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민영방송 CBS기독교 방송 KY (1)
1954년 12월 15일 ! 오랫동안
KBS만 단일방송을 해 왔던 이 땅에 민영방송이
전파를 내 보냈습니다. 선교를 주목적으로 설립된 방송국이기는
했지만 드라마와 음악 등 국민들에게 신선함을 주었고 4.19를
전후해서 실시된 뉴스방송은 KBS가 국영방송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던 시절에 국민들에게 바른 소식을
전해 줄 수 있는 길잡이였습니다.
1958년 자체 뉴스방송을 시작한 KY는
60년 4.19를 계기로 한층 돋보였고 1970년 방송과
경영에 밝은 오재경사장을 맞으면서 자체 뉴스방송 시스템을
갖추고 또기독교인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방송체제를 갖추어 종교방송을 근간으로 하면서도
종합방송을 실시, 대중 속으로 파고들었습니다.
1970년대의 유신독재와 맞서 바른소리를
전하는 방송으로 성장했지만 10.26과 5.17로
이어지면서 1980년11월의 방송통폐합바람으로
KY의 뉴스방송기능은 KBS로 가고오랫동안
보도방송의 기능을 잃게 되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의 민주화 바람을 타고
다시 보도기능을 회복하고 2000년대 들어
위성방송이나 CATV등을 통한 영상방송을
실시하는가 하면 세계를향한 선교방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감의도님의 선친이
1910년 우리나라가 일본에 합방되던 해에 선교활동을 위해
우리나라를찾으셨고 그 다음해에 서울에서 감의도님이
태어 나셨습니다. 어린 시절을 우리나라에서 사셨고
17살 때 미국에 가셔서공부를 한 후 1939년에
목사가 되어 돌아오셨습니다.
선교활동을 하시던 감의도님이
신사참배를하지 마라는 설교를 했다는 죄목으로
1941년, 5개월간의 형을 살고 1942년 외국선교사들이
추방될 때 추방되어 한국을 떠났습니다. 감의도님은
외국국적을 가진 한국인이었습니다.
해방된 나라에 감의도님이 다시 돌아왔지만
이미 남북이 갈라지고 사회가 급변하는 등 해방 전에
우리나라를 떠날 때와는 달랐습니다. 전파를 통한 선교활동이
효과적임을 미국에서 체험한 감의도님은 1947년에 새로 편성된
KBS의 종교시간에 출연하는 한편 방송국을 직접
새우는 구상을 했습니다.
민간 방송국설립이 어려웠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서 방송국설치허가를 얻어냈으니
1949년 6월 15일이었습니다. KBS에서 방송 일 을 하고 있던
시인 박화목 선생님이나 연출가 조남사님, 이보라님등과 함께
방송실시를 준비하고 미국에서 방송기기를 구입해서
인천항에 들여오던 때 6.25가 일어났습니다.
그 기계는 어쩔 수 없이 일본
고배 관세창고로보내지고 거기서 오랜 세월
깊은 잠을 잤습니다. 6.25가끝나고, 다시 방송국
설립허가를 얻어서 KBS에 있던 엔지니어 김규환님 (장로)에게
방송국시설임무를 부여해서 고배 관세창고에 있던 기기를 찾아
시설을 하고 방송을 내 보낸 것은 1954년 12월 15일로
주파수 700KHZ, 출력 5Kw, 하루방송시간
4시간 30분이었습니다.
기독교 방송 건립은 기독교계 대 역사였고
후원회의 절대적인 뒷바침으로 이루워진 것이었습니다.
이 때 구성된 후원회는 김활란 여사를 회장으로 당시의
실력자였던 함태영, 이기붕, 백낙준, 한경직님 등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12월 25일부터 대북방송도 실시되었습니다.
박화목 교양과장에 초기 아나운서로 김정태, 김요경,
최준영, 하영진, 김영호, 강소영님등이 계셨습니다.
기독교 방송을 시작하던 시절 종로 2가의 사옥과 ( 위 ),
10Kw송신소 개소식 모습입니다. ( 아래 )
1957년 8월 15일을 기해서 5Kw의 출력이
10Kw로 늘어나고 방송시간도 열 시간이 되었습니다.
 개국 5주념때 찍은 기념 사진입니다. 오른쪽에서
세번째분이 감의도 국장님입니다.
행주송신소를 새로 새우고 방송출력을
50Kw로 늘린 것은 1966년 12월 30일의 일이고
이때부터 방송시간도 아침 5시 30분부터 심야 12시
30분까지 19시간으로 연장되었다가 1970년 5월부터
21시간으로 되었고 그해 11월부터는 22시간방송에
토요일과 일요일은 종일방송을 실시했습니다.
15,000평의 부지위에 새워진 연희송신소,
1966년 12월 30일 출력 50Kw능곡 송신소 준공
1959년 대구, 부산을 시작으로
1961년 이리방송국, 1963년 광주방송국 등을
설립해서 지방네트워크를 가진 명실상부한
전국방송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이크로 웨이브 등 통신시설이 여의치 않을 때라
프로그램은 패케이지로 자동차에 실려 배달되었습니다.
처음에 종로 2가의 기독교회관의 한 층을 썼던
청사는 1970년 3월부터 종로5가의 기독교회관으로 옮겼고
1992년 12월 15일 목동청사로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방송에 관한 얘기는 다음회로 넘기겠습니다.
위는 종로 5가 연지동의 사옥 모습이고 아리는
표준 FM방송 개국때의 모습입니다.
이 글은 1959년부터 오랜 기간
CBS기술 책임을 맡으셨던 방우회 (한국방송인 동우회)
노익중님의 도움으로 썼습니다.
KBS에 계시던 시인 박화목 선생님은 CBS개국요원으로 교양과장을 맡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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