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04 마 6:10; 시 143:10 나라가 임하시오며 찬송: 363, 508장
주기도문의 구조: ‘기도의 대상-기도의 내용-찬양’의 구조로 되어 있다.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시며, 기도의 내용은 두 가지로,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에 충만하기를 간구하는 것과 그 영광을 위한 나의 삶에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지난주에 첫 번째 간구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요청 의미를 살펴보았다. 이것은 하나님을 거부한 이 피조세계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하기를 바라는 간구이다. 즉 인간과 모든 피조세계가 하나님을 주인으로 온전히 인정하며 그분을 따라가고자 하는 마음, 그분과 교제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기를 사모하는 간구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주님의 재림이 속히 이루어져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세상으로 바꾸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소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후 두 번째의 간구를 가르쳐 주시는데, 그것은 “나라가 임하시옵소서”이다. 구역에서는 우리가 전에 외었던 “나라이 임하옵시며”로 되어 있고, 개역개정에서는 “나라가 임하시오며”로 수정되어 번역되었다. 같은 의미이지만, 현대인들에게 익숙한 말로 번역한 것이다. 우리 교회는 이렇게 수정된 번역을 따라 기도를 하고 있다.
칼빈은 그의 기독교강요 3권 제20장 ‘기도’ 편에서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물론 여기에 아무 것도 새로운 것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간구가 첫 번째 간구와 별도로 나타나 있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무기력하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이미 철저히 알고 있어야 할 사실을 다시 명확하게 심어주기 위해서 그것을 길게 다루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에 먹칠을 하는 모든 것을 완전히 멸하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한 다음에, 곧바로 이어서 그와 거의 동일한 간구를 다시 하는 것이다. 곧, ‘나라가 임하시옵소서’라는 간구가 그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된다는 것, 즉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면, 마땅히 그분이 다스리시는 것에 대해 간절한 소망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것을 신약성경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로 설명한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와 같은 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한다면 피조물은 반드시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편만하여 충만하게 될 것에 대해 간구해야 하는 것은 마땅할 것이다. 그래야 그 통치 아래 순종하는, 즉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에 대한 고백이 따라오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주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치하셔서 우리가 점점 더 주님께 순종하게 하옵소서”의 간구인 것이다.
예수께서 오셔서 주기도문을 가르치시기 전에 이미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고 선언하셨다.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이 되었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부름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통해 성령 하나님을 보내시고, 성령 하나님께서 택하신 성도들을 부르기 시작하심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며 그분의 계명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기를 사모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풍성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귀한 자리에 들어왔다면, 그렇게 부름을 받은 성도라면 마땅히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하는 경건한 삶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알리며, 세상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을 버리고, 만왕의 왕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면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이미 우리는 이 내용을 첫 번째 간구에서 아버지께 요청하였다.
그렇다면 두 번째 간구에서는 마땅히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날까지 성도의 삶이 세상을 거슬러 살아가는 삶이 되게 하시기를 간구해야 하며, 주님의 교회를 보존하시고 더욱 흥왕케 해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은 성도로서 마땅할 것이다. 이것이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는 성도의 자세가 될 것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나라가 임하시옵소서”의 간구가 이루어지게 된다.
하지만 현실의 교회는 이러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회원인 성도 자체가 아직은 완성이 되지 않은 것에 기인하는 것이 가장 크다. 여전히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연약하기 때문에 어느 때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세상의 요구와 타협하기도 하며, 성경을 많이 읽는다고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신학적인 부분에서 정확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기도 하며, 어느 때는 이단의 공격에 힘없이 무너지기도 한다. 어느 때는 세상적으로 복을 받는 것을 지나치게 추구하기도 하며, 어느 때는 영적으로 치우쳐서 신비주의적인 신앙에 빠져 있기도 한다. 어느 때는 영적인 부분에 무관심함으로 무기력하게 신앙생활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든 상황은 우리 주변에 있는 마귀의 세력으로 인한 것들이다. 그들은 주님께 대항하여 스스로 높아진 자들인데, 이들의 모든 악한 궤계로 인하여 연약한 우리가 그 유혹에 쉽게 넘어감으로 일어나는 일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마귀와 그의 추종 세력들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고 그분의 다스리심에 순종하며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좇아 살아간다면 마귀의 간계를 밝혀내어 그것들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삶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간구하며 그 나라를 힘입어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기 위해 자신의 신앙을 세워가기에 게으르지 않아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아직은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이 되지 않았음을 가르쳐 준다. 왜 그런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는 이미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악의 세력을 완전히 없애시지 않으셨다. 여전히 사탄의 무리들은 성도들을 유혹하여 믿음에서 떨어지게 만들고 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를 사탄의 유혹에서 분명히 붙드셔서 우리의 믿음을 지키실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삶은 우리의 영적 전쟁이 지속되고 있음을 가르쳐 주며, 우리는 이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미’ 임하였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 즉 하나님의 통치의 완성은 언제 이루어지는가? 이 완성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영원한 왕권을 행사하실 때 이루어진다.
따라서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기관으로 교회를 세우신 것이고, 교회에 하나님의 통치에 대해 증거하도록 부탁하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기관으로 세움을 받았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하나님께서 영원히 통치하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가 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서 완성이 되기를 간구해야 하는 것은 마땅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첫 번째로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에 충만하여 그 영광으로 인해 피조세계가 온전히 하나님을 즐거워하게 해달라는 간구를 하도록 한 것이며, 두 번째로 이에 대한 실제적인 요청으로 그리스도께서 어서 오시기를 간구하라고 가르쳐 주신 것이다. 즉 교회에 모인 성도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에 대한 소망으로 가득하여 우리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사탄과 그의 추종 세력을 몰아내 주셔서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하게 이루어져, 이제 완성이 되어서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영광을 즐거워하는 일이 가득하도록 간구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라가 임하시옵소서”의 의미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성도는 언제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그 말씀이 지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늘 애를 써야 할 것이다. 따라서 두 번째 간구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풍성한 이해와 순종에 대한 요구도 들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시 143:10은 이렇게 노래한다.
시 143:10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주의 영은 선하시니 나를 공평한 땅에 인도하소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하는 성도는 마땅히 그 날이 어서 오기를 소망하면서 그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 그 가르침을 따라 주의 뜻을 행하게 해달라는 간구를 해야 마땅한 것이다. 그럴 때에라야 우리는 주께서 예비하신 공평한 땅에 이르게 될 것이며, 우리의 신앙을 무너뜨리려는 이 세상의 여러 가지 유혹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에게 반항하는 세력들에 대해 물리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게 될 것이다. 여기에 두 번째 간구의 참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