘신중한 협동연구’가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나는 연구원들에게 ‘저자는 논문 전체의 타당성에 대해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고 가르쳐 왔으며, 나 역시 그런 원칙을 명심하며 살려고 노력한다. 나는 지금껏 논문의 품질을 보증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저자 목록에서 내 이름을 스스로 삭제했다”라고 로링 박사는 말했다.
이번 사건은 많은 연구자들에게 또 한번의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트라운슨은 최근 발표한 성명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명예는 과학자의 전부다. 한번 잃으면 회복하기가 극히 어렵다.” 그의 말은 과학자들은 물론 모든 저널과 연구기관에도 적용된다.
【참고】 와카야마 교수의 유전자검사 발표
현재 야마나카 대학교에 재직 중인 `마우스 복제의 개척자` 와카야마 테루히코 교수는, 리켄의 CDB(오보카타가 STAP 세포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장소)를 이끌고 있었다.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와카야마는 자신의 연구소에서 만든 (갓 태어난) 마우스를 오보카타에게 제공했다. 그녀는 "와카야마에게서 받은 마우스로부터 비장 세포(spleen cells)를 추출하여 산에 노출시킴으로써 STAP 세포를 만든 다음, 와카야마 교수에게 건넸다"고 줄곧 주장해 왔다. 와카야마 교수는 오보카타에게서 건네받은 `STAP 추정 세포`를 갖고서, 스스로 증식하는(self-renewing) 줄기세포주를 만들었다. 와카야마는 또한, 그 줄기세포를 마우스의 배아에 주입하여 키메라 마우스(chimeric mice)를 만듦으로써, 만능성(pluripotency)을 입증했다.
그 후 문제의 논문들을 둘러싸고 갖가지 의혹이 불거지자, 와카야마는 "내가 오보카타에게서 건네받았던 세포가 정말로 STAP 기법을 통해 만들어진 건가?"라는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http://www.Nature.com/news/mismatch-alleged-in-acid-bath-stem-cell-experiment-1.14946 참조). 이에 그는 논문 작성에 사용됐던 8개의 줄기세포주를 치바현 소재 일본 국립 방사선과학 연구소(NIRS)에 보내 분석을 의뢰했다. NIRS의 유전학자들은 녹색형광단백질(GFP: 연구자들이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표시하기 위해 사용하는 단백질)이 마우스의 게놈에 삽입된 장소를 분석 타깃으로 삼았다.
와카야마가 오보카타에게 줬던 마우스의 경우, GFP 유전자는 18번 염색체에 삽입되었다. 그런데 NIRS의 분석 결과, 오보카타가 와카야마에게 건넸던 `STAP 추정세포`는 GFP 유전자가 15번 염색체에 삽입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와카야마가 오보카타에게 제공했던 마우스와 `STAP 추정세포`를 만드는 데 사용된 마우스는 별개다"라는 사실을 강력히 시사하는 증거다. 와카야마는 『Nature』와의 인터뷰에서, "내 연구실에서는 15번 염색체에 GFP를 삽입한 마우스나 배아줄기세포를 다루지 않는다"고 말했다.
출처:
http://www.nature.com/news/gene-tests-suggest-acid-bath-stem-cells-never-existed-1.15425
번역:
http://mirian.kisti.re.kr/futuremonitor/view.jsp?cont_cd=GT&record_no=247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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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Nature』 511, 140–143 (10 July 2014)
http://www.Nature.com/news/research-integrity-cell-induced-stress-1.15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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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은행, 증권사, 대기업 기획조정실 등에서 일하다가, 진로를 바꿔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약사면허를 취득한 이색경력의 소유자다. 현재 서울 구로구에서 거주하며 낮에는 약사로, 밤에는 전문 번역가와 과학 리포터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풍부한 인생경험을 살려 의약학, 생명과학, 경영경제, 스포츠,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서적들을 번역 출간했다. 매주 Nature와 Science에 실리는 특집기사 중에서 바이오와 의약학에 관한 것들을 엄선하여 실시간으로 번역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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