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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破墓, 2024)
미스터리 영화. 134분, 2024년 2월 22일 (대한민국),
감독: 장재현(張宰賢, 1981-)
배우: 최민식(지관, 풍수사), 김고은(무당, 巫堂), 유해진(장의사, 기독교 집사), 이도현(박수, 博數), 이종구(보국사, 스님), 일본 민속신앙(귀신, 도깨비불)
영화 재미있다. 소위 말하는 메이저(소수이면서 힘있는 자)의 회환도 있고, 마이너(루저) 인간들의 삶에서 덧없는 이야기처럼 보이는 현실도 있다. 그런데 먼저 이야기할 것이 있다.
종교를 문화의 현상으로 볼 때, 각 민족에게는 종교들이, 즉 각 신앙이 있다. 그리고 그 종교들의 변천사는 그 토지 위에 사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 각각이 다양체이다. 다음으로 샤먼은 유일신앙과 마찬가지로 종교의 일종이다. 예전에 읽었던 조흥윤은 독일 함부르크 대학에서 우리나라 “개성 무”를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했다. 우리 전통을 독일에서 학위를 한다는 것이 이 땅의 피울음일 것이다. 읽은 지 오래되어 정확하지는 않지만 무(여성)와 당(남성)을 구별하였다. 춤이 위주일 때는 당이 굿판의 주연이고 당이 보조이며, 사설이 길어지는 환경에서는 무가 주연이고 당이 보조라고 한 것 같다. 몸주 이야기는 더욱 흥미롭다.
샤먼에는 몸주가 있는데, 위대한 인간을 몸주로 모시는 경우(예로 환인, 단군)는 드물고, 시대에서 중요했었지만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이들을 몸주로 삼는다고 한다(최영, 단종 등등). 유대인의 몸주는 모세인데 모세의 무덤이 남아있지 않고, 크리스트교의 몸주는 예수인데 무덤이 없다. 예외는 아마도 이슬람일 것인데, 몸주인 마호멧의 무덤은 있다. 그런데 서방에 알려진 그의 무덤은 비밀스러웠다. 검은 천으로 덮혀 있다. 서구는 흥미라기보다 신앙의 인식에서 우월성을 가지려고, 그 비밀을 해석하려 했다. 하늘나라에 가지 않고 공중에 떠있다. 천년을 지나면서도 다녀온 모든 순례자들 마다 그 무덤이 공중에 떠있다고 했다. 서방에서는 비밀스레 메카를 다녀오게 여러 사람들을 보냈는데, 갔다 온 이들은 한결같이 무덤이 공중에 떠있다는 것은 진실이라고 하는데, 이미 이들은 성지 메카에 들어가기까지 고난과 은총을 입어서, 성지 안에 들어갈 때는 이미 이슬람교도로 개종했고, 돌아와서도 이슬람교도로 살아갔다고 한다. 그래서 서방의 과학자는 자석의 힘으로 물체를 공중 부양할 수 있는지를 여러 방식으로 연구했으나 공중부양에 실패했다. 그러나 무덤은 공중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판명이 난 것은 20세기라고 한다. 지나가는 이야기다.
내가 이 영화가 재미있다고 하는 이유는 사실상 샤먼이나 유일신앙의 종교 등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삶에는 여러 양식(양태)들이 있고, 그 양태들은 토지와 그 위의 삶에서 나온다. 즉 삶은 생명이 생성하고 자라고 사라지는 과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들판에서 농사를 짓는 터전, 바다의 풍랑, 사막의 모래바람, 산악에서 동굴과 짐승들, 끝없는 초원과 황무지 등등에서 사는 이들은 각각은 다른 상상력을 갖는다. 상상을 하늘에 올려놓은 것은 인민들의 공통일 것이다. 하늘의 운행과 기상의 연관 없이 살아가지 않았다. 자연의 이법(la providence)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긴 과정에서 운행의 이법(la raison)을 깨달아도 전수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문제였을 것이다. 이 전수에서 몸에 배게 외워서(구전) 각인보다, 바깥에 기호(표시 또는 문자)의 각인이 더 힘을 발휘했으리라. 구전도 문자도 아닌 막연한 전승으로 이어지는 민간 속에 찌꺼끼 또는 흔적으로 남은 이야기도 또한 사람들의 삶에 각인(습관, l’habitude)되어 남아있으리라. 이것이 1900년에야 유전이라는 실질적 사건을 알게 될 것이지만, 입말로든 문자로든 전승의 흔적보다 더 깊이 있는 전승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생명, 현재 과학으로 지구상의 35억년의 기나긴 각인(la mémoire)도 있고 지층처럼 기관들(신경계, 심장, 허파, 간, 쓸게 등등)로 형성된 추억들도 있다. 생명체의 기관들은 지층과 달리 같은 평면위에 여러 갈래로 나누어서 서로 연대하여 협조하며, 조화를 이루려 노력한다. 사회에서 정의와 분배는 이런 조화가 아닐까? - 유기체론이 정치경제학과 인류학이 아니라고 하는 이들은 다른 과학에서 근거를 가져올 것이다.
민간전승, 즉 인민들 속에 흐르는 각인된 기억이 무엇인지를 잘 몰라서, 철학이 시작에서부터, 우선은 자연(이오니아), 다음은 입말 또는 생각(엘레아), 그리고 나서야 인간에 대해 화두를 갖는 시절이 왔다고들 한다. 후세 2천5백여년은 이뭣꼬의 대상 또는 주제가 무엇일까?를 고민해왔다. 아마도 소크라테스나 싯달다는 이 뭣꼬를 정지가 아니라 삶의 과정 즉 흐름 속에서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대상은 분명하지도 않았고, 생각으로 하나라고 말할 수 없다고 마땅찮았다. 천년 이상을 얼마나 많은 현자들이 대상과 사유의 관계와 연관을, 또는 연대를 고민했던가. 둘이 아니라는 것을 변증법으로 풀려고 했던, 불립문자로서 불이(不二)라고 하든, 둘 다 대상의 기준이 없는 모호함과 경계가 없는 애매함 때문에, 문헌적으로 과거에 누가 말했더라가 답을 대신했을 것이다. 답을 말하는 것은 용감한 것이 아니라, 요즘으로 몽매한 것이지만, 하나야! ‘통일이야’가 승리하는 듯하지만, 자연의 이법과 사유의 이치(신앙우선) 사이에서, 자연을 잘 다룰 수 없어서 사유를 더욱 정교하게 하기를 만들었다.
데카르트에 이르러 정신 속에 명석 판명한 관념이 있다고 주장한다. 현대철학의 분석 과학철학도 통일성과 규준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인간 또는 생명체로서 이뭣꼬에 대해서는 현상에 통일성도 규준도 찾을 수 없었다. 즉 생명에 관한한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것도 알아챘다. 그럼에도 통일성과 하나는 서로 다른 것 같이 보여도 여전히 하나의 통일성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 편하고 안정된 삶을 산다고 여긴다. 그 삶이 100년도 안되는데... 수학이 여러 분과들, 산술학, 기하학, 지수학, 미적분학, 무한 등에 대해 아는 것을 분명하다고 하는 것은 경계와 규준[원리]가 있다고 있다고 여기지만, 복잡계 이래로 수학은 확실성을 상실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데 생명(체)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그럼에도 자연의 통일성이 있다거나 생명체에 원리나 법칙이 있다는 것은 인간의 위대함과 같이 여긴다. 여기에 인간의 오만과 탐욕이, 탐만치가 있다. 그리고 수학의 원리를 인간 또는 생명체 적용하는 것은 적용의 오류이며, 원리와 법칙은 섭리와 이법이 다른 방향 또는 반대방향이라는 것을 깨닫기는 쉽지 않다. 자석은 두 힘이 자기선의 방향이 다름에도 동시에 현존한다는 것인데, 생명체에게 적용하면 적용의 오류라고들 한다. 그런데 수학을 생물에 적용하는 것을 과학이라 여기는 요상한 사고들이 탐만치이다.
내가 “파묘”를 보고 이에 대해 글을 쓰려고 하다가, 바쁜 일로 차일피일 미루었지만, 이 영화가 천만관객이 넘었다는 이야기에, 이 영화가 인민의 기억 또는 토지의 삶에서 전승된 이야기가 뒤섞여 있어서, 소수인 상층들이 여론 주도권으로 회환과 분함도 있겠지만(자석의 북극처럼), 그들이 관람자들을 좌파, 빨갱이 영화라고 규정하려 해도 숫적으로 다수인 심층(비주류)들은 기나긴 삶의 기억을 불러낸다. 즉 ‘니가 뭐래도’ 이 땅에 살아온 이들에게는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좀 심하게 이야기하면, 인민의 이야기 독사에 대한 파라독사(흥미있는 가상 소설)인데, 파랭이 우파들이 바깥에서 사고하다가 안으로 들어오려니까, 파묘의 미국 사는 이처럼, 쫄았제. 쫄기는 쫄은 것 같애.
그러나 이 가상의 이야기(영화지만 소설이지)는 아마도 루이스 캐럴의 “놀라운 나라 엘리스”이상으로 재미있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왜 이런 생각을 했느냐 하면, 이 이야기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보다 훨씬 더 재미있게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 걸어보면 마주치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차를 타고 배행기를 타고, 옛 표현으로 주마간산(走馬看山)의 파랭이 눈으로 볼 수 없는 이야기이다. 엘리스에게 보이는 이야기이다. 이런 ‘놀라운 이야기’가 있다니. 5천년 역사와 한 반도에서 살아온 유전과 전승의 기억을 내재적으로 지니고 있는 자들은 흥미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이야기하자. 유럽의 크리스토스(χριστός)의 신격화 이래로 에코까지 2천년 동안에 그들에게도 가장 생생하게 흥미로운 이야기는, 특히 학문하는 이들에게서나 문학 예술 하는 이들에게서도, 프란체스코의 일생 이야기일 것이다. 아마도 이탈리아에는 시저, 교황, 미켈란젤로, 브루노, 가리발디 등이 이야기가 전승될 수 있지만, 전 세계의 인민에게 감동을 주고 삶의 표본으로 여길 성자는 프란체스코일 것이다. 프란체스코(1181-1226)의 이야기를 읽다가 보면, 싯달다 이후의 위대한 종교 전파자들이 많지만, 우리에게 알려진 것으로 중국의 달마로부터 6조의 혜능의 이야기 만큼이나 흥미롭다. 엘리스나 파묘와 달리. 한 사람이, 싯달다든, 공자든, 소크라테스든, 예수든, 새로운 삶의 양식(양태)을 제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벩송주의자로 알려진 카잔차키스의 “프란체스코”의 전기를 읽으면, 무소유, 무한 퍼주기(아가페, 사랑), 무위자연(은총) 등이 전설 같은 인물들 보다 생생하다. 그에게서만 일어난 사건(기적)과 무위자연(은총) 등 인류사에서 그에게만 일어난 사건들, - 그 이야기의 진위 구분은 과학자의 소관이고 – 그의 삶 전체가 싯달다도 예수도 살아보지 않았던 삶으로 보인다. 걸승, 즉 거지로서 모든 사람을 교화한다는 것은 거짓말 같은 이야기인데도, 그렇게 살았다고 한다. 그 이야기의 뒤에 이어짐도 궁금했다.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 탁발하는 성자로서 주유(순례)할 때, 그의 무리들 중에 병들거나 지친 이들이, 순례를 하지 않고 최소한의 거주지(수도원)와 더불어 양로원과 구빈원을 그의 이름으로 세웠고, 이들은 부를 축적했다. 순례를 행하는 자는 여러 해를 지나 그 곳을 다시 왔을 때, 수도원 쪽에서는 걸승을 업수히 여겼다. 여기서 갈등이 생기어, 걸승이 주지(수도원파)의 타락을 프란체스코의 이름으로 공격했다. 걸승의 약점은 떠돌이다 보니까 경전을 잘 읽지 않았는데, 이 수도원(정주자, 주지, 사판)들은 문자의 읽으면서 예수는 어떻고 바울은 어떻고 하니 걸승파(노마드 이판)가 보기에 프란체스코를 이름을 걸고 부와 안락을 추구하는 자들이 나쁘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입말로서 경전에 대한 문헌적 논쟁에서 노마드가 정주파를 이길 수 없었다. 정주파는 노마드가 예수의 가르침도 모른다고 비판하면서, 자기들을 비판하는 이들(걸승들)을 종교재판에 걸어 넣었다. 거지이고 아무것도 두려움 없는 이판승과 같은 노마드들은 사판과 같은 정주파를 보고 프란체스코를 팔아서 치부하고 악덕을 행한다고 비판했다. 원래 프란체스코를 따르는 순례자들이 돌아다니며 비판하고 비난하며 떠드니, 수도원에 기부금이 안 들어 올 수밖에. 프란체스코 정주파(우파)는 걸승파(좌파)의 입을 막기 위해, 논쟁을 넘어서 재판에 회부하고 형벌과 화형, 물속에 잠그기 등을 서슴지 않았다. 프란체스코 우파가 좌파를 단죄하면서도 프란체스코의 이름을 지니고 있다는 것에 자신들도 견디기 어려워, 이런 종교재판의 구성과 권한을 도미니크파에 넘겼다.
도미니크파는 이단들에 대하여 설득하다가 안 되면 단죄하는 방법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남사냥을 이어받아서, 참주(교황)과 결탁하여 교회 제도와 교리(복음서)에 저항하는 프란체스코 좌파(걸승파)뿐만 아니라, 천동설이 아니라, 나중에는 과학적 사실에 관해서도 지동설을 주장하는 이들을 마남사냥했던 것이다. 지동설 때문에 죽은 브루노는 도미니크파였다. 프란체스코파처럼 도미니크파 브루노가 자기 파라하더라도 산채로 장작불에 태워 죽였다. 그래도 한편이라고 그를 설득시키기 위해 로마 교황청에 불러들여 거의 10년을 달래었다고 한다. 나로서 그들이 마남사냥을 감추기 위해(이판과 사판, 좌와 우의 싸움 감추기 위해) 걸승에게 보시 또는 동냥을 주는 아녀자들도 죽였을 것이리라. 이다음 이야기는 철학사의 전체를 다시 읽으면서 확인하게 될 것다. 그 후 파리 대학에서 프란체스코파(보나벤투라1221-1274 후배들)계열과 도미니크파(아퀴나스1224-1274, 후배들)계열 사이에 화체설(성령이 육신이 된다는 설)와 기적 등의 논쟁이 있었을 때, 전자가 후자의 추론과 논리를 능가하게 된다. 물론 전자는 과학을 받아들이고 후자는 구 시대 논리에 근거했다. 내가 듣기로 파리 대학에서 르네상스 당시에는 교황청의 중재로 교수진이 프란체스코파와 도미니크파가 반반이라 하였다고 한다. 르네상스 이후에 과학의 발달을 수용한 이들이 프로테스탄트(기독교)인데, 앙리 4세 화해하는 듯하다가 루이 14세는 다시 카톨릭을 국교로 삼으면서, 프로테스탄트가 프랑스를 빠져나갔다. 프랑스 대혁명과 다음 세월이 지남에 따라 19세기 후반에 파리 대학의 학문은 그들의 필요에 의해서 그리스-라틴 원전연구자들을 받아들이고, 사회변화를 수용하여 1900년까지도 토마스주의자 우세였지만 양차 대전이 끝나고, 인문대학에는 고전문헌전공자, 카톨릭, 프로테스타트가 비례를 이루었다고 한다.
“장미의 이름”을 한 종교 안에서 종파들의 갈등 뿐만이 아니라, 수도원과 다른 수도원들의 연관들, 그리고 주변의 인민들의 삶, 즉 우리 식으로 사하촌(寺下村)의 삶도 있다. 아홉차례 십자군 전쟁(제 9차: 1271-1272)으로 유럽은 변했다. 물론 전쟁과 거리 먼 시골과 수도원도 있었다. 그러나 성직자들과 참주적 권력에 붙은 수도원들은 타국을 잘 모르는 인민과 다르다. 그 예로서 ‘알비’라도 도시를 완전히 몰살 시킨 것도 교황을 권위에 호응하는 성 베르나르였다. 성(聖)이라 하기에 진짜 성자로서 인물인 줄 알았다. 그 알비파를 몰살시키기위해 십자군[점령군]을 동원을 주도한 수도사가 베르나르이다. 알비파를 알면서 신학에도 철학이상으로, 또한 수도원들에서도 심층과 상층의 차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자승을 옹호하는 사판승과 이에 맞서는 이판승이 있듯이,
이 소설에서 나오는 수도원을 카톨릭이라는 종교 안에서 ‘학문계’라고 치자. 그 속에 전통적 지위를 가진 영감님(원장)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이다. 수도원에서 이상한 죽음이 일어나니, 사건이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프란체코파의 수도사가 있다(여기서는 오캄주의자의 계열이다. 오캄 1287-1347)가 있다. 그리고 수도원은 도미니크파만 있는 것이 아니라 큰 수도원의 업무들을 분담하여 담당하는 부서들마다, 분파들이 다르다. 현재 영화(파묘)에서 나오는 여러 삶의 부류들과 별반 차이 없는 카톨릭내의 분파들과 같다. 사하촌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식당을 담당하는 돌치네파의 주방장에게 남은 음식을 얻으러 오는 사하촌의 여인이 있었던 모양이다. 오캄파 수도사의 상좌(제자)가 배가 고파, 밤에 불꺼진 식당에 들어가 남은 음식을 찾아 먹으려다가, 갑자기 여인이 덮치고 행사를 치르고 사라졌다. 가난한 그 여인은 몰래 음식을 얻어갈 때 식당 주방장에서 해준 관례였으리라. 그 추억을 가지고 있는 상좌의 회고담과 더불어 수도원의 이야기가 소설의 줄거리인 셈이다. 그 여인에게 장미 향기가 난다고 해서 제목에 ‘장미의 이름’이라 불러야 할 정도의 아스라한 한 추억 장면도 들어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아름다운 로멘스 같아 보이지만, 상좌는 그 이후로 그녀를 볼 수 없었다. 수도원 내에 살벌한 죽음이 파벌들의 논쟁을 전쟁과 같은 싸움으로 번지고, 죽음이 죽음으로 꼬리를 문다. 이 이야기 속에 여러 종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소설에서 이야기야 그들 유일신앙의 종교이며 이론적으로 또는 분파활동을 그들은 잘 알지 모르지만, 나로서 철학사와 연관 시켜서 이리저리 엮으면서 재미있게 읽었었다. 사실 기억에 가물가물하다.
그런데 이 “파묘” 이야기는 한 종교가 아니라, 한 터전에 사는 인민들의 이야기들이다. 에코처럼 철학사나 사상사로를 엮을 필요가 없다. 그저 대중, 민중, 백성, 인민, 시민들의 일상사에 있을 수 있는 이야기를 펼쳐서, 실재로 함께 삶을 엮어서 하나는 아니지만(관계가 아니지만), 이리 저리 엮으면 시간 차이와 장소 차이가 있다하더라도 얽히고 설킨다(연관들이 있다). 이런 이야기 덩어리가 이 영화의 내면, 즉 다양체이다. 게다가 큰 틀에서 미국으로 떠나 잘 사는 인간군상, 일제가 들어온다고 하면서 일본을 따르는 부일파(모일파, 이들을 친일파라 부르는 자들이 숭미파이거나 매국노에 가깝다)들의 내부의식으로 무덤과 그 밑의 무덤(지층 속의 과거)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인민은 알고 있고, 또한 우리 속에 흔적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이 등록된 이야기들은 생명 속에 내재해 있으며, 현재로 보아 일제의 근대화, 미제의 세월보다 훨씬 더 깊고, 더 먼 과거의 기억에서 길어 올린 것이다. 수적으로 다수이지만 소수자(비주도층)는 입말과 등록의 시간을 그리 길게 가지지 못했다. 70여년, 유럽이 자기 방식으로 갖는 것은 크리스트교 이래 2천년이 되어도 헤매 이는데, 우리 70여년인데 비약적인 생성과 전개를 하고 있는 것이다.
‘파묘’ 흥미롭다. 영화 속에는 마치 정산수 떠나 놓고 빌면 오실 것 같은 우리 속에 언제나 남아 있는 삼신할미도 있고, 정월 대보름이 잊혀져가지만 토지의 지신밟기도 있다. 괭과리를 두드리며 부엌에 들이닥치는 사물패들의 놀이에는 조왕신도 있다. 이런 삶의 이야기 다음이 무덤의 이야기이다. 지하의 신이 있건 없건, 황천으로든 골로든 간다는 것이 입말로 남아있고, 하늘나라의 옥황상제도 계수나무도 남아있다. 불교의 전승으로 색즉시공 공즉시색도 있으며, 우리에게 외래문화의 이래로 사라져 가는 듯하지만 환인도, 단군도 있고, - 인왕산 서편 비탈에 가 보라, 얼마나 많은 소원성취를 비는 이들이 있는지를 보게 된다. 영화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주변의 삶의 이야기이다. 오죽 했으면 외재자인 박근혜, 이재명, 윤석열이 인민들에게 아부하는 굿을 했겠는가? 모든 억울함을 해소하는 해원 굿은 여전히 우리 속에 있다. 나는 이 영화에서 딱 두 번 웃었는데, 주변에서 아무도 웃지 않더만, 그 두 번이 기독교 집사인 장의사의 복음서 경전 구절을 말하면서 난감한 상황을 벗어나려는 장면이었다.
이 대중, 신앙자, 인민들 속에서 자잘하게 일어나는 이야기를 관계로 엮은 것도 아니라 연관으로 엮은 것도 아니고, 마치 이 술집에서 저 술집에서 이야기되는 여러 이야기들을 한 곳에 모았던 같아 보인다. 그 한 가지 이야기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이야기된 것을 허구라고 할 것이고, 또 다른 이는 다른 곳의 이야기를 거짓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인간도 동시에 이 다섯 가지 이야기를 동시에 같은 장소에서 겪을 수는 없다. 그럼에 이것을 하나의 이야기인 것처럼 만드는 것이 소설(여기서는 영화)이라 하는데, 잘 생각해보시가 중고등학교 참고서가 그것과 같고, 커서 사용하는 백과사전도 이야기들의 교묘한 조합과 종합이다. 그 참고서나 백과사전에 통일성이 없다고 버리는 이는 없다. 그 부분에 맞게 찾아보아 경험과 실천에서 왜 다른지를 겪으면서 살아간다. 조화와 연대를 찾으며.
편을 갈라놓고 순서를 정하는 것이 삶의 과정이 아니다. 개인의 삶에서는 이것을 또는 저것을 먼저 만날 수 있다. 살아가는 자는 이것과 저것을 순서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온관계, 온연관, 온연대의 두께와 강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야기로서 소설도 고등학교 참고서도, 이제는 각 가정에서 사라지고 도서관에 겨우 남을 백과사전도 관계 연관 연대를 넘어서 하나로 통일된다고 믿지 말라는 메시지이다.
겹장[첩장]이 하나는 수평으로 다른 하나는 수평으로 상정한 것도 상징적이지만, 그 풍수사가 그 두 관을 파내고도 더 깊이 파는 것은, 추억의 두 장면보다 깊이이 기억을 끌어내려는 노력이다. 삶의 지층도 두 층만이 있지 않을 것이다. 120년 전에는 유교가 600여년전에는 불교, 불교이전에는 선도가 있을 수 있다. 이 보다 더 기나긴 생물학적 과정이 무덤 즉 지층들 속에 있다. 그나 저나 습관화된 사람들은 늘 그런가 하고 살아간다. 풍수관이 무덤의 지하만 파는 것이 아니라, 그 토지 위에 삶의 터전에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살아간다. 영화에서도 말하지만, 그런 이야기 들었다고 그런 방식으로 아파트를 짓겠는가? 들을 때 뿐, 도면과 지형과 여러 재료들과 관계 연관 연대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다시 젊은이가 참고서를 달달 외웠다고 참고서대로 행동하기보다, 백과사전도 찾아보고, 그리고 삶으 과정에서 사전에서 내용보다 길게 쓴, 생물이면 생물사, 철학이면 철학사를 읽으면서, 자기 자신의 지층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묻혀가는 과정을 잘 느낄 때, 그의 노력의 방식과 활동 강도의 강도 커간다. 젊은이기에 새로운 길을 만들 수 있고, 그 길 위에서 내공에 의해 기적(아자르)도 은총(무위자연)도 노력하는 자의 것이 될 것이다.
그래도 한마디 더, 이 영화를 좌파로 몰아붙이는 이들의 마남사냥이 관객을 막은 것이 아니라 거꾸로 더 많이 보게 한 것 같다. 이 영화는 삶의 다양체이지 좌파 우파의 문제가 아니다. 쫄았네. 현재 사회정보망(SNS) 시대의 젊은이가 바빠서 지층의 깊이에 잘 생각하지 않는데, 거꾸로 이 영화와 “서울의 봄(2013)”이 젊은이들에게 과거의 추억들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어떻게 살아서 흐르는지를 깨닫게 했는지도 모른다. 천만 이상 보았다는 것 뿐만 아니라, 마남사냥 또는 빨강이 비판이 이번 선거에 먹혀들어가지 않는 것 같다. 어제 국짐당은 ‘좌파가 빨갱이 나라로 만든다’는 플랭카드를 걸려고 하다가 역풍이 심할 것이라 취소했다고 한다. 빨갱이 사냥의 시대가 끝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한경직의 서북청년단과 같은 전광훈의 ‘자국민보호연대’가 돌아다닌다는 기사는 마남사냥을 약자사냥에서 외국인 소수자 사냥으로 건모습(현상)을 바꾼 것이다.
또 하나 검찰의 'D캐비닛'의 이야기는 1870년 이후 비스마르크가 철강노조와 화학공업 노조의 억압을 위한 자료수집의 역사의 기나긴 문서들의 또 다른 판본일 것이다. 이런 존안 자료들이 사적이익을 위해 상대를 공격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알고 있다. 젊은이는 소위 말하는 빅데이터나 인공지능의 쳇GTP로 무슨 짓을 하는지도 듣고 보고 있다. 그럼에도 젊은이는 책장의 자료들, 도서관의 장서들보다 많은 자료들을 또는 다른 자료들을 접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삶의 터전과 소통을 위한 노력으로 깊이와 폭을 넓혀가면서 다른 영역을 창안하고 있다.
지층과 닮은 긴 기억은 그들의 경전의 6천년 역사 또는 우리의 5천년 역사를 넘어서 인간의 형태라는 6백년만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고통과 고민을 해결하는 통로를 찾지 못해 빠져드는 세상에서, 그래도 자기의 노력의 두께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내공의 연마, 노력을 통한 진솔한 인간의 만남이 있다는 것이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젊은이들이 자기 노력과 함께할 방향을 찾으며 투표하리라. 늙은이가 젊은이에게 희망을 건다는 것은 허구이고 탐만치이다. 그들은 이 세상을 떠나면 돌아오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열심히 노력했는지를 자문해야한다.
젊은이 당신들이 세상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고 그것이 당신의 희망이며 미래이다. 새로운 길과 방향을 잡는다는 것, 달리 말하기, 달리 사유하기이다. 부일파를 친일파라 부르지 말자. 빨갱이 용어를 쓰는 자들은 자기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상대를 공격하는 자들로서 양아치들라 불러야 한다. 서구에서는 프란체스코파 오캄파와 같은 심층파가 좌파가 있었고 현재도 있듯이, 프랑스 대혁명에서 쨔꼬방당인 로베스삐에르 등이 의회에서 좌편에 앉았기에 좌파이며, 이들로부터 좌파가 유래하며, 이들은 삼색기 중의 빨간색을 상징한다. 우파가 파랑이이다.
현 우리나라에서 일시적으로 어긋난 표시로서 정당 색깔 구별은 지나가는 소나기와 같은 유행일 뿐이다. 지구가 돌면서 남북의 자기장을 만들고 있듯이, 지구의 기나긴 지층의 역사를 생각하듯이, 터전과 인간, 생명체와 우주의 긴 과정을 잊지 않으면서, 당신들의 달리 말하기와 달리 사유하기가 저항과 자유의 힘일 것이다. 이 터전에서 당신들이 조국(祖國)의 개혁(改革)과 변역(變易)에서, 새로운 길에 필요한 관계와 필수적 연대를 찾아야 할 것이다.
(4:40, 57NMH) (5:31, 57NMI) (7:14, 57NMII)
첫댓글 파 헤처보면,
깊이를 파면,
역사를 파보면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