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강화성당은 고요한(Charles Jone Corfe) 초대주교가 1900년에 축성한 건물로 "성 베드로와 바울로 성당"으로 명명되었다. 당시 건축공사는 궁궐의 도편수가 주도하였고, 이후 멸차례 보수가 있었으나, 처음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사적 제424호로 관리되고 있으며, 총 보호면적은 6,452㎡이고, 성공회유지재단이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1896년(고종33), 강화에서 처음으로 한국인이 세례를 받은 것을 계기로 1900년11월15일 강화에 한국 최초의 성당을 세운 것이다.
1910년대까지 강화지역 선교의 중심이 되었으며, 성공회 신학교인 성미가엘신학교가 이 곳에 설립된 이후 성공회 한국 선교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 한국인으로는 성공회 첫 신부가 되는 김희중신부를 배출하였다.
노아의 方舟 Noa's Ark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모든 사람들이 타락한 생활에 빠져 있을 때 하느님이 대홍수로 심판하려 할 때, 홀로 바르게 살던 노아는 하느님의 특별한 계시로 홍수가 올 것을 미리 알고 120년에 걸쳐 방주를 만든다.
길이 90.9m, 너비 151.15m의 상중하 3층으로 된 커다란 배를 만들어 8명의 가족과 한 쌍식의 뭇 생명들을 데리고 방주에 오른 뒤, 예견된 대홍수로 모든 생물이 전멸하고 방주에 탄 노아의 가족과 동물들만 살아 남는다는 이야기다.
이 곳 강화성당은 이 구원의 방주(方舟 ..배) 형상을 한 성당이다. 서쪽에 출입문을 배치하여 서구 형태를 취하면서 전체적으로 배(船) 모양을 본 떠 뱃머리인 서쪽에는 外三門 및 內三門과 銅鐘을 배치하고, 중앙에 성당을 배치하였다, 뒷편에는 사제관을 배치하여 특이한 양식을 보여주어 우리나라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고...
서양 종교의 건물이 한옥으로 지어진 특이한 사례이다. 팔작지붕으로 세워진 성당에는 천주성전(天主聖殿)이라는 현판이 걸려있고, 지붕 용마루의 양끝에 위치하는 취두(鷲頭)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세운 것 그리고 궁궐 건축에서 보이는 용두(龍頭)를 올린 점 등이 한옥의 전통을 무시하지 않았으며, 특히 건물 정면의 기둥에는 주련(柱聯)을 걸었다. 내용은 서양종교의 그 것이지만....
無始無終先作形聲眞主宰
처음도 끝도 없으니 형태와 소리를 먼저 지은 분이 진실한 주재자이시다
宣仁宣義聿照拯濟大權衡
인을 선포하고 의를 또한 선포하니 이에 구원을 밝히시어 큰 저울이 되었다.
三位一體天主萬有之眞原
삼위일체 하느님이시니 만물의 참된 근본이 되신다
神化周流臾庶物同胞之樂
하느님의 가르침이 두루 흐르는 것은 만물과 동포의 즐거움이다
福音宣播啓衆民永生之方
복음을 널리 전파하여 백성을 깨닫게 하니 영생의 길을 가르치도다.
東西 길이 10칸, 南北 길이 4칸인 한식 중층 건물이며 서양의 바실리카식 교회 건축 공간 구성을 따르고 있지만, 한식 목조 구조와 기와 지붕을 얹은 것이 특이하다. 구조와 外觀을 한국 전통의 건축 양식을 응용하여 外來 종교에 대한 거부감을 완화하고 조화의 아름다움과 土着 정신을 잘 드러나게 건축하였다.
영국 국교에서 발전하여 세계 전역에 퍼진 국가별 독립,자치 교회들의 교단이다. 선임주교이자 명복상의 지도자인 켄터베리대주교에게 다같이 충성하고, 16세기 "성공회 기도서"가 규정하는 교리와 의식에 동의하는 것으로 결속된다
종교개혁 때부터 영국국교는 탐험가, 상인, 식민지 개척자, 선교사 등을 따라 당시 알려진 모든 세계로 나갔다. 식민지 교회들은 대체로 모교회의 역사와 신조를 바탕으로 하되, 행정상의 자치권을 행사한다.
민족적인 차이 및 그 밖의 다른 요인들 때문에 성공회 교회들은 기본 구조에서 약간씩 다르지만 여러 요소들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1명의 주교의 감독을 받는 교구는 성공회의기본 행정 단위이다. 교구는 각각 주임사제의 감독을 받는 소교구나 지역 교회의 공동체로 구성된다.
성당 내부 ... 백두산 소나무로 지었다고 한다
성공회 제물포성당
출처: 울산문화탐방학교 (글: 장미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