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제26차 백두대간 출진구간은 태백시 상사미동-건의령-푯대봉-한내령-덕항산-지각산(환선봉)-귀네미마을-큰재-황장산-댓재로 이어지고, 대간길만 19.7km이고 초20.4km로 등반소요시간이 9시간정도이고, 참석인원은 37명이었다.
어젠 큰 딸내미 과외가 12시에 마치어 마중 갔다 집에 와서 씻고 아이와 그동안 미루어 놓았던 이야기 몇마디하니 1시가 넘어 기상알람을 맞추어 놓고 잠시 눈을 붙였다. 4시경에 일어나 비몽사몽한 모습으로 반찬, 물등을 배낭에 넣고 부랴부랴 청사로 향했다. 오늘 산행은 태백에서 시작하여 버스 이동시간만 편도 4시간 정도가 걸려서 제시간에 등반을 마치려면 새벽 5시에 출발하여야만 하였다.
5시10분에 청사을 출발한 버스는 잠시 아침식사를 위해 오창휴게소에 정차하여 까칠한 입맛이지만 오늘의 대장정을 위하여 의무감으로 밥 한술을 뜨고 다시 자리에 앉으니 식곤증이 몰려와 달콤한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9시30분경 태백시 상사미동에 도착하여 출발 단체 인증샷을 찍고 건의령을 향하여 힘차게 출발하였다. 날씨는 안개가 약간 끼어 오늘도 화창함을 예고 하였다. 차도는 건의령터널을 지나는데 우리는 터널 윗길로 이어진 옛길을 따라 능선 시작점인 건의령에 다다랐다. 건의령의 유래는 태백 상사미에서 삼척 도계로 넘어가는 고갯길로 한의령(寒衣嶺 ) 또는 건의령(巾衣嶺 )이라고 불리운단다. 고려말 때 삼척으로 유배온 공양왕이 근덕 궁촌에서 살해되자 고려의 충신들이 이 고개를 넘으며 고갯마루에 관모와 관복을 걸어놓고 다시는 벼슬길에 나서지 않겠다고 하며 고개를 넘어 태백산중으로 몸을 숨겼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유서 깊은 고개란다. 여기서 관모와 관복을 벗어 걸었다고 하여 관모을 뜻하는 건(巾)과 의복을 뜻하는 의(衣)를 합쳐 건의령이라고 부르게 되었단다.
유서깊은 건의령을 뒤로하고 우리는 푯대봉을 향해 나아가는데 이 화창한 봄날에 횡재를 만났다. 다름이 아니라 어제 안개가 가득하여 이곳 강원도 태백 날씨가 추워 나뭇가지에 서리꽃인 상고대가 활짝핀 것이다. 모두들 환상의 서리꽃 모습에 넋을 놓고 바라보며 이른 새벽에 일어나 달려온 지친 모습들은 온데간데 없고 환상의 경치에 즐겁고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가득한 얼굴들이었다. 이 봄날에 강원도가 아니면 볼 수 없는 멋진 장관의 모습은 햇살이 중천에 비칠때까지 이어졌고, 날씨가 더워지면서 서리꽃은 꽃비가 되어 녹아 내렸다. 서리꽃 비를 맞으며 푹신하게 낙엽으로 쌓인 등산로를 걷는 기분은 융탄자 위인듯 포근했다.
등반로 주변 참나무 위엔 한약재로 쓰인다는 겨우살이가 연두색을 띠며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또한, 낙엽을 뚫고 노란 빛깔을 지닌 들꽃들도 피어나 봄이 왔음을 알리는 듯 했다.
11시20분경 상쾌한 발걸음으로 시작했지만 오르막길을 오르면서 이마엔 송글송글 땀이 맺히고 등줄기도 촉촉히 젖어왔다. 이럴때 마시는 막걸리 한잔의 짜릿함은 등반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절정의 맛이다. 막걸리 한잔으로 힘을 비축하고 997.4m봉을 지나 12시 10분경 1055m봉 정상에서 자리를 펴고 점심을 먹었다.
대간길 점심은 항상 기다려지는 시간으로 모두들 맛난 반찬들을 꺼내 놓고 밥을 먹으며 대원들간의 즐거운 입담이 이어졌다. 밥과 함께 빼놀 수 없는 반주한잔, 오늘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민만호 대원께서 공수해온 21년산 발렌타인 한모금과 김혜순 여성대장의 오디주가 화룡점정을 찍었다.
13시경 태백 하사미와 외나무골에서 삼척 도계읍 한내리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옛날에 고개 동쪽 한내리 땅에 기구한 팔자를 타고난 여인이 살았는데 서방만 얻으면 죽고 또 죽고하여 무려 아홉 서방을 모셨다고 한다. 그래서, 아홉 남편을 모시고 산 여인의 전설에서 구부시령(九夫侍嶺) 이라는 유래를 간직한 고개를 지났다.
13시20분경 마침내 오늘의 최고봉인 덕항산(德項山, 1071m)에 도착하여 정상 인증샷을 남겼다. 덕항산은 태백 하사미와 삼척 신기면과의 경계에 솟아 있는 산으로 옛날 삼척 사람들이 이산을 넘어오면 화전(火田)을 할 수 있는 편편한 땅이 많아 덕메기산이라고 하였으나, 한자로 표기하면서 덕항산으로 되었다고 한다. 또한, 산 전체가 석회암으로 되어 있어 산 아래에는 유명한 환선동굴과 크고 작은 석회동굴들이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덕항산을 지나면서 오른쪽의 낭떠러지가 위험해 보였지만 조망이 환하게 뚫려 있고, 저멀리 동해바다가 아련히 보이었고, 바다바람과 계곡의 골바람이 합쳐져 시원하게 불러와 땀이 나자마자 식었다.
14:00경 환선봉(1080m)에 다달아 발 아래 굽어 보이는 환선동굴 주변과 삼척 동해바다를 조망하였다. 14:40분 환선굴로 가는 갈림길인 자암재를 지나 오늘 대간 마루금의 하일라이트인 귀네미 마을에 도착했다. 귀네미 마을은 2008년9월21일 강호동, 이승기가 나오는 1박2일에 소개되어 전국적으로 더욱 알려진 곳으로, 태백의 고냉지 채소밭이 산 전체를 뒤덮어 장관을 이룬단다. 하지만, 지금은 아직 배추를 파종하지 않아 황량하기 그지 없었다.
귀네미 마을에서 오늘의 종착지인 댓재까지 계속 등반이 어려운 몇명의 대원들이 중도 하차하여 버스로 이동하였다. 귀네미 마을 뒷동산 정상에는 매우 큰 물탱크가 자리잡고 있었는데, 이것이 수백만평의 고냉지 배추들의 젖줄이었다. 온 들판이 파아란 배추로 가득한 장관을 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발길을 돌려 15:40분경 큰재에 도착해서 아껴둔 빼갈과 과일로 에너지를 보충하며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16:30분 1069m봉에 도착하여 "산님!힘내세요"라는 팻말을 들고 부회장님을 비롯한 대원들과 인증샷을 찍으며 즐거워 하였다. 1105m봉을 지나 15:20분경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인 황장산(975m)을 찍고, 드디어 15:40분경 최종 종착역인 댓재에 도착하였다.
구름도 쉬어간다는 댓재에 내려서니 오늘 등반내내 보이지 않아 궁금했던 조남균총무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오늘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그동안 연마한 실력을 맘껏 발휘하여 상위 1%에 드는 쾌거를 이루었다고 한다. 실로 감개무량하고 그동안 후미에서 쳐지는 대원들을 위해 묵묵히 뒤에서 받쳐준 것에 고마웠다.(담엔 나두 같이 껴줘유~~ ^^)
하산주는 댓재에서 버스를 타고 조금 이동하여 번천리 산촌문화회관 정자에서 폼나게 판을 폈다. 시원한 막걸리와 언제나 꿀맛인 뜨끈한 감자탕을 한사발하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오늘 산행은 코스가 오르막과 내리막이 적당하고 시원하게 불어준 동해바다 바람 덕분에 덮지도 춥지도 않은 최적의 조건에서 걸은 즐겁고 행복한 등반이었다. 귀환버스에 오르니 창밖엔 어느새 어둠이 내리고 동쪽하늘에 두둥실 떠서 오늘 따라 유난히 밝은 보름달이 강원의 아름다운 산자락을 비추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 보면서 오늘도 무사히 마치어 뿌듯한 마음과 함께 피곤이 몰려와 스르르 눈이 저절로 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