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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흥망의 다윈 코드
새로운 질서는 고통을 안고 옵니다. 여명기를 지나지 않고서는 새로운 태양을 볼 수 없습니다.
역사는 위기를 두려워하지 말 것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당면한 고통은 새로운 질서를 맞이하기 위한 성장통이라고 알려줍니다. 실제 모든 위기가 그랬습니다.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은 역설적으로 미국을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으로 키운 자양분이었습니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의 아픔을 딛고 1950년대 연평균 7%의 고도성장을 구현하며 유럽 최고의 공업국가로 발돋움했습니다. 한 세대를 풍미한 일본의 輕小短薄은 전세계를 전율과 공포로 몰아넣었던 오일 쇼크 이후 찾아낸 회심의 전략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살아서 꿈틀거립니다. 영원불멸은 없다고 하지만 生-老-病-死라는 변화 자체는 영속적입니다. 찰스 다윈은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환경변화가 새로운 種과 생태계를 만들어낸다고 했습니다.
변화에 대한 도전과 기회포착이야말로 생존역량을 배가시키는 유일한 길이라고 갈파했습니다. 이 같은 생명의 비밀이 ‘다윈 코드(Darwin Code)’라는 이름으로 많은 기업인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는 이유는 작금의 위기국면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기업은 인간이 만들어낸 기계적 구조물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생물에 가깝습니다. 생존과 욕구, 탄생과 소멸 과정 또한 자연계의 생물들과 꼭 닮았습니다.
근거 없는 낙관은 금물이지만 섣부른 절망은 더욱 치명적입니다. 식품업체 켈로그는 대공황을 기점으로 글로벌 1위 기업으로 발돋움했습니다. 당시 1위 기업이던 포스트는 불황이 닥치자 원가절감에만 급급했습니다. 반면 켈로그는 대공황으로 양산된 극빈자들에게 시리얼을 무료로 배급하는 등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했습니다. 경제위기가 지나자 미국인들은 ‘시리얼=켈로그’라는 등식을 받아들였습니다.
위기가 지나가고 나면 승자와 패자가 확연하게 갈립니다. 위기는 쓰나미처럼 모든 것을 쓸어가 버릴 것 같지만 언제나 남는 것은 새로운 생명의 패러다임입니다. 강력한 기회와 위혐이 공존하는 시기에 ‘뉴 패러다임’을 선취하는 자가 다음 질서를 주도해 나갈 것입니다.
불멸의 특권 : 시련은 생존역량을 키운다
“미안해 소니(Sorry Sony)”
2002년 CD플레이어와 MP3 겸용 제품인 ‘아이리버’의 성공을 자축하며 레인콤(現 아이리버)이 자신 있게 내세웠던 광고문구입니다. 하지만 레인콤이 미국시장석권의 꿈에 부풀어 있는 동안 등 뒤에는 애플의 비수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시장판도를 일거에 바꿔놓은 ‘아이팟’이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휴대폰 기업인 핀란드 노키아, 항공업계의 ‘언터처블’ 미국 보잉사의 공통점은 출범 당시 목재회사였다는 것입니다.
기업은 계속 진화합니다. 삼성전자를 별 볼 일 없던 가전회사에서 오늘날 눈부신 약진을 거듭하고 있는 글로벌 IT기업으로 키운 것은 1993년 “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는
진화는 특정 가치관이 투영된 진보와 다릅니다. 진화의 진정한 의미는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생존에 성공하는 것입니다. 한 때 번성했다는 것은 현재 시점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기업의 모든 생사를 단순히 진화론적 세계관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혹독했던 빙하기가 지구의 생태계를 변화시키고 모든 생물의 진화를 촉진시켰듯이 작금의 경제위기 역시 지구의 현존하는 비즈니스 생태계를 파괴하고 기업의 진화를 요구하게 될 것입니다.
찰스 다윈이 태고의 땅인 갈라파고스 제도를 탐험하면서 정립한 진화론은 어떤 의미에서 자연계보다 경제계에서 보다 분명하게 증명됩니다.
환경으로부터 ‘자연선택’을 받지 못하는 생물이 도태되듯이 시장과 고객의 외면을 받는 기업은 아무리 뛰어난 명성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위기를 맞을 수 밖에 없습니다.
월스트리트 신화의 종말과 세계 거대 제조업체들의 몰락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정유회사인 쉘은 환경변화에 성공적으로 진화한 기업입니다. 쉘은 유가안정기였던 1960년대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에너지 위기 시나리오’라는 것을 작성했습니다. 마침내 1973년 10월, 중동전쟁으로 오일쇼크가 현실화됐을 때 쉘은 가장 탁월한 위기관리역량을 선보였고 그 결과 업계 7위에서 2위로 도약했습니다.
기업이 불황보다도 더 두려워하는 전쟁에도 기회는 있습니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는 미국의 서부개척시대 역마차사업으로 일어선 회사였습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금융사로 발돋움하는 기회를 잡게 됩니다. 전쟁 발발과 동시에 유럽에 있던 15만 명의 미국인들은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오도가도 못하게 된 미국인들은 프랑스 파리에 있던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사무실 앞에 진을 쳤습니다.
이 회사는 성의를 다해 여행자의 귀국수속을 도왔습니다. 전쟁 중에도 유럽 사무실을 폐쇄하지 않고 여행자수표를 현금으로 바꿨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도 유럽은 폐허가 됐지만 아메리칸익스프레스는 종전 後 어느 회사보다 먼저 유럽 영업소를 재건했습니다.
새삼스런 풀이지만 ‘법인’이란 용어는 법적 인간이란 뜻입니다. 기업은 인간에게 부여된 법적 지위를 거의 유사하게 향유할 수 있도록 의인화돼 있습니다. 따라서 생물학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마찬가지로 똑 같은 생로병사의 프로세스를 갖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인간이나 생물과 다른 점은 생리적인 수명이 없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대를 이어가면서 불멸이라는 특권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물론 기업이 아무리 강력해도 정부나 권력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세계 최고의 기업도 징집과 조세징수권을 갖고 있는 아프리카 어느 작은 나라의 권력과 비교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의 역사는 기업흥망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훨씬 전인 1700년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고작 350명의 직원으로 출범했지만 나중에 전체 영국군 병력의 두 배에 해당하는 사병 26만 명을 동원해 인도를 통치하며 무려 274년 동안 존속했습니다.
동인도회사가 아니더라도 현존하는 기업 중에 100세를 넘어 생존하고 있는 기업들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역동적인 환경에 진화를 거듭한 결과입니다. 세상에 불멸은 없다지만 비즈니스 세계에선 미리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들이 우습게 여기는 개미조차 1억년을 살고 있습니다.
환경을 지배한 코카콜라
진화는 스스로 몸을 비트는 과정입니다. 담쟁이 넝쿨이 햇빛을 얻기 위해 몸을 꼬아가며 콘크리트벽을 오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때로는 변화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진입장벽을 치고 경쟁자들을 제압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환경변화에 맞춰 변신을 시도하는 진화의 과정도 있습니다.
부동의 글로벌 브랜드 톱 기업인 코카콜라가 전자의 경우라면 국내 4대 그룹의 일원인 SK는 후자에 해당됩니다. 물론 두 개 기업 모두 미래를 완벽하게 내다보고 생존한 것은 아닙니다. 변화는 예측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방식대로 적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코카콜라가 처음 세상에 선보인 것은 1886년입니다. 당시 약사인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존 S. 펨퍼튼 박사가 콜라나무 열매와 코카잎 같은 천연성분을 이용해 톡 쏘면서 상큼한 맛의 음료를 개발한 것입니다.
코카콜라는 처음에 피로해소나 두통칠제로 약국에서 팔렸습니다. 개발자가 대중성에 별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1888년 펨퍼튼 박사가 제조법을 사서 아서 캔들러 社에 팔며 한 얘기는 무척 심드렁했습니다.
“이건 단지 소화제일 뿐이라고요.”
아서 캔들러 역시 인수 초기엔 약방만 쳐다봤습니다. 하지만 코카콜라가 갈증해소는 물론 기분까지 상쾌하게 한다는 입소문이 삽시간에 퍼져 나가자 마케팅 전략을 전면 수정하게 됩니다.
코카콜라의 인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자 동시에 잘못된 정보나 음해성 루머도 늘어났습니다. 특히 원료인 코카잎에 대한 성분이 초기부터 계속해서 문제가 되었고, 코카콜라를 많이 마시면 모르핀 중독이 된다는 루머까지 나돌았습니다.
하지만 마약성분인 코카인은 코카잎의 특정 성분만을 추출하여 화학처리를 통해 만들어내는 것으로 일반적인 코카잎과 완전히 다른 성분입니다. 오히려 코카잎은 페루인들이 2000년 이상 애용할 정도로 건강에 좋은 천연물질이었습니다.
코카콜라는 이를 바탕으로 청량음료의 건강한 이미지를 강조하는데 전력투구했습니다. 특히 영화·스포츠 스타 등을 광고모델로 활용해 콜라가 활력을 주는 건강한 청량음료라는 점을 부각시켰습니다.
또 다른 장애물은 유사제품 범람이었습니다. 펨버튼 박사가 생전에 코카콜라 제조법을 여러 사람에게 팔기도 했지만 나날이 높아지는 인기만큼 판매초창기부터 많은 유사품들이 생겨났습니다. 모조품들은 특히 1903년 병포장 시대를 맞아 ‘아프리 콜라’, ‘카페 콜라’, ‘캔디 콜라’, ‘카보 콜라’ 등의 이름으로 더욱 기승을 부렸습니다.
이에 코카콜라는 상표등록과 함께 법적 투쟁을 시작하는 한편 1915년 어둠 속에서도 다른 유사품과 확실히 구별되는 ‘컨투어 병’을 고안해 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컨투어 병의 원형이 주름치마를 입은 여자의 모습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코코넛 열매를 본 떠 만든 것입니다. 이후 코카콜라 컨투어 병은 美 특허청에 상표 등록되면서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독창성을 보장받았습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최대의 위기는 영원한 라이벌이자 코카콜라보다 불과 7년 늦게 탄생한 펩시콜라의 도전이었습니다. ‘콜라전쟁’이 한창이던 1980년대 만년 2위 펩시가 이색적인 TV광고를 내보냈습니다. 소비자를 대상으로 눈을 가린 채 “어떤 콜라가 더 맛있을까요?”라는 시음회 모습을 내보낸 것입니다. 광고에선 테스트 결과 펩시가 월등하다는 내용이 소개됐고 당시 이광고로 펩시는 매출 상승세를 탈 수 있었습니다.
위기감을 느낀 코카콜라는 1985년 9월 이전 콜라에 비해 더 부드럽고 달콤한 ‘뉴-코크’를 출시했습니다. 무려 99년간 고수해 온 전통적인 맛을 포기한 것입니다. 출시 後 예상 후의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기존 코카콜라 팬들로부터 그저 펩시콜라를 흉내 낸 수준에 불과하다는 항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코카콜라는 결국 두 달 만에 두 손을 들었습니다. 예전의 맛 그대로 ‘코카콜라 클래식’이라는 이름의 제품을 생산한다고 발표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당시 미국의 거의 모든 신문은 ‘클래식 코크’에 관한 기사를 1면에 대대적으로 보도했으며 CNN에서는 속보로 다룰 정도였습니다. 실패를 재빨리 인정한 ‘코카콜라 클래식’의 부활로 코카콜라는 다시 한 번 세계 최고의 청량음료 지위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환경에 따라 변신한 SK
SK의 모태인 선경직물은 일제 치하에서 일본자본이 세운 회사였습니다. 해방 직후 일본인들은 회사를 버리고 도망쳤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공장은 폐허가 됐습니다. 숨통이 거의 끊겨가던 선경직물을 살려낸 건 1944년 견습기사로 입사한 20대 청년이었습니다. 이 청년은 폭격으로 못쓰게 된 직기들을 하나하나 수리해 공장을 재건했습니다. 이 청년이 바로 SK그룹 창업주인 故
어쩌면 SK는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질 뻔했던 이 때부터 ‘기업은 어떤 환경에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숙명을 되새겨 왔는지도 모릅니다. 미국의 진화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는 “진화는 진보하는 게 아니라 종의 다양성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미국 시카고 대를 나온 故
겉으로 보기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이 반복됐지만 그 사이에도 ‘퀀텀 점프’를 위한 작은 진화들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이는 1980년대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하는 ‘퀀텀 점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미국 걸프사가 유공의 지분 50%를 팔고 철수하자 민영화를 추진하던 정부는 인수의 첫 번째 조건으로 ‘원유의 장기적, 안정적 확보능력’을 걸었습니다. 선경은 유공 인수자 결정을 앞둔 1980년 사우디 국영석유광물공사와 장기원유공급계약을 맺는데 성공했습니다. 결국 당시 유일하게 매출 1조원을 돌파했던 거대기업 유공은 선경의 손으로 넘어갑니다.
다양성을 향한 SK의 진화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선경은 수만 장짜리 계획서를 만들며 총력을 기울였지만 환경은 우호적이지 않았습니다.
이후
또 다시 특혜 시비에 휘말릴 것을 우려한
눈먼 시계공의 비유 : 버리면 얻는다
‘자연선택을 받은 변종 = 성공한 기업’이란 등식이 늘 들어맞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들이 진화 촉진자의 역할을 하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오픈 소스 경제’를 태동시킨 공짜 운영체제 리눅스를 살펴보면 변종의 탄생이 산업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컴퓨터에 관심이 많던 대학생 리너스 토발즈는 컴퓨터 OS(Operation System, 운영체제)를 주제로 한 토론그룹에 간단한 메모를 올렸습니다. “소스를 오픈해 같이 연구하는 공짜 운영체제를 만드는데 아이디어를 주세요.” 기존 OS에 불편을 느끼고 있던 컴퓨터 마니아들이 하나 둘씩 토발즈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리눅스는 지금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리눅스는 PC OS시장에서 마이크로소프트에 밀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리눅스가 만든 ‘동등계층생산’이란 개념은 급속도로 全 산업계로 확장됐습니다.
기존의 강자들도 이 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 변종이 돼서 경쟁자들을 견제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핵심역량을 포기하는 대신 고객들이 모여드는 ‘네트워크 허브’로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척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 스마트폰 OS시장 1위를 달리고 있는 노키아는 자사의 운영체제인 ‘심비안’의 소스를 공개하는 전략으로 경쟁자 마이크로소프트의 점유율을 한 자리 수대에 묶을 수 있었습니다. 노키아는 소스에 관심이 있었던 외부개발자들 덕에 별다른 노력 없이 많은 개발자와 다양한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를 확보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애플이 3G 휴대폰 아이폰과 MP3 플레이어 아이팟 신화를 이끌 수 있었던 것 역시 오픈 소스 전략 덕입니다. 애플은 앱스토어라는 사이트를 열고 일반소비자들이 만든 애플제품용 소프트웨어를 거래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에 필요한 소스를 대중에게 개방하는 것에서 한 단계 나아간 전략입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변종’이 경제지도를 바꾼다
검은 공이 20개 들어있는 주머니에서 무작위로 공을 꺼내 들었습니다. 상식적인 답은 ‘검은 색’입니다. 진화론자들은 다른 대답을 합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에는 흰색일 수 있다.”
찰스 다윈은 1858년 영국 린니언 학회에서 발표한 논문에서 진화의 전제조건 중 하나로 ‘변이’를 들었습니다. 형질이 동일한 개체들 간에는 빈번한 선택이 벌어진다 해도 유의미한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게 다윈의 주장이었습니다. 변이로 인한 변종의 출현 자체를 진화로 볼 수는 없습니다. 바뀐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변이가 선택되고 그렇지 못한 변이는 도태되는 자연선택의 과정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변종은 취객의 걸음걸이와 닮았습니다. 특별히 미리 정해둔 방향성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검은 공이 흰색으로 바뀔지, 붉은 색으로 변할지는 다분히 우연적인 요소에 의해 결정됩니다.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의 표현에 따르면 진화는 ‘눈먼 시계공’일 분입니다.
기업세계에서도 진화의 룰은 바뀌지 않습니다. 진화를 이끄는 것은 언제나 변종입니다. 국내 교육업계는 변종이 우글거리는 정글입니다. 정부가 주도하는 대입정책이 수시로 바뀌는 데다 유망직업의 변화, 경기의 부침 등과 같은 다양한 변수들이 변종의 탄생을 부추깁니다.
시가총액이 1조4,000억원에 달하는 교육 공룡 메가스터디는 한 사회탐구강사의 엉뚱한 아이디어에서 시작됐습니다. 창업주 손주은 사장은 2000년 인터넷의 출현으로 등장한 온라인 교육의 강점이 ‘무한복제’에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메가스터디를 만들었습니다. 오프라인 학원은 한 강의실 수용인원이 많아야 2,000명 수준이지만 온라인으로 이를 옮겨오면 10만 명에게 판매할 수 있다는 게 손 사장의 생각이었습니다.
당시 인터넷을 교육에 접목시키려는 시도를 했던 업체는 메가스터디만이 아니었습니다. 배움닷컴, 참누리, J&J 등도 엇비슷한 사업모델을 들고 나왔습니다. 메가스터디는 서울 대치동의 강사들을 대거 영입해 ‘스타강사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법으로 경쟁사를 따돌렸습니다. 스타강사에게 자신이 참여한 강의로 인한 매출의 30%를 주는 이 시스템은 지금까지도 후발주자를 견제하는 진입장벽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1위 업체에 가야 더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판단한 우수강사들이 메가스터디에만 몰리기 때문입니다.
메가스터디 이외의 메이저 교육업체들도 스스로 변종이 되는 결단을 통해 현재의 위치에 올라설 수 있었습니다. 학습지 업계 1위인 대교는 학생들이 교사를 찾아가야 하는 학원사업의 불문율을 무너뜨리고 연간 3조원 규모에 달하는 학습지 시장을 개척했습니다.
제조업의 강자 중에도 눈에 띄는 변종이 많습니다. 정수기 업계 1위인 웅진코웨이는 외환위기로 급감한 정수기 매출을 회복하기 위해 한 달에 2만원씩 받고 제품을 빌려주는 사업모델을 개발, 업계을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1999년 걸레질이 가능한 스팀청소기라는 독특한 상품을 만들어 대기업이 즐비한 전자업계에서 입지를 다진 한경희생활과학도 변종 성공스토리의 주인공 중 하나입니다.
자연선택을 받는 변종은 어떤 운명을 걷게 될까? 역사가 긴 자동차산업을 보면 새로운 변종이 지속적으로 변이를 일으키지 못해 주류로 변해버린 변종을 잡아먹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미국 포드 社도 처음에는 변종이었습니다. 헨리 포드는 1909년 대량생산을 통해 가격을 낮춘 모델 T를 개발, 자동차업계를 석권했습니다. 당시 모델 T의 출시가격은 850달러로 2,000달러를 웃돌았던 기존 제품의 3분의 1 수준이었습니다. 한 세대를 풍미했던 포드는 1920년대 들어 새로운 변종 GM에 왕좌를 내주게 됩니다. GM은 캐딜락, 뷰익, 올즈모빌, 폰티악, 시보레 등 가격대가 서로 다른 5종의 신차를 한꺼번에 내놓으며 처음으로 다품종 생산시대를 열었습니다. 모델 T에 식상함을 느낀 소비자들은 급속히 GM으로 이동했습니다. 결국 포드는 1927년 1월 모델 T 생산을 중단하게 됩니다.
자동차왕국인 미국은 1970년대 들어 도요타를 필두로 한 일본업체들에 주도권을 내주기 시작합니다. 1970년 미국에서 배기가스 규제를 강화한 머스키 법안이 통과하면서 연비가 뛰어난 일본차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입니다. 설상가상으로 1973년과 1979년에 오일쇼크가 발생하면서 소형차 시장은 고스란히 일본업체들의 수중으로 떨어지게 됐습니다.
변화의 속도를 지배해야 살아 남는다
미국 시카고의 시어스타워는 마천루 경쟁의 절정이자 미국 자본주의의 자부심이 담긴 빌딩입니다. 1973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높이 443m(110층)에 1만6,000개의 창문을 달고 미국 최대 유통업체인 시어스로벅의 임직원 7,000여 명을 받아들였습니다.
시어스로벅은 1886년 우편판매라는, 당시로는 기발한 착상으로 미국 소매물류시장을 석권한 기업입니다. 20세기 초·중반 자동차 대중화 바람을 타고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던 이 회사는 마침내 세계 최고층 빌딩을 짓고 전세계에 자신들의 성공신화를 알렸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1980년대, 시어스로벅은 당시 내부시장서류에는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던 월마트라는 회사가 자신을 거꾸러뜨릴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월마트는 대도시 대신 지방, 1년 365일 할인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도 단숨에 바벨탑 같은 시어스타워를 기어 올랐습니다. 월마트는 1992년 시어스로벅의 열 배가 넘는 67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시어스타워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렸습니다.
진화는 결코 일정한 속도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환경변화가 느린 시기에는 진화의 속도도 느립니다. 따라서 급격한 형태의 변종(변이)은 오히려 생존경쟁에 불리합니다. 반면 변화의 양상이 예상치 못한 속도로 빨라질 때는 스피드를 갖춘 변종이 살아남을 공산이 큽니다.
결론은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변이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고, 그런 변종만 살아남는다는 것입니다.
시어스로벅이 월마트에 역전을 허용한 것은 1960년대 이후 경제성장으로 미국 중산층들의 소비패턴이 간접구매보다는 직접구매 쪽으로 급격하게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변종이 되겠다고 달려드는 것도 곤란합니다. 자연계에선 수많은 변종 중에 극소수만이 살아남습니다. 살아남는 생물은 진화의 조건을 일단 갖추게 되지만, 그렇지 못한 생물은 원래 상태로 되돌릴 여유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 인간이, 기업이 인위적으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변종전략은 위험할 수 밖에 없는 도박입니다. 하지만 변화의 물결이 넘실대고 있는 방파제에서 그냥 넋 놓고 있을 수만도 없는 일입니다.
만약 어느 날 반도체 없이 PC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면 어떨까? 전선 없이 무선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기계장치가 개발되는 날, 전세계 전선업체들과 목재업체, 건설업체들은 어찌 되는 걸까?
해당기업으로서는 정말 끔찍한 일이겠지만 그런 날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변종전략을 채택하는 첫걸음은 타성을 깨부수는 데서 시작됩니다. 어린 코끼리의 뒷다리에 족쇄를 채우고 2m 길이의 사슬에 연결하면 코끼리는 성년이 돼서도 2m 이상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만큼 타성은 무서운 것입니다.
대공황을 기점으로 성장한 3M의 영문 이름은 미네소타고아공업주식회사(Minesota Mining Manufacturing)이었습니다. 이름 그대로 광산회사였고 자본금 5,000달러의 별볼일 없는 중소기업이었습니다. 하지만 1925년 3M의 연구원인 리처드 드두가 스카치테이프의 시초인 ‘마스킹데이’를 개발하면서 이 회사의 변종전략은 급피치를 올렸습니다. 대공황기에 집안 가재도구나 살림살이를 재활용하는데 관심이 많았던 소비자들에게 스카치테이프는 무척 요긴한 수단이었습니다. 나중에 ‘포스트잇’으로 연결된 변종상품은 3M을 세계적인 사무용품 전문회사로 발돋움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기업이 진화에 실패하는 이유는 내부에 누적된 불안요인이 외부위협요인과 상호작용을 하는 과정에서 ‘불량변종’을 양산하거나 위험을 감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최근 10여 년간 삼성, LG가 글로벌 디지털시장을 질주하는 동안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은 도무지 흔들릴 것 같지 않던 ‘전자왕국’ 일본의 기업들이었습니다.
소니, 도시바, 샤프, 후지쓰 등은 지금도 모든 기업들이 부러워하는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디지털 컨버전스’와 ‘감성공학’의 영역에서 스스로 변종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걸 두려워했습니다.
삼성이 낸드플래시, LG가 LCD라는 변종제품을 앞세워, 양대 전자부품시장을 장악하는 동안 일본기업들이 한 일이라곤 이미 효용이 다한 ‘경소단박’의 전략을 재탕하는 것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력만 놓고 본다면 당대 최고인 일본기업들이 IBM처럼 화려한 비상을 재개하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승부는 결코 완결되는 법이 없습니다.
우회전략의 힘 : 변화는 변방에서 시작된다
마오쩌둥(毛澤東)과 윈스턴 처칠, 미국 해병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답은 ‘변방을 먼저 공략해 승리했다’는 것입니다.
1930년대 마오쩌둥은 농촌을 거점으로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혁명 초기, 공산당 내부의 ‘28인 볼셰비키’라고 불리던 엘리트 조직은 가난하고 척박한 중국의 내륙을 혁명 근거지로 해야 한다는 마오쩌둥의 생각에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하지만 마오쩌둥은 중국의 가장 큰 인구집단인 농민계층을 근간으로 혁명전선을 구축하지 않으면 중국통일이 불가능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마오쩌둥은 적이 근접할 수 없는 중국의 땅 끝 지역을 목적지로 삼고 남서부로 행군해 가는 ‘대장정’을 선택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집회를 열어 혁명의 명분을 알리고 농민들을 규합했습니다. 대장정을 떠날 때만 해도 미약한 세력이었던 마오쩌둥의 홍군은 결국 농민들의 광범위한 지지에 힘입어 1949년 국민당을 쫓아내고 중국의 패권을 장악했습니다.
영국총리였던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직접 독일 본토를 치지 않았습니다. 대신 북아프리카의 사막전선을 돌파했습니다. 지중해를 차지하면 독일과 동맹관계였던 이탈리아를 위협할 수 있게 돼 전쟁 전체의 세력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으로 봤습니다.
1930년대 末 ‘사막의 여우’ 독일 롬멜 장군의 뛰어난 기동전술에 고전하던 영국군은 1940년부터 신형 기갑탱크들을 앞세워 반격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접전 끝에 엘알라메인에서 롬멜을 물리치고 승기를 잡았습니다.
일본과 태평양전쟁을 벌인 미국 해병대의 작전도 우회하는 것이었습니다. 미군은 1945년 일본 본토상륙작전을 수행하기 전에 일본군이 장악하고 있던 태평양 섬들의 재해권과 제공권을 장악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했습니다. 알류샨 열도의 아투를 필두로 마킨, 타라와, 퀘젤린 제도, 사이판 등의 섬들이 차례로 美 해병대의 수중에 떨어졌습니다. 이 여세를 몰아 1945년 4월 오키나와를 공격한 미군은 일본군에 무려 15만 명의 인명피해를 입히며 상륙작전을 성공시켰습니다.
혼란기는 변방이 중심부를 공략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변화는 변방에서 시작됩니다. 식물의 생장점은 줄기의 한 가운데가 아니라 줄기의 끝에, 뿌리의 끝에 있습니다. 사람의 성장판도 뼈의 맨 끝에 존재합니다.
유럽의 다른 나라에 비해 과학발달수준이 상대적으로 뒤지는 나라였던 18세기 영국이 산업혁명의 시발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환경변화에 자유로이 대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산업혁명은 변방으로 취급 받던 면직업이 기계화되면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영국의 주력산업은 면직업이 아니라 모직업이었습니다. 강력한 보호무역정책의 수혜를 입고 있던 모직업은 전근대적인 주문생산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반면 인도산 면직물에 위협을 느낀 면직업체들은 대량생산을 위한 방직기 개발을 서둘렀습니다. 1760년에 ‘나는 북’이라는 자동화기기가 처음 나왔고 불과 10년도 지나지 않아 뮬 방직기가 개발돼 대량생산체제의 기틀이 구축됐습니다.
오늘날 도요타 생산시스템을 구축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는 오노 다이이치 前 도요타 사장도 본사의 혁신 대신 현장의 혁신을 주창했습니다.
요노는 “세상의 변화는 변경이 중심을 파괴하는 데서 시작된다”면서 “제조업의 변경(변방)’이라 할 수 있는 공장이 변해야 회사 전체의 혁신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세계 자동차업계를 석권한, 그 유명한 도요타의 간판생산방식(JIT, Just in Time)과 통합형 유연생산시스템은 이런 과정을 통해 구축된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한국의 대기업들도 모조리 변방에서 중심부로 진입하는데 성공한 기업들입니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차 등은 30년 전만 해도 일본의 도시바나 미쓰비시로부터 저급 기술을 전수받아가며 근근이 명맥을 유지해오던 회사들이었습니다.
문제는 어렵사리 중심부에 진입한 한국의 주력산업들이 경쟁환경의 변화에 따라 어느 날 갑자기 세계의 변방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우려가 ‘샌드위치 위기론’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글로벌 비즈니스 현장에는 중심과 변방 간의 교체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기회가 왔다는 말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위기가 닥쳤다는 것과 동일어입니다.
오만은 선택 받지 못한다
비행기를 타고 8,000m 정도 올라가면 나른한 행복감이 밀려옵니다. 산소가 부족하고 머리가 멍해지면서 전혀 고통스럽지 않고 추위조차 느끼지 못합니다. 그 기분에 취해 계속 올라가면 결국 의식과 행동에 마비가 옵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게 삶의 종말인지도 모른 채 추락하게 됩니다. 대개의 경우 죽음은 갑자기 찾아옵니다. 사전에 여러 징후들이 나타나지만 그저 상승무드에 취해 있는 이들은 환경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거나 애써 무시하고 맙니다. 그러니 후회는 필연입니다. 환경을 극복하는 것과 외면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진화의 첫 번째 원동력은 변이(Variation)입니다. 하지만 누구도 변화하는 자연이 어떤 변이를 선택할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이는 변이의 우수성과는 완전 별개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화려한 외양과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환경이 수용하지 못하는 변이는 존속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업의 성공과 실패라는 현상의 이면에는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도전과 응전이 있습니다. 즉 응전은 일종의 변이입니다. 변이가 자연의 선택을 받으면 개체수가 늘어나듯 제대로 된 응전은 기업을 성장으로 이끕니다.
하지만 개별기업을 둘러싼 외부환경은 분초를 다투는 속도로 변합니다. 일률적으로 모든 기업에 성공의 계명을 적용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저명한 경영학자인 톰 피터스의 치욕은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톰 피터스는 1982년 글로벌 43개사를 선정해 모순관리, 고객밀착, 핵심사업, 집중, 조직단순화 등 8가지의 성공요인을 찾아내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5년 後 해당기업의 60% 이상이 도산하고 말았습니다. 기업의 역사는 진화에 정답이, 일정한 룰이나 방향성이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1982년 소니와 필립스는 LP와 테이프를 골동품으로 만들어 버린 CD를 개발, 출시했습니다. 대성공이었습니다. 두 회사는 이를 기반으로 차세대 기술인 DVD까지 개발합니다.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잇따른 성공에 고무된 필립스는 CD-i(Interactive)라는 제품개발에 들어갔습니다. TV에 부착해 컴퓨터게임도 하고 주문형비디오(VOD)를 보고 백과사전으로도 이용이 가능한 제품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시청자들은 쌍방향 서비스까지 원하지는 않았습니다. 소비자들의 미래취향을 너무 앞질러 나간, 완벽한 실패였습니다.
그 결과 필립스는 유동성 위기에 빠지고 마쓰시타와 도시바에 제조 라이선스를 매각함으로써 CD와 DVD 생산주도권은 일본의 경쟁자들에 넘어갔습니다. 동시에 유럽 최대 전자회사로서 필립스의 위상도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헬스케어 사업 등에 집중하고 있는 요즘의 필립스는 굳이 전자회사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도가 됐습니다.
디지털이큅먼트(DEC)라는 회사도 변이에 실패한 後 컴팩에 합병되는 도테를 맛봤습니다. 1960년대 DEC가 만들어낸 미니컴퓨터는 컴퓨터 역사의 새로운 장을 썼습니다. 창업자 케네스 올슨을 비롯한 DEC 직원들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품질과 견고함을 갖춘 VAX 시리즈를 만들어 판매했습니다. 미니컴퓨터는 컴퓨터를 중소기업의 사무자동화 도구로 변신시켰습니다. 또 VAX는 신뢰성의 신화를 탄생시키며 DEC를 스타기업의 반열에 올려놨습니다.
하지만 지나친 장인정신을 발휘한 것일까? 이 회사는 기술지상주의에 빠졌습니다. 기술직 사원을 우상화하고 영업직, 관리직은 무시했습니다. 기업을 망치는 징후는 또 있었습니다. 좀 더 작고 싸고 편리한 것을 추구하는 고객의 요구를 무시한 채 자신만의 작품에 몰두한 것입니다.
이런 오만함은 올슨이 1977년에 한 말에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개인적으로 집안에 컴퓨터를 가지고 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 그로부터 4년 후 IBM은 PC를 출시하고 애플과 본격적인 경쟁을 시작하며 본격적인 개인PC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후 DEC는 뒤늦게 4차례나 PC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1998년 컴팩에 합병되는 운명을 맞게 됩니다.
소니도 진화를 멈춘 케이스입니다. 아니 퇴화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직 실패를 논하기 이르지만 지금의 소니는 꿈의 노트북 ‘바이오’를 처음 출시했던 그 때의 소니가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소니는 ‘집채만한 트랜지스터를 휴대용으로 만들 수 없을까’ 하는 꿈을 현실로 만든 회사입니다. ‘바이오’를 만들 때만 해도 그랬습니다. ‘바이오’를 만들었던 팀의 목표는 ‘사람들이 노트북에 담겨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기 어려운 기능을 갖춘 노트북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팀원들은 업무시간이 끝나면 하나 하나 작업실로 모여들었습니다. 젊은 열정이 매일 밤 모닥불처럼 사무실을 밝혔습니다. ‘바이오’는 출시된 後 마니아층이 가장 선호하는 노트북 브랜드로 떠올랐습니다.
마니아들은 비싸도 대가를 지불합니다. 마이나들이 ‘바이오’를 선호한다는 얘기가 돌자 어댑터들이 ‘바이오’를 사기 시작했고 일반인들도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바이오’는 단기간에 노트북의 고급 브랜드로 부상했습니다.
하지만 성취가 주는 달콤함에 취한 소니 경영진은 이 때부터 착각을 범합니다. 마니아 고객층을 포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비슷한 성능만 있어도 ‘바이오’라는 브랜드만 붙이면 잘 팔리는데 굳이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투자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실제 일정기간 ‘바이오’는 인기를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바이오’가 세상의 수많은 노트북과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것을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마니아들은 서서히 ‘바이오’를 떠나기 시작했고 그들을 따르던 수많은 노트북 사용자들도 ‘바이오’에서 등을 돌렸습니다. 환경이 바뀌지 않았는데도 변이가 스스로 환경을 무시해 버린 케이스입니다.
몸집만 키운다고 능사는 아니다 : 박테리아의 생존술을 봐라
생명의 진화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머리 속에 사다리 그림을 떠올립니다. 사다리 바닥 부분엔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같은 단순하고 하등한 생명체가 놓입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군체생물, 물고기, 동물 등으로 점점 몸집이 커지고 지능이 높아집니다. 사다리의 정점에는 망설임 없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세워 놓습니다. 생명이 하등한 것에서부터 시작해 가장 고등한 형태인 인간으로 진화했다는 믿음에서입니다. 하지만 이런 믿음은 진리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고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는 생명의 진화가 반드시 진보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오히려 진화는 생명의 다양성이 증가하는 과정이며, 그 중 복잡하고 몸집이 커지는 쪽으로 일어난 변이가 우리 눈에 잘 띄는 것일 뿐이라는 설명입니다. 우리는 마치 인간이 지구의 주인인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지만, 사실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생명체는 지구를 덮고 있는 박테리아가 아닐까?
이런 관점에서 기업 생태계를 살펴 봅시다. 적극적인 M&A(인수합병)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회사가 된 GE나 한국에서 업계 1위 품목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이 기업진화의 정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기업인들은 그렇다고 믿어왔습니다. 기업의 진화를 박테리아처럼 환경변화에 ‘적응’해 가는 과정이 아닌 인간처럼 몸집이 크고 복잡한 존재로 ‘진보’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M&A를 통해 더 크고 더 많은 지식역량을 가진 기업이 되는 일에 온통 관심을 집중해왔습니다.
레미콘 사업으로 큰 돈을 번 유진그룹의
유진이 하이마트 인수에 투입한 돈은 1조9,500억원으로, 그 중 자기 돈은 불과 6,000억원이었습니다. 나머지 1조1,000억원은 농협, 신한은행 등에서 빌렸고 3,000억원 정도는 전환사채로 충당했습니다. 유진의 단기차입금은 2007년 990년에서 2008년 4,248억원으로 급증했습니다. 이후 유진은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해야 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M&A에 열을 올린 사람은 유 회장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소식을 들은 임원들은 술렁거렸습니다. 참모들이 써낸 가격보다 훨씬 높을 뿐 아니라 시장전망치(3조원)에 비해서도 두 배 이상 비쌌습니다. 대우건설의 전날 종가는 12,600원으로, 경영권 프리미엄이 100%를 넘어선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 비싼 가격을 우려하던 분위기는 다음날 180도 바뀌었습니다. 경쟁 상대방인 두산이 주당 3만2,400원을 써낸 것입니다. 당시 M&A시장이 얼마나 과열(Deal Heat)됐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아무튼 채권단 지분의 50%+1주를 인수하겠다고 제안한 두산과 달리 금호아시아나는 72% 전체를 인수하겠다고 약속하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습니다. 이후 금호아시아나는 눈물겨운 구조조정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2007년 미국 소형 중장비업체인 밥캣을 49억 달러에 인수한 뒤 갑자기 불어닥친 글로벌 경기침체로 자금사정이 악화된 두산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두산은 인수 직후부터
환경변화는 몸집이 크고 힘이 세다고 생존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대지진 때 살아남은 동물, 회산 폭발 후에도 생명을 이어가는 생물들은 따로 있습니다. 예기치 못한 변화는 M&A전략의 최대 걸림돌이자 딜레마입니다.
최강 포식자 북극곰도 철저한 관찰 없이는 사냥하지 않는다
북극에서는 북극곰이 최고 실세입니다. 500kg에 달하는 육중한 덩치를 가졌지만 이들은 뛰어난 시각과 후각, 수영실력, 철저한 관찰에 근거한 사냥전략으로 바다표범을 공략합니다.
사전에 먹잇감의 습성과 서식지 등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이들의 사냥능력은 역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에서 비롯됐습니다. 예를 들어 북극곰은 불곰이 북쪽으로 올라와 자리를 잡은 종인데 눈과 얼음 속에서 몸을 숨기기 좋은 엷은 털 빛깔의 곰만 살아남았습니다. 또 이빨과 발톱을 더욱 날카롭게 키워 북국 최강자의 자리에 등극할 수 있었습니다.
M&A(인수합병)시장의 성공적인 포식자들도 이 같은 진화과정을 거쳤습니다. 수 차례의 시행착오와 경험을 통해 상대방의 행동패턴을 세밀히 관찰하고 약점이 발견되면 빠르고 집요하게 달려들어 딜을 성공으로 이끄는 능력을 키워왔습니다. M&A가 DNA가 되어버린 기업들의 사냥솜씨는 밀림의 포식자 못지않습니다.
물론 M&A 성공이 해당 기업의 궁극적인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기업을 얻어야 포식자로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측면에서 M&A전략 자체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두산의 CFP(Corporate Finance Project)팀은 사냥을 할 때 그룹의 두뇌요 이빨입니다. 두산그룹 M&A의 야전사령관인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팀”이라고 말하는 조직입니다. 국내 최대 규모 크로스보더(Cross-border) M&A로 유명한 밥캣 인수전을 살펴봅시다.
룰은 이랬습니다. 물건을 사려고 하는 사람은 각각 다른 장소에 베이스캠프를 차립니다. 파는 사람이 양측의 베이스캠프로 연락을 해옵니다. “상대방이 당신들보다 더 비싼 가격을 불렀다. 가격을 높일 의향이 있나?” 구체적인 액수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수 차례 가격을 높여 부르다 한쪽이 포기하면 딜은 끝납니다.
뉴욕의 한 호텔에 베이스캠프를 차린 박 회장 일행은 밥캣 매각주간사로부터 네 번이나 전화를 받아야 했습니다. 경쟁자였던 세계 3위 중장비업체 테렉스(Terex)가 계속 가격을 높여 부르며 따라붙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두산은 테렉스가 쓸 수 있는 금액에 한계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투자했다가 주가가 떨어지면 주주들이 당장 소송을 걸 게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CFP팀을 통해 테렉스가 최대 얼마를 쓸 수 있는지 계산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네 번째 연락이 오자 박 회장은 그 금액을 조금 넘는 가격을 불러 놓고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49억 달러였습니다. 예상은 맞아떨어졌습니다. 약 5,000만 달러 차이로 승패가 갈렸습니다.
사냥의 기본은 관찰입니다. 신한금융지주가 LG카드를 인수할 때 경쟁자였던 하나금융지주와의 가격차이는 주당 300원에 불과했습니다. 하나금융지주가 써낼 가격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나금융지주는 LG카드 인수전에 뒤늦게 뛰어들었습니다. 자금마련이 쉽지 않았던 하나금융은 인수계획안을 갖고 국내의 대규모 투자자들은 찾아 다녔습니다. 하지만 이는 하지 말았어야 할 실수였습니다. 이미 국민연금, 새마을금고, 지방행정공제회 등 쟁쟁한 재무적투자자(FI)들을 신한지주가 선점해 버린 상태였습니다. FI들은 하나금융지주가 다녀간 뒤 신한지주에 전화를 돌렸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하나은행에서 다녀갔습니다. 이런 저런 제안을 하고 갔는데 대략 어느 정도 규모의 자금을 마련한 것 같습니다.”
신한지주 실무진은 이렇게 모인 정보를 통해 하나금융지주가 모은 자금의 규모를 추정했고 이를 사야 할 주식수로 역산, 하나은행이 지불할 수 있는 가격이 6만7,000원대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변수가 발생했습니다.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가 하나금융지주와 연합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래도 신한지주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각국의 사모펀드가 카드사를 인수했던 사례를 분석했습니다. 사모펀드의 목표수익률을 중심으로 그들이 써낼 수 있는 가격을 역산해 나간 것입니다. 7만원을 넘으면 완승이라는 결론이 나왔고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Respect your Volume!(앞으로 당신네들이 우리에게 공급할 물량을 생각해보라)” 2005년 겨울 효성그룹
협상이 시작됐지만 ‘오하이오에 뼈를 묻겠다’고 할 정도로 애사심이 컸던 로라 톰슨에게 빈틈이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상대에게나 약점은 있는 법입니다. 조 전무는 굿이어에 시간이 약점이라는 점을 간파했습니다. 자동차시장 침체로 실적이 악화되자 경영진이 채권투자자들에게 2006년까지 비핵심자산을 팔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조 전무는 로라 톰슨에게 “딜을 이 시간까지 끝내도록 노력할 테니 우리의 요구도 존중해달라”며 정공법을 썼고 이는 먹혀들었습니다.
난자는 DNA배열이 가장 다른 정자를 ‘간택’한다
사자와 호랑이가 교배를 하면 라이거가 나오고 당나귀와 말이 교배하면 노새가 나오듯 염색체수가 같으면 이종간에도 번식이 가능할까? 답은 ‘아니오’입니다.
사람과 쥐똥나무, 돼지와 고양이도 염색체수가 같습니다. 하지만 교배는 불가능합니다. 사실 모든 동물들의 최초 배아의 형태는 비슷합니다. 종이 달라도 공통된 조상을 갖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지만 점차 핵분열을 하면서 DNA의 영향을 받아 종마다 다른 특성을 발현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사자와 호랑이, 당나귀와 말은 어떻게 이종교배가 가능할까? 종이 분화된지 오래되지 않아 DNA가 ‘매우’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인간과 원숭이는 DNA가 98%나 일치하지만 교배가 불가능합니다. 그만큼 이종교배는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켜야 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동물들이 배아의 형태가 비슷하듯 기업들도 설립 초기의 모습은 비슷합니다. 하지만 업종, 지리적 위치, 종업원들간의 유기적 상호관계에 따라 세포분열이 진행되고 설립 後 한 두 해가 지나면 전혀 다른 DNA를 가진 회사가 됩니다. M&A(기업인수합병)는 이렇게 DNA가 전혀 다른 생물체들 간의 화학적 결합입니다. 그만큼 성공확률이 적다는 얘기입니다.
다임러벤츠와 크라이슬러는 같은 과에 속하는 생명체(기업)였습니다. 하지만 DNA는 전혀 달랐습니다. 독일의 다임러벤츠는 명문차의 대가였고 미국의 크라이슬러는 대중차의 대명사였습니다.
이 같은 차이는 1998년 두 회사의 합병에 당위성을 부여했습니다. 다임러는 고급차 시장의 성장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고, 규모의 경제 없이는 차세대 기술개발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크라이슬러는 고급차 제품라인이 없다는 점과 함께 아시아, 남미 등으로의 수출전략에 차질을 빚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양측의 ‘이종교배’는 서로에게 부족한 점을 채워줄 수 있는 ‘최고의 궁합’으로 평가됐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다임러 직원들은 크라이슬러의 자동차 품질을 업신여겼습니다.
크라이슬러 임직원 중에 독일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임직원 보상시스템, 의사결정 프로세스 등 모든 게 달랐습니다. 두 회사는 결국 이 같은 차이를 줄이는데 실패해 2006년 결별을 선언했습니다.
기업간 이종교배가 실패한 사례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1976년 국내 최초의 은행권 결합으로 관심을 모았던 서울은행과 신탁은행의 합병도 그랬습니다. 서울신탁은행이 새 사옥에 입주해 건물 앞에 ‘서울신탁은행’이라는 이름이 새겨졌는데, 서울은행 출신 청소부는 ‘서울’이라는 글자만 닦고 신탁은행 출신은 ‘신탁’이라는 글자만 닦았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을 정도입니다.
서울은행은 결국 외환위기를 버텨내지 못하고 하나은행에 인수됐습니다. PMI(인수 後 통합, Post Merger Integration)가 M&A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자신과 다른 DNA를 끊임없이 받아들이지 않고는 지속적인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게 생태계의 오랜 법칙입니다. 여성의 몸 속으로 들어온 정자 중 난관 깊숙한 곳에 도달하는 것은 500개 정도입니다. 이들이 새 생명으로 거듭날 수 있는 후보군입니다. 난자는 500개의 정자들을 어떤 원칙에 따라 선별할까?
가장 빨리 난자에 접근한 활동성이 뛰어난 정자를 고를 것 같지만 아닙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난자는 DNA배열이 가장 자신과 다른 정자를 ‘간택’합니다. 자신과는 다른 장점을 받아들여야 더 나은 종을 생산할 수 있다는 난자의 본능이 이 같은 선택을 한다는 게 생물학자들의 분석입니다.
이런 원리는 기업 생태계의 진화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기업조직내부의 힘만으로는 환경변화의 속도를 따라잡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P&G는 ‘R&D 이종교배’를 통해 탄탄한 성장기반을 마련했습니다. 2002년 P&G 마케팅 담당 직원들은 감자스낵제품인 프링글스에 간단한 그림을 새겨 넣자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좋은 아이디어였지만 실행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문제는 두 가지였습니다. 감자가 마르기 前 일정한 양의 식용잉크를 재빨리 분무할 수 있는 기계를 확보해야 했습니다. 식용잉크를 별도로 개발해야 한다는 점도 난제였습니다.
P&G는 수소문 끝에 이탈리아 볼로냐에 위치한 한 빵집이 이미 비슷한 상품을 팔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이어 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볼로냐 지역 대학교수에게 자사 제품에 활용할 수 있는 잉크젯 분무기의 제작을 의뢰했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2004년 미국시장에서 첫 선을 보인 그림이 곁들여진 프링글스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후 P&G는 외부 아이디어를 제품개발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P&G가 내놓은 제품 중 외부의 아이디어나 기술이 포함된 제품 비중은 42%에 달합니다. P&G가 내건 슬로건은 ‘전세계 누구라도 P&G의 연구원이 될 수 있다’입니다.
유럽 가전업계의 역사는 지멘스와 AEG의 ‘100년 전쟁’으로 요약됩니다. 두 업체는 조명, 발전설비, 가정 등의 영역에서 끊임없이 경쟁해 왔습니다.
두 업체의 희비가 엇갈리기 시작한 것은 1967년입니다. 지멘스는 자동차 부품업계의 강자인 보쉬와 50對 50의 비율로 투자해 합작사 ‘보쉬-지멘스’를 만드는 승부수를 띄웠습니다. 보쉬의 기술력과 단순해진 사업 포트폴리오는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고 AEG와의 격차는 점차 벌어졌습니다. 1994년 AEG는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스웨덴 일렉트로룩스에 매각됐습니다.
일시적인 필요에 따라 일어나는 기업간 제휴 중에서도 이종교배의 묘를 살린 사례들이 많습니다. 펩시콜라는 미국에서 캔 홍차의 수요가 급증했던 1990년대 홍차 전문업체인 립튼과 제휴를 맺고 공동으로 캔 홍차를 출시해 톡톡히 재미를 봤습니다. 펩시의 역할은 콜라를 통해 축적한 마케팅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었습니다. 립튼은 홍차 제조와 마니아층 공략을 전담했습니다.
제품 포트폴리오 확대에도 같은 방법이 동원됩니다. 1996년 면역의약품 분야에 강세를 보이고 있던 산도스와 아동용 의약품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확보하고 있었던 시바가이기는 합병을 선언하고 노바티스라는 새로운 기업을 출범시켰습니다. 합병 초기만 해도 업계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업계 순위 12위와 16위 기업들이 뭉친다고 업계 질서를 흔들 수 있겠느냐는 게 대체적인 반응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습니다. 두 회사는 합병 後 내놓은 신제품들을 바탕으로 염증치료제와 신경치료제, 호르몬제 시장에서 각각 1, 2, 3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판매제품을 축소하고 중복제품을 없애면서 얻은 15억 달러의 경비절감효과는 덤이었습니다. 현재 노바티스는 글로벌 Top3 제약업체 중 하나입니다.
진화를 위해서는 ‘전략적 퇴화’도 필요하다
송장벌레는 까만 바탕에 붉은 무늬를 가진 딱정벌레의 일종입니다. 이름이 송장벌레인 이유는 썩은 고기를 먹고 살기 때문입니다. 자기 몸집보다 수백 배나 더 큰 생쥐 시체 같은 것도 용케 끌고 와서 새끼들에게 먹입니다. 유충이 알에서 부화하면 송장벌레 아비와 어미는 먹이를 먼저 먹어 소화시킨 다음 토해내서 몰려든 유충들에게 먹입니다.
그런데 송장벌레 부모가 찾아내는 고기의 크기는 매번 다릅니다. 둥지에서 떨어진 아기 새도 있고 생쥐처럼 꽤 큰 생물도 있습니다. 반면 송장벌레가 낳는 알의 수는 매번 비슷합니다. 고기 덩어리가 작으면 유충 중 일부는 먹을 게 없습니다. 송장벌레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까?
답은 ‘살해’입니다. 송장벌레는 부화하면 놓여 있는 먹이의 크기만큼을 빼고 나머지를 먹어 치웁니다. 그리고 나머지 유충을 정성껏 보살핍니다. 인간들은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가 자식들을 잡아먹었다거나 스파르타인들이 약한 아이를 죽인 일을 끔찍하게 생각하지만 자연에서의 ‘영아살해’는 그다지 드문 일이 아닙니다.
고릴라나 침팬지들은 더 강한 수컷이 약한 수컷의 새끼들을 죽입니다. 새들이 여러 개의 알을 낳으면 이 중 먼저 부화한 큰 녀석이 다른 알들을 둥지 밖으로 떨어뜨려 버리기도 합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생존을 위해 개체수를 조절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가끔 이런 원리를 잊습니다. 공급과잉으로 위기에 빠진 조선업계나 건설업계가 단적인 예입니다. 국내 조선업계는 2000년대 들어 엄청난 호황을 누렸습니다. 낡은 선박의 교체시기가 된데다 중국, 인도 등의 경제규모가 성장하면서 원자재, 상품을 실어 나를 배가 많이 필요해진 것이 첫째 원인입니다. 한국의 선박수출은 2001년 이후 8년간 연평균 22.7%씩 증가해 2008년에는 432억 달러 어치에 이르렀습니다.
선박수주증가가 조선경기활황으로 이어졌습니다. 한번 지으면 부수기 어려운 시설투자임에도 불구하고 워낙 경기가 호황이다 보니 너도 나도 조선소를 짓는데 뛰어들었습니다.
하지만 공급과잉의 징조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선박을 만들어 본 적도 없는 회사들이 국제시장에서 수주를 해왔고 계약서를 근거로 은행에서 돈을 빌렸습니다.
이런 와중에 글로벌 경제위기가 선박수요를 급감시키며 잔뜩 부풀어오른 조선경기의 거품을 터뜨렸습니다. 신규수주는커녕 기존 수주계약도 취소되는 일이 드물지 않게 됐습니다. 자연히 수주잔고도 감소세로 돌아섰습니다. 은행에서 빌린 돈을 갚기 어려워진 중소조선사들이 하나 둘씩 쓰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건설업계 역시 미분양 아파트가 15만 가구에 이를 때까지 공급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분양가를 낮춰 수요층을 넓히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충북 충주, 경북 구미 등 지방중소도시에서 평당 600~700만원대 아파트가 분양됐습니다. 공급이 수요를 넘어갔고 어느 순간부터 갑작스레 미분양 아파트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H건설 관계자는 “고급아파트의 이익률이 높은데다 소비자 눈높이가 높아졌다는 생각에 너도 나도 비싼 고급아파트를 전국 곳곳에 지었다”면서 “미분양 사태는 어느 정도 예견됐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경기는 순환합니다. 호황기에 많이 팔릴 줄 알고 만들어 놓은 제품이 불황기에는 덜 팔려 재고로 남아 기업의 목을 조릅니다. 어느 분야가 돈이 된다, 어느 기업이 돈을 번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더 많은 경쟁자가 나타나 이익을 나눠먹으려 합니다. 이는 시장에 참가한 다수 기업들이 담합을 하지 않고 제각각 움직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시장경제의 움직임이긴 합니다.
문제는 주변환경이나 경기사이클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일을 벌이고 보는 이런 움직임들이 언젠가 기업의 발목을 잡는다는데 있습니다. 잠시만 눈을 옆으로 돌려 시장의 흐름을 살펴보면 알아차릴 수 있는데도 ‘우리는 괜찮겠지’하는 안일한 판단과 욕심이 기업을 파국으로 몰고 갑니다.
이는 기업이 전략적으로 ‘퇴화’할 수 있느냐의 문제를 생각하게 합니다.
스스로 유충의 개체수를 줄여 생존을 도모하는 송장벌레의 길을 따르지 않는다면, 남의 패를 미리 읽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녹슨 조선소와 텅 빈 미분양아파트의 행렬이 10년 後, 20년 後에도 재연될 게 분명해 보입니다.
진화를 위해 옛 것을 버린 OCI
국내에서 전략적 퇴화로 성공한 대표적인 기업은 OCI(舊 동양제철화학)입니다. 포목→화학원료→카본블랙→폴리실리콘 등으로 옛 것을 과감하게 버리면서 신사업 영역을 개척해온 것입니다.
OCI는 2000년대 중반까지 증권가에서 자산주로 불렸습니다. 사업의 가치보다는 깔고 앉아있는 공장부지가치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얘기입니다. 역사도 기업만큼이나 무거웠습니다. ‘마지막 개성상인’으로 불리는 창업주 이회림 명예회장이 1937년 포목상인 건복상회를 세워 사업을 시작했고, 1959년에 설립한 동양화학이 현재 OCI그룹의 모태가 됐습니다. 이후 웬만한 화학제품에 안 들어가는 데가 없는 필수원료인 소다회와 과산화수소, 폴리우레탄 원료인 TDI 등을 생산하며 차분한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조용한 변화가 시작된 건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입니다. 거평그룹으로부터 제철화학과 제철유화를 인수했습니다. 하지만 이 변화에 주목한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세간의 이목을 끈 건 2006년 3월 세계 3위 카본블랙(타이어재료)업체인 미국 컬럼비안케미컬즈(CCC)를 인수하면서부터입니다. CCC를 통해 굿이어, 미쉐린 등 세계적인 타이어 회사들에 카본블랙을 공급하면서 글로벌 업체로 주목 받았습니다. 진화하지 않을 것 같던 회사에 변이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3개월 後 OCI는 태양전지 핵심소재인 폴리실리콘 사업진출을 선언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뜬금없는 선택이라며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때맞춰 국제유가가 오르기 시작했고, 각국 정부는 석유 대안으로 태양광산업 육성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환경의 선택을 받은 것입니다. 사업진출을 선언한지 한 달 만에 미국 선파워와 전년 매출의 20%가 넘는 공급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폴리실리콘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진화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폴리실리콘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OCI는 CCC를 버리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필요 없는 기관을 퇴화시키는 진화를 시도하듯 말입니다.
네트워크의 함정을 봐라 : 거대기업은 커피숍보다 강할까
160억 년 전에 탄생한 우주는 무수한 함정의 탄생과 죽음을 통해 장대한 물질진화를 이룩했습니다. 그 결과가 태양계의 한 혹성인 지구의 생명입니다. 이 생명은 또 다시 수십억 년의 진화 프로세스를 통해 인간을 낳았고, 그 인간이 오랜 세월을 걸쳐 만들어낸 것이 현대문명입니다. 문명은 지금도 진화를 계속하고 있으며 감히 그 종착역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경영이라는 행위는 현대사회가 낳은 진화의 최첨단에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복잡하게 변화해 나가는 환경에서 새로운 변이를 창출하고, 세상의 온갖 네트워크에서 정보와 지식과 영감을 모으고 축적합니다. 관계의 복합체를 의미하는 네트워크는 언제나 인간사회가 움직여 온 공간이었으며 하부관계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스스로 무너지고 새로 만들어지는 진화를 거듭해 왔습니다.
따지고 보면 자연계 생물의 세계 역시 광범위한 네트워크로 구성돼 있습니다. 분자들은 세포에서 상호작용하고 세포들은 유기체에서 상호작용합니다. 그리고 유기체들은 생태계에서 상호작용합니다.
경제계 역시 네트워크에 의존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도로, 하수도, 광케이블, 통신망, 전파, 철로, 가스파이프 등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기업들은 이 공간에서 소비자, 정부, 경쟁기업 등과 상호작용하고 개별시장들은 전체 지구촌 시장에서 상호작용합니다.
생물세계처럼 경제세계의 네트워크들도 중층적으로 배열돼 있습니다. 자동차산업만 보더라도 그 주변을 차지하고 있는 산업 네트워크에는 철강, 석유, 호텔, 패스트푸드 등이 다양하게 포진해 있습니다.
현대기업간 경쟁은 네트워크 쟁탈전입니다. 동시에 새로운 네트워크를 창출하는 자가 새로운 부가가치를 획득하고 시장의 패권을 장악합니다.
네트워크의 가치는 생물학에서도 그대로 입증됩니다. 인간 게놈은 유전자로 구성된 거대하고 복잡한 화학적 네트워크입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출범하기 전에 과학자들은 인간 게놈이 약 10만 개의 유전자를 갖고 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연구가 완성됐을 때 인간의 유전자 숫자는 3만 개에 불과했습니다. 사람들은 3만 개라는 절대적인 숫자에 놀란 게 아니라, 인간보다 훨씬 하등생물인 회충과의 차이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더 놀랐습니다. 회충의 유전자 숫자는 인간의 3분의 2 수준인 1만9,000개였습니다.
그렇다면 호모사피엔스와 선충류의 격차는 어디서 온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이 바로 네트워크입니다. 2개의 유전자를 갖고 있는 네트워크에서 나타날 수 있는 생물의 종류는 2의 제곱, 4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유전자가 3개라면 8, 4개라면 16입니다. 만약 100개라면 무려 5억6,800만 개입니다.
인간이 회충보다 유전자 숫자가 1만 개 많다는 것은 거의 슈퍼컴퓨터로도 계산이 안 되는 복잡성을 인간이 갖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환경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대안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같은 논리를 우리 주변의 커피숍과 한국 최고의 기업 삼성에도 그대로 대입해 볼 수 있습니다. 통상 큰 커피숍에서 일하는 직원의 숫자는 10명 정도입니다. 반면 삼성의 임직원 숫자는 18만 명입니다. 숫자로 보면 삼성의 직원은 커피숍의 1만8,000배에 달하지만 네트워크의 복잡성은 그보다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또 삼성의 조직규모는 내재적으로 미래혁신을 위한 더 많은 기회와 공간을 갖고 있습니다. 동원 가능한 네트워크, 확장 및 폐기를 선택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많다는 것은 삼성이 조그만 구석의 커피숍보다 훨씬 뛰어난 생존술을 갖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이 논리대로라면 작은 조직은 큰 조직을 영원히 이기지 못합니다. 하지만 큰 조직에는 복잡성의 ‘불행’이 있습니다. 과거 로마나 몽골 제국이 끝내 망한 것이나 거대 기업들이 멸망하는 것 역시 스스로 얽어놓은 네트워크에 발목이 잡혔기 때문입니다. 네트워크 실패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관료주의입니다.
어떤 정부나 기업도 관료주의를 일부러 설계하지 않습니다. 그러고도 번번이 조직의 관료화를 막지 못하고 작지만 유연하며 민첩한 조직에 추격을 허용합니다.
이런 일이 생기는 이유는 조직의 확장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역할의 배분과 조직간 장막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제품설계를 하는 사람은 엔지니어링 기술에만 집착하고, 마케팅을 하는 사람은 시장소비자들에게만 관심을 쏟을 경우 그 회사는 기술과 시장을 제대로 연결시킬 수가 없습니다.
“거대한 조직일수록 점진주의에 중독되기 쉬우며 점진주의는 혁신을 가로막는 최대의 적(니콜라스 네그로폰데)”이라는 얘기는 경직되기 쉬운 복잡성의 함정을 정면으로 꼬집은 것입니다. 겉으로는 변화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좀 더 나아가려고 할 때 보수적으로 돌아서고 마는 경우는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영국의 미용사 비달 사순은 정밀한 커트를 개발해 직모 여성들을 파마로부터 해방시킨 인물입니다. 하지만 비달 사순은 뉴욕에서 영업하려면 파마 기술을 테스트하는 면허시험이 필요하다는 얘기에 한 때 뉴욕진출을 포기했었습니다. 뉴욕시 당국의 네트워크가 자기네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저지른 잘못입니다.
불안정한 기업이 더 안전하다
거대기업이 관료주의의 타성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경영시스템에 외부에너지를 유입하는 방안이 필요합니다. 최고경영자(CEO)를 교체하거나 외부인물을 영입하는 게 대표적입니다. 새로 자리를 맡아 변화를 도모하는 사람들은 기존 네트워크를 혁신의 장애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물론 CEO의 강력한 카리스마가 네트워크 전체를 바꾸기는 무척 힙듭니다. 이 경우엔 또 다른 에너지가 유입돼야 합니다.
예를 들어 강력한 구조조정이나 사업재편 같은 단절적이고 근본적인 변화를 추진하려면 요즘처럼 외부경제여건이 어렵거나 불황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고조되는 때가 적합합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인위적인 외부에너지를 빌리지 않고도 스스로 창조적 파괴를 할 수 있는 경우입니다. NEC의 고바야시 고지 前 회장은 일찍이 ‘안정된 기업은 불안전하고 불안정한 기업이 안전하다’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기업이 경영상의 위험을 극복하고 안정상태에 들어가는 순간 기업은 서서히 망하는 길로 들어서는 것이고, 반대로 곧 망할 것 같은 불안한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지속적으로 변화를 모색할 때 발전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입니다.
네트워크 조직에서의 혁신은 의외로 많은 변화를 가져옵니다. 1993년
반대로 네트워크 한 부분에서는 긍정적이던 변화가 단계적 반응을 통해 다른 곳에서는 부정적인 변화를 야기할 경우 그 파장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과거
스스로 진화를 디자인하라 : 변화의 출발점은 언제가 개인
1909년 미국의 통신사 AT&T에 근무하던 한 통계학자가 회사에 보고서 한 장을 올렸습니다. 당시 늘어나는 전화 통화량과 미국 인구증가율 전망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 학자는 이를 토대로 1925년이 되면 미국의 모든 여성이 전화교환원으로 근무해야 폭증하는 전화수요를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제시했습니다. AT&T는 이 보고서를 토대로 즉각 자동 전화교환기 개발에 나섰고, 2년 만에 자동화 설비를 설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AT&T는 이를 발판으로 미국통신시장을 석권했습니다.
특정 개인의 생각이나 구상이 조직에 채택되고 그것이 사회와 경제의 흐름을 바꾸기까지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또 아이디어가 만개할 수 있는 주변여건이 성숙해 있어야 합니다. 내적으로 기업을 혁신하겠다는 의지가 충만하고 외부시장환경이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AT&T는 전화인구의 폭발적인 증가, P&G의 혁신은 포드로부터 촉발된 사업부별 마케팅 제도의 위력이 경영일선에 공감을 얻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창발적인 아이디어는 네트워크의 자율적인 자기조직화를 통해 네트워크 내에 축적된 정보와 지식, 상상력을 흡수하며 확장됩니다. 그 결말이 기존 네트워크의 질적 전환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방아쇠를 당겨야 합니다. 새로운 생각, 새로운 시도의 출발은 언제나 개인의 몫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주변 네트워크와의 접목과 확장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물론 단 한 번의 시도로 대변화를 몰고 올 가능성은 무척 희박합니다. 또한 우리 인생은 아무리 많은 노력을 해도 성과를 내지 못하는 불운에 시달릴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실 속의 노력을 게을리한다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그 속에 수많은 기회와 가치가 살아서 숨쉬고 있습니다. 영원한 네트워크는 없습니다. 진화를 거듭하면서 기존 네트워크의 그물이 찢겨져 나갈 때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네트워크가 변하는 이유는 네트워크 내에 힘의 불균형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주식이나 부동산 시세에 불멸의 고정가격이 없는 이유도 불균형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가격이라는 ‘카테고리’는 항상 과대평가되거나 과소평가된 상태로 있습니다.
불균형의 틈새를 파고드는 것은 언제가 개체입니다. 개체의 집합체인 조직이 의기투합해서 나서는 경우도 있지만 틈새를 포착하고 새로운 질서를 디자인하는 출발점은 조직이 아닙니다. 조선시대
5만원권 지폐의 모델로 등장한 신사임당 역시 남성과 여성의 차별이라는 경직된 사회구조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입니다. 신사임당이라고 현실의 높은 장벽을 피할 수 있는 비법을 갖고 있었을 리가 없습니다. 토마스 에디슨은 고작 3개월의 초등학교 경력과 귀가 들리지 않는 장애를 갖고 있었지만 불세출의 발명왕이 됐습니다. 미국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는 우편배달부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석유재벌 존 록펠러는 시골의 엉터리 약장수의 아들로 태어나 산업사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생물학자들은 진화생태계에도 핵심종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임의로 어떤 종들을 제거할 경우 먹이사슬과 경쟁구도가 급변해 생태계 전체의 구도를 바꾸는 종들입니다. 원시생물인 아메바가 대표적입니다.
물론 보편과 특수를 혼동할 수는 없습니다. 특별한 개인이나 개체의 사례를 일반화시킬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우주 속에 하나의 먼지에 불과한 우리 모두는 누구나 외롭고 힘없는 존재로 출발합니다. 때로는 우리를 포위하고 있는 단단한 네트워크 속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힐 때도 있습니다. 중요한 포인트는 누군가는 고독한 객체로서의 삶을 떨쳐내고 네트워크의 주체로 살아간다는 점입니다. 그건 모두에게 열려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찰스 다윈이 태고의 섬인 갈라파고스를 떠돌며 전달했던 메시지는 ‘진화는 디자이너 없는 디자인’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이 그 디자이너를 자처하고 나서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