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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선교회 공주대간 산행일지
2013년 4월 13일 토요일 오전 7시, 아직은 찬 새벽 공기를 마시며 갈월교회 산악선교회원들이 교회로 모였다. 공주대간(公州帶幹)을 등산할 목적이다. 지난 주간 내내 꽃을 시샘하는 바람이 불었다. 날씨까지 불순하여 비가 오락가락하기도 했었으니 산행을 앞둔 사람들 마음 한구석에는 쾌청한 날씨에 대한 기대가 가득했다. 하나님이 그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셨다. 당일 날씨는 너무나 좋았고 산행에 목마른 사람들의 갈증이 마음껏 풀어리는 듯했다. 좋으신 하나님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찬송이 절로 코 가에 맴돌았다. 산악선교회가 창립된 이래 가장 많은 회원들이 참석했다는 기록을 세우면서 마음 들뜬 회원들은 버스 3대에 나누어 타고 백제의 고도(古都) 공주를 향해 달려갔다. 아마도 담임목사의 전임 사역지였다는 홍보가 주요 영향을 끼쳤으리라. 그래서 산행에 관심을 가진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의 비율이 반반 정도 였으니 평소보다 배가 더 모인 것이다. 산악선교회 담당자들은 마음이 들떠 있었다. 복잡한 일상을 훌훌 털어내듯이 일행을 실은 버스는 한 점의 미련도 없이 광역시 인천을 빠져 나갔다.
차창 밖은 어느새 봄이 가득 차 있었고 고속도로 양 옆으로 펼쳐져 있는 농토는 아직 결실의 꿈을 한껏 안은 빈터였다. 거기서부터 봄 내음이 날라 와 달리는 버스 차창을 뚫고 코끝을 찔러대고 있으니 오늘 산행에 참석한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상춘객(賞春客)이 되었다. 지난 3월 28일 오후 5시에 개통된 평택시흥 간 고속도로는 서 시흥에서 서 평택으로 이어지는 제2 서해안 고속도로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제1 서해안고속도로의 교통량을 분산시켜 주는데 많은 역할을 할 것이 분명했다. 새로 단장된 고속도로는 마음까지 가볍게 해준다. 서 평택을 지나니 바로 웅장한 서해대교의 위용이 눈에 들어왔다. 강이나 가로 질러 세워지는 것이 다리인줄 알았던 우리의 상식을 깨고 바다를 이어서 연육교를 만드는 것도 다리라는 신개념을 일깨워 주었던 서해대교는 조국의 눈부신 국력신장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서해대교 중간 쯤 지나면 참새들이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듯 가던 길을 멈추도록 유혹하는 손짓이 있다. 바로 행담도 휴게소. 이 정도 왔으면 한번쯤 쉬고 가는 것도 고속도로를 타고 봄날을 즐기는 이들의 예의로 차 밖으로 나와야 한다.
갈 길이 여전히 남았으니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하여 부랴부랴 공주로 향했다. 당진이 눈에 들어왔다. 충청도의 본고장을 지나면서 곧 당진대전 간 고속도로로 갈아타고 공주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40분쯤 달렸을까? 봄 햇살 가득 머금고 있는 넓은 대지에는 한해 결실을 위한 준비로 시끌벅적 거리고 있는 듯했다. 유구를 지나니 이내 오늘의 목적지 공주에 도착했다. 천애 요새라고 자랑하는 계룡산 자락의 공주의 산들은 그 나름대로의 운치가 있다. 병풍처럼 한 도시를 두른 산과 그 사이를 비집고 금빛 반짝인다 해서 이름 한 금강(錦江)이 유유히 흘러가는 모습은 공주에 처음 오는 이들의 입과 눈을 놀라게 한다. 그 강 바로 곁으로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원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가 유일하게 패배했다는 저 유명한 공주산성이 공주 방문객들을 환영했다. 산과 강, 옛 유적지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만들어낸 백제의 향취 묻어 있는 옛 고을 공주는 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도시가 분명했다. 아파트 숲으로 가득 메워진 도심 속에 살던 우리 일행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탄성이리라. 누구라도 이 순간은 도시 촌놈이 된다.
첫 방문지는 충남지역 기독명문 사학 공주영명고등학교다. 도착하니 우리를 마중 나온 늘푸른교회 성도들 10여명 서성거리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늘푸른교회 등산선교회 회장이 맛있는 떡과 함께 환영해 주었다. 공주 영명학원은 1906년 감리교 윌리암(Frank. E.C. Williams, 禹利岩) 선교사가 공주 선교의 초석으로 삼고자 설립하였다. 일제가 최후의 발악을 하며 제2차 세계대전에 미쳐 있을 즈음에는 조선의 백성들에게 황국시민을 앞세워 신사참배 동방요배를 국민의례라고 우기면서 우상숭배를 강요하던 시절에 이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영명학원 우리암 교장은 강제 출국 조치가 취해지고 학교는 1942년 3월 경 강제 폐교되는 아픔을 당했다.
그 후 광복을 맞아 학교가 다시 정상화 되면서 오늘에 이르러 지난 2006년에 백주년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치렀다. 그때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공주 교회와 동문들이 십시일반 동참하여 세운 개교 100주년 기념탑을 둘러보았다. 유관순 열사와 조병옥 박사를 배출한 굵직한 학교다. 지난해 신축한 영명학당에서 도착 예배를 드리며 이 학교에서 26년 동안 교목으로 재직하고 있는 유혜종 목사의 자세한 안내를 받았다. 영명학원 부지에는 학교 말고도 공주 선교를 위하여 헌신하다가 순교한 사(R.A. Sharp, 史) 선교사의 묘지와 그가 건축한 서양식 사택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래서 이 지역을 기독교역사 문화단지로 조성하여 공주선교의 발자취를 후세에 남겨 기념할 사업이 추진 중에 있다.
사(史) 선교사는 맥길(William B. McGill, 麥吉) 선교사 후임으로 1904년에 공주 선교사로 파송 받았다. 이듬해 1905년 그는 영명학원의 전신인 명설학원을 설립 운영하여 학원선교로 선교의 교두보를 삼았다. 또한 선교사가 거주할 주택이 없어서 그는 자비량으로 혹은 손수 벽들을 찍어서 공주에서는 최초로 서양식 건물을 건축하여 사택으로 사용하였다. 그 당시 이 신기한 집을 구경하러 오는 이들이 많았다. 사람들은 이렇게 좋은 집에 사는데 천당에 갈 마음이 생기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 당시로는 공주별감이 사는 집보다 더 좋았을 것이다. 공주 시내가 한 눈에 바라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3층 건물로 우뚝 세워졌으니 이 사택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현재 이 사택은 개인이 소유하고 있다. 그동안 이 건물은 감리교 재산이었으나 우여곡절 끝에 개인 소유가 되었다. 이제는 문화재로 등록이 되어 있어서 증개축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으나 매매는 가능하다고 해서 지금 영명학원에서는 이 건물을 구입할 모금 운동을 벌리고 있다.
이렇게 헌신한 사 선교사는 아쉽게도 1906년 순교를 하여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그는 강경 논산지역의 순회 선교하고 돌아오는 중에 진눈깨비를 만났다. 이를 가려볼 곳을 찾던 중 멀리 초가집이 눈에 들어와서 거기로 비를 피하였다. 그런데 그 집은 장질부사 즉 장티푸스를 앓다가 죽은 자의 상여가 있던 집이었다. 사 선교사는 이런 사정을 전혀 모르고 거기에서 머무는 동안 장질부사에 감염이 되었다. 그 후 고열에 시달리다가 치료를 받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결국 사 선교사는 죽음을 맞이했으니 그가 조선에 온지 3년, 공주에 온 지 1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의 나이 34살이었고 막 결혼 한 후였으니 그 안타까움은 말할 수 없었다. 그의 새 신부 사애리사 선교사는 남편의 뜻을 받들어 선교활동을 계속 이어갔으니 선교사의 숭고한 희생의 한 면을 보는 듯했다. 그의 유해는 유언에 따라서 영명학원 뒷산에 안장을 했고 그 후 107년이 넘도록 그 자리에서 영명학원과 공주선교의 말없는 지킴이로 자리하고 있다. 우리 일행은 그의 초라한 무덤에 모여 그의 숭고한 희생을 마음 깊이 새기었다. 한국교회가 이런 사랑의 빚을 졌으니 이제 그 빚을 갚기 위하여 우리 갈월교회가 더 많은 주님의 사람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 깊이 자리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사 선교사가 건축한 사택을 둘러보고 우리 일행은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두 팀을 나누었다. 제1 팀은 공주대간을 등산하고 제 2팀은 공주 시내 관광을 하기로 했다. 먼저 제1 팀은 공주 늘푸른교회 등반대장 한성수(韓成洙) 권사의 안내로 산을 올랐다. 가벼워 보이지만 막상 올라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산이 좋아서 나선 사람들이라 기쁜 마음으로 공주대간 한 부분을 정복하고 있었다. 공주대간의 정상이요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봉화대가 우선 도착지였다. 봉화대(烽火臺)는 외적이 침입을 알리는 봉화를 피어 올린 곳이다. 그래서 공주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자리다. 거기서 도착한 기념을 사진에 담는 것은 필수항목이다. 이제 1시간 정도 서북쪽으로 산행을 하면 오늘의 도착지 금학저수지 생태공원이 나온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좀 아쉬운 산행길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정이라 마음을 달래며 모두가 안전하게 목적지로 향해 갔다. 공주대간은 그리 어렵지 않지만 그렇다고 만만하게 볼 산이 아니다. 그저 산행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부족할 수 있지만 사실 이 코스도 6시간이 넘는 난 코스다. 우리가 간 곳은 그 가운데 일부분이라 어렵지 않았다.
한편 공주 시내를 유적지 중심으로 돌아보는 제2 팀은 바로 백제 문화의 산 증인 무령왕릉으로 갔다. 제 2팀 구성원들은 대부분 노약자들이었다. 직함은 산악선교회장이지만 산언저리만 가고 정상에는 한 번도 올라가지 않은 강휘철(姜徽哲) 장로를 대표로 해서 여러분들이 공주 늘푸른교회 신윤호(申倫虎) 집사의 안내를 받았다. 무령왕릉은 도굴꾼들에 의해 훼파된 흔적이 하나도 없이 그 왕릉의 주인에 대한 정보가 정확하게 보전된 상태에서 발굴이 되어서 문화유산으로는 그 사적 가치를 최고로 여긴다. 한입구가 한창 보수공사 중이라 복잡했다. 하지만 곳곳에 피어나는 봄꽃들은 상춘객들을 기쁘게 맞이해 주었다. 이어서 이명박 정부가 핵심 사업으로 추진하여 완성해 놓은 4대강 사업의 현장인 금강의 공주 보(堡)를 답사했다. 여기서도 기념사진을 남겼다. 약속된 시간이 되자 두 팀들이 만남의 장소 금학 생태공원으로 모여 들었다. 예정시간보다 많이 늦어져 곧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권영익(權營益) 장로가 운영하는 고갯마루 오리정식 전문식당이다. 시골 인심이 후하다는 말은 옛말이 되었지만 이 집은 아직 그 말이 유효한 식당으로 공주에서 독보적인 식당이다. 정말 싼 가격에 풍성한 식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장이 반찬이지만 여기 음식점은 오리 맛이 반찬이라 할 정도로 맛있고 정갈하다. 도시에서 보기 드문 시골 밥상을 받으며 광역시 촌사람들은 마냥 행복해 했다. 푸른 풀밭에 누운 양 떼들처럼 정말 풍성하게 먹었다.
식사 후에는 인천으로 향하면서 늘푸른교회를 방문했다. 담임목사가 목회했던 교회라 갈월 성도들에게는 호기심도 많았다. 마침 나광진 담임목사 부부가 우리 일행을 영접해 주었다. 모두가 처음 만난 사이지만 주 안에서 한 가족이나 된 것 같았다. 본당 물댄동산 홀로 다 같이 모여 나 목사의 인사말을 듣고 늘푸른교회와 모두를 위하여 기도했다. 이제 이 교회도 새로운 시대를 향하여 힘차게 달려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늘푸른교회를 빠져나와 오는 길목에서 이 교회 전신이 중동교회 성전 건물을 둘러보았다. 공주 중심 동산에 있어 위치가 좋은 중동교회 성전은 40년 된 건물 그대로 보전되어 있으니 기왕에 좀 더 보존하여 기독교 문화유적지가 되면 어떨까 생각했다. 갈 길이 많이 남았으니 해 지기 전에 인천에 도착할 목적으로 아쉬움은 공주에 남기고 서둘러 공주를 빠져나와 인천으로 향했다.
기쁘고 행복했던 오늘 산행을 뒤로 하고 달려오는 버스 안에서는 노래 한마당 잔치가 열렸다. 먼저 마이크를 잡고 흥을 돋은 이는 연덕열(延德烈) 권사다. 그는 학습곡과 창작곡을 연창했다. 우리 가락에 맞춘 갈릴리뱃노래, 예수아리랑, 할렐루야 상사디야가 그것이다. 처음 듣는 이들에게는 또 다른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이어 여러 대원들이 질 새라 김경숙 권사, 최경미 집사가 애써 수위를 조절하며 열창한 대중가요, 그래도 찬송가를 고집하며 찬송을 부른 이승평(李承平) 장로, 흰머리지만 목소리만은 청춘인 조명희 권사의 구수한 가곡 등 버스 안은 화기애애한 물결로 출렁거리고 있었다. 노래가 끝날 즈음 해는 서산으로 들어가 버렸고 우리는 어둠이 내려앉은 낯익은 도시에 들어와 버렸다. 누군가 무심코 내 뱉은 막국수 타령이 이내 즉석에서 저녁 식사로 변해 맛있는 막국수 집으로 고고싱. 봉평 메밀국수로 허기진 배를 채우니 저녁식사 걱정 없어진 여자 회원들은 천국이 따로 없었다. 막국수는 오늘 한날의 산행의 마침표였다. 성도들과 함께 떠나는 맛 기행, 역사문화 탐방을 겸한 이번 공주대간 산행은 함께 한 모든 이들에게는 또 다른 기쁨과 행복을 선사해 준 기회였다. 무엇 보다 주 안에서 믿음의 사람들이 함께 했다는 것이 더 큰 기쁨이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시 133:1).
### 기사와 관련 화보와 설명
공주대간 출정을 위해 산악선교회원들이 모였다
1906년에 설립된 기독교 명문사학공주영명고등학교 백주년 기념탑
공주영명고등학교 설립자 윌리암 선교사, 그는 초대 교장으 지냈다
마중 나온 공주늘푸른교회 성도들 (좌로 신윤호집사 이웅주성도 한성수권사 김성태집사
지익현집사 여양현집사)
영명학당에서 도착 예배
영명고등학교 교목 유혜종목사가 사프 선교사 묘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샤프선교사 묘지
샤프선교사 묘지 방문 기념
샤프선교사가 건축한 사택 앞에서 내려다본 공주시내 전경
샤프 선교사가 1905년에 건축한 사택. 현재는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으며 개인 소유로 되어 있다. 영명학원에서 이 사택을 구입하여 기독교 문화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샤프 선교사 사택 방문 기념
제2팀들이 방문한 공주 무령왕릉 앞에서 기념
박물관에 전시된 무령왕릉 내부 모형도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건설된 금강보
인심이 후해 맛도 좋은 오리고기 전문점 고갯마루에서 준비한 풍성한 식탁
즐거운 식사시간, 시장이 반찬이지만 맛이 좋아 맛도 반찬인 식당이다
오리고기는 맛있다
맛있는 고기 앞에서도 카메라를 의식하는 최장로님은 멋쟁이
공주 늘푸른교회 본당 물댄동산 홀에 모인 갈월 산악 선교회원들
공주 늘푸른교회 본당 강단을 배경으로
공주 늘푸른교회 전신인 중동교회 성전 건물 현재는 늘푸른교회 체육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건물은 현재 40년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목 차안에서 벌어진 흥겨운 노래 한마당 서정숙 권사님의 즐거운 표정이 보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