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강 : 싯달타의 행복론
정말 숫타니파타란 경전이 재미있습니다. 코뿔소는 서양에서 유니콘이라는 이미지로 신화에 등장한다. 중국에서는 코뿔소를 기린이라 번역했다. 독각을 구사론에서 린각유독각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젊은이들 큰 사람이 되려면, 코뿔소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고대 놈들을 싫어하는데, 함께 모여서 의싸의싸, 정말 위대하려면, 혼자할 수 있어야지. 어떻게든 사겨서 잘할려고,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게 폭력을 쓰지 말라. 살아있는 그 어느 것도 괴롭히지 말라. 이거 어렵지 않죠. 이게 불교 불살생 아힘사의 대표적인 것입니다. (아힘사 - 살아있는 모든 것을 해치지 않음을 뜻하는 쟈이나교의 근본신조. 불교와 힌두에도 공통된다. 마하트마 간디는 아힘사를 진리파지운동으로 발전시켰다.) 간디, 마하트마 간디의 살아있는 어떤 것도 괴롭히면 안됩니다. 일가 주택인데, 전부 아파트, 다세대 주택인가, 이 빌어먹을 놈, 괴롭히는 거야. 나는 쫒겨냐게 생긴거야. 우리가 얼마나 살면서, 나하나 잘 산다고, 보이지 않는 폭력을 얼마나 쓰냔말이야.
여기 또 또 자녀를 갖고자 하지도 말라. 이것도 욕심이란 말이여. 자녀에 대한 소유욕을 가지지 말아야지. 애, 잘키워서. 하물며 친구이랴! 여기서 중요한게, 독각, 수행자 이미지에 출가자와 비출가자의 구분이 없습니다. 수행자의 계율을 말하고 있습니다. 291. 아내와 같이 있을 때는 서로 즐거워했지만 월경 때가 되어 아내와 떨어져 있어야 할 때는 절대로 방사를 함부로 하지 않았다. - 진정한 수행자의 장 - 원시 불교, 부처 따르던 사람들 모두 가족이 있었단 말이야. 우리가 생각하는 비구가 아닙니다. 비쿠란 의미는. 여기 자녀를 갖고자 하지도 말라. 인도 첩도 없고, 자녀 많이 가질려 하는데, 가지지 말고. 친구 덕볼려 하고, 이거 틀린 것. 모든 이성적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나 개인의 민주주의는 개인주의로부터 출발한다. 나의 개인주의가 기본이 되서, 협동이 되고 하는 것이여. 저 광야를 가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서 가라. 얼마나 멋있습니까? 인도 집단이 있단아요. 여기 광야가 있으면, 보통 무소 같으면 뿔이 두 개 함께 가니까 외롭지 않는데, 코뿔소 혼자 가니까,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서 가라.
36.사귐이 깊어지면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자꾸만 사귀면, 사귀는 건 좋지만, 사랑과 그리움이 생기잖아요. 여기서 사귀는 게 아주 구체적입니다. 1.만나는 것. 2.소리를 듣는 것. 3.몸을 만지는 것. 4.말하는 것. 5.향략하는 것. 이렇게 되어 있거든. 아주 구체적이에요. 남방에서는 다, 악수를 하제. 더럽게. 수행자에게는 절대 손을 내미는 게 아니에요. 남방 불교 절대 악수를 안합니다. 중세, 칼, 사이에서 나는 칼, 무기가 없습니다. 그렇게 흉칙한 거야. 동양께 아니에요. 무사끼리 하는 거야. 왜 나가면, 악수하자고 덤기는 거야. 만나면 좋고. 눈으로. 얼마나 좋습니까? 만지고, 그냥 사귀고, 이런 것들이, 사랑과 그리움이 생기잖아요. 불교 고집멸도, 배경이 된 것인데, 이런 게 하나도 없단 말이에요. 이런 개념들이. 사랑과 그리움에는 고통이 따르는 법. 사랑으로부터 재앙이 시작되는 것을 깊이 깨닫고 저 광야를 가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서 가라. 얼마나 멋있습니까? 이게 참, 얘기하고 싶은게 많은데, 할 게 많아서 빨리 가야되요. 친구와 주위 사람들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마음이 그들에게 얽매이게 되면 자신의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없다. attha = 자신이 목적한 바(최고 중요한 것) 마음이 그들에게 얽매이게 되면, 목적한 바를 못하잖아요. 사귀는 것 좋지. 그러나 자기가 서고나고 해야지. 자기가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없다. 친하여 진다는 것은 좋은 것 같지만, 친함에는 이런 잘못이 따른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저 광야를 가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서 가라. 우리가 사귀고 이런다는 것도 전부 좋은 것 같지만, 항상 마음의 준비가 있어야 한다. 상처받고 하면서 원한을 품고 그러면 안된단 말이야. 사귀되, 친해지되, 코뿔소처럼 항상 혼자 갈 수 있는 마음을 준비하고 살아라. 서로 다투는 철학적 논쟁을 초월하여 진정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길을 발견한 수행자는 "나에게는 지혜가 생겼다. 이제 누구에게도 다시 이끌려가지 않으리라"고 자신을 다지면서,
무슨 이야기냐면, 문답소편이라는 것을 보면,
878. 세상의 학자들은 저마다 서로 다른 견해를 고집하면서 의견을 달리하여 싸우고 있다. 스스로 진리의 숙달자라고 자칭하면서 여러 가지 논쟁을 일삼는다. "이것을 안 사람은 진리를 아는 자이며 이것을 비난하는 사람은 불완전한 자"라고 말하면서.
879. 그들은 이렇게 다른 견해를 품고 논쟁하면서, "저 사람은 어리석어 진리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들은 모두 자기야말로 진리에 이른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들 중 과연 누구의 말이 진실한 것일까?
880.남의 가르침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어리석고 저급하며 지혜가 뒤떨어진 사람이다. 그렇다면 각자의 편견만을 고집하고 있는 그들이야말로 모두 어리석은 자들이며 지혜가 뒤떨어진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881. 또 만약 자신의 견해로 인해, 깨끗해지고 진리에 도달케 되고 총명한 사람이 된다고 한다면, 그런 사람들 속에는 지성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들의 견해는 이러한 점에서는 모두 동일하게 완전할 것이다.
882. 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서로 비방하는 말을 듣기만 할 뿐, "이것이 진실이다"라고 그들에게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각자의 견해만을 진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이야기해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들은 그렇기 때문에 남을 어리석고만 말할 뿐이다.
884. 진리는 하나일 뿐, 둘은 없다. 그 진리를 안 사람은 다투는 일이 없다. 다투는 사람들은 각기 다른 진리를 찬양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문들은 똑같은 것을 똑같이 말하지 않는 것이다.
891. "나의 가르침 이외에 다른 어떤 가르침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모두 타락한 자. 불완전한 자들이다. 라고 이교도들은 말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편견에 탐닉하여 이미 물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894. 일방적으로 결정한 자신의 입장에 서서 자기 자신을 뛰어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는 끊임없이 세상에서 논쟁에 휘말린다. 일체의 철학적 단정을 버린다고 한다면, 그는 이 세상에서 논쟁의 실마리를 불러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얼마나 김용옥이 강의한다. 기자님들이 해서, 싸움을 붙여라. 나보고 왜, 논박을 안하냐고. 제가 부처님을 잘 알아서 그래요. 절대 논쟁에 휘말리지 말라. 논쟁도 메터자끼리 해야지, 인터자랑 안된단 말이에요. 육사외도, 논쟁하고 좋을 것 같죠. 부처님은 논쟁에 휘말리지 말라고 했어요. 비판을 해라. 웃기는 얘기야. 얼어죽은 비판. 우리 사회에 무슨 비판이 있냐고. 우리 사회 근본적으로 비판이 없어요. 서로 다른 생각가지고 이야기만 하는데, 이야기안하면, 어째서 이야기안하고 가만히 있느냐. 싯타르타도 마찬가지야. 내가 해줄 이야기가 없단 말이야. 기독교 자기 믿는 진리만 진리고, 아니면 어리석다. 그들에게 뭔 이야기를 해요. 기독교의 배타주의는 반드시 지양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모든 학문, 종교, 자기 주장만을 옳다고 일삼고, 남의 것 그들다는게 병폐다. 김용옥 자기 잘난체, 나 잘난체해도, 남 비난한 적 그렇게 없어요. 내 어느 나를 조사해 보세요. 이런 원칙을 이해하고 살아야지. 우리가 그렇기 때문에, 모든 종교적 논쟁에서, 서로를 그냥 인정할 수 밖에 없어요.
884. 진리는 하나일 뿐, 둘은 없다. 사문들은 똑같은 것을 똑같이 말하지 않는다. - 숫타니파타 - 왜? 자기 입장과 다르기 때문에. 모두가 자기 말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인대로, 무신론이나 유신론이나 결국 같은 신론이다. 이거를 깊게 들어가면 논쟁을 해서 해결될게 아니란 말이야. 신이 없다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 나름대로 존경해 줘야 해.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지고 살 수 있다는 것을 기뻐해야 되요. 종교는 신념의 다름을 찬양해야 한다. - 도올 - 그래서 여기 하시는 말씀이
55.서로 다투는 철학적 논쟁을 초월하여 진정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길을 발견한 수행자는 "나에게는 지혜가 생겼다. 이제 누구에게도, 다시 이끌려가지 않으리라"고 자신을 다지면서, 학생들 공부할 적에, 칸트 읽을 적에는 칸트에게 이끌리고, 러셀 읽을 때는 러셀에게 이끌이고, 어느정도 되면, 이제 어느 누구에게 이끌리지 않고, 자기 판단을 할 수 있는 자가 되야 한다는 거에요. 저 광야의 코뿔소처럼 혼자서 가라.
58. 배운 것이 풍성하며 진리에 귀를 기울이는 그런 고매하고 명민한 친구를 가까이 하라! 이거 매우 중요한 이야기죠. 독각이라고 해서, 친구를 끊으라는게 아니여. 독각이라도 bahussuta 학식이 많다. 많이 들었다. 옛 경전의 전승을 암기하여 몸에 익혔다. 그러니까 항상 학식이 많이 들었다. 고대로 내려오는 전승 외워 익혔다. 배운 것이 풍성하며, 마음이 진리에 열려있는 사람들. 이런 고매하고 친구를 사궈야. 배워야 한다. 독각은 인간관계의 단절을 의미하지 않는다. 독각은 고립이 아니다. 여러가지로 도움이 되나니, 코뿔소의 코뿔처럼 혼자서 가라. 그다음에 비천한 사람이라는 7번째 장인데, 전체 뱀 편이거든요. 7번째가 Vasalasutta 비천한 사람의 경 이것은 사계급에도 들지 않는 아주 비천한 계급. 바살라. 그런데 여기에 부처님이 사비성에 계실 때, 불을 선기는 브라만, 바라드바자라는 사람이 불을 지켜서 부처님이 혼자서 탁발을 하고 걸식을 하러 다니시는 거에요. 브라만이 저기서 보고 있다가, 머리를 깍은 놈아! 거기 있거라. 엉터리 사문아! 거기 멈춰라. 비천한 놈아! 거기 섰거라. 그러면서 욕을 댑다 질러요. 브라만이니까.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불의 제식을 하는데 들어오는 거냐? 그러니까 부타나싯달타가 바라문이여! 도대체 당신은 어떤 사람이 참으로 천한 사람인지 알고나 있소? 또 사람은 천하게 만드는 조건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소? 하고 반문을 하시는 거에요. 브라만도, 들어보니까 말이 근사하거든. 그렇다면, 무엇이 비천한 사람인지 말 좀 해봐라. 그러니까,
116. 화를 잘 내고 원한을 쉽게 품으며 성질이 못돼 허세를 부려 남을 속이고 그릇된 생각으로 음모를 꾸미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118. 시골과 도시를 파괴하고 포위하여, 독재자로서 널리 알려진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119. 마을에서나 숲에서나 남의 소유들을 훔치려는 생각으로 이를 취하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120. 빚이 있어 돌려 달라는 독촉을 받으면, 당신에게 언제 빚진 일이 있느냐"고 발뺌을 하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그러면서 계속 나가요.
132. 자기를 내세우고 남을 무시하며, 스스로의 교만 때문에 비굴해지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124. 재산이 풍족하면서도 늙고 병든 부모를 섬기지 않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천한 사람론이 쭉 나와요. 그런사람들을 쭉 천하나 사람이라고 하는 거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140. 베다를 독송하는 집에서 태어나 베다를 배운 브라만 조차도 때때로 악한 행위를 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 다음에 나와 같이 읽어요.
142. 인간은 결코 그의 신분에 의해서 비천해지거나 고귀해지지는 않는다. 인간을 비천하고 고귀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신분이 아니라 그 자신의 행위다. 얼마나 멋있는 말씀이에요. 브라만이 나를 비천하게 여겨 들어오지 말라고 했지만, 비천한 것은 신분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하는 행위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다. 하고 부처님은 완전한 계급 타파를 주장해요. 숫타니파타의 가장 중요한 테마가 인간평등관이며 계급타파다. 싯달타의 이러한 생각은 당시에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던 혁명적 사상이었다. 지금의 수드라가 다음에 바이샤로 태어난다는게 아니라, 현세에. 완벽하게 싯달타는 그렇게 인간평등론을 철저하게 구현한 사람. 그러면서
142. 인간은 결코 그의 신분에 의해서 비천해지거나 고귀해지지는 않는다. 인간을 비천하고 고귀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신분이 아니라 그 자신의 행위다. 이 말씀을 우리 젊은이들이 앞으로 살아가는 후학들이 마음에 읽혀서 어떤 가문에 태어났든, 고귀하게 하는 것은 행위입니다. 천한 출신이라도 국민 앞에서 고귀한 행위를 하면, 고귀한 사람이되는 거에요. 더 없는 행복 - 제 2품 두 번째 장. 법구경 권하 길삼품에도 나오고 있다. 대정4-575
이 행복의 장은, 저 남방 불교에서는 결혼식 때는 반드시 이것을 합송을 하면서, 결혼식을 합답니다. 우리나라 결혼식을 가면, 상당히 개선할게 나 결혼 주례 1-2번 섯는데, 나 짧막한 주례를 3-4줄 만들어서 합송을 했다고, 여러 사람들에게 공증을 받는다는 것. 주례를 만들어서, 지금부터 너희 정말 사랑하면서, 같이 읽으면서 끝낸다. 주례를 주절주절. 지저분한 것. 제발 좀, 주례 서는 분들 주례사는 30초 이상을 넘으면 안되. 모든 주례하는 사람들 30초만 넘으면, 신부신랑 귀에도 안들어와요.
여기 남방 사람들 주례사를 들을 때 유명한 구절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날 거룩한 스승께서는 사밧티의 제타숲, 고독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는 장자의 동산에 계셨다. 그 때 용모가 화려한 신이 한밤중이 지나 제타숲을 두루 비추며 스승께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예의를 갖추어 절한 뒤, 한쪽에 섰다. 그리고 그 신은 스승께 시로써 질문을 던졌다.
258. 저 수많은 신들과 인간들은 축복을 원하며 행복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고타마여, 최상의 행복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여기까지요. 인도는 신이 많아요. 신의 이름을 부르잖아요. 행복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데, 고타마 싯달타가 생각하는 행복의 이름은 이것입니다. 이것이 고타마 싯탈타가 말한 행복론이여. 더없는 행복은 역사적 인간 싯달타의 행복론이다. 이 행복론이, 인간이 행복하게 살려면 어떻해야 하는가. 어리석은 자들을 가까이 하지 말고, 현명한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는 것. 처음에 행복론에 고타마 싯달타의 체계적 논술이 아닙니다. 생각나는대로 한 거 같아. 행복론, 시적으로 운을 중심으로 했기 때문에 두서가 없어요. 여기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고타마싯달타의 이렇게 삶에 행복을 느꼈던 것을 시로써 고백하고 있는 거에요. 그냥 들으면 안되요. 한 인간이 나는 정말 이렇게 살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더없는 행복은 싯달타 자신의 행복에 넘치는 환희의 느낌을 있는 그대로 독백한 최상의 시다. 그게 전달이 되야 한단 말이야. 여기 어리석은 자들이란, 여기 주석에 부를 부릴 것에 잠을 못자고, 현명한 사람들이란 이치를 체득하여, 마음이 평안한 사람. 지혜롭다는 불교의 사상은 별게 아니여.
한국 불교 망한게, 지식과 지혜의 분리에요. 이게 개똥같은 이야기에요. 한국불교를 망치는 최대의 병폐는 지식과 지혜의 이분이다. 원시 초기 불교에서 말하는 모든 것, 세속적 불교. 모든 것 아는 사람. 그러니까 지혜와 지식 이원은 있을 수 없어요. 항상, 현명한 사람이라는 것은 이치를 세상 이치를 전체적으로 터득한 사람. 부분만 알아서 깝작거리고, 알지도 못하는 새끼. 그리고 존경할만한 사람을 존경할 줄 알아야지. 그리고 존경할 만한 사람들을 존경하는 것, 이것이 더 없는 행복이다. 그 법구경에도 이런 말이 있거든. 신을 100명 경배하는 것보다, 옆에 각자를 공양하는게 더 나은 것. 천명의 하나님을 존경하면 뭐해. 옆의 사람 한 명을 존경할 줄 모른다면.
그 다음에 여기.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곳에 살며 내가 주해에 따라서 번역한 것인데, 수행자들을 도심에 걸식해야 하니까 도심에 살 수 없잖아요. 그렇다고 또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밥 먹고 살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도심에서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적당한 교외에서 살게 되 있어요. 거기서 나온 말이란 말이야. 그러면서 솔선하여 좋은 일을 하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뭐냐? 그리고 스스로 바른 서원을 세우는 것, 우리가 이렇게 현대 사회가 복잡하니까, 먼데서 살기 어렵잖아요. 집 가까이 빠징코도 많고, 술집도 많다. 그러나 신경이 없으면, 숲에서 사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버스간에서도 쿨쿨 잘 수 있잖아요. 숲 속에서 콜콜 잔단 말이야. 이런 것을 현대 삶 속에서 잘 해석해서 봐야 한단 말이야. 가장 중요한 게 스스로 바른 서원을 세우는 것. 어떠한 장에도 서원 앞에서는 무기력하다. 그렇잖아요. 내 인생의 목적을 세워서 실행하겠다. 그러면 어떤 장에도 무기력. 그런데 바른 서원을 안세운단 말이지. 힙합이나, 랩이나 할려고 하고. 그런 짓들이나, 젊은이들이 서원이 없단 말이야. 위대한 서원을 세워야지. 서원을. 그것이 중요한 것이야. 그러면서 청춘의 위대함은 고매한 이상을 향한 서원에 있다. - 도올 - 인생의 기쁨과 확신을 던져주는 서원.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야. 그러면서 그 높은 이상을 세우면, 그 앞에 좌절함이 없는 인생. 그것이 행복이다. 서원이 없는 사람. 흔들리고. 그러면 행복한 삶이 아니죠. 고매한 이상을 세워야 행복해질 수 있다.
261.깊은 학식을 연마하고 기술을 몸에 익히는 것. 이게 문과, 이과야. 따로 나누면 안된다니까, 문과를 해서 깊게 볼 수 있어야 하고, 대패질도 못질도 해야 하고, 자동차로 몰아야하고,
6바라밀 : 대승불교의 이상 1.보시 2. 지계 3.인욕 4.정진 5.선정 6.지혜 6바라밀. 마지막 6바라밀이 지혜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이런게 반야라는 거에요. 우리나라 너무 원시불교 들어가면 우리가 생각하는 불교가 아니라는 거에요. 원시불교에서 말하는 지혜는 세속의 학문과 기술에 통달하는 것이다. 이에 통달치 않으면 스님의 자격이 없다. 추상적이고, 색즉시공. 이런게 아니에요. 대승불교도 깊게 들어가면 통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려운 거에요, 이게.
그 다음에, 기술을 몸에 익히고, 몸을 삼갈 줄 아는 것을 배우고 몸이 말을 들어야지. 뒤에 보면, 술을 삼가라고 해요. 딱 한 잔의 술, 하고, 삼갈 수 있어야 하는데, 또 먹고 또 먹고. 술이 술을 먹고, 더 먹으면 술이 사람을 쳐 먹고. 몸을 삼갈 줄 모른단 말이야. 그칠 줄 아는 것. 이게 수행자의 가장 본질. 이게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암자에서 이루어지는게 아니에요. 모든 생활에 대해서 말하는 거에요. 그 다음은 뭐냐면, 말솜씨가 유려한 것. 이 강의를 준비하는 데 있어서 나는 나카무라 하지메 선생의 주석을 따랐다. 그는 인도의 대학자, 붓다고사(5세기 전반)의 주석을 참조했다. 뭐라고 했냐면, 타인 앞에서 자기가 해야 할 말을 주저없이 또박또박 하는 것. 이것을 말 잘하는 것. 자기가 원하는 것, 정확하게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말솜씨가 유려하다는 것은 상대방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이 생각한 바를 거침없이 또박또박 말하는 것이다. 이는 초기불교의 미덕이다. 아시겠죠? 이것이 더 없는 행복이다. 똥을 싸고 보면 시원하잖아. 남 앞에 말을 시원하게 싸면 똑같습니다. 안쏘면 창자가 한 거랑, 마음이 그런 거랑 똑같은 거랑 말이야. 이게 더 없는 행복이다.
262.부모를 섬기고, 아내와 자식들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 하는 일이 질서가 있어 혼란스럽지 않은 것, 이것은 매우 우리에게 포근한 부처의 모습입니다. 자기 부모, 아내 사랑할 줄 알고, 그런데 하는데 하는 일에 질서가 있어 혼란스럽지 말라. 아내가 부엌 뒤죽박죽, 냉장고도 뒤죽박죽. 하는 일에 질서가 있어야 된단 말이야. 부엌에 깨끗하면 이 집은 되었다. 냉장고 보면, 오물단지 안되는 거야. 질서가 있다. 중요한 거야. 이것이 인간의 행복이다.
263. 남에게 베풀 줄 알며 백유경 비유. 우인집우유유 - 백유경의 두 번째 비유 소가 젓이 나와. 손님 왔다. 대접해겠다. 손님들 부르기 위해, 젓을 둬야 겠다. 젓을 모아둔 거에요. 한 달 후에 짜려니 마르고 하나도 없다. 베푼다고 하는 것은 평소에 베푸는 것이다. 두었다가 한꺼번에 베푸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관청에서 도둑질해서, 베푼다. 말도 안되는것. 항상 베풀줄 아는 사람. 물질적으로만이 아니고, 정신적으로. 아는 것을 베푸는 거에요. 그게 중요한 거란 말이여. 그렇게 되있는 거에요.
이치에 맞게 행동하며, 친지들을 이끼고 보호하며 비난 살 만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것, 이것이 더 없는 행복이다. 비난 살만한 행동을 하지 말아야지. 우리 정치인들 비난 살만한 것만 하니냐. 불행한 거야. 그러면서 악을 끊고, 악을 끊고, 악을 멀리하며 아시겠어요? 끊되, 끊임없이 멀리해야, 술마시는 것을 삼가며, 인간에게 가장 해로운 것. 이게 한국 러시아 사람 가장 술 많이 마시는 사람인데, 인도 술을 안 마셔요. 화가 커요. 추운 지방 먹는 습관 생긴 거에요. 술이 인간 폐가 망신 시켜요. 이태백이도 안되는 거에요. 술이란 것을 항상 삼갈 줄 알아야 하는데, 병원에 찾아오는 사람들, 보약짓고, 술만 안 마시면, 보약 지을 필요없단 말이야. 술 안 끊으면 할 수 없지. 나도 보약 팔아먹고 마는 거야. 술 마시는 것을 삼가며, 술 마시는 것으로부터 몸을 삼간다. forswearing drink. 하여튼 perseverance in the Dhammas.
265. 존경과 겸손, 만족과 감사 이 만족이라는 건 서원과 관련이 있어요. 바른 서원을 섬기면 모든 일에 만족하게 된다. 멋있는 말이죠. 만족 - 큰 것에 서원을 세우면 작은 것에 불만이 없어진다. 겸손해야 존경할 수 있지 않습니까? 감사, 알맞은 때에 가르침을 듣는 것, 이것이 더 없는 행복이다.
266.참을 줄 아는 것, 말을 온화하게 하는 것. 같은 말이라도 온화하게 할 줄 알아야죠. 덕행이 높은 사람들을 만나기 좋아하며, 한국 사람들 전부 집에 데려오는게 자기보다 못한 놈들을 데려오니 그렇단 말이야. 좀 더 자기보다 잘 생기고, 학식이 높은 사람들과 다녀야, 자기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알맞는 때에 맞춰 이법에 관한 가르침을 듣는 것. 남방 불교, 절간에 제 8일 15일 설법을 듣게 되어 있거든요. 현재는 책을 읽는다. 봐야지. 읽어야 하고. TV 강의도 듣고. 강의한다. 듣는 것. 알맞는 때에 항상 이법에 관한 가르침을 듣는 것. 이거 듣는 거와 안 듣는 거 얼마나 차이가 있느냔 말이야. 이것이 더 없는 행복이다. 우리가 항상 가르침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사람. 이게 행복이다.
267. 수행하는 것, 순결하게 행동하는 것, 성스러운 진리를 통찰하는 것, 편안함을 체득하는 것. 여기 편안함. 이게 열반이라는 말. 다른 말이 아니여. 마음의 편안을 몸으로 익히는 것.
268.세상일에 부딪혀도 마음에 걱정과 티가 없이 편안함. 이것이 더 없는 행복이다. 269.이렇게 꿋꿋이 걸어가는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도 좌절하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일에서 편안함을. 이것이 곧 더 없는 행복이다. 결국 부처님 말씀하신,
오늘 시간이 없어 충분히 강의하진 못했으나, 이렇게 아름다운 시구가 없고, 우리 민족이 앞으로 정말 우수한 민족이 되고, 우리가 1등 국가가 되려면 이런 것을 몸에 익혀서 실천하고 사는 민족이 되어야 겠다. 초기불교의 덕성은 우리민족이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진정한 기반이다.
다음주 월요일 1시 30분에 일산 여레사에서 제 강의 녹화를 하겠습니다. 일산 지구에 있는 분들은 거기 와주셨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