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태양은 여느해 같지 않게 유난히도 따갑다.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승용차로 아내와 발길 닿는데로 여행을 떠나기로 하고 집을 나서다.
6/24부터 2박3일의 여정을 시작하며 첫 답사지로 유영식 입사동기생의 고향마을을 답사 하고
-추사 김정희선생 기념관 답사
-수원 화성행궁 및 화성 답사
-안산 대부도 관광
-삽교관광지 관광
-윤보선 전대통령생가 답사
-맹사성고택방문
-김옥균생가터 답사로 2박3일의 여정을 마무리하고 돌아오다.
유영식입사동기생은 평소 고향산천의 어릴적 추억이 그리워 재경 고향모임 경암회을 이끌고 있으며, 심암1리 고향언덕에 세워놓은 고향을 소개하는 비석을 3기생카페에서 사진으로 보고 한번 쯤 답사하고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한 유영식입사동기생친구를 격려하고 싶었다네.
유영식입사동기생의 고향마을은 충청북도 논산시 채운면 심암1리.
익산에서는 그리멀지 않은거리로 네비게이션을 찍어버니 약37km로 표시되고 50여분이 걸려 심암1리에 도착하다.
유영식친구!
고향을 떠난 수십년이 되어도 고향을 잊지못해 고향에 위해 무엇인가 남기고 싶어 어머님의 품안같은 고향에 고향의 유래를 기록한 비석을 심암1리 마을회관앞에 재경 경암회 고향친구들과 십시일반 기금을 마련해 입석해 놓은것을 보았네.
심암1리 고향이 그리워 고향을 소개하는 비석에 세겨진 비문을 보니 유영식입사동기생의 이름이 보이고 경암회원들 이름도 선명하더군.
유영식친구가 태어난곳 심암1리 새로지은 마을모종회관앞에는 느티나무 한그루가 심암1리의 보호수가 되어 수백 수천년 심암1리의 유래를 말해주는것 같았다네.
유서깊은 심암1리의 정기를 받아 재경 경암회의 발전과 유영식친구의 행운과 건강을 기원하겠네.
내고향은 전북김제시용지면와룡이지.
나도 고향을 떠난지 40년이 넘은것 같아...
고향이 흐르는 세월속에 꿈에 본 고향속의 산야와 사람은
언제나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고 그시절로 되돌아 가고 싶어 하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싶소.
그리운고향 노랫가사를 음미하며 추억을 그리워 하면서 고향마을을 기억하세.
꿈속에 그려라 그리운 고향, 옛터전 그대로 향기도 높아
지금은 사라진 친구들 모여, 옥같은 시냇물 개천을 넘어
반딧불 쫓아서 즐거웠건만, 꿈속에 그려라 그리운 고향
그리운 고향 아 아 내 고향
밤하늘에서 별들이 반짝일 때면 영혼의 안식처 찾아 헤매네
찾아 헤매네 밤마다 그리는 그리운 고향
영혼의 안식처 찾아 헤매네 그리운 고향
♧전수부3기생카페 동력차과방에 등록된 충남 논산시 채운면 심암(深巖) 1리 가지골마을 소개내용♧
*금번 고향의 유래를 찾고추석을 방문하는고향사람들을 위해 고향마을 소개하는 비문을 재경경암회(會長:兪泳植)에서 입석하였음
★신암1리 관련 등록된 댓글 내용
⇒유영식친구 좋은 일을 하였구만! 자기가 출생한 뿌리를 영구히 보존 할 수 있게 비문을 세웠다니 부럽구만..... 이환만
⇒유영식입사동기생친구 고향의 향수에 젖어 고향마을에 뜻있는 업적 세웠수다. 참 잘했구려. 국교6학년때 부여여행시 들렸던곳 은진미륵... 그쪽방면 들리는길에 유영식입사동기생업적을 한번 찾아볼 생각이외다............................조동화
★신암1리 소개내용
심암1리는 가지동(柯枝洞) 과 선왕동(善旺洞) 및 두터골(厚洞)을 합하여 행정편의상 심암1리로 칭하고, 부락의 년조는 백제(百濟)시대에 형성되어 1,500여년동안 세거하고 있으며, 조선조 세종(世宗)1년 1419년에 덕은군이 은진현(恩津縣)으로 개칭되었고, 동네 명칭은 인근부락(우기, 배꽃, 화정, 용화, 한셑등)을 포함하여 도곡리(道谷里)로 수백년동안 호칭되다가 1931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채운면 심암1리가 되었다.
심암이란 심바위(원심암)에서 유래되었고, 오화지지(五花地枝)의 근본(뿌리)으로서 오화란 이화, 용화, 야화, 화산, 화정등 큰 나뭇가지에 꽃을 피우는 동네 명칭이 되었으며, 취락 발생의 근원이 심암(深巖)이다.
원심암에는 1900년대에 면 소재지로 사무소와 대형강당이 있었고, 선왕동에는 "채운학원" 인 4년제 학교가 1924년도에 설립되어 운영되어 오다가 1936년에 채운초등학교 설립의 원천이 되었다.
심암1리는 현재(2009, 10, 1)) 65가호에 163명(남자69명, 여자94명)이 생활하고 있는 반촌(班村)으로서 효행자가 대대로 배출되고 주민이 근면, 성실하여 년간 소득이 면내에서 제일높은 모범부락이다.
2 0 0 9, 1 0.
<충남예산군신암면용궁리에 있는 추사 김정희선생 고택앞에서....>
<추사 김정희선생기념관앞에서 아내가 포츠를 취하다>
<이곳이 수원 화성행궁이다. 조선조22대 정조께서 아버지 세도세자가 댕쟁으로 인하여 뒤주속에 갖혀 참혹하게 죽음을 당한것을 슬퍼하여 아버지의 고혼을 위로키 위해 웅대한 화성을 구축하였다>
<화성행궁안 뒤주에서 사도세자의 죽음을 연상하며 뒤주에 들어가 보았다>
<화성행궁 앞 수백년역사를 버텨 온 느티나무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화성 성벽에 서다>
<수원 화성 팔달문에서 아내가 포츠를 취하다>
<대부도 바닷가를 산책하며>
<친구가 10여년 운영하고 있는 대부도 삼삼오오 민박집 앞에서>
<고향친구인 삼삼오오민박집 사장과 포츠를 취하다. 농업진흥공사에 근무하였으며 10년전 명예퇴직하여 대부도에 자리잡아 생활하고 있으나 고향의 향수가 그리워 계기가 되면 고향으로 내려와 고향의 친구들과 여생을 같이 하고 싶다고한다>
<아내가 대부도 갯벌에서 치토산이 많은 게를 잡고 있다>
♥♥ 우리네 인생은 ♥♥
원치 않았으나 우리는 여기에 왔고
예약하지 않았으나 우리는
여기를 떠나 갑니다.
우리네 인생은 흐르는 강물과 같아서
숨 죽여 흐르다가도 모난돌과
낭떠러지를 만나면 깊은 신음을
토해 내기도 하고
주어진 길을 따라 한없이 흘러
내려가기도 합니다.
한 번 떠난 물은 다시 거슬러
오르지 못 하듯이
한 번 떠난 시간은 되돌아 오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영겁 속에 비추어 볼때
찰나에 불과합니다.
이렇듯 금방 왔다 금방 사라지는 삶 속에서
그 무엇으로 얼마나 채워지고 만족해야
비로소 나 아닌 타인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먼저 배려하며 베품의 미덕을 깨우칠련지!
매사에 시기심과 질투심의
사리사욕에 사로잡혀 욕심의 노예로
살면서도 겉으로는 아닌 척 하며
이중적인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는 아닌지?
본디 우리의 마음은 선 하나 간교해서
수시로 변화가 심하니
그때 그때 잡아가지 않는다면
잘못된 생각들로 가득차 악마의 벌레들이
꿈틀거리게 될 것입니다.
또한 분한 ! 마음을 삭히지 못하고
악한 마음을 쓴다면 그 또한
선한 마음은 없어지고
그 자리엔 악한 마음들이 가득차서
화살 같은 무기들이 쌓이게 됩니다.
우리는 마음 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이 바뀌어지기도 합니다.
흔히 쓰고 흔히 먹는 마음 일 수록
한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좋은 마음과
긍정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노라면
우리의 인생은 들꽃 처럼
외롭지 만은 않을 것입니다.
-공명 강시원님의 "생각 한줌, 글 한줌" 중에서-
울고 넘는 박달재/트럼펫 연주곡
1*♬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넘는 우리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
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굽이마다
울었소 소리쳤소 이가슴이 터지도록
2*♬
부엉이 우는 산골 나를 두고 가는님아
돌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가소
도토리묵을 싸서 허리춤에 달아주며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
첫댓글 안산 대부도도 왔었구먼 즐거운 시간 많이 많이 가지시라고. ㅎㅎㅎㅎㅎㅎㅎ
승용차로 국도따라 충청도를 거쳐 대부도 수원까지 이곳 저곳 유적지 찾아 구경하고 왔수다.
시절은 다시올수 없으니 하고 싶은 여행하며 즐거웁게 지내세.
6/29에는 양평용문산에 갔다왔는데 수령이 1100년이 넘는 동양에서 제일 큰 은행나무를 보고왔지.
건강이 최고이니 건강을 위해 운동 열심히 하세
용문산에 올 때는 연락을 하시지...
화성을 방문하였으면 연락을 주시지..............저는 시간이 날때마다 팔달산 기슭에 펼쳐져있는 성곽을 둘러 보지요.........정조의 효행심이 스며있는 수원화성을 보고가셨다니 기쁘네요. 사모님한테 안부전해 주세요 ......그럼 건강하세요
200여년전 조선시대 정조대왕이 화성이라는 성곽과 화성행궁을 건설한 현장을 답사하고 느낀점은 우리에게도 세계에 자랑할만한 유산이 있구나 하고 그시대 선조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소. 일제침탈과 6.25로 다 파괴된것을 당시의 기록과 설계도로 1980년대 초에 수원시 유지들이 십시일반으로 재 건축했다 하네요.
화성 답사시 연락하여 만나지 못한것을 미안하게 생각하며, 지동시장 돼지순대가 유명하다기에 순대 한그릇 먹고 왔수다.
한세월 철도공사에서 삶의 터전을 이룩하고 퇴직하여 6개월이 흘러갔소.
어떻게 사는삶이 잘사는 삶인지 모르지만 산행으로 대부분 시간을 보내고 있구려.
건강에 유의하고 행복한 나날 보내세요
고맙소 카페지기친구! 그리고 정말 부럽소. 가장 멋있게 사는것 같아~~~우리 고향마을에 왔는데 막걸리 한잔도 못하고 미안합니다.마을회관이 주막집인데...미리 알았으면 이장님이라도 마중하여 막걸리 한잔 대접할텐데..우리 고향 소개해줘서 고맙습니다. 건강하시길~~
유영식친구 어머님의 품안같은 고향마을이 그리워 고향에 비석을 세웠다니 큰일 하였수다. 유영식친구의 고향마을 심암1리를 답사하면서 더불어 고향생각에 젖어보았소.
유영식친구가 자라던 옛날엔 심암1리가 교통도 좋지않은 두메산골로 느껴졌소.
지금이야 도로사정도 좋고 교통편도 좋지만................심암1리의 기를 받아 오늘의 영광이 있었다고 믿고 싶소.
고향의 발전과 건투를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