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에 열심히 듣는 수업 중 하나가 '일본 문화:게임과 애니메이션'이라는 과목입니다. 말 그대로 일본 게임과 애니메이션 업계의 역사와 현황에 대한 수업입니다.게임 프로듀서와 애니메이션 감독 등 현업에 종사하는 전문가가 강사로 나와 업계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합니다.수강신청을 한 외국인 학생이 보통 수업의 배를 웃돌 정도로 인기가 높습니다.
이 수업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유럽과 미국쪽 학생들의 참여도가 높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정치나 역사, 경제 관련 수업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파란 눈의 학생들이 강실의 절반을 차지하고 열심히 강의를 듣습니다. 첫 시간에 돌아가며 수업을 듣게 된 동기를 말하는 시간이 있었는데,대부분 "어렸을 때부터 친숙했던 일본의 게임과 애니메이션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라고 대답합니다. 일부 학생은 일본 게임과 애니메이션에 대한 흥미가 일본 유학을 결심한 동기라고까지 말하더군요. 문화산업의 위력이 이 정도구나 싶었습니다.
그런 느낌을 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지난 수업이었습니다. 자국에서 히트했던 애니메이션 작품을 발표하는 시간이었는데, 유럽 학생들의 경우 대부분 일본 애니메이션을 꼽았습니다. 자국 TV 애니메이션의 절반이상이 일본 것이어서, 유럽에서는 '애니메이션=일본'이라는 인식이 강하다고 설명하더군요. 그러면서 화제가 됐던 애니메이션 몇 편을 소개했는데…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제목이 다르고 더빙한 언어만 달랐을 뿐, 제가 어렸을 때 즐겨 봤던 애니메이션들과 똑같았기 때문이죠. '알프스 소녀 하이디'(1974년 제작), '슬기 돌이 비키/꼬마 바이킹 소녀 비키'(1974년 제작), '프란다스의 개'(1975년 제작) 등등. 제 또래라면 어릴 적 한번은 봤을 만한 애니메이션 제목들이 독일과 이탈리아,프랑스 학생들의 입에서 튀어 나오더군요. 그 순간의 묘한 느낌이란.
일본 아니메의 '빛' …해외 진출의 역사
일본 애니메이션, 이른바 '아니메(アニメ)'가 언제부터 해외로 판매되기 시작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1963년 데츠카 오사무 감독의 '우주소년 아톰(鐵腕アトム)'이 미국에 수출된 것이 최초더군요. 그렇지만 아시아와 유럽 등 전세계로 활발하게 판매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들어서라고 합니다. 특히 1969년부터 시작된 '세계명작만화시리즈'는 당시 TV 애니메이션의 베스트 셀러였다고 합니다. 세계명작을 기초로 한 아동용으로 보편적인 정서를 담고 있는데다, 일본색도 강하지 않으면서 높은 작품성을 유지하고 있어 인기가 높았다고 합니다. 앞서 언급한 '알프스 소녀 하이디'와 '프란다스의 개'를 비롯해 '엄마찾아 삼만리'(1976년), '빨강머리 앤'(1979년) 등이 전세계 아이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동남아시아와 독일, 프랑스, 스페인,이탈리아, 그리고 일부 중동지역까지 수출됐다고 합니다.보통 20개국 이상의 국가로 수출됐으며, 인기 작품의 경우 판매 대상국이 40개국까지 달했다고 합니다.
당시 일본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강점은 저렴한 판매가였다고 합니다. 방송국 자체 제작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워낙 싼 가격이어서, 세계 각국의 방송국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고 하네요. 1980년대 들면서 인기가 더 치솟는데, 당시 방송자유화의 붐을 타고 생겨난 각국의 민방들에게 일본 애니메이션은 시간을 때워줄 더없이 매력적인 제품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싼 가격에 수출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의 해외판매 전략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국내 방송판매에만 전적으로 의지하기보다는, 해외판매로 제작비를 회수하겠다는 전략을 구축하고 아예 제작단계부터 수출을 염두에 둔 것이죠. 대신 더 많은 나라에 수출하기 위해, 아주 싼 판매가격을 책정했다고 합니다. 또 그런 편이 단기간에 제작비를 회수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일본 애니메이션의 필름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것도, 처음부터 재방송과 해외수출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애초에는 이렇게 제작비 회수차원에서 시작된 해외 수출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당시 해외판매는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이 승승장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영상매체에 민감한 시기의 아이들에게 거의 매일 TV로 접하는 애니메이션의 영향은 절대적이어서, 당시 전세계 아이들에게 일본 아니메가 '각인'된 것이죠.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도 일본의 아니메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열광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는 평입니다. 특히 일본 아니메가 아동용에 머무르지 않고, 성인과 액션 등 다양한 장르에서 수준 높은 화제작품을 양산하면서 현재는 전세계 TV용 애니메이션의 60%를 일본 아니메가 장악하게 됩니다.
아니메가 대중 문화에 끼친 영향
아니메의 인기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TV 시청률입니다. 미국에서 '아스트로 보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우주소년 아톰'은 최고시청률 65%를 기록했다고 합니다.'짱구는 못 말려'(1992년 제작)는 스페인에서 42%의 시청률을 나타냈고, '드래곤 볼'(1986년 제작)은 프랑스에서 무려 67%의 최고시청률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세계 명작 시리즈'의 경우 상당수 작품이 대부분 수입국에서 20%가 넘는 안정적인 시청률을 유지했다고 합니다.
또 아니메는 아이들의 꿈에까지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쳐 왔습니다. 전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 선수인 지단과 이탈리아 축구 대표 선수인 토티는 어릴 때 본 '캡틴 츠바사(キャプテン翼)'(1983년 제작)라는 축구 아니메를 보고 축구선수의 꿈을 키웠다고 합니다. '어택 넘버 원(アタック No.1)'(1969년 제작)이라는 배구 아니메는 이탈리아 사회에 배구붐을 일으켰다고 합니다.또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의 제작자인 워쇼스키 형제 감독을 비롯해 할리우드 영화 제작스태프의 상당수는 어릴 적부터 일본 애니메이션에 심취해, 영화제작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컸다고 합니다.
문화 컨텐츠로서 갖고 있는 파괴력도 대단합니다. 세계 70개국에 수출된 '포켓몬스터' (1997년 제작)는 완구와 캐릭터 상품 등을 포함해 최소 1조엔 이상의 경제효과를 낸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돌풍을 일으키며 하나의 사회현상이 됐으며,애니메이션으로는 처음으로‘타임지’ 모델이 되기도 했습니다.아니메를 중심으로 한 일본의 문화 콘텐츠 미국 수출액은 연간 50억 달러 규모로 철강 수출액의 3배가 넘는다고 합니다.
특히 최근 들어 아니메는 소재고갈에 처한 할리우드 영화 업계로부터 잇단 러브 콜을 받고 있습니다. 일본 아니메를 리메이크하기 위해 할리우드 메이저 회사들이 적극적으로 판권구입에 나서면서 더 귀한 몸으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일본 아니메를 원작으로 한 할리우드 영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제작되거나 제작준비에 들어간 상태라고 합니다. 자동차 경주 아니메인'마파고고고(マッパGoGoGo)'(1967년 제작)가 원작인 워쇼비츠 형제의 '스피드 레이서'는 올해 개봉됐고, '드래곤볼'은 내년 봄에 개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아키라'(1988년 제작)도 내년 여름 개봉을 목표로 준비 중인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프로듀서로 참여해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공각기동대'(1995년 제작)도 조만간 제작에 착수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홍콩과 프랑스 등 다국적 자본이 참여한 '블러드:더 라스트 뱀파이어'도 올 가을에 개봉될 예정입니다.이외에도 판권계약을 타진하거나 진행중인 일본 애니메이션은 상당수에 이른다고 하니, 최근 아니메는 확실히 상종가를 치고 있는 모습입니다.
아니메 성공 요인
일본 아니메가 이렇게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원작에 해당하는 만화 자체가 충실한 덕분입니다. 전세계에서 가장 큰 만화 시장답게 끊임없이 수준급 만화들을 아니메에 공급해주면서 번성할 수 있는 것이죠. 세계에서 유일하게 성인도 만화를 즐겨 읽는 나라답게 지난 2006년 단행본의 79%인 13억 5천만 권이 만화라고 합니다.국민 1인 당 1년에 13권 이상을 읽는 셈이죠. 만화 출판 시장의 규모만 5천억 엔 대에 이릅니다. 미국이 2백억 엔 대로 일본의 25분의 1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되실 겁니다.
더욱이 최소 십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만화작가 지망생들간의 치열한 경쟁은 만화의 질을 높여주고 있습니다.정기적으로 발간되는 만화잡지만 3백 여 개,이중 히트 잡지는 수백만부가 팔립니다.수만 대 1의 경쟁을 거친 작품만이 이 잡지에 실릴 수 있는 경쟁 시스템이다 보니,재미있는 스토리와 매력적인 캐릭터를 갖지 않으면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 일본의 만화업계라고 합니다.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만화는 대부분 이 잡지 톱5안에 든 작품들이라고 합니다.1970년대부터 분화되기 시작해 이제는 장르만 175개에 이를 정도로 시장이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것도 일본의 강점이라는 평가입니다.
아니메의 '그림자'…고급인력 종사자들 '혹사'
그러나 화려한 겉 모습과는 달리, 일본 아니메 업계 안쪽의 사정은 썩 긍정적이지는 않다고 합니다. 실제 제작비에 못 미치는 단가가 판매 기준가격이 되면서,종사자들이 혹사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보통 30분짜리 TV용 아니메 한편에 1400만 엔의 제작비가 드는데, 실제 판매가격은 70% 수준인 천만엔 정도로 여전히 20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합니다. 나머지 부족분은 각종 캐릭터 산업과 해외판권 등을 통해 충당하는 형태로 유지되고 있는데,이에 따라 제작현장이 피폐해지고 고급인력이 빠져 나가고 있다고 합니다.결국 이런 악순환의 구조가 고착화되면서,아니메 산업은 저가노동집약산업으로 굳어진 것이죠.
실제 아니메 종사자의 소득을 보면, 애니메이터와 연출가 등 전체 인력의 65%가 연간 3백만엔 이하의 수익으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시간당 급여로 계산할 때 약 5백엔 수준으로,편의점과 식당 아르바이트 기준 단가인 천엔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셈이죠. 제작편수는 한정된 상황에서 4백 개의 아니메 제작사가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왜곡된 가격체계가 수십 년 째 개선되지 않고 그대로 굳어진 것이죠.
그런데 이런 구조를 만든 장본인으로 비판을 받는 인물이 있는데, 바로 '일본 아니메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츠카 오사무입니다. '우주소년 아톰'의 제작 당시부터 터무니없이 낮은 단가로 수주해 버리는 바람에,이때의 가격이 이후 업계의 표준이 되면서 지금도 아니메 업계가 저 예산으로 허덕이게 되는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입니다.그도 그럴 것이 당시 '우주소년 아톰'이 제작비로 받은 돈은 편당 55만 엔으로, 당시 기존 제작비인 수백만 엔 수준을 크게 밑돌았다고 합니다.
또 일본 애니메의 해외 리메이크 붐도 겉보기와 달리 실속이 없다고 합니다. 주로 판권수출 형태로만 진행돼, 흥행수익과 비교할 때 실제 손에 쥐는 돈은 얼마 안 된다고 합니다. 보통 아니메의 판권이 6백만 엔에서 최대 3천만엔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허리우드 메이저들이 거둬들이는 수억 달러의 막대한 흥행수익과 비교할 때 큰 벌이가 안 된다고 합니다. 계약조건이 아무리 흥행이 잘 되더라도 수익을 나눠 가질 수 없는데다,보통 캐릭터 상품화 권리와 속편 제작권까지 넘기기 때문에 실제 수익은 미미하다고 합니다.어찌 보면 헐값에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꼴이죠.
그러나 업계의 이러 저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일본 애니메이션은 전 세계에서 미국과 쌍벽을 이루며 세계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특히 아니메는 일본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태평양 전쟁 등으로 과거 일본의 이미지가 호전적이거나 '경제적 동물'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지만, 요즘 서구의 젊은 층에서는 일본은 "소트프한 문화의 발신국"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합니다. 일본 정부가 캐치프레이즈로 삼고 있는 이른바 '쿨 재팬(ク?ルジャパン)'처럼 '매력적인 나라' 비쳐지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아니메가 있다는 평가입니다. 세계의 아이들에게 일본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확실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콘텐츠 코리아'를 지향하며 그 핵심이 되는 '킬러 콘텐츠'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고 합니다. 애니메이션의 경우, 우리가 강점이 있는 온라인 게임 콘텐츠나 3D 애니메이션, 모바일 애니메이션, 플래시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고 합니다. 곧 우리 애니메이션도 그 노력이 결실을 맺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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