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12월 30일. 조계사)
“겨울나무에서 봄나무에로”
-주력수행을 중심으로-
姜 善姬(善明華)
1. 들어가는 말
오늘은 성도절입니다.
지금부터 약 2500년 전 북인도(지금의 네팔)의 작은 왕국인 까삘라성에서 고따마 싣다르타가 출생하였습니다(4.8). 인간의 생노병사를 항상 고민하던 왕자는 29세의 나이에 왕궁과 처자를 떠나 출가(2.8)하시어, 6년 간 여러 스승으로부터 요가수행법을 배우고 고행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목적을 이루지 못하자 스승과 도반의 곁을 떠나 홀로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로 가서 독자적인 방법으로 진리를 추구 했고 마침내 연기를 발견하시게 됩니다. 그날이 바로 오늘 성도절입니다(12.8). 그 후 45년 간 주로 갠즈스강 중류지역에 있는 마가다 왕국과 꼬살라 왕국을 중심으로하여 승단을 형성하여 가르침을 펴셨고 80세에 꾸시나가르의 두 샬라나무(사라쌍수) 아래에서 입적하십니다(2.15).
성도의 의미는 고따마 싣다르타의 부처가 되는 일만이 아니라, 인간은 본래 佛性을 갖추고 있고 누구나 해탈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선언한 날이기도 합니다. 또한 신이 아닌 인간이 부처가 된 모범(모델)을 보여주셨다는 데 큰의의가 있습니다. 석가모니는 인간으로 태어나 우리와 같은 인간적 고민을 하신 분으로, 그 고뇌 속에서 해탈의 길을 발견하시고 각 중생의 근기에 맞는 해탈의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여러 방편 중 하나인 주력수행에 관해서 여러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呪力이란 신비한 힘을 가진 주문(진언이나 다라니의 작용)을 계속 지속적으로 믿음을 갖고 외우면 모든 마장으로부터의 보호와 선정의 힘을 길러주는 힘이 있고, 독을 해독하는 해독제의 역할도 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진언(mantra)과 呪와 다라니는 거의 같은 의미를 나타내고, 같은 기능을 지닌 것으로도 취급하고 있다. 그러나 그 기원을 찾는다면 서로 별개의 원천과 발전과정을 지니고 있다. 부처님이 가르치신 정요(精要)로 신비적인 힘(力)을 가지고 있으며, 법을 마음에 한정시켜(남겨) 잊지 않는 것, 뛰어난 기억력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善法을 흩어뜨리지 않게 하며, 惡法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힘의 작용을 한다고도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주력을 하신 근대 한국 선지식 중에는 백용성스님께서 六字진언(옴 마니반메 훔)으로 悟道를 하셨고, 경허스님의 제자중 한 분이신 혜월 대선지식도 천수다라니(신묘장구대다라니) 주력을 하여 지혜를 얻었다는 것은 일찍부터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앞서 큰스님들께서는 수행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본격적인 수행에 앞서 지키고, 지니며, 하여야 할 수행의 단계에 대해서 자세한 가르침을 주셨다.
오늘은 그 다음 단계로, 주력수행을 하면서 우리들 각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삶 즉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탐․진․치를 멸해가면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수행방법에 관해서 본인이 그동안 수행했던 경험에 비추어 말씀드릴까 한다.
본격적인 수행에 앞서, 지금 수행을 하고 있다면 자기가 하는 수행을 더욱 매진할 수 있고, 이제 수행에 처음 접하는 중이라면, 이번 기회에 본인에게 맞는 수행방법을 찾아서 자신의 몸과 환경에 맞는 자신만의 테크닉(Technic)으로 열심히 정진할 수 있도록 안내하여 주고 싶은 얘기와, 수행자가 실천해야 할 점들, 그리고 수행의 유익함 등을 정리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 볼까 한다.
모든 일이 그러하지만 수행도 하나의 주제를 선택하면 반드시 이를 관철토록 자신만의 어떤 테크닉을 계발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정도 가다가 진전이 없이 쉽게 권태와 실망이 뒤따르게 되고, 그것은 곧 좌절되고 말게 된다. 스스로 자신에게 맞는 주제를 선택하여 자신만이 계발한 테크닉으로 수행을 하게 된다면 언제 어디서나 어떤 수행방법이든 쉽게 선정에 들수가 있고, 다르마를 맞볼 수가 있을 것이다.
세상에 알려진 유명한 스포츠 선수나, 명망있는 사람들은 남다른 자기만의 성공하는 방법을 계발하여 노력하기 때문에 보통의 사람들 보다 앞선 선구자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몇 년 전만 하여도 수행을 하면서 도움이 될 만한 자료들이 부족하여 수행을 하고자 하여도 체계적인 수행방법을 몰라서 쉽게 마음을 낼 수가 없었다. (본인의 경우도 오래 전부터 수행을 해보려 여러 자료들을 뒤져보고 이런저런 경전들을 외워보고도 하였지만, 그러면 그럴 수록 갈증만 더할 뿐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깨달음의 길은 요원하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삼칠일 동안의 계획을 세워 열심히 기도를 하면서 부처님께 대답을 들어보기로 결심을 하고 계획한대로 매일 봉은사에 다니면서 기도를 하였다. 21일 간의 기도를 회향하고 내려오다가 도량 내의 서점에 들렸는데, 『대여래불정 능엄주』라고 씌여진 한 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 책을 펼친 순간 ‘부처님께서 내게 준 선물이 바로 이것이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정수리에서부터 발바닥까지 마치 번개가 내리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후로부터 오로지 그 길(능엄주를 열심히 읽고 외우는 일)을 향해 앞만 보다시피하고 정진을 계속하여 불보살님의 가피를 입게 되었으며, 모든 일들이 어려움이 없이 순조롭고 또한 혜안이 조금씩 열리게 되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너무 많은 수행방법과 그에 대한 인쇄물의 범람으로 오히려 초보자에게는 혼돈을 가져 올 수도 있게 된 것 같다. 정보가 없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렇듯 정보의 홍수로 어지러운 때 일수록 바른 안목을 가진 안내자를 만나 바른 노력을 하는 지혜가 절실한 때이다.
앞서 배운대로 기본 계율지키기-예경-참회-자비관 등의 생활화와 자신이 정한 수행방법으로 열심히 노력한다면, 북․남방과 현․밀교의 수행을 다 회통한 수행을 하고 정(定)․혜(慧)가 항상 균형이 잡힌 가장 이상적인 수행을 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누구든지 내․외적으로 모든 사물을 변형시킬 수 있는 창조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정신능력을 이용할 수 있다. 창조적인 상상력 그 자체는 아주 놀라울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으며, 때문에 그 상상력을 올바른 방식으로 유도할 수만 있다면, 언어를 수단으로 하거나 단순한 분석을 통해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매우 심오한 정신의 차원까지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으로 인하여 이제 지구의 파괴는 물론 우주 전체를 오염시키고 균형을 깨뜨리는 일들이 이 시간에도 계속하여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인간이 가장 친환경적으로 생활을 할 수 있는 대안은 명상의 생활화로 지혜를 끊임없이 계발하고, 그 영적 발전에서 나오는 평온한 자비심과 친절의 실천에 있다고 여겨진다.
부처님께서는 2500여년 전에 이미 환경도 범 생명권으로 말씀을 해 놓으셨다. 우리 모두가 명상으로서 내․외면의 성찰을 생활화 할 때 온 세계는 더욱 밝게 되리라 생각한다.
2. 주력수행의 의미
-능엄주 다라니를 중심으로-
楞嚴呪란 ‘용맹스럽게 정진하여 定을 닦는데 힘을 돕는 呪文'(Śũraṇgama samādhi dhāraṇī)이라는 뜻이다. 능엄주는 『능엄경』의 찬술단서를 제공하는데 10권 가운데 제7권에 수록되어 있다. 『능엄경』설은 망심을 깨뜨리고 그 자리에서 진심을 드러내는 기나긴 수행관문을 세존과 아난의 문답을 통해서 설파하고 있다. 우선 세존은 갖가지 방편을 써서 아난의 망심을 정교한 이론과 타당성을 통해 깨뜨리고 들어가 마침내 진심을 밝히고 나니(제1.2권), 이제 그 곳은 眞妄이 不二한 如來藏心임을(제3권) 깨닫게 하셨다. 여기에서 망심에서 진심에 이르는 正見을 위한 理와 事의 양면 방편수행공덕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데, 방편수행이란 비밀스런 송주(제7권)를 부지런히 하는 일로서 이론적으로 그 공덕의 수승함을 관세음보살의 耳根圓通에서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실천적인 차원에서 수행을 하되(제8권) 자세한 경계와 유의점들은 좌선의 태도에서 구체화하여 제시하고(제9.10권) 있다. 『능엄경』의 찬술 동기도 능엄주를 중심으로 구성하였기 때문에 두드러지게 현교와 밀교가 원통함을 알 수 있으며, 능엄경 교설은 망심을 현교와 밀교가 하나임을 전제로 참다운 禪學的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능엄경』은 그 내용이 실천적 수행관인 참선과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예로부터 우리나라 불교계에서도 매우 존중되어 온 경전 중의 하나로 전통 강원의 이력과정인 사교과(금강경, 원각경, 능엄경, 대승기신론)의 한 경전으로 학습되어 오고 있다.
능엄다라니는 언어와 사유, 그리고 法相을 초월, 일체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이 윤회의 고통에서 구제 받을 수 있는 중요한 도구”라고 말씀하셨다.(능엄다라니의 각 구절의 해석을 분석해 본 바에 의하면 그 내용은「유가사지론」「구사론」「생자의 서」「해탈의 서」「사자의 서」에 나오는 내용들의 종합일 뿐아니라, 모든 다라니의 내용을 함축하고 있고, 모든 경전의 내용을 함축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금생에서의 해탈과 생전 예수제 및 사후의 극락 천도까지 그 짜임이 완벽하게 되어 있다. 영국의 심리학자 칼 융은 “원시적 야만이나 신들의 세계가 아닌 인간존재를 향해 말을 걸어오는 지성적 철학이며, 그 철학은 불교심리학의 핵심이다”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
인도의 불교를 顯敎(석존 성도 이후부터 AD 8C까지:원시,부파,대승불교)와 密敎(AD 4C~)시대로 구분을 하기도 하고, 요즘은 남방 테레바다불교, 북방의 대승불교, 티벳불교, 선불교 등으로도 나누지만, 인도의 종교 철학 사상과 시대상황 내지 인도사 전반을 놓고 볼 때, 어느 한 부분만을 시대에 맟추어 규정짓는 것은 오류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관련서적들을 읽어 본 바에 의하면, 인도에서 불교의 발생이 돌연히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기록으로만도 이미 2천년이나 되는 오랜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으며, 부처님이 태어난 시기에 이미 베다, 바라문교 등의 종교가 있었고, 고도로 발달된 도시문명과 과학, 의학, 합리적인 토론 문화가 발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인도에서는 또한 불교 이전에 이미 고대로부터 만트라(mantra)가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의지하고 사용하여 오고 있었다.
“인도에서 AD 8-9세기 경부터 불교가 차츰 사라지면서 티벳으로 이전되거나 힌두교 속으로 흡수되어 오늘날에는 역수입되고 있는 실정이지만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 인도로 귀착된다. BC 6-5세경 인도에서 불교가 탄생되었다는 것은 한 사람의 천재성이나 우연이 아니고, 그 이전에 이미 2천년이나 되는 오랜 역사와 문화적 배경이 있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苦, 무지, 윤회, 업, 해탈의 관념들은 우빠니샤드의 전통을 이어받았으며, 우빠니샤드보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BC 1,500년경부터 서북 인도를 넘어 인도반도에 침입해 온 인도․아리안의 베다문화가 있고, 또 이들이 이룩한 제식주의적인 바라문교 문화가 있다. 그리고 인도․아리안족이 인도에 침입했을 땐 BC 3,000년 경부터 고도로 발달된 도시문명을 건설한 원주민인 인더스문명이 있었다.
이와같이 불교라는 고도로 합리적․분석적이면서도 윤리적인 종교와 철학체계가 탄생되기 위해서는 요가적․고행적 요소를 가진 인더스 문명과, 현실적이고 논리적․분석적인 인도․아리안의 베다문화라는 두 이질적인 요소사이의 갈등과 창조적 종합의 과정이 필요했다. 이 두 요소가 한편으로 우빠니샤드로 통합되어 베란따라는 힌두교의 정수를 낳게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도의 울타리를 넘어선 불교라는 세계종교로 발전되었다.”(이 지수교수의 『인도에 대하여』,中에서)
이토록 인도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이해를 하고, 불교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알게 된다면, 간화선만이 참 수행법이라고 한다거나 염불이나 위빠싸나만이 진짜 수행법이라고 우기면서 자기가 하는 수행 외에는 다 잘못되었다는 그릇된 편견을 갖을 수 없으리라 여긴다. 열린 마음으로 여러수행을 이해하고 자기에게 맞는 주제와 수행방법으로 정진을 하여야 진보있는 유익한 수행을 이어갈수 있을 것이다.
붓다께서도 수많은 영적 지도자들에게 그러한 수행방법들을 드러내 보이셨고 이후 제자들도 스스로 그 수행방법들을 깨달은 후에 기록으로 남겨 놓았다. 그 수행에는 수많은 시각화와 내적 요가수행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진언도 붓다가 행했다고 여겨지는 매우 오래되고 전통적인 수행이라 여겨진다.
“ Dhāraṇī는 √Dhṛ(保․持․維持하다)라는 어원에서 파생되었다. 總持․總攝․能持(Dharma)라고 번역한다. Dhāraṇī는 그래서 Dharma와 어원을 같이 한다. 다라니의 문자적 의미는 ‘지탱하여 철저히 둘러싸는 것’이라는 뜻으로 이미 베다시대에 집중을 위한 의탁물이나 보호물로 이용되었다. 일반인에게는 질병이나 악귀로부터 보호해 주는 부적인데 반해 수행자들에게는 의식을 집중시키는 도구로 사용된다. 다라니의 역사적 기원이 무엇이든 간에 다라니는 하나의 은밀한 언어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음들은 오직 명상을 통해서만 그 의미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수행명상 중에 발견되는 음소들은 추측컨대 우주적인 구조를 가진 의식상태의 표현이며 그런 까닭에 세속적인 용어법으로 설명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다라니는 붓다의 가르침의 정요(精要)로서 신비적인 힘을 가진 것으로 믿어지는 주문을 의미한다. 비교적 긴 장구로 되어 있는 주문으로 총지(總持), 능지(能持), 능차(能遮)라 음역되며 佛法을 마음 속에 간직하여 잊지 않게 하는 힘을 말한다. 즉 뛰어난 기억력이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총지란 하나를 기억함으로써 다른 것까지 연상하며 다 기억한다는 뜻이고, 능지란 여러 선법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이며, 능차란 악법을 능히 막아준다는 뜻이다. 특히 밀교에서는 진언과 다라니를 지송(持誦)함으로써 마음을 통일하고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여 붓다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변순미(2003),『楞嚴心呪 悉曇梵字 한글표기에 관하여』, 불교학 연구회 학술논문 중에서)
관련 문헌들의 다라니에 대한 설명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무량무변한 이치를 섭수해 지니어 잃지 않는 염혜(念慧)의 힘을 일컫는다. 곧 일종의 기억술로서 하나의 일을 기억하는 것에 의해서 다른 모든 일까지를 연상(聯想)하여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②보살이 남을 교화하기 위해 다라니를 반드시 얻지 않으면 아니되며, 이것을 얻으면 한량없는 불법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으므로 대중 가운데 있어도 두려움이 없고, 또한 자유자재로 정교한 설법을 할 수 있다.
③보통으로 다라니를 지혜 혹은 삼매를 말한다. 이것은 말을 잊지 않고 뜻을 분별하며 우주의 실상에 계합하여 수많은 법문을 보존하여 가지기 때문에 끝없는 이치를 알아 학해(學解)를 돕고 모든 장애를 벗어나 한량없는 복덕을 얻는 등 많은 공덕이 있으므로 다라니라 한다는 등
초기불교 교단에서도 불교도를 수호하며 재난을 제거하기 위해서 사용하다가 점차로 마음을 통일하는 수행으로 응용되고 드디어는 陀羅尼야말로 불교의 근본이라고 하는 사상, 곧 Dhāraṇī는 法(Dharma) 바로 그것이기에 法이 갖는 모든 덕을 두루 갖춘 것으로까지 승화되었다고 한다.
인도 수행의 역사를 보더라도 5천년 전부터 타파스(tapas:고행)→yoga→禪의 순으로 발전해 옴을 알 수 있다.
만트라를 眞言, 呪, 神呪, 密呪, 密言 등으로도 번역하며, 부처님의 깨달음이나 誓願을 의미하고, 비교적 짧은 呪를 진언이라하고, 긴 呪를 다라니라 한다.
능엄다라니는 530여 구로 구성된 가장 긴 다라니이며 주 내용은 귀의, 찬탄과 함께 축원하여 기원하는 내용 등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수능엄경 제7권에는
"수행자(修行者)는 누구든지 수행(修行)의 완성과정으로 『大如來의 佛頂首楞嚴經』을 수학(修學)하고, 修行해서 령해(領解)해야 佛敎의 철리(哲理)를 알고, 무상정편지정각(阿耨陀羅三藐三菩提)을 깨달아서 부처님의 마정수기(摩頂授記)를 받아 成佛한다고 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학회에 발표된 논문의 자료들을 통해 송나라 때부터 선가에서는 아침․저녁 송주에서 반드시 능엄주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근대 한국불교의 대표적 선사이신 이성철 전종정스님의 회상에서는 한때 능엄주를 외우지 못하는 승려는 입방을 불허했으며, 능엄주를 외우는 조건으로 입방을 허락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외 한국의 고승이신 향곡, 자운, 청담, 효봉, 일타, 서암, 정영스님 등도 항상 송주는 능엄주를 하셨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능엄다라니가 선정력을 길러주고 지혜를 유지하는데 미치는 영향이 선가에서 얼마나 크게 작용하였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라 할수 있다. 지금도 제방의 선방과 많은 사찰에서 능엄주력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3. 주력수행의 공덕
『수능엄경』 序品에
“어느날 파사익왕이 부처님을 궁궐로 청하여 공양을 받쳤다. 같은 날 아난은 별청을 받고 멀리 갔다가 혼자 돌아오는 도중에 공양시간이 되어 걸식을 하러 가다가 마등가녀를 만났는데, 그녀는 사비가라의 선범천주(先梵天呪)로 아난을 붙들고 음실(婬室)로 들어가서 음란한 몸으로서 아난을 유혹하여 파계를 시키려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아난이 마등가의 요술에 붙들린 것을 아시고서 공양을 마치자마자 곧 돌아오시니, 王과 大臣과 長者, 居士들이 따라와서 부처님의 법요를 듣고자 하였다. 그때 세존께서 頂上으로부터 百가지 보배롭고 무외(無畏)한 광명을 놓으시고, 광명 속에는 천엽의 연화가 출현하였는데 부처님의 화신이 앉아서 神呪를 말씀하여 문수사리보살에게 명하기를 ‘이 신주를 가지고 가서 아난을 구해오라’고 하시었다. 문수사리보살은 신주를 가지고 가서 惡呪를 소멸하고서 아난과 마등가를 이끌고 부처님의 처소로 돌아왔다.
아난이 돌아와 부처님의 발에 頂禮를 하고, 부처님께 사뢰었다. ‘제가 출가한 후로 부처님의 사랑을 믿사옵고 多聞만 求하였으므로 無爲를 증득하지 못 하였아오며 梵天의 邪術에 갇혔을 적에 마음은 비록 명료(明瞭)하였으나 자유로이 벗어날 힘이 없었는데 문수보살을 만나서 벗어났습니다. 비록 여래의 佛頂 呪를 받자와 그 신통력의 가피를 입었사오나, 친히 듣잡지 못하였아오니 바라옵건데 대자비로서 다시 宣說하시와 현재와 미래세에 윤회하는 이로 하여금 부처님의 믿음을 받잡고, 몸과 마음을 해탈케 해 주시옵소서’ 이때에 회중의 일체대중이 모두 예배하고 여래의 비밀한 章句를 듣고져 하자, 부처님께서 선설하셨다” 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수능엄경 제7권에서는 부처님께서 능엄주를 설하시고, 아난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아난아!
부처님의 정수리 광명이 모이어 된 불정광취(佛頂光聚) 시타다라비밀가타 미묘장구는 시방의 일체제불을 出生케 하나니 시방여래가 이 呪心으로 인하여 무상정편지정각을 이루느니라.
시방여래가 이 주심을 執하여 모든 魔를 항복받고 外道를 제어(制御)하느니라. 시방여래가 이 주심을 乘하여 앉아 미진(微塵)국토에 應하느니라. 시방여래가 이 주심을 合하여 미진국토에서 大法輪을 굴리느니라.
시방여래가 이 주심을 持하여 시방에서 마정수기(摩頂授記)하여 자기의 果를 이루지 못했으면 시방에서 부처님의 授記를 받느니라.
시방여래가 이 주심에 의하여 시방에서 여러 가지 고통을 발제(拔濟)하나니 이른바, 지옥고․아기고․축생고․맹롱음아고․원증회고․애별리고․구불득고․오음치성고의 대소횡액을 동시에 해탈케 하여 적난․병난․왕난․옥난과 風․火․水難과 기갈․빈궁이 일순간에 소멸하느니라.
시방여래가 이 주심을 수(隨)하여 시방에서 선지식을 섬기되 사위의(四威儀) 中에서 뜻대로 공양하여 항하사여래의 회중에서 대법왕자가 되느니라.
시방여래가 이 주심을 行하여 시방에서 친한이, 인연있는 이를 섭수하여 소승들로 하여금 비밀장(秘密藏)을 듣고도 놀라지 않게 하느니라.
시방여래가 이 주심을 誦하여 무상정각을 이루고 보리수 아래 앉으사 대열반에 드시느니라.
시방여래가 이 주심을 傳하여 멸도한 후에 불법을 부촉하여 궁극까지 住持케 하며, 계율을 엄정하여 청정케 하느니라.
내가 만일 이 佛頂光聚般多羅呪를 말할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음성이 연속하여 자구에 조금도 중첩되지 아니하면서 항하사겁을 지내더라도 다할 수 없느니라.
이 呪를 如來頂이라고도 하나니 너희 유학들이 윤회를 끊지 못한 이로서, 지성으로 발심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향하려 하면서도 이 呪를 지송하지 아니하고, 도량에 앉아서 몸과 마음에 魔事를 멀리하려 함은 옳지 아니하니라.
아난아!
모든 세계의 여러 국토에 있는 중생들이 그 나라에서 나는 화피나 폐엽이나 종이 등에 이 呪를 써서 향낭에 넣어두어야 하며, 이 사람이 마음이 혼돈하여 외울 수 없거든 몸에 지니거나 집안에 써 두면 이런 사람은 한평생에 모든 독이 해하지 아니하느니라.
아난아!
내 이제 이 呪가 세간사람을 구호하여 대무외(大無畏)를 얻게 하여, 중생의 出生間하는 지혜를 성취케함을 말하리라.
내가 멸도한 후에 말세중생들이 스스로 외우거나, 다른 이를 시켜 외우면 이렇게 지송하는 중생은 불에 태우지 못하고, 물에 빠뜨리지 못하며, 독이 능히 해하지 못하며, 내지 용, 천, 귀신, 정기, 도깨비들의 惡呪가 능히 건드리지 못하고, 마음에 正受(삼매)를 얻어서 일체 주저와 압고와 독약과 금독, 은독, 초목, 벌레, 뱀 등 만물의 독기가 이 사람의 입에 들어가면 감로미를 이룰 것이며 일체악성과 모든 귀신과 나쁜 마음으로 사람을 독해하려는 것들이 이 사람에게는 악해를 일으키지 못할 것이니 긴나라, 나찰, 악귀왕과 그 권속들이 깊은 은혜를 받았으므로 항상수호하느니라.
아난아!
이 呪는 항상 팔만사천나유타, 항하사구지의 금강장왕, 보살종족이 낱낱이 많은 금강중으로 권속을 삼아서 주야로 따라다니면서 시위(侍衛)하리라.
어떤 중생이 설사 삼마지가 아닌 산란심으로라도 기억하거나 외우면 이 금강장왕이 그 선남자를 항상 따라다니거든, 하물며 보리심을 결정한 이는 이 금강장왕, 보살들의 정심이 신속(迅速)하여 가만히 저의 神識을 발명케 함이리요, 이 사람이 그때에 능히 팔만사천항하사겁을 기억하여 두루 분명히 알고 의혹이 없으리라.
제1겁으로부터 後身에 이르기까지 날적마다 야차, 나찰, 푸타나, 카타쿠타나, 쿰반다, 비사사등과 모든 아귀와 유형, 무형, 유상, 무상등의 악처에 태어나지 아니하며, 이 선남자가 이 呪를 읽거나 외우거나 쓰거나 그리거나 간직하여 여러 가지로 공양하면 劫마다 빈궁하고 하천한 좋지 못한 곳에 태어나지 아니하리라.
이 중생들이 비록 자신이 복을 짓지 못했더라도 시방여래가 그에게 있는 공덕을 이 사람에게 줄 것이며, 그리하여 항하사아승지불가설겁 동안에 항상 제불과 한곳에 태어날 것이며, 한량없는 공덕이 악차취와 같아서 한곳에서 훈수하고 분산함이 없으리라.
그러므로 파계한 사람은 계근이 청정케 되고, 계를 얻지 못하는 이는 계를 얻게 하고, 정진하지 못하는 이는 정진케 하고, 지혜가 없는 이는 지혜를 얻게 하고, 청정치 못하는 이는 청정케 하느니라.
아난아!
선남자가 이 呪를 가지는 때에는 비록 呪를 수지하기 전에 계를 파계했더라도 呪를 지닌 후에는 모든 파계(破戒)한 죄가 경중은 물론하고, 일시에 소멸하느니라.
……만일 중생이 무량수겁으로부터 지은 일체경중죄장(一切輕重罪障)을 전세 이래로 참회하지 못했더라도 이 주를 읽거나 쓰거나 그리거나 몸에 차거나 거처하는 곳에 두면 이런 업장이 끓는 물에 눈녹듯 하며 미구(未久)에 무생법인을 얻게 되느니라.
또 어떤 여인이 아기를 낳지 못하여 아기를 낳기를 원하는 이가 지극한 마음으로 이 주를 억념하거나 몸에 이 주문을 차고 다니면 복덕있고 지혜있는 남녀를 낳을 것이다. 과보가 빨리 원만하기를 원하면 과보가 빨리 원만하게 되고 身, 命, 色, 力도 그와 같으며 죽은 후에도 소원대로 시방국토에 왕생하며 결정코 변지(邊地)나 하천한데도 나지 아니할 것이즉 어찌 잡형(雜形)일 것이냐.
아난아!
만일에 국토, 주, 현, 취락에 흉년과 질병과 도병과 적난과 투쟁과 일체 액난이 있을 적에 이 주를 써서 四門이나 지제나 탈사상에 보관하거나 그 국토에 사는 중생들로 하여금 이 주를 봉영하여 예배공경하며, 일심으로 공양케 하거나 그 국민들이 각각 몸에 차거나 거처하는 곳에 봉안하면 일체의 재액이 모두 소멸하리라.
아난아!
가는 곳마다 어느 국토 어느 중생에게나 이 주가 있으면 天, 龍이 환희하고 풍우가 순조하여 오곡이 풍성하고 백성이 안락할 것이며, 또 능히 일체 악성이 각지에서 일으키는 변괴를 진압하여 재장災障이 일어나지 아니하고, 사람의 횡액과 요사하는 일이 없고, 추계, 가쇄가 몸에 계착하지 못하며, 주야로 평안히 자며, 악몽이 없으리라. 이 사바세계에 8만 4천의 재변악성(災變惡星)이 있는데 28대 악성이 우두머리가 되고 8대 악성이 주재가 되어 갖가지 형상으로 세상에 출현할 적에 중생에게 가지가지 재이(災異)를 내거니와, 이 주가 있는 곳에는 모두 소멸되고, 십이유순 내가 결계지가 되어 여러 가지 나쁜 재앙이 영원히 들어가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이 주를 여래가 선설하여 미래세에 초학으로 수행하는 이를 보호하여 삼마지에 들게 하되, 신심이 태연하여 대안온을 얻게 하며, 다시 일체 마원과 귀신이 없고, 무시이래의 원횡과 구업과 숙채가 와서 뇌해함이 없으리라".
<神將들이 保護>
이렇게 말씀하시니 회중의 무량백천 금강이 일시에 합장하여 불전에 정례하고, 부처님에게 다음과 같이 사뢰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대로 저희들이 이렇게 보리를 닦는 이를 성심으로 보호하겠나이다.”
이때에 법왕과 천제석과 사천대왕들이 부처님의 앞에서 동시에 정례하고 부처님께 다음과 같이 사뢰었다.
“참으로 그렇게 수학하는 善人이 있아오면 저희들이 지성으로 보호하여 그의 일생에 하는 일이 소원과 같게 하겠나이다.”
또 야차대왕, 나찰왕, 푸타나왕, 쿰반다왕, 비사사왕, 빈나, 야가, 대귀왕과 제귀수들이 부처님전에 합장정례하면서 다음과 같이 사뢰었다.
“저희들도 이 사람을 보호하여 보리심이 빨리 원만케 하기를 서원하나이다.”
또 한량없는 일천자, 월천자, 풍수, 우수, 운수, 전백들과 년세수관, 제성권속들이
회중에서 부처님의 발에 정례하고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저희들도 이 수행인을 보호하여 도량을 안립하고, 무소외를 얻게 하겠나이다.”
또 한량없는 산신, 해신, 일체 토지와 수륙공행하는 만물정기와 풍신왕과 무색계천들이 여래의 앞에서 동시에 머리숙이고,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저희들도 이 수행인을 보호하여 보리를 이루는데 영원히 마사가 없게 하겠나이다.”
이때에 8만4천 나유타항하사구지금강장 보살이 대회중에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정례하고 다음과 같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닦은 공업으로는 벌써 보리를 이루었으련만, 열반을 취하지 않고 항상 이 呪를 따라다니면서 말세에서 삼마지를 닦는 수행자를 보호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이렇게 마음을 닦아 正定을 구하는 사람이 도량에 있거나 다른데서 경행하거나 내지 산심으로 취락에서 유희하더라도 저의 도중들이 항상 따라다니면서 이 사람을 侍衛케 하겠나이다. 비록 마왕, 대자재천들이 그 짬을 구하더라도 얻지 못하게 하며, 모든 소귀들은 이 선인에게서 십유순 밖으로 떠나게 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악마나 마의 권속들이 이 善人에게 와서 침해하려는 자는 저희들이 보저로써 그 머리를 바수어 미진같이 하겠아오며 이 사람이 하는 일 소원대로 되게하겠나이다.”
4.주력수행의 방법
부처님께서 모든 수행은 定․慧의 병행이라고 말씀하셨다.
定은 외부 대상으로부터의 산란함을 가라앉히는 것이며, 항상 자연스럽게 명상의 대상을 향하여 환희와 경안(수행을 통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좋아진, 이완된 상태)을 지닌 마음에 머무르는 것을 말한다. 이 외에도 혼침과 도거(들뜸이나 여러생각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망상 등)로부터 자유로워져서 몸과 마음의 결점을 서서히 극복해 나가는 것이기도 한다. 慧는 定에서 여여함(모든 사람과 현상의 空함을 보는것)을 올바르게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定과 慧는 같이 작용한다. 마음은 명상의 대상(능엄주)에 집중함으로써 고요하게 된다. 앉아서 주력수행을 하는 동안에는 매우 고요함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을 定이다고 한다. 결국 이 주력집중(정)은 대상(능엄다라니의 각 구절)을 끊임없이 觀하는 것으로서 유지되며, 자동적으로 慧를 일어나게 하는 원인이 된다. 주력을 할 때는 다라니를 놓치지 않도록 觀하게 되는데, 이때 다라니는 사마타의 대상이고 놓치지 않으려고 각 구절마다 관하는 것이 위빠싸나이다.
한 구마다 계속 끊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관하다 보면, 마치 재봉틀 바늘이 천을 빠른 속도로 박으며 지나가듯 하다가, 차츰 다라니와 관하는 마음이 회오리바람이 돌아 뭉치듯 하나로 합쳐지면서부터 점점 몰입 하게 되면서 이 상태로부터는 망상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사람에 따라 다은 양상으로 몰입하게 된다). 이렇게 노력을 해 가면 주력이 몸에 달라붙게 되면서, 앉아 있을 때나 걸어다닐 때나 행주좌와(行住坐臥) 마음은 여전히 고요하고, 그 고요함과 밝음을 연속하여 유지하는 힘이 증장되어 진다. 이때부터 몸이 가벼워지고 머리가 아주 맑음을 알수 있으며, 수면의 양이 현저히 줄어들게 된다. 定과 慧가 별개의 것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어떤 주제로 수행을 하든, 같이 작용한다는 것은 체험을 해 보면 알 수 있다. 定이니 慧이니 따로 구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진지하게 수행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따로 구분하고 시간을 소모하며 분별을 이으키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수행을 진지하게 했다면 이런 의심은 일시에 사라지게 된다.
1) 외우기
능엄주는 긴 다라니이고, 범어이기 때문에 발음을 하기도 어렵거니와 외우기도 힘이 든다. 처음부터 무리하게 외우려고 하다보면 힘에 부쳐서 쉽게 포기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므로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외우려 하기 보다는 우선 자연스럽게 읽는 연습을 꾸준히 해 가야 한다. 발음이 어려워서 경우에 따라서는 입술이 부르트기도 하고, 몸에 열이 나기도 하며, 이가 시리기도 한다. 그럴 때는 속으로 해 가면서 몸을 잘 컨트롤(Control) 해 가며 하루하루 몇독씩 더 해 나아가는 걸로 서서히 해야 한다.
발음이 자연스럽게 되면 읽는 속도가 차츰 빨라지게 되고, 그럴 때는 읽는 횟수를 점점 늘려간다. 횟수를 늘려 읽다 보면 반복되는 구절부터 자연스럽게 외워지게 된다. 그렇게 십 수일이고 몇 달이고 혹은 더 긴 세월을 걸려서라도 하다 보면 어느날 능엄주가 자연스럽게 몸에 익어서 마치 몸 전체가 다라니인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언제 어디서나 항상 든든하다.
2) 주력수행
능엄주가 다 외워지면 하루에 7독을 일주일 간, 그 다음은 21독을 일주일간, 그 다음은 …, 이렇게 횟수를 본인의 형편과 몸에 맞게 늘려 나아가야 한다. 그러면서 매일매일 몇독을 하였는지 기록하고, 또한 스스로 정한 횟수가 일찍 끝나면 계속 횟수를 늘려 가면서, 속도를 점점 빠르게 하는 훈련을 해 가다 보면, 숙련이 되어 망상이 들어 올 틈이 차츰 줄어들게 된다.
시끄러운 곳에서나 집중이 잘 안되는 곳에서는 소리를 내어서 하면서 그 소리를 마음으로 들어가며 하여야 한다. 다라니를 외는 소리를 들으면서(耳根圓通)하거나 큰소리로 더욱 빠르게 하면, 다른데 관심이 없어지면서 생각이 들어 올 틈이 없어지게 되어 있다. 주력을 하면서는 구절구절 주의 깊게 들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 소리를 주의깊게 觀하다 보면 무념에 들게 되며, 무념에 드는 열쇠는 이근원통밖에 없다고 능엄경에도 기록되어 있다. 소리가 없어지고 아는 마음까지 없어져서 무념처에 들게 될 때가지 규칙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이렇게 수련해 가다 보면 능엄주를 하는 횟수가 하루하루 빠른 속도로 늘어나게 되고, 나중에는 입으로 소리를 내어 할 수 없을 정도로 속도가 빨라지게 된다. 그러다가 더욱 빨라지면 몸의 어느 한 곳에서 자리를 잡고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빠른 속도로 그냥 자동으로 돌아간다.
이쯤 되면 애써 하지 않고 지켜만 보고 있게 되는데, 마치 자동으로 녹음테잎이 돌아가듯 그렇게 흐르는 것처럼 계속 이어진다. 무엇을 하든 자리잡은 능엄주는 계속 돌아가고 능엄주가 몸을 끌고 다니며 일하고, 능엄주가 음식을 먹고, 행주좌와 中에도, 꿈 속에서도 계속 능엄주가 끊어지지 않는다. 꿈 속에서도 수행이 이어질 때는 일어나 보면 알수 있다. 보통 그냥 잠이 들었을 때 아침에 일어나면 몸도 경직된 것처럼 굳어있고, 아무 생각도 없이 마치 묵직한 느낌이지만, 자면서도 수행을 하게 되면 일어났을 때, 선정에서 깨어날 때와 똑같이 몸이 가볍고 정신도 맑게 깨어 있다. 뿐만아니라 그 시작과 중간 끝까지 알 수 있게 이어진다. 이 정도 숙련이 되면 몸은 하늘에 뜬 풍선처럼 가벼워 지고, 진공(眞空)상태 처럼 느껴지게 된다. 잠이 저절로 줄어들고 망상도 어디로 갔는지 송두리째 뽑힌 것 같음을 알 수 있으며, 혼침이 없어져서 항상 깨어 있다. 몸의 가죽을 마치 한 꺼풀씩 벗겨 낸 듯 나날이 새롭고 상쾌하여 지면서, 이런 날이 시작되어 며칠 지나지 않아 드러나는 자리가 있다. 이런 상황이 되면 반드시 스승을 찾아 지도를 받아야 한다. 이 때 눈 밝은 선지식을 만나게 되면 얼굴만 보고도 벌써 수행의 경지를 알고 다음을 일러 주실 것이다.
이 주력의 힘(테크닉)은 이후 화두를 드나 觀을 하나 무슨 수행을 대상으로하여 하든 망상이 거의 없이 자기에게 주어진 수행의 주제를 끌고 갈 힘(선정력)이 생기고, 이후에도 어떤 수행을 하든 쉽게 오매일여가 되어, 짧은 기간 동안에 覺性이 일어나게 된다. 또한 무슨 일을 하든 그 힘의 밑천으로 세상을 자신감과 포용으로 대하며 살아가는 에너지가 스스로 끊임없이 생겨남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무엇이든 다 녹여버릴 수 있는 용해제와 같은 자비심이 스스로 방사되어 짐에 환희와 행복감은 날로 확장되어 질 것이다.
자신이 한번 정한 시간과 정진 일수 등은 꼭 지키는 강인함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100일을 정진하기로 계획을 세웠으면 그 100일을 채우기 위해 첫 번째로 몸 단속부터 철저히 해야 한다(처음부터 긴 날수를 계획하면 지루하여 포기할 수 있으므로 7일의 기한부터 정해 놓고 한다). 재가불자로서 또한 부득이한 사정이 아니면 기본 五戒를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두 번째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음식조절, 환경을 비롯해서 오랫동안 정진할 수 있는 강인한 체력을 위해 보조수단으로 몸을 호흡에 잘 맞추어 절을 한다거나, 복식호흡과 선체조를 필히 곁들여 가면서 몸을 이완시킨 다음 정진을 하여야 된다.
(국가대표 양궁과 사격선수들의 실험 결과, 그냥 활을 쏘고 방아쇠를 당기는기록과, 몸을 이완시키는 운동을 하고 명상을 5분 이상 한 후의 기록에서 후자의 경우가 훨씬 좋은 기록의 결과가 나왔다.)
몸은 내팽개치고 무작정 정진만 온 종일 하겠다는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수행을 포기하겠다는 징조이고, 결국 선정력이 길러지는게 아니고, 수행을 잘못하여 上氣되거나, 갖가지 병(골병)만 남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처음 본인도 무작정 많이 앉아서 정진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육신은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용쓰고 참아가며 억지로 눌러보지만, 입술이 부르트고 목이 부어 오르는 것은 다반사였으며, 또한 몸살이 나서 며칠씩 혼침 속에서 그야말로 비몽사몽간 약기운에 정신없이 정진의 흉내만 내게되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이후 선체조와 호흡을 몇가지 배워 조금씩 꾸준히 하면서 수행을 하였더니 건강이 눈에 띄게 좋아지고, 선정력이 생기면서 24시간 정진을 해도 혼침과 피곤함이 없고, 몇시간씩 앉아서 정진을 해도 몸의 상태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다리가 절리거나 허리등이 아파서 정진을 못하는 경우는 없어졌다. 오히려 몇 시간씩 앉았다가 일어나면 몸은 더 가볍고, 수행도 그대로 이어져 흐름이 완만하여 삼매의 상태가 지속되어 진다는 것을 알수 있다. 망상이 없으면 아무리 오래 앉아 있어도 몸을 느낄 수 없으므로, 다리가 절리거나 허리가 아프는 등의 육체적인 느낌과 고통이 없다. 망상이 들어옴과 동시에 호흡과 몸이 느껴지게 된다. 화엄경에서 말하는 "우주의 주체가 곧 우리의 한 생각"이라는 事事無碍의 法界觀을 체험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노력으로 수행을 하다보면 자신의 체험이 스스로에게 참고가 되고, 다음의 수행은 마음이 알아서 저절로 방향을 제시해 주게 되어 있다.
우리는 흔히 헌신한다는 이름으로 자신을 내팽개치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우리 한국사람에게는 더욱 그러한 경향이 많은 것 같다. 그것은 자신을 학대하는 행위이며, 자신을 학대한다는 것은 곧 밖으로도 사람과 동물 식물, 그리고 환경에까지 그 학대의 악영향을 끼치게 되어 있다. 자기 자신을 존중한 사람은 남을 존중한다. 자신을 아는 만큼 남을 알고 세상을 안다고 한다. 진정한 자기자신의 내면으로 향한 자비와 존경심이 진지할 때, 타인게에로 그 자비스러움이 방사되어 퍼져갈수 있게 될 것이다.
3) 수행일기 쓰기
매일 수행일기를 써야한다.
어떤 수행을 선택해서 하든, 수행을 하는데 있어서는 기한을 정해 놓고 하면서 반드시 매일 기록을 해야만 한다. 예컨데 능엄주력을 하는 사람은 어제는 몇독을 했고 오늘은 몇 번을 했는지를 쭈욱 기록해 나아간다. 왜냐하면 그날 하루 사정이 있어 수행을 하지 못하였을 지라도, 수행일기를 써야만 하는 이유 때문에 반드시 조금이라도 수행을 하게 되고, 또한 다른 생각이나 방황을 하고 있다가도, 자신이 하고 있는 수행의 대상으로 돌아가 조금이라도 수행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수행을 기록 하다보면 스스로에게 참고자료가 되고 평생 수행을 하는데 나침반 역할을 하게 되며, 어느 수행지침서 보다도 값진 것임을 자연스럽게 알아진다.
수행일기에 기록 할 것은 수행이 잘되면 잘된대로 안되면 안된대로 솔직하게 기록해야 한다. 수행이 안되는 날은 왜 안되었는지, 오늘은 왜 망상이 많았는지 등을 반성해 본다. 그 원인은 알게 되면 같은 망상은 거의 오지 않게 되어 있다. 원인없는 망상은 없다. 의존하지 않고 발생하는 현상은 없기 때문에 모든 현상들은 반드시 그들의 원인에 의존한다. 그러므로 일체지(모든 것을 알고 있는 의식상태)는 반드시 원인들과 조건들에 의존한다는 것을 체험 해보면 금방 알수 있다.
좌선은 몇 시간을 했고, 행선은 몇 시간을 했는지, 식사 할때는 놓치지 않았는지도 살펴야 한다. 말을 많이 했는지, 행동은 더욱 삼가했는지, 어떨 때 가장 많이 놓쳤는지 등을 소상히 기록해야 그런 부분들에서 다시 부딪혔을 때는 놓치지 않게되며, 언행도 조금씩 변화가 온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대화(전화통화까지도)할 때, 화장실을 갈 때도 씻고, 음식을 먹으면서, 차를 마시고, 화낼 때, 즐거웠을 때, 그 중 어느 때 가장 많이 놓쳤는지 기록하다 보면 스스로 감시자가 되어 수행이 몸에 익고 망상도 줄어들게 된다.
하루 세끼 식사를 하고서 정진을 할 때와 두끼와 午後不食을 하고 수행을 하였을 때를 점검해 보고, 음식의 양을 많이 섭취했을 때와 소식 했을 때, 육식을 했을 때와 채식으로 하고 난 뒤의 변화, 또한 거칠고 딱딱한 음식과 부드러우며 달콤한 음식, 신음식 짠음식 매운 음식 등을 먹고 수행했을 때의 차이도 기록해 본다. 그리고 차를 마시는데 있어서 녹차와 커피를 마신 후와 기호음료나 술 등을 마신 후 등을 경험한 대로 옮겨 쓴다.
밥을 먹은 양이 많으면 위에서 소화시키는 시간이 많아서 수행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자꾸 졸음이 오게 되어 있다. 녹차를 마시고 수행을 하면 정신이 안정되어 쉽게 삼매에 들고, 커피나 맵고 자극이 강한 것들을 섭취했을 때는 몸에서 뜨거운 기운이 계속 감돌면서 흥분되고 산만하며, 불쾌한 기운이 계속 몸을 휘감음을 알 수 있다. 딱딱하고 거친 음식을 먹으면 속이 계속 부담이 가서 또한 집중이 잘 되지 않음을 스스로 알게 되기 때문에 자동으로 음식의 양과 종류를 알아서 먹게 된다. 이렇게 체크하다보면 스스로 戒를 지키게 되어 있다.
계절에 따라서 날씨의 영향을 받게 되는 변화도 정리해 두어야 한다. 눈․비가 오는 날, 흐린 날, 맑은 날, 또한 하루 중에서도 가장 집중이 잘되는 시간과 산만한 시간 등을 자세히 기록해 가면서 수행을 하면 대충짐작으로 하는 수행보다 몇배의 빠른 진보와 유익함을 스스로 알게 된다.
이상의 부분들을 점검하는 것 이외에도 집중이 잘 안될때는 ‘어떤 마음으로 수행하는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뭔가를 조급하게 성취를 바라는 탐욕이 있는 마음인지, 염려하고 불안걱정을 하는 마음이 있는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너무 피곤한 일들을 하였는지, 누군가를 원망하고 미워하며 화내고 있는지 등을 점검하면서 정진을 하면, 그런 감정, 느낌 등의 원인이 알아지는 순간 사라지게 되어 있다.
이렇게 세밀히 체크하고 점검해 보면 우리들이 하는 망상이 대부분 이상의 것들에서 오고 있음을 알아지게 된다.
그 밖에도 과거의 강한 기억들이 있다. 나쁜 감정은 자비와 용서로 용해시키고, 좋아했던 일들일지라도 깊이 살펴보면 그 안에 탐심이 미세하게나마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수행이 숙련이 될 때 까지는 산만한 곳이나 외출 등을 자제하고 바깥 경계에 끄달리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어떤 대상과 부딪치더라도 그것이 안으로 해석되어지거나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훈련이 될 때까지는 주의하고 삼가지 않으면 퇴보하거나 스스로 좌절하게 된다.
연잎에 어떠한 물방울이 떨어져도 잎에 물이 스며들지 않는 것처럼.
4) 수행이 심신에 미치는 영향
이제 명상은 동양 불교인들만이 전유물이 아니고 서양의 타종교인과 무종교인에 이르기까지 급속도로 확장되어지고 있는 실태이다. 과학과 의학적으로 이미 확증된 명상이 심신에 미치는 영향으로 얻을 수 있게 되는 유익함은 이제 인류 모두에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 되었다.
미국의 유명한 모 일간지에서도 미국인 중 1000만의 인구가 명상을 하고 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고도의 산업화와 과학 등이 발달한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오염된 공기와 물을 마시고, 항상 바쁘고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 지구상에서 무공해는 자연히 사라졌다.
이러한 현대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명상을 생활화 하여 영적성장을 확장해 나아가는 길 뿐이라는 것을 부정 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참선을 하게 되면 엔돌핀과 호르몬 등이 생성되고 무한한 영적인 힘 등이 생성된다는 것이 세계 도처의 수행자들을 대상으로 여러 각도로 실험한 결과 과학과 의학으로 이미 증명되었다.
의학적으로 말하면, 우리 인간은 20세가 되면 몸 속의 세포가 사멸(死滅)하기 시작하여 기억력이 쇠퇴해 가고 노화가 시작된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산소를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뇌는 산소가 부족하면 급격한 세포의 사멸로 기억력 저하와 함께 온 몸을 조절할 기능이 마비되어 간다고 한다.
몸 속에 산소를 불어 넣어 세포의 사멸을 방지시키고 뇌에서 알파파(엔돌핀)가 분비되면서 잠재능력의 향상과 함께 생명인자(生命因子)를 증장시켜 장수케 하는 방법이 수행에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명상을 하고 있는 동안 뇌에서 분비되는 엔돌핀과 호르몬은 마음을 평화롭게 해 주는 작용을 하며, 아울러 몸을 이완시켜서 여유가 생김과 동시에 주의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도 관심이 가지 않고 저절로 소리가 차단되어 지기 때문에 깊은 삼매에 들 수가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자동으로 정신이 안정되고 마음의 세계가 확대되는 것과 함께 시간 감각이 없어지고 자유로운 느낌이 되므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진을 할 수 있게 되어진다. 이렇게 되는 시간이 자주 반복되고 길어지면, 점점 깊은 선정으로 들어갈 수 있고 영성의 향상과 함께 초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어지며, 또한 내․외부로 부터의 감정의 흥분에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마음이 확장되어 여유와 관대해져서 모든 대상에 자비로워지게 된다.
명상호흡을 통하여 인위적으로 자율신경 등의 조절이 가능하고 몸에 산소가 투입되어 새로운 세포 등이 생성되면 병이 치유되면서 우리의 몸은 정화되어 건강하고 마음 또한 자연히 건강해 진다고도 한다. 또한 암세포 파괴에 가장 강력한 T임파구를 강화하여 준다는 실험결과도 나왔다.
(2년 전 KBS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참 나를 찾아서-참선) 중에서 본인의 뇌파를 촬영하여 지금까지의 얘기를 그대로 실험해 보인 적이 있었다.
앉아서 선을 시작한지 2분이 지나 알파파가 나타나기 시작하여 5분 후에는 시타파가 발생되고 10분 후에는 델타파로 바뀌면서 쭉 이어져 나아가는 기록을 측정하는 모습이 그대로 방영된 적이 있다. 당시 뇌파를 측정한 의사선생님(최 훈동-서울대 교수)은 알파파는 초선정을 시타파는 중간선정이며, 델타파는 깊은 삼매의 상태라고 하였다.)
뇌파측정 후 주파수의 상태를 기록해 놓은 자료에 의하면,
“마음이 밝고 긍정적인 상태일 때는 뇌로부터 인체의 기능을 활성화 하는 호르몬이 분비되고, 뇌의 활동 자체에도 활력이 넘치는데, 이 때를 알파파라고 한다.
뇌의 주파수라는 것은 일초에 몇 회 진동하고 있는가의 진동수이고, 진폭이라는 것은 그 파동의 높이(크기)를 말하는데, 뇌파의 주파수는 그때그때의 의식상태를 나타내는 것으로 주파수가 높으면 표면적인 의식이 강하게 되고, 주파수가 낮으면 의식이 내면으로 향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감마파는 30Hz 이상으로 흥분정도가 강하고 자아를 억제하기 힘들다.
베타파는 14~30Hz 로 일반적으로 긴장을 나타내는 뇌파로, 자아를 의식하고 있는 상태며, 보통 낮에 깨어 있을 때의 뇌파이다.
알파파는 8~14Hz로 명상 등 집중을 할 때 나타나는 뇌파이며, 심층의식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세타파는 4~8Hz로 얕은 수면, 내면적으로 이완이 되고, 의식이 마음의 내면으로 향하고 자아를 의식하지 않게된 상태이며, 명상할 때의 無我의 경지를 말한다.
델타파는 4Hz 이하이며 일반인에게는 깊은 수면의 상태이나, 명상할 때는 몰아(沒我)일 때의 뇌파이다.” 라고 되어 있다.
또한 위 자료들에서는 명상중에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지만 소비된다고 한다. 따라서 산소 소비량이 줄고, 명상 전 산성이던 피도 명상후에는 알카리성으로 변해있음이 실험되었다고 한다. 피 안의 콜레스테롤과 유산치(乳酸値)가 감소한 결과인데, 이런 변화는 자동으로 血流전기량을 증가시켜 氣를 왕성하게 해주며, 또한 명상중에는 담즙 분비가 불어나서 소화작용을 증대시키고, 폐의 기능을 강화하며, 혈당치가 감소하여 당뇨병 환자 한테는 치유의 효과를 준다고도 실험결과로 말하고 있다.
세로토닌과 도파민의 분비로 파킨슨병, 우울증의 예방과 치료에 좋으며, 혈관벽을 강화하는 것을 방지하므로 고혈압과 중풍예방에 효과적일뿐 아니라, 이 외에도 명상을 하면 각종 병의 예방과 치료효과 등에 필요한 호르몬의 분비로 무병, 장수한다는 사실을 실험결과로 증명하고 있다
5) 체험담
친정 어머니와 금생의 인연을 하직하던 날 어머니의 좌탈입망하시는 모습을 보고 크게 반성하여 나의 생각(가는 길)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어머니의 49제를 마치고서 이후부터 본격적인 수행을 하게 되었다. 나와 인연있는 세상의 모든 일들은 내가 처리해야만 하는 줄로 생각하고 온갖 갖가지의 일에 해결사로 자칭하고 나섰는가 하면, 음식에서부터 옷입는 일, 생활하는 모든 것들에서 지나친 소비 등으로 그 욕망은 끝없이 점점 확대되어 가고 있었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니 항상 심신이 지쳐서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어 악성빈혈과 위궤양, 골다공증 등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할 만큼 건강이 심각해지게 되었다. 또한 의협심이 강하여 잘못되었다고 생각되어지는 일에는 참지 못하고 일에 관여하다 보면, 좋은 결과도 나쁜 결과도 결국 중생의 잣대로 재는 일들은 그릇된 결과를 남겨서 세상이 다시 시끄러워 질 뿐이었다. 이렇 듯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조차도 모르고 헤매다가 어머니의 훌륭하신 임종 앞에서 내 자신은 너무나 작고 초라하였으며 부끄러움 그 자체였다.
이후 수행에 전념하면서 생활의 태도와 사고방식이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우선 근검 절약하는 생활이 점점 익혀져 가고, 성격과 언행이 참으로 많이 변하였다고 주변에서 말들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건강이 태어난 이후 가장 좋아져서, 과거에 결핵 4기였던 몸이 지금은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을 정도로 강인한 체력으로 변하였다. 이렇게 살아가다보니 주변의 모든 대상들을 보는 눈도 대하는 태도도 함께 변해가고 있음을 스스로 알아질 정도가 되어가는 것 같다.
처음 능엄주를 하게 되고, 외워서 본격적인 주력을 하면서도, 그리고 지금 이렇게 계속 흐르는 시간 중에도 참으로 많은 불보살님의 가피를 입었다.
능엄주를 하는 속력이 어느 정도 빠르게 되자, 하루에 108독씩을 100일간 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본격적인 주력을 하였다. 처음에는 108독을 하는데 하루에 16시간 걸리다가, 매일 그 속도가 빨라지면서 15시간, 14시간 등으로 줄어들면서 4시간 만에 108독을 마칠 수가 있었다. 시간이 남으면 또 다른 생각이 끼어들게 되므로 횟수를 늘려 하다보니 이쯤 되었을 때는 하루에 400-500독씩을 하게 되었고, 이런 속력으로 한지 3일 째 되어(100일 입제시작으로부터 40일째 되던 날) 몸이 사라지고... (이후의 수행과정과 체험, 영험 등은 강의시간에 하기로 남겨 둡니다. 위의 주력수행방법은 모두 본인이 했던 경험을 그대로 적은 것입니다. )
5. 맺는말
우리들의 각각의 행위는 말이든 행동이든, 생각이든 반드시 뒤에 업력을 남기게 되어 있다. 이 業力은 행위의 善惡에 따라 개인의 대차대조표가 된다. 우리가 업력이라 부르는 보이지 않는 무엇은 각각의 행위가 관련된 마음의 산물이기에, 그것은 ‘콩심은 데 콩나고 팥심은 데 팥난다’는 말과 같다.
우주는 유정의 업력으로 충만해 있다. 삶의 귀납적 설명 이론은 이들 힘에 기원을 두고 있어, 끊임없이 자신의 행위의 힘을 흡수함과 동시에 행동, 말, 생각으로 새로운 힘을 방출하면서, 말하자면 삶의 상징으로서 진동, 파장, 리듬이 끊임없는 삶의 사슬을 창조하고 있다.
선행의 힘을 긍정적으로, 악행의 힘을 부정적으로 간주한다고 할 때, 우리는 긍정적인 반응과 부정적인 반응을 얻게 되는데 이것은 우주 모든 곳에서 언제나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모든 유정과 무정, 우리 모두의 몸에서도 모든 유기체의 몸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삶을 유지시키는 에너지의 근원이 되는 업을 끝없이 축적하여 이것 뒤에는 고통과 죽음이 따르고, 그러므로 모든 것은 업의 법칙을 따르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업이 끝없이 변하는 마음에서 나오므로 업의 결과도 반드시 변화무쌍하다는 것을 수행으로서 체험을 해 보면 쉽게 알수 있다.
보통의 사람들의 삶은 연기에 순응하면서 業을 받으며 業대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수행을 하면 業을 제도하면서 살기 때문에 운명을 개척하고 심신을 정화하여 건강한 삶을 살 수가 있다. 업을 제도하면서 산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세상에 속박당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제도하면서 해방감 속에서 살게 되므로, 모든 고통, 불안, 우울증 등에서 벗어나 밝고 여우로움 속에서 행복한 나날들을 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좋은 생각으로 정진을 하다보면 좋은 인연만 만나게 되고, 주변에 마장은 저절로 사라지게 됨을 알수 있으며, 불보살님의 가피로 수행을 저절로 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 진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될 것이다.
산을 오르면 산이 있고, 그 산을 넘으면 또한 더 높은 산이 있다. 산을 넘고 넘어 가장 높은 산을 오르면, 이후 다른 산은 이미 오르기도 전에 훤히 알수 있으며, 힘이 들지가 않게 되는 경험을 우리들은 이미 한 바가 있다. 또한 옛말에 ‘한양이 아무리 멀어도 못 갈리 없다. 언젠가는 당도한다’는 말이 있듯이, 바쁜 가운데서도 쉬는 날 하루만이라도 이 몸을 정복하여야 겠다는 각오로 정진을 시작한다면 몸이 정복되고, 몸이 정복되면 마음이 저절로 정복되어져서, 그 다음은 한시간을 정진을 해도 10분이나 20분을 한 것처럼 시간이 금방 흐르는 것 같고, 망상도 점점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한 걸음씩 내 딛다 보면, 인간 고오타마 붓다가 오늘 이 날을 있게 한 것처럼 우리 모두도 언젠가는 단언코 깨달음에 이르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끝으로 세계적인 영적 지도자 달라이라마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주력수행에 대한 강의를 마칠까 합니다.
달라이라마는 「행복에 이르는 길」이란 강연에서 말씀하시기를
세상에는 여러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적 신앙 형식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와는 완전히 반대로 사는 사람, 그런가 하면 종교에는 무관심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이성적 설명을 허용하지 않는 불리한 상황에 직면할 때, 그와 같은 상황을 극복하는 사람들의 능력은 각각 다르게 나타납니다.
영적 세계를 전혀 믿지 않는 자들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는 상황에 직면하는 한 이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이해범위를 벗어난 상황은 충격으로 다가오고, 그런 상황에 대처하려는 노력은 좌절과 불안을 낳습니다.
하지만 달마수행자는 삶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기 때문에 삶의 힘을 유지하는데 가장 필요한 요소인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는 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한 사람의 일생에서 영적 발전의 중요성은 분명하다 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불교의 교리는 우리 사회에 제공하는 바가 많습니다.
.....달마수행을 위해 일정한 시간을 마련할 수 있는 데 이를 나중으로 미루는 그릇된 관념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다르마 수행은 지금의 삶에 통합되어야 합니다. 달마는 고결한 원리 속에서 삶을 살고 인생의 방향과 목적을 주는 것이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전망을 택한다면 달마는 개인의 자아에도 유익할 뿐만 아니라 그가 살고 있는 사회의 개선에도 분명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달마수행의 본질은 마음 속에 증오와 색욕, 유해한 의지로부터 자유로운 마음상태인 수양을 불러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불법의 전체메시지는 다음의 간결한 두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타인을 도우라.”
둘째는 “타인을 도울 수 없다면, 최소한 그들을 해치지 말라.”
-이상-
첫댓글 바른 수행으로 깨달음에의 세계에로 ...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스바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