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과 서양의 연극은 공통적으로 '축제의 형식'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래서 초기의 공연은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한꺼번에 공연을
관람하는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즐길수 있는 것이
공연의 원래적 기능이였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지금 우리가 구분하는 '대극장' 공연이 주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처음으로 소극장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파리의 '자유극장'과 베를린의 '자유무대', 런던의 '독립극장'이 바로 소극장 운동의
본거지 입니다. 소극장 운동은 희곡문학에 의존하던 공연의 방식이 점차 극장주의로
옮겨 가면서, 대형화, 축제화, 시각화를 추진해 나아간 것과 반대로
희곡의 내면적 표현, 섬세한 언어의 전달을 위한 '새로운 연극 운동'이고
연극형식으로는 자연주의 연극이 주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0세기 연극은 '극장주의'를 표방하는 대형 공연과 - 현재의 뮤지칼이 그 좋은 예 -
희곡의 문학적 표현을 전달의 수단으로 하는 소극장 공연 - "고도를 기다리며"와 같은
언어 중심의 연극 - 으로 크게 나누어 진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실정은 희곡과 공연이라는 양분화된 기능으로
대극장 공연과 소극장 공연이 엄격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닙니다.
즉 대극장과 소극장은 객석의 규모와 공연제작의 여건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대극장'에서의 연기와 '소극장'에서의 연기가 다르듯
연출의 방식과 공연의 형식도 엄연히 다른 것입니다.
연극미학을 두가지 형태의 공연에 비유해 볼 때
대극장은 '형식미'와 '기술적 표현의 가능성', '시각화'에 집중한다면
소극장은 '내용미'와 '인간적 표현의 가능성', '청각화'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봄날"이 좋다고 하는 관객도 있지만
"광주의 비극"을 전하기에 합당한 방식이였는가에 대한 반발도 있습니다.
연극은 '눈에 보이는 것'만 이해하기 위한 예술은 아니라는 거죠.
영상시대의 공연물은 대부분 대형화, 시각화를 통한 '의미의 확산'을 의도하지만
때로 인간의 절대적 진실에 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작은 목소리'를 소중하게 여기는 '의미의 집적'이 연극에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흑백논리'로 소극장 연극과 대극장 연극을 구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표현의 방법과 전달/감동의 차이는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목적을 둔' 대형공연이 아니라
'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참된 공연 혹은 제대로 의미를 전할 수 있는 공연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감상자의 측면에서 본다면 소극장 공연보다 대극장 공연이 오히려
더 흥미로울 수 있습니다. 시골의 우물가에 놓인 표주박 보다 번쩍이는 플라스틱이
더 멋져 보일 수도 있으니까요. 아직은 '초기 수공업 단계'에 머물러 있는 연극이지만
정성과 뜻이 분명하다면 '첨단 산업'으로 향하는 영화와 구분되는 '삶의 진실' 혹은
' 사람이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야 하는 연극 본래의 사명을 다 할수 있지 않을까요 ?
좋은 소극장 공연이 많아져야 합니다. 그래야 대극장을 메우는 연극인들의 기량도
개선될 테니까요. 마이크를 이용해서 소리만 질러대는 연극이 속삭이는 목소리보다
정겹지 않을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요 ?
'축제의 형식'에서 '예술형식'으로 발전하는 연극의 역사적 흐름과
예술의 '동시대적 의미'에 관해 다시 한번 되돌아 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