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5:21-28> 큰 믿음이 무엇일까?, 땅의 차원과 영의 차원, fact와 fath, 기적과 일상, 네 믿음이 크도다
1. 말씀의 배경
예수님께서 이방지역인 두로와 시돈지역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한 여자가 예수님께 나아와 자기 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렸는데 쫓아내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오늘 말씀에 한 여자는 가나안 여자(22)입니다 (마가복음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의 여자, 막7:26). 그러니 이방 여자임이 분명합니다.
에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4,26), 마가복음에는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막7:27) 라고 대답하십니다.
한마디로 이방인을 개 수준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는 이방인들에게 떡을 줄 수 없다는 내용으로 기록하고 있고, 마가는 자녀인 유대인들보다 먼저 이방인들에게 떡을 줄 수 없다는 내용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 당시 유대인은 이방인을 개나 돼지 취급을 하였습니다 (마7:6). 예수님께서 이방인을 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과 유대인을 구분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방인들도 유대인들이 자기들을 그렇게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자존심이 팍 상했을 것 같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방 여자는 예수님께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마15:27)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막7:28)
이 말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28),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막7:28)
그리고 그 여인의 딸에게 들어간 귀신이 나가서 나음을 입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그 여인에게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믿음이기에 크다고 하신것인가요?
① 먼저 환경 여건을 초월한 포기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에게 다가오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23), 그를 보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환경에 의해서 많이 무너집니다. 그래서 “안된다”고 단정하고 선언합니다. 땅의 차원에 머물고 있는 것이죠. 그러면 믿음이 있다고 예수님은 말하지 않습니다.
또 그는 개처럼 취급을 받는 수치를 당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존심이 조금만 상해도 그냥 “때려 치워” 이것이 우리들의 수준입니다. 그녀는 가장 최악의 개와 같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아마 백이면 백 모두 그 상황이 되면 떠났을 것입니다. 자존심 때문에라도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 이겨내고 예수님께 나아간 것입니다.
② 예수님은 자기 딸의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 줄 수 있는 분임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 여인은 어린 딸이 귀신 들렸을 때 온갖 것을 다 해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패!!. 이 정도면 포기하고 그냥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것입니다. 예수님이라면 고칠 수 있어!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롬10:17) 귀신을 쫓아내신다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은 것입니다. 그녀에게는 그것이 복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 믿음이 그를 이끌어 온 것입니다.
2. 성경은 믿음이 큰 자와 작은 자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이방인 여인에 대하여 예수님은 “네 믿음이 크도다” 크다고 평가하십니다. 믿음이 있고 없는 사람들의 사례를 한두 가지만 보겠습니다.
1) 믿음이 큰 자라고 한 사람들
① 중풍병이 걸린 하인을 고치고자 한 백부장의 믿음 – 로마 황제가 아닌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믿음 “이만한 믿음“
[마태복음 8: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②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사람들의 믿음 – 지붕을 뜯어서라도 예수님께 가고자 하는 환경을 초월한 믿음
[마태복음 9: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③ 혈루증 걸려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여인 – 옷자락만 만져도 고칠 수 있다는 믿음
[마태복음 9: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2) 믿음이 작은 자라고 한 사람들
① 먹을 것 입을 것 염려하는 자의 믿음
[마태복음 6: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② 예수님과 함께 배에 있음에도 바다의 풍랑으로 빠져 죽을까 염려하는 자
[마태복음 8: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③ 바다 위를 걷다가 물에 빠져들어 가는 베드로
[마태복음 14: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④ 먹을 떡이 없어 염려하는 자
[마태복음 16:8]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으므로 서로 논의하느냐
⑤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제자들
[마태복음 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3) 믿음이 있는 자와 없는 자, 믿음이 큰 자와 작은 자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마태복음을 통해서 믿음이 있고 큰 자는
첫째는 예수님이 구원자요 치료자요 공급자라는 사실을 믿는 자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을 인정하는 자입니다.
3. 히브리서에서 말씀하는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요?
우리는 다시 히브리서에 나타난 믿음에 대하여 잠시 언급하고자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장”이라고 부릅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어떠한 믿음을 가졌는지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중심 구절 말씀이 믿음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정의해 주고 있습니다.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을 가지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바라면 실제로 바라는 것들이 나타난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이렇게 해서 믿음이 있는 자라고 증거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세계가 하나님 말씀으로 지어진 것을 본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지어졌다고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왜요, 하나님 말씀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으니까요? 믿음은 말씀에 근거한 믿음입니다
히스기야가 15년 생명이 연장된다고 했는데 30년을 놓고 기도하는 것은 말씀에 근거한 믿음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고 경험하지 않은 것이지만 말씀에 기록되어 있으면 그것이 사실임을 믿는 믿음입니다.
또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대속적 죽음을 죽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속죄함 받습니다. 그러면 구원을 받습니다. 이런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면 실제로 죄사함 받아서 죽어서 천국 간다는 것입니다.
또 예를 들면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다는 말씀에 근거하여 고쳐진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믿음을 가진다고 봅시다. 그러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고쳐지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이상 고쳐지는 것입니다.
▶ 이 땅의 차원, 이 땅의 환경에 지배를 받고 이 땅의 과학과 공학과 물리학과 종교와 철학, 생리학, 이성에 근거하여 지배를 받고 사는 사람에게 믿음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돌을 들어 놓으면 땅에 떨어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믿는 것은 고학적 사실에 근거한 믿음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믿음있다고말하지 않습니다.
암 환자가 있습니다. 병원에서 의학적으로 사망 선고를 냈다면 그가 죽은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믿음 차원이 아니라 의학적 사실 차원입니다.
또 어던 사람이 “나는 너를 믿는다”고 할 때에 그것은 그동안 그를 경험한 사실에 근거한 믿음이므로 성경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 결론적으로 고학, 의학, 공학 등 사실, 경험에 근거한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사실은 fact입니다. 믿음은 fath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이성, 과학, 의학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영역은 사실 3차원의 영역이 아니라 더 높은 차원의 영역이 됩니다.
의사로부터 의학적으로 사망 선고를 받은 암 환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고쳐질 것을 믿고 바라고 나아간다면 그가 고쳐지는 것은 다른 차원의 믿음인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는 영성을 조용기 목사님은 “4차원 영성”이라 합니다.
우리는 3차원 영성에 머물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차원이 아니라 사실의 차원입니다.
바람직한 참 믿음의 차원은 우리의 생각, 이성, 과학, 의학, 공학을 넘는 차원입니다.
3차원에서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더 높은 하나님의 차원에서는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는 세상 차원을 넘는 기적이지만 하나님 차원에서는 일상입니다. 우리는 기적, 하나님은 일상, 우리의 fath가 하나님 나라에서는 fact 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차원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자가 믿음이 있는 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믿음이 있다고 하지만 과학, 이성 등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사람들이 믿지 않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믿음이 없다고 작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차원에서 이 땅의 것들을 풀어내고자 하는데 땅의 차원에 머물러 있는 자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생각하고 같은 행동하는 하나님의 차원에 있는 자가 믿음이 있는 자인 것입니다. 그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차원이 다른 것과는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개미와 인간이 대화가 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더 높은 차원의 하나님과 교제하고 동역하기를 원하신다면 하나님 차원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이 있는 행동인 것입니다. 땅의 차원으로 머물면 기적을 볼 수 없습니다.
<맺는 말>
이성으로는 불가능한 것을 말씀에 근거하여 가능하다고 믿고 기도하면서 나아가는 신앙이 참 신앙이요 큰 믿음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모세도 기생 라합도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 산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기대하며 보이지 않지만 잡히지 않지만 소망으로 멀리 있는 것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나아갔던 자들입니다.
이루어지는 때는 모르지만 반드시 될 것을 믿고 나아간 것입니다. 우리들은 시간 싸움에서 많이 탈락합니다. 조금 기도하다가 안되면 포기!!! 될대까지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말씀에 근거한 것이라면!!!
아브라함에게 땅과 자녀의 복을 말씀하셨는데 650년 후에 이런 것들이 이루어집니다. 시간은 모르지만 결국 이루어진 것입니다.
집 나간 자녀가 있습니까? 말씀에 근거하여 돌아온 모습을 그리면서 기도하면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믿는 자가 기도하면 응답해 주신다고 했으니까요?
출애굽 당시 아말렉 전투에서 모세는 높은 산 꼭대기에서 두 손을 들고 여호수아가 전장에서 싸우는 것을 보면서 기도한 것처럼 눈으로 마음으로 그 상황을 그리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눈으로 보는 비젼인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면 천국에 갑니다. 그것은 무엇을 믿기에 가능한 일 입니까?
예수님께서 내 죄를 대신 죽으심으로 내 죄사함을 받고 천국에 간다고 믿었기 때문에 천국 가는 것입니다. 말씀에 근거하여 천국에 대한 비젼, 바라보면서 그리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천국에 가는 것은 믿음의 가장 중요한 열매입니다.
비단 천국 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그렇게 비젼을 가지고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갈 때 언젠가는 이루어집니다.
병이 들었습니까? 동일합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다”(사53:5,벧전2:24)는 말씀에 근거하여 나았다고 주장하면서 나은 자신의 모습을 그리면서 기도하면서 나아갈 때 고쳐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나라”(막9:23) 하신 말씀대로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차원의 눈으로 마음으로 생각으로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믿음을 가지고 나아갈 때 마치 기적이 일상처럼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 차원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믿음으로 날마다 기적을 경험하는 우리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