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조 : http://my.dreamwiz.com/lutain/culture/culture5/contents13.htm
디즈니의 아성을 넘어라 -
face="굴림체" size="2" color="#4F7DFF">월간중앙 제42호(박문석, 문화관광부 문화정책국장)
align="left" width="180" height="161" border="0">세계 만화영화시장을 휩쓸고
있는 월트 디즈니의 경쟁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공장화된 대형 분업시스템일까,
공격적인 비즈니스일까. 그보다 확실한 답은 바로 캐릭터산업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디즈니사 수입의 22% 이상을 차지하는 캐릭터산업의 경쟁력. 그리고 디즈니의 아성에
도전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미국에서 캐릭터를 밑둥에서부터
생활화하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한 캐릭터산업의 견인차는 두말할 필요 없이 '만화왕국'
월트 디즈니다.
월트 디즈니사는 코카콜라·맥도널드 햄버거 등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상징물로
꼽힌다. 또 제너럴 모터스·GE 등과 함께 미국의 정치·경제 상황을 알려주는 1백년
역사의 다우존스 공업지수를 구성하는 30개 종목 가운데 하나다. 월트 디즈니는 곧
미국 그 자체인 것이다.
최초 캐릭터는 28년 '미키'
프랑스의 에밀 콜은 1908년 영상기에
걸린 최초의 애니메이션이라 일컫는 "판타스 마고리"라는 만화영화를 만들었다.
만화영화는 이처럼 유럽에서 처음 시작됐으나 정작 그것을 산업으로 꽃피운 것은
미국이었다. 그리고 그 주역이 바로 월트 디즈니인 것이다.
디즈니 만화의 커다란 매력은 그것이 미국을 보다 잘 표현한다는 점에 있다. 디즈니의
어떠한 점이 가장 미국적인 특성을 띠는가.
그 첫번째는 만화영화를 영화예술의 유력한 장르로 끌어올린 것이다. 여기에 미국
기계기술의 보다 단적인 현상도 엿보인다. 디즈니는 그림을 움직이는 작업에 프레드릭
테일러의 방법을 받아들였다. 프레드릭의 방법을 더욱 능률화해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라는 최초의 장편 만화영화를 완성했다. 이전까지 가내수공업 수준이던
만화영화를 한단계 진전시킨 것이다. 이 영화는 흥행에서도 크게 성공했다.
영화 제작에만 1천명의 사람이 참여했다. 러닝타임 10분의 짧은 만화영화에 무려
5백명의 화가가 분업으로 참여했다. 드디어 버뱅크의 디즈니 프로덕션은 할리우드에서
또 하나의 대기업으로 탄생했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미국 특유의 기업방식인
'흐르는 작업', 즉 테일러 시스템으로 바꾸었다.
월트 디즈니의 성공은 비즈니스의 성공이었다. 그는 만화영화에 소리를 주고 처음으로
색을 넣었다. 소리를 처음 넣은 것은 1928년의 "증기선 월리"(Steamboat
Willy)였고 색채를 넣은 것은 32년의 "숲속의 아침"(The Flowers and Trees)이었다.
"백설공주" 제작 당시 그는 처음부터 3백명의 화가를 고용했다. 그것이
나중에는 7백명으로 늘어났다. 이 엄청난 미술가 조직은 그림을 그리는 작업의 공장화와
그 창작의 기계화였다. 선을 긋고 색칠하는 작업은 분업으로 이뤄졌다. 그것이 단순화될수록
기계화·능률화가 이뤄졌다.
결국 디즈니의 성공은 미국적 기계정신의 발휘였던 셈이다. "타임"지(54년
12월27일)가 그를 사업가나 예술가라고 하지 않고 에디슨이나 포드처럼 독창적인
'거리의 발명가'중 한 사람으로 쓴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디즈니사는 1923년 월트·로이 디즈니 형제에 의해 설립됐다. 디즈니 형제는 월세
10달러짜리 사무실에서 출발했다. 그들에게는 소액의 융자금이 아닌 풍부한 상상력이
자본이었다. 디즈니사가 부각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8년 미키라는
생쥐 캐릭터를 "증기선 월리"에 등장시키면서 디즈니는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그뒤로 피노키오, 밤비, 신데렐라, 피터팬, 잠자는 숲속의 미녀, 1백1마리의 달마시안
개 등 수많은 걸작과 캐릭터들을 쏟아냈다. 그 결과 이러한 고전적 캐릭터부터 최근
인어공주, 라이언 킹 ,토이스토리에 이르기까지 총 1천여종의 세계적 캐릭터들을
보유하게 됐다.
디즈니사가 평소 심혈을 쏟는 작업은 단번에 소비자를 매료시킬 수 있는 캐릭터 창출이다.
하나의 캐릭터를 만들어내기까지 캐릭터 디자이너로 불리는 미술전문가를 비롯해
유명 배우·모델·성우·의상전문가 등 각계 전문가들이 총동원되다시피 한다. 이렇게
탄생한 캐릭터는 '미키헌법'이라고 불리는 엄격한 사시(社是)에 따라 단 세가지 제품,
즉 담배와 술과 약을 제외한 모든 소비재뿐만 아니라 미국의 검정교과서에도 실린다.
디즈니 캐릭터가 상품화된 1930년 이래 디즈니는 부(富)를 안았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디즈니 캐릭터를 이용하는 생산·유통업체는 3천여개. 디즈니사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디즈니 캐릭터를 이용한 상품이 10조3천억원어치나 팔렸다. 또 94년 디즈니사 총수익
19억6천6백만달러 가운데 22%를 캐릭터상품 판매가 차지했다.
디즈니의 재기, 여타 미디어그룹
자극
90년대 들어 고사상태에 있던
디즈니가 다시 화려하게 부활하자, 연간 매출액 2백억달러에 달하는 세계 제1의 미디어그룹
타임워너를 비롯한 폭스·TBS·드림웍스 등 여타 경쟁사들은 만화산업 및 만화파생산업을
보던 시각을 1백80도 바꾸었다. 이들도 앞다퉈 디즈니의 토털 마케팅 전략을 채택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디어 공룡간 전쟁의 재발인 셈이다. 할리우드 최고권위지 "버라이어티"지가
21세기에도 만화영화의 붐은 계속될 것이라고 예언했듯 지금 미국 미디어 공룡들은
더이상 만화산업 및 만화파생산업을 디즈니의 전유물로 남겨둘 수는 없다는 판단인
것 같다.
타임워너는 계열사인 워너브라더스를 중심축으로 "배트맨""벅스바니"
등 기존의 애니메이션을 리바이벌했고 94년부터는 신작 만화영화 제작에 총력을 쏟고
있다. 최근에는 실사애니메이션 "누가 로저래빗을 모함했나"의 기술력을
모아 한층 더 높은 디지털 기술로 마이클 조던과 워너의 대표적 캐릭터 벅스 버니(Bugs
Bunny) 주연의 "스페이스 잼"(Space Jem)을 만들었다. 루퍼트 머독이 진두지휘하는
미디어 그룹 뉴스코퍼레이션 산하의 폭스TV사도 "스누피", "찰리
브라운" 등 신작 애니메이션을 내놓으면서 발빠르게 움직이고 머독이 소유한
스타TV를 통해 전세계를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디즈니에서 맹활약하다 94년 과감히 디즈니와 결별한 뒤 스티븐 스필버그, 데이드
게펜과 손잡고 드림웍스 SKG를 만든 에니메이션의 귀재 제프리 카젠버그 감독. 그도
98년 크리스마스 시즌 개봉을 목표로 "이집트 왕자"를 위시한 각종 극장용
만화영화와 TV용 애니메이션 제작에 심혈을 쏟고 있다.
카젠버그는 디즈니영화사 사장시절 "알라딘"과 "라이언 킹"의
판촉활동 시너지 효과 창출을 총지휘했다.
과연 캐릭터상품 때문에 영화를 보는 것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올해는 브러더스사가 내놓은 아서왕에 관한 뮤지컬 "카멜롯을 찾아"(Quest
for Camelot)와 드림웍스사의 "이집트 왕자"를 포함해 대여섯편의 만화영화가
더 개봉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디즈니사의 경쟁사들은 10억달러 가량을 여기에 쏟아부었다.
이러한 제작비 투자는 값비싼 자살행위로 결판날지도 모른다. 디즈니사는 이미 만화영화시장을
공공연히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트 디즈니라는 이름은 이미 만화영화의 대명사다.
디즈니사는 방계회사인 ABC방송과 디즈니 채널, 디즈니 상점, 디즈니 테마공원 등을
동원해 영화와 캐릭터상품의 상호 선전을 통한 수요를 부채질하고 있다.
그러면 타 영화사의 사정은 어떤가. 89년 이래 디즈니 아닌 타 영화사의 만화영화
가운데 흥행에 성공한 만화영화는 "비비스와 버트헤드(Beavis and Butthead
Do America) 딱 한편뿐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벌어들인 수익금은 고작 5천만달러에
불과했다.
현재 경쟁관계에 있는 카젠버그와 폭스사의 빌 미캐닉 회장을 비롯한 여러 경쟁자들이
바로 디즈니에서 배우면서 성장했다는 점을 보면 디즈니의 영향력이 얼마나 막강한지
가늠해볼 수 있다.
신예 카젠버그와 맥팔레인
과연 디즈니를 따라잡을 회사가
나올 것인가. 그러나 디즈니는 최근 가뜩이나 방대한 규모의 스튜디오를 다시 두배로
늘렸다. 그들의 찬란한 과거 업적은 아직도 많은 인재를 끌어 모으는데 매력으로
작용한다.
"고양이는 춤추지 않아"는 다른 영화사와 손잡을 경우 그 결과가 얼마나
처참(?)하게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돼버렸다.
워너스의 이 영화는 제작비만 4천5백만달러나 들어갔고 비평가들의 호평도 받았지만
캐릭터상품이 없었고 마케팅과 관객동원에 철저히 실패했다.
만화가 돈 불러스는 "디즈니로서는 자사의 명성을 지키려는 것이다. 드디어
고래싸움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고양이는 춤추지 않아"의 제작자인
커슈너도 "디즈니사와 경쟁하려면 캐릭터상품 판매공세를 펼치는 길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한 와중에 새로운 도전자가 나타났다. 미국에서 인기 최고인 초특급 영웅 "스폰"을
만들어낸 토드 맥팔레인(36). 그는 미국 만화가 중에서 돈 많고 괴팍한 성격에다
상당히 반항적 인물로 꼽힌다. 그의 만화에서는 자주색 망토를 두른 '90년대의 응징자
스폰'의 불만에 가득찬 세계와 염세적인 인물들이 두루 등장한다.
샌디에이고에서 이미 4일동안 1만5천개가 팔려 나가는 기록을 세운 적 있는 10달러짜리
'번트 스폰'('무덤 파는 삽'이 딸려 있다)과 그의 숙적 '클라운' 같은 만화 캐릭터
인형들을 사려면 몇 시간이나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다.
맥팔레인은 만화박람회에 참석해 청소년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스폰
만화시리즈는 1백18개국에서 21개 언어로 출간돼 모두 1억1천만권이 팔렸고, 1천만개
이상의 캐릭터 장난감이 팔렸지만 그 시리즈의 주고객층은 여드름난 청소년들에 국한됐다.
그러나 이제 그 현상이 바뀌고 있다. 얼마 전 미국 오락TV HBO는 R등급이면서 성공적인
만화영화 "스폰" 6회분을 추가 주문했다. 더욱이 최근 미국 전역에서 4천5백만달러짜리
액션영화 "스폰"이 개봉됨에 따라 그 인기가 날로 치솟고 있다.
스폰은 캐나다 출신인 괴짜 만화가 맥팔레인의 상상력에서 나온 산물이다. 맥팔레인은
23세에 만화업계 선두주자 마블 코믹스사에서 일을 시작한 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을
통해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는 여느 액션 주인공과 크게 차별성이 없는 근육질의 스파이더맨을 확 바꾸었다.
기존의 스파이더맨에 유연성을 첨가해 그에게 마치 곤충같은 민첩성을 불어넣었다.
거미줄도 기존의 따분한 형태에서 끈끈한 액체가 뚝뚝 떨어지는 리얼한 형태로 바꾸었다.
이는 마블사의 대표적 만화 주인공 스파이더맨에 대한 모독행위였는지 모르지만 새로운
스파이더맨의 등장은 인기를 몰고왔다. 그뒤로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판매량은 1백만부로
무려 4배나 증가하면서 베스트셀러 1위 만화로 부상했다.
맥팔레인은 그뒤 마블사와 결별했고 우수한 만화가 여섯명과 함께 회사를 설립했다.
92년 5월에 나온 "스폰" 창간호는 1백70만부라는 경이적 판매부수를 기록했다.
맥팔레인은 만화계의 마돈나로 불린다. 지난해 "포브스"지는 그의 총자산을
7천5백만달러로 추정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