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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21세기스피치웅변아카데미 원문보기 글쓴이: 유달산(이영근)
2009년 9월 30일 수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090930수] 정운찬 총리에게 필요한 건 현장능력
우여곡절 끝에 정운찬 내각이 출범했다. 9ㆍ3개각의 폭은 두드러지게 크지 않았지만 소리 없는 보좌형 총리에서 뚜렷하게 제 색깔을 가진 정 총리에게 바톤이 넘어갔다는 점만으로도 이명박 정부의 2기 내각이라고 칭할 만하다. 통상 집권 1기 내각은 과욕에 따른 시행착오로 불필요한 갈등국면을 빚고, 후기 내각은 차기 정권 창출을 위한 안정형 관리내각이 되기 십상이다. 그런 점에서 2기야말로 정권 본연의 철학과 능력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는 내각이라고 할 수 있다. 정운찬 내각에 거는 기대가 각별하게 큰 까닭이다.
정 총리는 이번에 느낀 바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서울대총장을 지내고 대선후보로 거론되면서 느꼈을 관념 속의 국민과, 검증과정에서 맞닥뜨린 현실의 국민 간 차이를 극명하게 인식했을 것이다. 그의 어머니가 준 비유를 인용하자면 그는 가마에 올라 탄 것이 아니라, 거꾸로 이 어렵고 두려운 국민을 모시는 가마꾼의 심정으로 총리직에 임해야 한다.
정 총리는 취임에 즈음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이상론들을 쏟아냈으나 크게 조정ㆍ통합ㆍ내실, 이 세가지로 요약된다. 나름대로 시대적 과제들을 제대로 짚어낸 것으로 평가하지만 문제는 실천력이다. 문제 제기, 비판능력과 이를 어떻게 현실에 적용하고 풀어나갈 수 있느냐는 전혀 다른 영역이다. 상아탑의 이론가들이 국정에서 성과를 낸 경우가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다행히 정 총리는 직선 총장으로서 서울대라는 거대 조직을 운영해본 경험이 있어 이전의 탁상 이론가들과는 다를 것으로 기대한다.
지금 상황은 녹록지 않다. 불투명한 전망 속에서도 경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야 하고, 남북관계도 정상적 국면으로 전환 안정시켜야 하며, 고질적인 사회갈등 해소를 위한 조정의 틀도 이제는 정착시켜야 한다. 어느 하나 국가의 미래와 직결되지 않은 것이 없다. 제대로 대통령을 보좌하고 내각을 통할해 이런 과제들을 해결해 가길 바란다. 그게 또한 이번 청문과정에서 국민들에게 크게 진 마음의 부채를 갚아나가는 길이기도 하다.
[한겨레신문 사설-20090930수] 세종시 논란, 바람 그만잡고 정부안부터 내놔야
정운찬 국무총리는 세종시 문제와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공동체가 됐다. 정 총리는 후보자 지명 직후에 한 기자회견에서 ‘세종시의 원안 건설이 어렵다’며 세종시 수정론을 꺼냈다. 청문회 과정에서도 법을 무시하는 발언이라는 야당의 지적에도 아랑곳없이, 자족기능 미비론을 앞세워 수정론을 굽히지 않았다. 정 총리는 어제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난 뒤 한 기자간담회에서도 이런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세종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명예를 걸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고향 팔아 총리 할 사람이 아니라고도 했다.
세종시법은 여야의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법을 지키는 것이 원칙이다. 이것을 수정하려면 구체적인 근거와 납득할 만한 대안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정 총리의 태도는 그렇지가 않다. ‘정부 각 부처와 국회, 여론을 전부 살펴서 결정해야 한다’거나 ‘과천 같은 도시를 만들 것이냐, 송도 같은 도시를 만들 것이냐에 대한 세심하고 폭넓은 고려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시간을 더 달라고 했다. 대안은 지금부터 검토하겠다는 말이다. 현행법을 철저히 묵살해버린 장본인치고는 그의 복안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세종시 문제는 정 총리가 스스로 떠안은 짐이다. 그는 이 문제의 해결이 늦어질수록 쓸데없는 국력 낭비만 커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하루빨리 논란을 종식시켜야 한다. 그가 진심으로 대안을 내놓고 국민을 설득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지금부터 서둘러 할 일은 두 가지다. 하나는 청와대는 침묵을 지키고,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원안 고수’를 말하며, 친이계 의원들은 ‘원안 수정’을 주장하는 콩가루 집안 같은 상황을 정리하는 일이다. 정 총리 스스로 수정론의 총대를 멘 만큼, 이 대통령과 독대를 하든 고위 당정을 하든 여권의 단일한 수정안을 신속히 내놔야 한다. 그다음은 이 안을 가지고 지역 주민과 야당 등을 진지하게 설득하는 일이다. 물론 설득이 통하지 않는다면 현행법이 정한 대로 신속하게 절차를 밟아야 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문제는 시간이다. 정 총리도 급변하는 나라 안팎의 환경 속에서 이 문제에만 매달릴 틈이 없을 것이다. 논점도 이미 다 나와 있는 만큼 정부안부터 내놓고, 한두 달의 시한 안에 세종시 논란에 마침표를 찍기 바란다.
[동아일보 사설-20090930수] ‘稅盜 공무원’이 이렇게 판쳐서야
세무공무원들이 일명 ‘카드깡’ 업자들로부터 금품을 받아오다 덜미가 잡혀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경찰은 부가가치세과 직원들이 신용카드 위장 가맹업체와 결탁해 범죄 사실을 눈감아준 혐의를 잡고 서울 구로·용산·종로세무서 3곳을 압수 수색했다. 탈세 사실을 적발해 세금을 추징해야 할 공무원들이 국민 세금을 도둑질한 것이나 다름없다.
카드깡은 급전이 필요한 사람에게 마치 물건을 사고판 것처럼 매출전표를 끊어준 다음, 고율의 이자를 받고 현금을 내주는 것이다. 세무서 직원들은 신용카드회사로부터 카드 거래내용을 매일 전산으로 통보받는 ‘신용카드 조기 경보시스템’을 이용해 카드깡을 적발한다. 그러나 세금 도둑들은 업종이나 규모에 걸맞지 않게 과다한 매출이 발생하는 의심스러운 거래를 적발하고도 뒤로 돈을 받고 덮어버렸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꼴이다.
내년 정부의 복지 부문 지출 비중은 총지출의 27.8%로 역대 최고지만 일선 지방자치단체에서 줄줄 새는 구멍을 막지 않으면 복지예산의 혜택이 서민과 약자에게 고르게 돌아갈 수 없다. 2월 서울 양천구청에서는 8급 기능직 공무원 한 사람이 26억 원에 이르는 장애인 보조금을 빼돌렸다. 한 읍사무소의 7급 여성 공무원은 34개의 차명계좌를 만들어 생계가 어려운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써야 할 세금 10억 원을 빼돌려 빚 갚고, 땅 사고, 차 사고, 해외여행을 갔다가 올 초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된 일도 있다. 정부 지원금으로 승용차를 사고 주식투자를 한 기업체 대표, 군 장병 급식용 쌀을 빼돌려 시중에 내다 판 육군 원사도 모두 세금 도둑에 해당한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작년 3월부터 국가 예산과 각종 보조금, 기금을 빼돌린 혐의로 적발한 사례가 164건에 이르고 관련자 150명이 구속됐다. 검찰이 밝힌 횡령 금액만도 1000억 원에 달한다. 국가가 신분을 보장하고 공무원연금으로 노후를 보장해주는 공무원들이 사욕(私慾)에 눈이 멀어 국민 세금을 훔치는 것은 다른 어떤 범죄보다도 죄질이 나쁘다.
이명박 대통령은 올해 초 비상경제정부 체제를 출범하면서 “공직사회의 부패를 척결하겠다”고 말한 데 이어 8·15 경축사에서도 ‘비리 척결’을 거듭 강조했다. 관련자를 적당히 처벌해서는 공직 부패를 일소하기 어렵다. 공직 부패를 봐주는 것이야말로 부패를 조장하는 행위다.
[조선일보 사설-20090930수] "에듀 투게더 자원봉사 선생님들 너무 고맙습니다"
저소득층을 돕는 복지 가운데 교육복지만큼 좋은 복지가 없다고들 한다. 자원봉사도 마찬가지다. 밥 굶는 이에게 밥상을 차려주고 병원비 없는 사람들을 공짜로 치료해주는 일은 값진 봉사다. 집이 가난해 남처럼 공부할 기회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은 그 아이들이 자기 두 발로 일어설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더 가치 있는 자원봉사다. 조선일보 9월 29일자에 보도된 경기도 성남시 월드비전 성남종합사회복지관의 '에듀 투게더' 자원봉사자 18명이 하는 일이 그런 일이다.
에듀 투게더의 자원봉사자들은 미국에서 14년을 살았던 주부, SC제일은행 통역사로 일하는 사람, IT회사 직원, 수학 과외 경력 20년인 주부, 에스콰이아 구두 디자이너, 박사과정 대학원생 등이다. 분당 같은 교회 신자인 이들은 작년 이맘때 집이 가난해 학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을 가르치기로 뜻을 모았다. 월드비전 성남종합사회복지관 도움으로 올 1월 에듀 투게더의 문을 열었다. 이들은 기초생활수급대상자나 조손(祖孫) 가정, 한부모 가정의 중학생 중 의욕 있는 아이들을 학년별로 20명씩 선발해 일주일에 2~4차례, 하루 3시간(오후 6~9시)씩 영어·수학을 수준별로 가르친다. 중3 정민이는 작년까지 전교 30~40등이다가 에듀 투게더에 다니면서 실력이 쑥쑥 늘어 지난 기말고사에서 전교 1등을 했다. 반에서 15~20등이던 새롬이는 전 과목 평균 94점으로 반 1등이 됐다. 정민이 아버지는 페인트칠을 하고, 새롬이는 횟집서 일하는 엄마와 함께 산다. 이 아이들은 "도와주신 선생님들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했다.
가난한 집 아이 중엔 자기에게 잠재력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아이들을 조금만 끌어주고 밀어주면 잠재력을 끄집어내 빛을 발하게 만들 수 있다. 에듀 투게더에서 자기 잠재력을 알게 된 아이들은 자신감을 갖고 더 의욕적으로 공부해 원하는 분야의 훌륭한 재목으로 성장할 수 있다.
소득 상위 20% 계층이 쓰는 사교육비는 하위 20%의 5배를 넘는다. 서울지역 6개 외국어고 재학생 6747명 중 기초생활수급자 가정 자녀는 0.18%, 12명밖에 안 된다. 서울 전체 기초생활수급자 비율 3.6%의 20분의 1이다. 저소득층 아이들은 사교육을 받지 못해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고 결국 좋은 일자리도 갖지 못해 가난을 대물림받게 되는 수가 많다. 에듀 투게더의 자원봉사자 18명은 저소득층 아이들을 휘감고 있는 가난의 악순환이라는 사슬을 끊어주겠다고 나섰다. 자원봉사 중에서도 참 의미 있는 자원봉사다.
[서울신문 사설-20090930수] 김준규式 검찰개혁 구호 그쳐선 안돼
검찰의 개혁 청사진이 나왔다. 표적수사의 비판을 받아온 ‘별건(別件) 수사’를 없애고 압박수사를 자제하는 등 기존 수사방식의 패러다임을 전면 바꾸기로 했다. 대검 중수부는 존치시키되 대검 평검사 인력의 20%를 일선 수사부서로 배치키로 했다. 필요한 경우 예비군 형태로 운영하는 한편 ‘중수부 자문제도’를 마련, 개별수사를 지원하는 보완책도 내놓았다. 연공서열이나 학연·지연을 무시하고 오직 능력과 인품을 기준으로 인사 고과를 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권력의 입김에서 벗어나 권력을 견제하는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겠다는 의미다. 이른바 ‘김준규식 검찰개혁’이 기치를 든 것이다.
김 총장 말대로 60년 동안 지속된 수사 방식에서 벗어나 신사다운 수사, 공정하고 투명한 수사, 정확한 수사로 기본 틀을 완전히 바꾸는 일이다. 기존의 수사방식은 명확한 증거확보에 의하지 않고 강압방식으로 피의자의 진술에 의존해 인권유린 등 고질적 병폐를 양산해 왔다. 특히 별건수사는 다른 혐의로 인신을 구속한 채 수사 대상자의 가족과 친구 등 주변 인물을 전방위로 압박하는 ‘먼지떨이식 수사’ 관행이다. 검찰 수사에 대한 국민적 불신과 원성이 컸다. 박연차 게이트 수사에서 보듯 표적·편파 수사의 논란 속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공정하고 투명한 수사가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 확보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개혁은 외치기는 쉬워도 실천이 어려운 법이다. 원칙에는 박수를 받지만 막상 현실에 접목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반발이 일어난다. 이런 이유로 실패로 막을 내리는 개혁이 비일비재했다. 더욱이 이번 개혁이 일시적 인기몰이라면 더더욱 안 될 일이다. 이번 개혁이 검찰 수사관행과 인사문제의 적폐를 없애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기를 당부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090930수] 보금자리주택 투기근절책 마련이 급선무다
정부는 서울 강남과 서초,경기 고양 원흥과 하남 미사 등 보금자리주택 시범지구의 공급호수와 분양가 등을 어제 확정하고 사전예약 입주자 모집공고를 냈다. 전체 사전예약 물량 1만4295가구 가운데 59%(8380가구)를 3자녀,신혼부부,생애최초,노부모 부양가구 등을 대상으로 특별 및 우선 공급하고,3.3㎡당 평균 분양가를 850만원에서 최대 1150만원으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다음달 7일 특별공급을 시작으로 보금자리주택에 대한 청약전쟁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셈이다.
보금자리주택은 특별공급과 우선공급분이 전체 물량의 60%에 육박하고,특히 집값이 주변 시세의 50~70% 수준에 불과한 점만으로도 무주택자 등 서민들의 내집 마련에 큰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다. 더욱이 최근 들어 가뜩이나 비싼 집값이 다시 뛰어오르면서 서민과 중산층의 불안감은 증폭되고 있는 형편이다. 정부가 당초 계획보다 보금자리주택 공급시기를 대폭 앞당긴 데는 이러한 요인들이 크게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보금자리주택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과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분양가가 워낙 싸게 책정돼 투기바람과 편법분양이 발생할 위험이 높은 만큼 보금자리주택이 부동산 투기수단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물론 정부도 전매제한 기간을 종전 5년에서 최장 10년으로 늘리고,청약통장을 불법으로 사고 팔 경우 청약통장을 무효로 하는 등 투기단속 대책을 마련하고는 있다.
하지만 과거의 예로 보아 이런 방안들이 엄청난 시세차익을 노린 청약이 몰려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실효(實效)를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정부 당국이 부동산 투기를 비롯한 불법거래가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더욱 강력하면서도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무엇보다 불법 통장 거래나,편법 또는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한 분양자격 획득 등의 행위를 원천적으로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보다 엄중하게 처벌해야 할 것이다.
* 오늘의 칼럼 읽기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예영준(정치부문 차장)-20090930수] 기린을 기다리며
흔히 ‘새털’같이 많은 날이라고 잘못 쓰기 십상이지만, 셀 수 없이 많은 것을 비유하는 말은 ‘쇠털’이 바른 표현이다. 다여우모(多如牛毛)란 한자성어를 보면 그렇다. 아무렴, 덩치 큰 소가 새보다는 털이 더 많지 않겠는가.
그럼 ‘쇠털’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그건 봉모(鳳毛) 즉 봉황의 털이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봉황의 터럭이라니, 구경조차 한 사람이 없을 만큼 귀한 존재를 일컫는 말이다. 한술 더 뜬 표현이 봉모인각(鳳毛麟角)이다. 역시 상상 속 동물인 기린(麒麟)의 뿔을 갖다 붙인 것이다. 봉모인각은 귀하다는 의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좀처럼 보기 드문 출중한 인재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기린아’란 표현도 재능이 특출한 젊은이를 뜻한다. 두보(杜甫)는 서경이란 사람의 두 아들을 보며 ‘공자와 석가가 친히 보내주셨으니, 두 사람 모두 천상의 기린아로세’(孔子釋氏親抱送倂是天上麒麟兒)란 시구를 남겼다. 요즘 유행하는 ‘엄친아’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찬탄이다. 두보의 아들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지 상상이 간다.
고대 중국의 문헌에 나타나는 기린은 사슴의 몸통에 소의 꼬리, 말의 발굽과 갈기를 달고 이마에는 뿔이 돋아 있다. 특별히 목이 긴 짐승이란 기술은 없다. 아프리카 초원의 기린이 대륙을 건너 중국 땅에 도달한 것은 아프리카까지 원정을 갔던 명나라 정화(鄭和) 함대가 영락제에게 바친 것이 처음이다. 처음 보는 동물의 자태에 감탄한 황제가 영물이라 생각하여 기린이란 이름을 붙였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지금 중국에서는 기린이라 부르지 않고 장경록(長頸鹿), 즉 목이 긴 사슴이라 부른다.
1973년 경주 천마총에서 발굴된 천마도가 엊그제부터 일반인에 공개·전시되면서 논쟁거리가 불거졌다. 육안으로는 안 보이지만 적외선 카메라로 촬영해 보니 뿔이 선명한데, 그렇다면 그림의 주인공은 말이 아닌 기린이란 것이다. 말이든 기린이든 신라인의 숨결이 어린 국보의 가치가 변하는 건 아니겠지만, 이참에 정체를 정확하게 밝혀내면 좋겠다.
고대인들은 아무 때나 기린을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성군이 출현해 어진 정치를 펼칠 때에야 비로소 기린이 나타난다고 믿었다. 신라 화공이 그린 게 기린이 맞다면 성군의 출현을 기다리는 소망이 담긴 작품으로 봐야 할 것이다. 150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 소망엔 변함이 없다.
[경향신문 칼럼-여적/박성수(논설위원)-20090930수] 공자족보(孔子族譜)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 어렵다. 가까이 하면 불손하게 굴고 멀리하면 원망한다’(唯女子與小人 爲難養也 近之則不孫 遠之則怨). <논어> 양화(陽貨)편에 나오는 말이다. 단편적이지만 이 기록은 공자의 여성관을 짐작케 한다. 한마디로 여성 관계에 대해 ‘너무 가까이 하지도 말고 너무 멀리 하지도 말라’(不可近 不可遠)는 뜻으로 읽힌다.
기록을 살피면 공자의 부부관계는 원만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공자는 19세 때 송나라 올관(兀官)을 아내로 맞아 1년 후 아들을 보았다. 노나라 황제가 선물로 잉어 한 마리를 보내 이름을 공리(孔鯉)라 지었다. 그러나 공자는 결혼 4년 만에 요즘의 이혼과 비슷한 휴처(休妻)를 했다는 설이 있다. <예기(禮記)> 단궁(檀弓)편에서도 단서가 잡힌다. 모친상(喪)을 당한 공자의 증손자 집에서, 공리의 상복 착용 여부를 묻는 대화가 나오는데, 이 기록이 백년해로에 실패한 근거로 종종 인용된다.
공자의 개인사가 후대에 굳어진 남존여비 사상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漢)조로부터 송, 명, 청조에 걸쳐 내려온 <여훈(女訓)> 등 여성 규범에 관한 책들은 종속적 여성관을 확실히 보여준다. 중국의 봉건종법제도가 2000년 이상 남성 중심으로 이어져 왔다는 것은 부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공자 가문의 족보가 70여년 만에 대대적인 수정작업을 거쳐 출간됐다고 한다. 80권에 이르는 <공자세가보(孔子世家譜)>에는 200만명 이상의 이름이 올랐고, 유교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과 회족, 묘족 등 소수민족 후손을 등록시켰다고 한다. <공자세가보>는 60년마다 대폭 수정, 30년마다 소폭 수정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관례다. 지난 2000여년 동안 전면 수정된 것은 명(明)나라 이후 네 차례뿐이고, 이번 개정판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처음 시도한 재편찬이다. 공자 후손은 83대에 이른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족보 개정에서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공씨 가문의 여성 인식 변화다. 중국 언론들은 “남존여비 관념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평했고, 국제유교연합회는 “시대적인 진보”라고 말했다.
모처럼 한 가족이 모이는 즐거운 한가위를 맞는다. 부엌일로 고달픈 여성들에게는 ‘공자족보’ 소식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지 모르겠다.
[매일경제신문 칼럼-특파원 칼럼/김명수(뉴욕 특파원)-20090930수] 김용 총장과 정운찬 총리
지난주 22일 미국 뉴햄프셔주 하노버시에서 오랜만에 큰 축제가 열렸다. 바로 아시아계 최초로 미국 아이비리그 총장으로 임명된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 취임식이었다.
이날 취임식에 참석한 인원만 5000여 명. 하노버시 전체 인구가 1만2000명 정도임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규모다. 참석한 이들은 김 총장에 대해 큰 기대를 나타냈다. 그 기대는 학문적 수준을 높여 달라거나 취업 활성화가 아니었다. 학생들은 국제적 마인드를 심어 달라고 주문했고 취임식장에서 만난 교수들은 "김 총장이 인류애를 학교에 확산시켜주길 바란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김 총장이 살아온 삶을 이 학교에서도 실천해 교수나 교직원, 학생들도 이를 배울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실제 김 총장은 학자이면서 사회봉사활동에 나선 실천가였다. 그는 하버드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데 이어 인류학박사 학위도 받았다. 의사로서 결핵과 에이즈 퇴치를 위해 노력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국장으로 활동하면서 전 세계 에이즈 환자 100만여 명을 구해내는 성과를 거뒀다. 또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했다. 비영리 의료단체를 설립했다. 이를 통해 의약품 가격 인하 운동을 펼쳐 36개국에서 결실을 봤다.
그는 취임식에서도 이론보다는 실천을 강조했다. 그는 "그저 배움과 야망만 가지고서는 세계 변화에 대응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배움을 실천과 연결하고, 열정을 실용과 결합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배우는 데 그치지 말고 빈민 지역에서 의료지원활동에 나선 것을 상기시킨 발언이다.
그는 취임식에 앞서 한국에 대해서도 뼈 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한국도 이제 작은 나라가 아니고 경제 규모도 커졌다"고 했다. 이어 "과거처럼 의대나 법대를 나와 먹고살기에 급급해하기보다는 이제 국제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울 수 있도록 교육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5세 때 이민간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는 이제 한국인이 아니다.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섬뜩했다. 경제위기로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져갈 것으로 느껴졌던 미국 경쟁력을 새삼 느꼈기 때문이다.
미국 국력은 군사력이나 금융산업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핵심은 대학 경쟁력이다. 김 총장 발언을 통해 미국 대학은 전 세계 리더들을 양성하는 곳이란 사실이 느껴졌다.
총리로 임명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도 대학교수 시절 `실천의 대명사`로 통했다. `평범한` 교수들이 외면할 때 민주화를 외치는 학생들과 호흡을 같이했다. 김용 총장과 마찬가지로 실천과 실용을 중시했다.
이제 교수나 총장이 아닌 정운찬 총리에게 필요한 것은 국제사회에 기여하는 실천의 리더십이다. 김용 총장 말대로 세계 13대 경제대국이란 국가 위상에 걸맞게 한국 리더십도 변할 때가 됐다.
[서울경제신문 칼럼-기자의 눈/김지영(생활산업부 기자)-20090930수] 공포감이 일으킨 신종플루의 경제학
상상이 실재를 압도하는 상황을 '시뮬라시옹'이라고 한다. 최근 신종인플루엔자A(H1N1)와 관련해 벌어지고 있는 기업들과 소비자들의 행태를 보면 우리사회도 '시뮬라시옹'에 갇혔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14일 이후 신종플루 감염속도가 완만해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신종플루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실제 그 위험성을 압도하고 있다. 더욱이 이를 이용해 잇속을 챙기는 기업들까지 나타나면서 불안감을 더욱 키우고 있다.
최근 시중에 판매되는 여러 건강 보조식품들에는 어김없이 '이 제품을 사면 신종플루에 효과가 있다'는 식의 광고문구가 붙어 있다. 신종플루로 인한 사망자가 늘기 시작한 8월 말부터 대형마트 등에서 면역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진 홍삼 등의 매출이 배 이상 껑충 뛰면서 비슷한 기능을 홍보하는 제품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 것. 하지만 이는 본래 갖고 있는 건강증진 기능을 홍보하기보다는 공포감을 이용해 손쉽게 매출을 늘리려는 얄팍한 상술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건강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던 업체들까지 이런 추세에 편승하는 듯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화장품 업체들은 이제 '비비크림' 대신 '손세정제'를 발 빠르게 시장에 내놓아 마치 의약외품인 것마냥 홍보하고 있다. 도넛 업체들도 김치 도넛을 내놓으며 동참했고 심지어 신종플루에 좋다는 항균 스프레이까지 나왔다.
업계에서는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신종플루에 좋은 휴지까지 나올지도 모른다는 우스개 소리도 나온다. 휴지로 코를 풀면 세균을 억제해 신종플루를 예방할 수 있다는 홍보 마케팅도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한 업체가 '흑마늘이 타미플루보다 더 효력이 있다'고 거짓광고를 했다고 하니 전혀 가능성이 없지도 않다.
기업들이 신종플루 마케팅을 선택이 아닌 필수로 받아들이면서 소비자들의 공포감이 제품매출을 늘리고 이를 이용한 기업들의 과대광고는 더욱 큰 공포감을 조장하는 현상이 이른바 '신종플루의 경제학'이라는 한 업계 관계자의 지적이 빈말로 들리지 않는다.
'시뮬라시옹'에서 벗어나는 가장 강력한 방안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밖에 없다. 신종플루를 100% 예방하는 약은 없다. 평소 위생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 신종플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출처 :해우(海隅)의 백합국어사랑방(신문사설&칼럼) 원문보기▶ 글쓴이 : 해우(海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