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연천 보개산 원심원사
“앉은뱅이 일어서고 장님이 눈을 뜨다”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내산리 354번지에 위치한 원심원사는 경기도 연천의 명산인 보개산(寶蓋山)에 위치하고 있다. ‘보개’는 불보살의 머리를 장식하는 화려한 장엄으로 곧 원심원사 자체가 불보살이 되는 셈. 신라 진덕여왕 원년(657)에 영원조사가 창건했다는 원심원사는 신라 선덕왕 19년(720)에는 보개산 인근의 사냥꾼인 이순석 일행이 지장보살님을 친견하고 출가하여 석대암을 창건했다하여 ‘생지장도량(生地藏道場)’으로 부른다.
고려시대에는 대종불사를 통해 장님이 눈을 떴다는 영험설화도 전해지는 등 원심원사에는 10편이 넘는 신이(神異)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전 해인사주지 세민스님이 범종불사를 진행하는 한편 부처님 진신사리 친견법회도 봉행하며 중창불사에 땀을 쏟고 있다.
석대암 창건기
보개산 화전민 사냥 나갔다가
지장보살 만나 출가인연 맺어
경기도 연천군 보개산 원심원사 안에 있는 산내암자인 석대암은 생지장(生地臧, 살아있는 지장보살) 도량으로 유명하다. 그 연유에는 신비한 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보개산 석대암 뒤에는 큰 봉우리가 있는데 사람들을 ‘환희봉’ 또는 ‘대소라치’라고 불렀다.
대소라치는 큰 봉우리 혹은 큰 고개라는 뜻이다. 그 너머에는 옛날 화전민들이 살고 있었다. 그중 이순석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사냥을 잘해 소문이 자자했다.
어느날 이순석은 친구 한명과 함께 활과 창을 메고 대소라치 능선을 찾아 사냥에 나섰다.
하지만 해질 녘이 다 되도록 토끼 한 마리도 나타나지 않았다. 친구가 이순석에게 푸념석인 말투로 말을 건냈다.
“자네의 사냥솜씨가 뛰어난 것을 알았는지 이 산의 짐승들이 모두 도망간 모양이네. 어쩌겠나. 사냥이 잘 되는 날도 있고, 안되는 날도 있을 테지. 오늘은 해가 저물어 가니 하산준비를 하세.”
그 순간 이순석의 눈에 이상한 물체가 들어왔다. 덩치로 보아서 산돼지나 호랑이 등 몸집이 큰 짐승임을 직감했다.
“쉿, 조용히 하게 이사람. 저기 큰 짐승이 어슬렁 거리며 걸어가고 있네. 색깔이 누런 것을 보니 호랑이 같기도 하고, 머리와 꼬리를 보니 산돼지 같기도 하네. 나는 잘 분간이 안되니 자네가 찬찬히 살펴보게.”
바위 밑에 납작 엎드리며 친구가 말했다.
“돼지야. 그것도 금돼지야. 값이 제법 나갈 짐승이니 놓치지 말로 잡도록 하세.”
이순석은 활시위를 어둠속에 가려진 짐승을 향해 힘차게 당겼다.
“명중이야.”
손가락을 떠난 즉시 느낌이 왔다. 화살을 맞은 짐승은 피를 흘리며 대소라치 능선을 삽시간에 타고 올라 봉우리까지 단숨에 도망갔다. 두 사람은 재빨리 산봉우리를 향해 뛰어올랐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금돼지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갔을까. 분명 화살을 맞았는데….”
두 사냥꾼이 주변을 뒤지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리도 찾던 금돼지는 나타나지 않고 대신 돌로 만든 지장보살님이 머리만 우물 속에서 내민 체 숨을 급하게 몰아쉬고 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저기 지장보살님이 우물에 빠져 있어. 그런데 왜 왼쪽 어깨에 화살이 박혀 있지? 혹시 자네가 쏜 게 아닌가?”
친구의 말에 이순석이 살펴보니 분명 자기가 쏜 화살이었다.
“아이쿠 큰일났다. 내가 지장보살님을 쏘았어.”
두 사냥꾼은 급히 지장보살님의 어깨에서 화살을 제거하고 우물 밖으로 끌어내려 했다. 하지만 몸집이 작은 지장보살님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지장보살님이시여. 저희 중생들의 우매함을 용서해 주시고 자비를 베푸소서. 저희들은 내일 다시와서 당신을 뵈올테니 부디 우물가에 계셔 주세요. 그러면 저희들은 부처님께 귀의해 출가의 길을 걷겠나이다.”
부들부들 떨던 두 사냥꾼은 부랴부랴 산을 내려왔다. 다음날 날이 밝자, 두 사냥꾼은 다시 산에 올라가 보았다. 어제는 머리만 밖으로 나와 있던 지장보살님이 우물 옆 돌반석 위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 길로 두 사냥꾼은 머리를 깎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사찰을 세워 지장보살님을 모셨는데 이 사찰이 ‘석대암’이다.
대종불사 영험기
이덕기 박춘식 씨 전국돌며 화주
회향 날 꿈에 그리던 ‘소원’ 이뤄
고려 제7대 임금 목종 때의 일이다. 경기도 연천 보개산 심원사에서 대종불사를 하게 되어 각지로 스님들이 시주를 걷고 있었다. 대광리에 사는 이덕기라는 장님과 박춘식이라는 앉은뱅이가 있었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죽마고우였는데, 이덕기는 열병을 앓다가 눈이 멀었고, 박춘식은 소아마비로 앉은뱅이가 되었다.
그들은 항상 자리에 모이기만 하면 신세한탄을 하였다.
“무슨 죄가 많아서 우리는 이런 몸을 받았을까?”
“남에게 못할 짓을 많이 했겠지. 금생에 받은 것을 보면 전생에 죄가 많아 이 지경이 되었을 거야. 그러니 금생에 좋은 일이나 많이 하세.”
하루는 어떤 스님이 찾아와서
“여보시요 시주님네, 적선공덕 많이 하소. 뜻하는 바를 이룰 것이오”라고 말했다.
덕운스님이라고 하는 이 화주스님의 말을 들은 이덕기와 박춘식은 눈이 번쩍 뜨이고, 다리가 곧장 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가난하여 돈도 없고, 또 보탤만한 쇠붙이도 없었다.
그래서 궁리를 거듭하다가 이덕기는
“너나 나나 전생에 죄를 짓고, 불구자가 된 것도 원통하지만 박복한 중생이라 오늘날에 시주할 물건하나도 없으니 슬프지 않은가. 이렇게 앉아 궁상을 떨 것이 아니라 우리도 저 화주승과 같이 길거리에 나서 시주를 걷도록 하자”고 말했다.
그러나 다리가 오그라져 펴지 못하는 박춘식은
“말은 옳은 말이지만, 너는 앞을 보지 못하고 나는 걸음을 걷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한탄했다.
그러자 이덕기는
“내게 좋은 방법이 있네. 우리 두 몸이 한 몸이 되면 되지 않겠는가. 너는 걸음을 걷지 못하여도 눈이 성하고, 나는 보지 못하여도 다리는 성하니, 내가 너를 업고, 네가 가르쳐 주는대로 다녀 저 화주승과 같이 하면 곧 시주를 거둘 수 있지 않겠나?”
그리하여 그들은 거리로 나서 화주를 한지 3년이 되었다. 전국 방방곡곡 돌아 쇠붙이를 거둬 화주스님에게 건넸다. 그리하여 대종불사는 이루어지고 절은 중수되어 모년 모월 모일에 중수회향재와 대종준공식을 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두 사람은 이 소식을 듣고 평지도 아닌 태산준령을 넘어 보개산 심원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산에 오르니 재는 가파르고, 힘은 모자라 몸에서는 구슬같은 땀방울이 떨어졌다. 그러나 화주스님이 가르쳐준 “나무대자대비 관세음보살”을 한없이 부르며 간신히 그 산마루에 올랐다.
그때 박춘식이 외쳤다.
“저기 저 부처님을 보아라!”하고는 이덕기의 등허리에서 내려 곧 부처님 곁으로 뛰어가려는 듯 몸부림을 쳤다. 순간 자신도 모르게 두 다리가 쭉 펴졌다.
그때 이덕기가 “어디, 부처님이 어디 있어?”라며 두 눈을 비비며 크게 뜨자 눈이 번쩍 떠졌다.
부처님은 공중에서 오색구름에 싸여 큰 빛을 이들에게 쏟으며 하늘 높이 올라갔다. 이덕기와 박춘식은 날이 밝도록 그 부처님께 절하며 서로 붙들고 울었다. 그 후로부터 그 재를 부처님을 뵌 고개라하여 ‘견불령(見佛嶺)’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이덕기와 박춘식이 살았던 마을을 ‘부처님의 큰 광명이 머무르는 동네’라 하여 ‘대광리(大光里)라고 불렀다.
여태동 기자 tdyeo@ibulgyo.com
찾아가는 길 /
승용차로 갈 때는 경기도 연천진입 삼거리에서 철원방향으로 들어와 동막사거리에서 우회전해서 들어온다. 8565부대로 들어오면 원심원사가 나온다. 대중교통은 매주 금요일 서울 조계사 앞에서 오전 7시30분에 ‘예스관광 버스’가 운행된다.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해 올때는 동두천역에 내린다. 동두천역 앞에서 전곡행 버스를 타고 전곡버스터미널에서 내려 내산리행 39-2번을 타고 부대앞에서 내린다. (031)834-8467
[불교신문 2426호/ 5월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