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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28편> 하나님은 복 주시는 참된 복의 근원, 복을 받는 비결, 아내와 자녀의 복, 인간들의 노력과 수고, 산아제한 금지
1. 말씀배경
시편 128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아홉 번째 노래입니다.
인간들은 누구나 복 받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알 것은 하나님께서도 인간들에게 복을 주시기 정말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창 1: 22, 28, 5:2, 9:1,12:2, 신28장 등)
하나님께서는 생물들과 인간을 창조하시자 마자 그들에게 복을 주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22] - 생물들에게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창세기 1:28] - 인간들에게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인간들에게 복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수 있습니다.
인간에게나 생물들에게나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 살 수 있습니다.
그들이 복을 받지 못하고 저주를 받으면 살수 없습니다.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복이 주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사역에 산상수훈을 통해서 팔복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마 5:3-12). 오늘 말씀과는 다른 모습의 복과 같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모두 믿는 자의 모습,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도 우리를 복 받는 자리로 이끌어 가십니다. 그릇된 길을 가면 마치 네비게이션이 목적지를 향해 끊임없이 수정하면서 이끄는 것처럼 인도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길로 따라간다면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인간들이 받고 싶어 하는 복은 인간들의 관심사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중요한 관심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도 그 복을 받는 비결을 말씀해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복은 사모하지만 참된 복이 무엇인지 어떻게 받는지 그리고 복의 근원은 어디서 오는지를 모르고 그저 복 받기 위해서 인간적인 수고만 할 뿐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인간들이 노력해서 받을 수 있는 복도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의지로는 되지 않는 복들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 두가지 복을 다 받아야 진정 복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성경적인 복을 다 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2. 시편 128편
1절, 복받는 비결이 두 가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① 첫 번째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경외(敬畏-공경할 경, 두려워할 외)하는 것(히, 야레)은 한자적으로도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며, 히브리어 원어도 동일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티끌과 같은 미약하고 죄인인 인생이 창조주이시며 심판자이신 크신 하나님 앞에 서 있을 때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는 마음인 것입니다.
인간인 대통령 앞에서도 사람들은 존경하면서도 두려워합니다. 이와는 차원이 다른 경외입니다. 권력에 눌린 경외가 아니라 이 땅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신비한 경외일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4-5장에서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와 천사들이 하나님 앞에서 터져 나오는 영광과 찬송을 돌리며 걍배를 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자신의 눈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다고 공경함도 없고 두려워함도 없다면 그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이거나, 안다면 심히 교만한 자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니 하나님을 만홀히 (漫忽) 여기는 자가 많습니다. 가볍게 여기는 것입니다.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인간 수준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말도 함부로 하고 행동도 경건함이 없습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그러면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 복을 받은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이삭을 제단에 바친 이후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인정 받았습니다 (창 22:12).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아무 조건없이 순종하며 따르는 모습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장 중요한 모습인 것입니다. 그래서 남다른 복을 받은 것입니다.
▶ 이삭도 (창 31:42,53), 요셉도 (창 42:18) 하나님을 경외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욥도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욥기 1:1]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애굽의 바로의 명령을 따르지 아니한 히브리인 산파도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죽음을 무릅쓰고 히브리인 사내 아이를 죽이지 않고 살려두신 것입니다
[출 1: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21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
성경에 기록된 선한 인물들은 대체로 여호와를 경외한 자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성경의 인물과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쓰임도 받고 복을 받는 자 되시길 바랍니다.
② 두 번째 복을 받는 길은 그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그는 여호와입니다.
길(히,데레크)은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길이며, 말씀에 따라 사는 길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삶의 방식입니다.
그것은 곧 진리의 길입니다. 그 길을 걷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라고 하는 유혹된 길이 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길과 어긋난다면 그 길을 가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의 길은 넓고 편하고 때로는 많은 이익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렵지만 좁지만 당장은 손해가 나지만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길을 걷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길은 십자가의 길이기도 합니다. 고난의 길이요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협착한 길입니다 (마 7:13-14).
남들이 다 가더라도 여호와의 길이 아니라면 가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을 받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한다고 하면서 편안하게 여겨지는 자기의 길로 간다면 경외하지도 않는 자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과 그 길을 걷는 것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경외한다고 하면서 그 길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는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 자인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따르는 자가 모두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자마다” (콜)는 예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자 모두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2절, 1절에서 말씀하신 복의 내용이 무엇일까요?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우리들이 수고한 정당한 댓가대로 먹는 것도 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수고는 잔뜩했지만 소득이 없이 빈손이 된다면 복이 아니라 저주인 것입니다.
당시에는 전쟁이 많고 치안이 부족한 시대라 농사를 지어 놓고도 힘 있는 자에게 빼앗기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그리고 한재, 풍재, 수재, 메뚜기 등으로 곡식의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그러므로 수고한대로 그 열매를 먹는 것이 당시에는 큰 복인 것입니다. 수고한대로 먹는데 미완료형을 사용하고 있으므로 일시적인 수고의 복이 아니라 계속 먹게 되는 복입니다.
▶ 두 번째로 살펴보아야 할 것은 복을 받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노력으로 수고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 노력도 수고도 하지 않고 복만 받기를 원한다면 비성경적입니다.
성경은 노동을 귀하게 보십니다.
인간이 죄를 지은 이후 본질적으로 평생에 수고하여야 먹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창세기 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그러므로 소산을 먹기 위해서는 수고가 당연히 따르는 것입니다.
바울도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했으며, 일해서 자기 양식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살후 3:10-11).
그렇다면, 일하지 않아도 되는 불로소득으로 살 수 있는 분들도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창조적인 일을 해야하는 것이 성경적인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수고와 상관없이 복을 주시는 복도 있지만 그러나 대부분 우리의 수고 위에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를 하여 그 해에 백 배의 소득을 얻은 것도 그가 농사를 짓는 수고 위에 복을 주신 것입니다 (창 26:12)
게을러서 궁색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 자기가 수고하지 않고 게을러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지금까지 일하고 계십니다 (요 5:17) 우리들도 일해야 수고해야 합니다. 베짱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땀이 나도록 수고하는 것은 죄인인 인간들의 지극히 성경적 삶입니다.
놀고 먹고자 하는 것이 비성경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길을 걷는 자에게는 복되게 하시고 또 형통도 하게 하십니다. 여기서 형통은 선한 것, 좋은 것, 번영을 말씀할 때 사용하는 “토브”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것들을 주심으로 형통하게 하는 것입니다.
형통해야 합니다. 인통, 물통, 영통 등을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사방이 우겨싸여 있으면 안됩니다. 잘 풀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3절, 3절에서 말씀하신 복은 인간의 의지도 필요하지만 인간의 수고로만 할 수 없는 복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셔야 받을 수 있는 복입니다. 아내와 자녀들의 복입니다.
사무엘의 부인 한나도,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도, 이삭의 아내 리브가도, 야곱의 아내 레아와 라헬도 모두 하나님께서 태를 여셔서 임신을 했습니다.
아내가 결실한 포도나무 포도송이 같이 많는 자녀를 출산할 수 있는 것도 그래서 어린 가지의 감람나무와 같은 많은 자식이 상을 둘러 앉아 밥을 먹을 수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아내가 자식을 많이 낳고 어린 자녀들이 상에 둘러 앉아 밥을 먹는 것이 얼마나 복된 모습입니까?
우리 어릴 때 형제들이 많아서 큰 평상 같은 곳에 둘러 앉아서 밥을 먹기도 했습니다. 또 일부는 상에 앉고 나머지는 흩어져 여기저기서 밥을 먹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복된 모습입니다.
자녀들이 많은 것은 당시나 지금이나 복입니다.
시편 127편에서도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상급이요. 장사의 수중의 화살같고 자식이 많으면 성문에서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시 127:3-5).
지금도 마찬가지로 많은 자녀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나라 인구 대체율 (지금의 인구를 유지하기 위해서 여성 1명이 낳아야 출생율)은 2.1명입니다. 그런데 지금 합산출산율은 2022년 기준 0.81명입니다 (가임여성 1명당 출생아수, 연간 26만명 탄생)
오늘날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가 대체로 자녀를 낳지 않으려고 합니다.
자녀는 복입니다. 가능한 많이 낳으셔야 합니다. 저는 두 명을 낳고 얼마나 후회하고 회개를 했는지 모릅니다.
많이 낳으면 정말 그들로 인하여 기쁨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 가운데 요셉이라는 총리가 등장하듯이 하나님 앞에서 크게 쓰임을 받는 자도 태어날 것입니다.
야곱이 열명 낳고 말았으면 요셉은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면 가나안 땅에서 식구들이 굶어 죽을 수도 있었고 한 민족을 이루는 나라도 형성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리브가의 뱃속에 있는 야곱과 에서를 보고 “두 국민”이라 불렀습니다 (창 25:23). 여러분들을 통하여 먼 훗날 국민이 일어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이 태어난 후 약 660년 만에 200만명 가까이 되는 민족을 이룬 것입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결실한 포도송이와 같이 영글어진 자녀들을 많이 낳으시기 바랍니다.
아가서를 보면 술람미 여인의 모습이 나오는데, “네 두 유방은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은 쌍태 어린 사슴 같구나”(아 4:5), “허리는 백합화로 두른 밀단 같구나“(아 7:2, ”네 키는 종려나무 같고 네 유방은 그 열매송이 같구나“ (아 7:7), ”네 유방은 포도송이 같고“ (아 7:8) 이 모든 표현이 많은 자녀를 둘 수 있는 성숙한 모습입니다. 물론 많은 영적 자녀를 두는 영적인 성숙을 말하기도 합니다.
아가서의 술람미와 같은 성숙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기를 바란다면 자녀를 많이 낳으세요. 자녀를 많이 낳지 않는 여성은 최소한 하나님 보시기에는 이 부분에 있어서는 성숙한 여인이라 하지 않습니다.
최소한 세 명 이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가급적 산아 제한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건강이 받쳐주지 않는 사람 외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차 버리지 마세요.
그리고 임신한 아이 낙태도 하지 마세요. 살인이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과 나라의 인구를 생각해야 합니다. 뱃속의 태아는 하나님께서 이미 아시고 성별하시고 사명을 주시길 원하시는 생명체입니다.
[예레미야 1: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무슬림들은 자녀가 생기는 대로 낳습니다. 더구나 비성경적이지만 많은 부인을 두어서 급속하게 그들의 인구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머지 않아 이런 무슬림 자연적인 증가 속도라면 전세계는 무슬림화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전도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전도 못할 바에는 경건한 자녀라도 많이 낳으라고 권장합니다. 저도 동일한 의견입니다. 전도하기 어려운 시대에 믿는 자녀라도 많이 낳아서 신앙의 대가 끊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4절, 1절과 같이 여호와를 경외한 자의 복이 이와 같을 것이라고 다시 한번 말씀하고 있습니다. 같은 내용을 두 번 기록한 것은 강조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면 반드시 복을 받는데 수고한 대로 먹고 아내와 자식의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5절, 이제는 복을 받는 영역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 복을 받는 영역은 ”시온에서“ (히, 미치욘)입니다. 시온은 크게는 이스라엘입니다. 좁게는 예루살렘입니다. 영적으로 본다면 하나님께서 계시고 다스리시고 통치하느 영역입니다. 오늘날 ”예수안에서“입니다.
아무리 자녀를 많이 낳아도 하나님 밖에 있으면 그것이 복이 아니라 저주인 것입니다.
많은 수고를 해서 많은 열매를 거두었다하더라도 하나님 밖이라면 그것은 소돔과 같이 불타 없어버릴 저주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단순한 영적 복의 원리를 모르거나 무시합니다. 믿지 않습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는 때로는 시련을 겪은 것도 있지만 결국에는 다 잘되었습니다.
시오니즘을 가진 이스라엘 백성들 보세요. 그들은 전세계에 흩어져 살았지만 지금은 이스라엘 땅에 나라를 세워지고 전세계 사람들의 머리가 되고 있습니다.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신 28:13,44)
우리나라가 기독교 복음이 들어온 이후에 발전하고 잘 살기 시작을 했습니다. 불교와 유교가 지배했던 시대는 아프리카보다 못하는 세상에 보기 힘든 찌지리 나라였는데 지금은 기적을 전 세계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 세상에 우리나라와 같은 나라는 없습니다.
수많은 교회가 세워지고 기도원이 세워지고 새벽기도를 하는 민족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래서 지금은 전세계에 ”K“로 시작되는 한류가 온 세계를 덮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민족이 가장 무서운 민족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여호와 안에서 예수 안에서 참된 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속해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저주를 받는 곳에 있으면 저주를 받게 되는 것이고 복을 받는 곳에 있으면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가 받는 복은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는 복입니다. 모두 아내와 자녀의 복과 관련이 있는 복입니다. 예루살렘이 번영이 없다면 자녀들의 번영도 없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이 사는 장소인 예루살렘이 번영해야 자녀의 번영도 지속됩니다. 잠시가 아니라 평생동안 보게 될 것입니다. 번영은 많은 자녀들이 태어나 사람들로 우글거리는 모습이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안식하면서 풍족하게 평안히 사는 모습입니다 (왕상 4:25, 미 4:4, 슥 3:10)
하나님의 축복으로 우리들이 사는 도시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 많아번성하여지고 평안하게 사는 그날이 오기를 소망합니다.
6절, 네 자식의 자식을 보는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가 끊어지지 않는 복이며 대를 이은 자식의 번성입니다. 그리고 후손을 보는 장수의 복입니다. 악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 대를 끊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사건 말고도 엘리 제사장의 가문도 그러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도, 아합왕가도 그러했습니다.
아버지의 죄악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삼사대까지 갚으신다면 그 가문은 멸망인 것입니다 (민 14:18).
자식의 자식을 보는 것은 축복입니다. 자식의 자식은 다 복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영원한 천국에서의 삶의 복인 것입니다.
자식이 아비보다 먼저 죽고 하면 참 고통일 것입니다.
다음 대를 이어서 보는 얼마나 큰 축복인지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시편 저자는 이스라엘의 평강을 기원합니다.
자식들이 모여 이스라엘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식들이 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평강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으로 인하여 번성하고 평강이 항상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