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죄 짐을 지고서 곤하거든) 1. 죄짐을 지고서 곤하거든 네 맘속에 주 영접하며 새사람 되기를 원하거든 네 구주를 영접하라 2. 정결케 되기를 원하거든 네 맘속에 주 영접하며 생명수 마시기 원하거든 네 구주를 영접하라 3. 진실한 친구를 원하거든 네 맘속에 주 영접하며 네 맘에 평안을 원하거든 네 구주를 영접하라 4. 즐거운 찬송을 하려거든 네 맘속에 주 영접하며 평안한 복지에 가려거든 네 구주를 영접하라 [후렴] 의심을 다 버리고 구주를 영접하라 맘 문 다 열어 놓고 네 구주를 영접하라 (경배와찬양 224) 예수 우리 왕이여 이곳에 오소서 보좌로 주여 임하사 찬양을 받아 주소서 주님을 찬양하오니 주님을 경배하오니 왕이신 예수여 오셔서 좌정하사 다스리소서 | |
|
|
이사야 21:1 - 21:10 |
|
[오늘의 말씀 요약 ]
바벨론은 남방 회리바람처럼 갑작스레 적군의 공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곧 엘람과 메대의 군사들에게 함락당하고 약탈당할 것입니다. 바벨론의 방백들은 전쟁을 준비하지 않고 연회를 즐기기에 정신이 없어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 혹독한 묵시
1 해변 광야에 관한 경고라 적병이 광야에서, 두려운 땅에서 남방 회리바람같이 몰려왔도다
1 An oracle concerning the Desert by the Sea: Like whirlwinds sweeping through the southland, an invader comes from the desert, from a land of terror.
2 혹독한 묵시가 내게 보였도다 주께서 가라사대 속이는 자는 속이고 약탈하는 자는 약탈하도다 엘람이여 올라가고 메대여 에워싸라 그의 모든 탄식을 내가 그치게 하였노라 하시도다
2 A dire vision has been shown to me: The traitor betrays, the looter takes loot. Elam, attack! Media, lay siege! I will bring to an end all the groaning she caused.
3 이러므로 나의 요통이 심하여 임산한 여인의 고통 같은 고통이 내게 임하였으므로 고통으로 인하여 듣지 못하며 놀라서 보지 못하도다
3 At this my body is racked with pain, pangs seize me, like those of a woman in labor; I am staggered by what I hear, I am bewildered by what I see.
4 내 마음이 진동하며 두려움이 나를 놀래며 희망의 서광이 변하여 내게 떨림이 되도다
4 My heart falters, fear makes me tremble; the twilight I longed for has become a horror to me.
5 그들이 식탁을 베풀고 파숫군을 세우고 먹고 마시도다 너희 방백들아 일어나 방패에 기름을 바를찌어다
5 They set the tables, they spread the rugs, they eat, they drink! Get up, you officers, oil the shields!
☞ 바벨론 멸망, 구원의 서곡
6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가서 파숫군을 세우고 그 보는 것을 고하게 하되
6 This is what the Lord says to me: "Go, post a lookout and have him report what he sees.
7 마병대가 쌍쌍이 오는 것과 나귀 떼와 약대 떼를 보거든 자세히, 유심히 들으라 하셨더니
7 When he sees chariots with teams of horses, riders on donkeys or riders on camels, let him be alert!, fully alert!."
8 파숫군이 사자같이 부르짖기를 주여 내가 낮에 늘 망대에 섰었고 밤이 도록 파수하는 곳에 있었더니
8 And the lookout shouted, "Day after day, my lord, I stand on the watchtower; every night I stay at my post.
9 마병대가 쌍쌍이 오나이다 그가 대답하여 가라사대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바벨론이여 그 신들의 조각한 형상이 다 부숴져 땅에 떨어졌도다 하시도다
9 Look, here comes a man in a chariot with a team of horses. And he gives back the answer: 'Babylon has fallen, has fallen! All the images of its gods lie shattered on the ground!' "
10 너 나의 타작한 것이여 나의 마당의 곡식이여 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께 들은 대로 너희에게 고하였노라
10 O my people, crushed on the threshing floor, I tell you what I have heard from the LORD Almighty, from the God of Israel.
☞ 묵상도우미
묵시(2절) 계시. 하나님이 그분의 뜻이나 진리를 알게 해주시는 일
서광(4절) 좋은 일이 있을 징조 |
| |
|
|
|
☞ 혹독한 묵시(21:1~5) 이사야는 환상을 통해 광야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대한 두려운 상황을 목격했습니다. ‘해변 광야’는 바벨론을 가리킵니다(1, 9절). 이사야는 하나님이 엘람과 메대에 내리신 명령을 들었습니다. ‘속이는 자’와 ‘약탈하는 자’(2절)라는 말은 엘람과 메대가 바벨론과 동맹해 앗수르를 대적하다가 나중에는 도리어 바벨론을 대적한 것에 기인합니다. 엘람과 메대가 바벨론을 공격함으로써 바벨론에 억압당하던 나라들의 ‘모든 탄식’(2절)이 사라질 것입니다. 바벨론의 재앙이 너무도 크기에, 그 환상을 본 이사야는 해산하는 여인과 같은 고통을 느끼며 놀라고 떨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사야는 먹고 마시며 축제를 벌이는 자들에게 전쟁을 준비하라는 명령을 전했습니다. 여러 나라를 억압해 탄식하게 만든 바벨론의 결국은 징계와 패망입니다.
☞ 바벨론 멸망, 구원의 서곡(21:6~10) 본문은 먼 훗날의 상황이지만, 마치 지금 현실로 일어난 것처럼 묘사돼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파수꾼을 세워 바벨론을 멸망시킬 도구들인 마병대와 나귀 떼와 낙타 떼가 보이는지 자세히 살피도록 명령하셨습니다. 때가 되면 파수꾼은 마병대가 쌍쌍이 오는 것을 발견할 것이며, 바벨론이 함락되었다고 알려 줄 것입니다. 바벨론이 망했다는 외침은 유다의 포로 생활이 끝났다는 기쁨의 소식입니다. 바벨론 도성의 함락으로 신상(神像)들이 파괴될 것인데, 이는 바벨론의 모든 신이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만든 조각품에 불과함을 알려 줍니다. 이사야는 타작마당에 짓이긴 것 같은 유다 백성에게 바벨론의 함락 소식을 전합니다. 바벨론의 위협에서 벗어난 이스라엘에 구원의 서막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
| |
|
|
☞ 절대 순종 머피의 법칙은 ‘잘못될 소지가 있는 것은 어김없이 잘못된다’라는 뜻입니다. 또 다른 한 가지 법칙을 이야기할까 합니다. 즉 ‘쓰레기는 쌓이게 마련이다’라는 것입니다. 이 법칙이 맞는 말인지 확인해 보고 싶다면, 당신의 옷장이나 책상 서랍 혹은 차 앞 좌석 아래를 보십시오. 몇 년 전에 메릴린과 나는 11년 동안 살았던 집에서 이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버려진 쓰레기의 양을 봐서는 50년 이상은 더 산 집 같았습니다. 집 안에 있었는지조차 몰랐던 많은 물건이 나왔습니다. 쓰레기는 쌓이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단지 창고나 옷장, 자동차 좌석 아래에만 쌓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과 마음과 영혼에도 쌓입니다. 여기서 쓰레기란 걱정거리, 부담감, 두려움, 좌절 등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주일에 교회로 가는 일이 그렇게 기쁜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과 함께 찬양하고 성찬하며 설교 말씀을 듣는 것이 우리 안에 있는 쓰레기를 내버리는 데에 도움을 줍니다. 쓰레기는 쌓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쓰레기가 쌓이는 속도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절대 순종을 통해 많은 불필요한 짐들을 피할 수 있습니다. 「광야를 정복한 영적 거인」/ 마크 애터베리
☞ 한절묵상 이사야 21장 9절 흥미로운 것은, 세상에서 눈물이 여전히 마르지 않고 있는데 기뻐하며 웃는다는 사실입니다. 고통과 고난은 계속 찾아오지만, 구원받은 자의 행복을 몰아낼 수 없습니다. 기쁨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웃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모든 것이 합력해 선을 이룬다는 것을 아는 즐거움입니다. 넘쳐흐르는 기운은 하나님께 대한 좋은 가정에서 나옵니다. 유진 피터슨/ 리전트 칼리지 명예교수
☞ 김은숙 선교사의 세상을 보는 창
양심과 신앙 양심
양심(conscience)은 ‘함께’라는 접두어 ‘con’과 ‘알다’라는 동사 ‘science’의 합성어로서 ‘함께 아는 지식’을 뜻한다. 그러면 ‘누구’와 함께 안다는 것인가? 불신자들은 이 ‘누구’를 도덕적 표준을 묻는 우주적 도덕률이라고 하며, 신자들은 도덕적 표준을 묻는 하나님의 요구라고 한다. 양심은 이성에 속하는 기관으로 옳고 그름을 직관적으로 느끼고 판단하며, 옳은 일을 할 때 평안을 주고 악한 일을 할 때 가책으로 고통을 준다. 불신자의 양심이 자신의 생각, 말, 행동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가책을 느낄 때, 그것은 회개를 향한 움직임의 시작이 된다. 그러나 가책과 회개는 뚜렷이 다르다. 회개는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에서 완전히 돌이키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회개한 양심이 예수님을 영접할 때 중생 즉 구원에 이르게 된다. 오 할레스비는 양심의 특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양심은 정보들을 수집한 다음에 편견 없이 단순하고 공평하게 판결하며 증거를 재검토하지 않는 데서 최종적이다. 둘째, 양심은 절대기준이 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양심이 판결을 내린 후 반박, 설득, 항소를 통해 판결을 뒤집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양심의 기능은 중성이어서 사용자에 의해 더 예민해지거나 무디어지며 환경, 교육, 경험, 문화의 영향을 받는 데서 한계를 갖는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양심은 자신에게만 말하므로, 우리는 ‘양심에 따라 행했다’라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양심은 약해지거나 무감각해지며, 더러워지거나 화인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베드로전서 3:16에서 베드로는 선한 양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어떤 양심이 선한 양심인가? 그것은 예수님에 의해 중생한 양심을 말한다. 또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판단받은 양심을 말한다. 이렇게 신앙에 의해 보증된 양심은 성령에 의해 지속적으로 인도되고 교육돼야 한다. 왜냐하면 신앙 양심이라도 무시하면 마비되어 지시 능력을 잃게 되며, 약해지면 신뢰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신앙 양심을 버리고 사는 그리스도인을 일컬어 ‘파선한 배와 같다’고 했다. 얼렁뚱땅한 거짓말, 분홍빛 거짓말 등과 같이 거짓말에 관대한 한국 사회에서 쓸데없는 거짓말로 우리의 양심을 어둡게 하지 말자. 바울과 같이 우리도 ‘양심에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라고 증언하는 등경 위의 빛이 되자. 김은숙/The Third Base 선교회 대표 |
| |
|
|
● 내 유익을 위해 동료를 배반하거나 속인 적은 없습니까? 자기중심적 성품 때문에 주변 사람이 힘들어하지는 않습니까? ● 내가 듣기 위해 간절히 기다리는 파수꾼의 좋은 소식은 무엇입니까? 내 안에서 무너져야 할 바벨론은 무엇입니까? |
| |
|
|
저의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바벨론을 무너뜨리시듯 제 안의 교만과 이기심을 깨뜨려 주시고, 하나님의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거듭나게 하소서.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