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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야기 교회사 원문보기 글쓴이: 이한복
칼빈의 성찬론 연구
Ⅰ. 서 론
21세기는 ‘변화의 시대’이다. 최근의 정보화, 다양화, 개성화, 새로운 통합과 분리 등의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는 ‘변화의 시대’의 특징들을 보여주는 단면들이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요구들은 보다 근본적인 것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어느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문화와 종교를 포함한 지구촌 전체에 밀려오는 변화의 물결이다. 필자는 포스트 모던시대의 한국교회적 상황을 ‘한국교회의 르네상스 시대’라고 정의하고 싶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에 개신교 선교가 시작된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교회가 개혁되어야한다’는 외부적인 평가와 요구들, 그리고 내부적인 반성과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자각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안고있는 해결해야 하는 문제점들은 너무도 다양하고 풀어가기에 힘겨운 과제들이 많다. 그런데 교회가 창조주의 뜻에 합당하고 바르게 서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바른 예배의 회복이 있어야한다. 바른 예배의 회복은 교회 공동체를 예수의 정신으로 무장하게 만들고 예수의 삶의 의미를 경험하고 깨닫게 하여 제자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교육적인 효과를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교회는 예배의식에 있어서 교회역사의 전통 위에 뿌리를 두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교회마다 목회자의 의식에 따라 예배의 순서가 정해진다. 또한 많은 교회들의 예배는 지나칠 정도로 말씀만이 강조되는 설교 중심적인 예배를 하고 있다.
이러한 예배는 복음의 핵심을 오감(五感)을 통하여 전달하는 ‘성찬 예식’을 약화시켰으며 성찬예식을 연중의 특별한 의식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제 한국교회는 우선적으로 예배에 대한 회복이 필요하다. 이것은 예배의 두 기둥인 ‘말씀’과 ‘성찬’이 잘 조화를 이루는 예배로의 회복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초대교회부터 중세시대까지, 그리고 특히 종교개혁자인 칼빈의 성찬론에 대하여 연구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B. 연구의 범위와 방법
필자는 본 소고를 연구함에 있어서 ‘칼빈의 성찬론’에 대해 객관적으로 접근하려고 한다. 이 말은 칼빈의 성찬론 역시 역사적 산물이며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나의 이러한 입장은 칼빈의 성찬론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이것은 칼빈의 성찬론 역시 ‘하나님의 경륜’과 ‘역사의 자녀’라는 생각에서이다. 이러한 역사적 접근은 칼빈의 개혁사상을 계속적으로 발전시키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또한 필자는 우선적으로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중심적으로 인용하며, 다음으로 칼빈의 신학사상과 관련된 서적들을 통해 이해를 도우려고 한다.
필자는 본 소고의 전개에 있어서 이러한 연구범위와 방법에 따라 본 소고를 구성하려고 한다.
제Ⅰ장에서는 칼빈의 성찬론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은 무엇인지에 대하여, 그리고 연구의 범위와 방법에 대해 나의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제Ⅱ장에서는 칼빈의 성찬론을 논하기에 앞서서 성찬론의 역사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해보았다. 이 장에서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초대교회사)’와 ‘교부들의 성만찬에 대한 이해’는 어떠했는지를 정리하였다. 더 나아가 중세시대의 성찬논쟁들에 대하여 살펴보고, 앞선 개혁자인 위클리프와 후스의 성찬이해를 통하여 과연 칼빈은 어느 시대, 누구의 성찬에 대한 견해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지, 또한 칼빈의 성찬론의 ‘역사적 라인’에 대해 파악해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또한 칼빈의 스승이며, 그 보다도 한 세대 앞선 종교개혁자 루터와 츠빙글리의 성찬론에 대하여도 간략한 정리를 통해, 칼빈의 성찬론의 독특성과 차이점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한다.
제Ⅲ장에서는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중심적으로 구체적인 ‘칼빈의 성찬론’을 소개하려고 한다.
제Ⅳ장에서는 요약 및 결론을 통해 본 소고를 마치려고 한다.
Ⅱ. 성찬론에 관한 역사적 고찰
A. 초기 기독교 공동체와 교부들의 성찬이해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주로 저녁에 모여 예배하였다. 하지만 150년 이후부터는 아침에 모여 예배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배는 2부로 드려졌다. 소위 말씀 예배에는 모든 사람이 다 참여하였으며, 성찬 예배는 세례 받은 자만이 참여하였다. 그러나 기독교가 공인되고 교회가 커지면서 애찬의 관습은 자연히 소멸되었다.
성례가 교리 논쟁의 쟁점이 되기는 삼위일체론과 기독론의 논쟁이 있고 난 후 중세에 접어들어서부터였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속사도교부들을 비롯하여 여러 시대의 신학자들도 이미 성례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였다. 세례에 관한 견해는 대체로 성만찬에 관한 이해 이상으로 실제론적으로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성례론의 쟁점이 된 것은 세례보다는 성만찬에 관한 교리였다.
사도시대 직후의 성만찬의 역사에 대한 자료들은 희소하며 이들 증거의 대부분도 확실하지 않다. 사도 이후의 교부들과 알렉산드리아 학파를 제외한 초대교회의 교부들이 성만찬에 관하여 실재론적 견해를 갖고 있었다. 즉, 성만찬의 떡과 포도주가 곧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고 주장하였다. 예배자는 성만찬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오심과 임재하심을 간구하고 체험한다고 하며, 성만찬은 인간에게 영원 혹은 영생을 전달해 주는 수단이라고도 말한다.
‘12사도의 교훈서’라고 전해지는「디다케」는 성만찬을 “영생을 위한 영적 양식”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이그나티우스는 그것을 “불멸의 약”, “죽음을 막는 해독제” 라고 하며, 가현설은 성찬이 우리의 죄를 언하여 고난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 이라는 것을 부정하였기 때문에 비난받은 것이라고 한다. 저스틴, 이레니우스, 터툴리안은 성찬을 실재론적으로, 즉 떡과 포도주가 주님의 몸과 피로 변하는 것으로 이해하였으며, 클레멘트와 오리겐은 영적으로, 즉 떡과 포도주는 주님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런데 변화설을 말하는 실재론적 이해가 더 지배적이었으며, 3세기에 이르러서는 성찬을 제물로 이해하는 사상이 현저한 것을 발견한다.
1. 저스틴(Justin Matyr, 약l00~165)
저스틴은 성찬을 성찬을 가리켜 말하면서, 우리는 그것을 보통의 떡이나 음료로 받지 않는다고 하고 그것은 인간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고 하였다.
2. 이레니우스(?~약200)
이레니우스는 성만찬을 떡과 포도주로 드리는 희생 제물이라고 하였으며, 교회의 기도를 통하여 성령은 로고스를 떡과 포도주에 결합시키며, 그리하여 그것을 이전과는 다른 어떤 것, 즉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만든다고 하여 변화설(變化設)을 말하였다. 그는 성찬론을 통하여 이단(the Gnostice)을 논박하는 것이 주목적이었으며, 특히 육체와 물질을 경멸하는 자들의 모순성을 들추어내려고 하였다. 그는 성만찬을 떡과 포도주로 드리는 희생 제물이라고 하였으며, 성찬제정사(Einsetzungsworte)를 통하여 성령은 로고스를 떡과 포도주에 결합시키며, 그리하여 이전과는 다른 어떤 것, 즉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간주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성찬은 떡과 포도주로 드리는 희생제물 이라고 강조라며, 성찬의 ‘실재론적 견해’와 ‘희생제사적 성격’의 이론을 체계화한 최초의 사람으로 보여진다.
3. 키프리아누스
동방교회에서는 4세기에 이르러 변화설(變化設)을 좀더 분명히 믿었다는 흔적을 본다. 키프리아누스는 “감독은 그리스도께서 행한 것을 본받아 교회에서 참되고 온전한 희생을 아버지께 드린다.”고 말하여, 교직자들이 제사장임을 암시하였으며, 성만찬이 제물(祭物)이 됨을 말하였다.
4. 예루살렘의 시릴(Cyril of Jerusalem)
시릴은 자신이 쓴 <Catecheses Mystagogicoe>을 통해 새로운 단계의 성찬이론을 말하고 있다. 성찬식 제정의 말씀들의 축자적인 해석, ‘형태’ 또는 ‘유형’이란 단어의 사용과 ‘영적인 빵’과 ‘영적인 음료’라는 용어들이 모두 사용되고 있다. 그는 ‘변한다’든지 ‘전환한다’는 동사를 사용하면서 지적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가나에서 물을 피와 유사한 포도주로 변형시켰으므로 성찬의 향연이라는 엄숙한 식전에서 비슷한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보았다. 시릴은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대상은 희생의 제물이 될 그리스도시라고 말하고, “이것은 나의 몸이니” 하는 말씀에 비추어 보아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것이었다. 성령께 부르짖음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변화(metabole)라고 하였다,
5. 닛사의 그레고리
닛사의 그레고리는 떡은 봉헌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성체(性體)가되며, 그것이 음식의 형태로 우리 몸의 소화 기관에 섭취될 때 죽음의 독소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또한 가시적인 물체의 성질에 요소의 변화가 일어나며 새로 빚어진다고 하였다.
6. 크리소스토무스(Johannes Chrysotomus, 344-407)
크리소스토무스는 성만찬에 대하여 실제론적인 표현을 사용하였다. 그는 “빵과 포도주는 못 박힌 몸인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된다”며, 성만찬 시에 떡은 뮬질의 변형 (transform)을 통하여 진정한 그리스도의 몸이 되며, 우리는 그것을 볼 수도 있고 먹을 수도 있다고 하였다.
7. 터툴리안(Teryullian)
터툴리안은 성만찬 이론을 체계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떡을 몸의 표상(figura corporis)으로 보았으며, 몸을 나타내는 것이라고도 말하였는데, 이러한 표현들은 상징주의(象徵主義)를 암시하는 말로 이해된다.
8. 오리겐
오리겐은 상징주의를 말한 대표적인 신학자였다. “성찬에 있어서 몸은 전형적으로 상징적인의미에서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찬을 받는 것은 산 떡이신 로고스를 참으로 먹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말씀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성만찬에 대한 상징주의적 견해는 오리겐에 의해 의식적으로 가르쳐 졌다. 가이사리아의 유세비우수, 바실리우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 등도 오리겐의 영향을 받았고 아타나시우스도 역시 오리겐의 영향을 받았다.
9. 테오도레트(Theoderet, ?~457)
안디옥학파는 고린도전서 l1:24~34절의 말씀을 해석하면서, 성만찬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테오도레트는 말하기를 “성찬의 떡과 포도주는 물질 .그대로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경건한 신자의 마음에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된다.”고 하였다.
10. 암브로시우스
“..., 이제 우리는 신성한 기도의 신비에 의해서 주님의 살과 피로 변화되는 성례를 행할 때마다...,” 어거스틴의 회심에 크게 영향을 미친 밀라노의 감독 암브로시우스는 변화설을 말하였다.
11. 어거스틴
어거스틴은 암브로시우스와는 달리 성찬을 상징적으로 이해하였다. 그는 “성찬에서 그리스도의 몸은 단지 상징에 불과하다”고 했다. 어거스틴의 성찬에 대한 이해는 중세를 거쳐 더 신학화되었으며, 마침내 변화설을 신학화한 화체설과 제물 사상을 따르는 로마 카툴릭 교회와 상징설의 전통을 따르는 개신교가 분열하게 된 중요한 요인들 가운데 하나가 된다.
B. 중세시대의 성찬론
성찬론과 관한 교리의 기반이 마련된 것은 9세기에 들어와서 프랑크 왕국내 신학자들의 고심하고 노력한 결과 였다. 중세초기에 있어서 핵심적인 문제는 성만찬 시에 주님의 임재가 어떠한 방법으로 이루어지는가 하는 문제였다. 즉 그리스도의 임재를 실재적 임재를 상징적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문자적으로 이해할 것인가? 의 문제였다. 이로 인하여 9세기들어 성찬과 관련한 논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1. 9세기 성찬논쟁
파스카시우스 라트베르투스(Paschaius Radbertus, 790년경~856/59) 코르비(Corbie) 수도원의 원장 파스카시우스 라트베르투스는 그의 저서 「주의 몸과 피에 관하여」에서 성찬론의 변화설을 말하였다. 그는 성찬에는 상징(象徵)과 실재(實在) 둘이 다 있다고 하면서, 성찬이 변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볼 수 있고 감각할 수 있는 외적인 형상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것이지만, 성만찬 시에 주님께서 실제적으로 임재 하신다는 교리를 제시한다.
라바누스 마루스(Hrabanus Marus, 780~856) 파스카시우스의 실제적 임재론에 반하여 라바누스 마루스는 떡과 포도주는 그냥 상징일 뿐이라고 하면서도 변화설을 어느 정도 인정하였다. 즉, 떡과 포도주가 신비적으로, 그리고 성례적으로(sacramentally)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된다고 하였다. 라바누스 마루스는 플다(Fulda)의 수도원장으로 있다가 847년 이후 마인츠의 대주교가 된 신학자이다.
라트랄누스(Ratramnus, ?~868) 상징설을 좀더 명확하게 말한 이는 라트랄누스였다. 그는 떡과 포도주 안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숨어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그리스도의 영적인 몸이요 영적인 피일 뿐이라고 했다. 성만찬의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이므로 신자가 받는 것은 그리스도의 진짜 살과 피가 아님은 물론이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떡과 포도주는 아니라고 했다. 성찬에서 우리는 더 고상한, 하늘나라의 신적인 것을 받는다고 하고, 그것은 믿는 사람만이 볼 수 있고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9세기 성찬논쟁의 결과, 성만찬에 대한 두 가지 견해 중 많은 사람들이 파스카시우스 라트베르투스의 실제적 임재설을 선호하게 되었다. 그리고 9세기에 이미 화체설(transubstanti
-ation)을 말한 사람들도 있었다. 할버슈타트(Halbrstadt)의 하이모(Haimo, ?~853)는 실체, 즉 떡과 포도주의 실체는 본질적으로 다른 실체로, 즉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고 주장했다.
2. 11세기 성찬논쟁
성찬론은 l1세기에 다시금 쟁점화되었다. 베렝가(Berengar, ?~1088)는 반실제론적인 상징주의를 대변하는 교리를 말하였다. 떡과 포도주는 봉헌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된다. 그러나 실체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물질의 형상이나 본질이 변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떡과 포도주의 겉모양이 변하지 않는다면 실체도 변하지 않는다. 봉헌을 통하여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성례 (sacrament)가 된다.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징(significant)한다. 그것들은 유사물(similitudo)이요, 징표(signum)요, 비유(figura)이며, 언약(pignum)이다. 그러므로 떡과 포도주는 본래 그것대로 남는다고 했다. 실체는 변하지 않으나 새 것이, 불 가시적인 것이 실제 못지 않은 요소를 통하여 천상에 계시는 그리스도께서 전적으로 임재하신다. 그리스도의 몸은 하늘에 계시므로 그를 끌어내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사제의 봉헌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능력이 임재하시고 그가 영적으로 임재하신다. 베렝가의 성찬론은 칼빈과 개혁주의자들의 성찬론을 방불케 하는 것이었다.
그에 반하여 구아문(Guitmund)은 떡과 포도주에 변화(mutatio)가 있게 되는 것인데, 그리스도깨서 제정하실 때 말씀하신 그대로 상징적인 변화가 아니고, 본질적인 변화가 있게 된다고 하였다. 유고(Hugo)는 봉헌의 말씀을 통하여 떡과 포도주의 진정한 실체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고 하였다. 즉, 떡과 포도주의 외형은 그대로이지만 본질은 다른 본질로 변화한다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몸은 편재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원하신다면 지금 이 시간에 지상에 오셨듯이 성만찬에 임재하신다고 하였다.
3. 12세기 이후 화체설의 확정
1215년 제4차 라테란 회의와 l545~1563년의 트렌트희의, 1439년 플로렌스 회의를 거치면서, 현재 로마 카톨릭이 견지하고 있는 성찬시의 떡과 포도주는 사제가 봉헌의 말을 할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화체설을 확정하게 된다.
C. 앞선 개혁자 위클리프와 후스의 성찬론
1. 위클리프(John Wycliff, 1324-1384)
위클리프는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예수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카톨릭의 화체설(transubstantiation)을 부인했지만 성만찬의 성례적 중요성을 인정하면서 ‘유용한 표징’(an effectual sign)이라고 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빵은 그 자체로 남아있고 그리스도는 빵 안에 실제로 현존한다. 그렇지만 이 현존은 질료 자체가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즉 빵은 그리스도의 몸이지만 빵 자체가 변화하는 것은 아니고 그 질료 자체는 빵으로서 남아있다는 잔류론(consubstantiatio)을 주장한 것으로, 빵과 그리스도의 몸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그의 견해는 후일 루터가 갖게 될 견해 즉, 공재설(consubstantiation)과 유사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클리프는 그 자신이 충직한 교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견해와 의문들에 대한 판단을 교황의 판단에 맡겼다. 그러나 그의 성만찬에 대한 견해는 1381년 옥스포드 박사회의(Oxford council of doctors)에서 정죄되었다.
2. 얀 후스(Jan Hus, 1367-1415)
카톨릭의 견해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빵에 육체적으로 현존하고 그 몸은 물론 살아있다. 그러므로 그의 피도 그 안에 있기에 회중들에게 두개의 요소를 모두 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리스도께서 “이것을 받아 마시라”고 하신 것은 평신도들에게 하신 것이 아니라 사도들 즉 사제들과 감독들에게 하신 것이라고 주장한다. 부연하면,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신성한 피이므로 쏟거나 흘리는 것은 신성모독의 죄를 범하는 것으로서 빵을 떨어뜨리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이기에 두려움으로 사제들에게만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후스는 성만찬에서 이 두 요소를 모두 베풀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성만찬을 위험스런 의무가 아니라 초대교회의 중요한 신학적■영적 의미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멋진 유산(wonderful privilege)을 되살리기를 원했다. 그러므로 후스는 성도가 자주 두 요소의 성만찬을 받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콘스탄스 공의회는 1415년 6월 15일에 두 요소 성만찬 시행을 금지하고 평신도들에게는 빵만을 제공할 것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후스에 대한 비난의 이유는 더욱 심각한 오해에 기인하였다. 그것은 후스의 성만찬 견해가 위클리프를 추종하고 있다는 공의회의 판단이었다. 이것은 전적으로 공의회의 자의적인 것이었고 무지가 초래한 결과였다.
후스는 화체설을 전면 부인하지는 않았다. 성찬의 떡과 포도주가 봉헌의 말씀 때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것을 완전히 배격하지는 않은 것이다. 그러나 후스는 성만찬에서 빵과 포도주가 축성된 후에도 빵과 포도주 그 자체로 남는다는 위클리프의 견해를 가진 자로서 정죄되었다.
성만찬에 대한 후스의 이러한 신학적 입장 외에도 성사의 효력이 그들의 인격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는 이유 또한 정죄의 한 원인이 되었다. 후스의 이런 주장은 성만찬 집례자의 도덕성 즉 적법성이 요소(material : 빵과 포도주) 자체보다 중요하다는 것으로서 위클리프의 견해와 유사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주장은 후일에 루터를 비롯한 개혁자들의 전통에 연결되는 중요한 성례이해라고 할 수 있다.
D. 종교개혁자 루터와 츠빙글리의 성찬론 비교
1. 그리스도의 임재
a. 루터
루터에 의하면 하나님에 대한 특수한 지식은 오직 말씀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며 하나님은 언제나 그의 말씀의 어떤 외부적 표지를 주셔서 그의 사랑과 자비를 사람들이 분명히 믿게 하시는데 성례전이 그 표지의 하나라고 한다. 루터는 구약에서 노아에게 주신 홍수 후의 무지개와 아브라함에게 주신 할례와 구약의 여러 희생제사와 신약의 말씀과 성육신과 세례 등이 모두 그 표지에 속한다고 보고 이러한 방편들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을 논하거나 하늘 나라로 가는 특별한 길을 스스로 만들 수 없다고 본다. 따라서 성찬은 물질적인 표상이 아니고 오직 말씀으로 형성되는 것이며 합리적이고 율법적인 종교의 과오를 막는 효과를 가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루터의 성찬 교리의 근본 원리와 그리스도의 임재의 방편은 말씀과 결부된다. 성찬 의식문은 독특한 의미로 그리스도의 현실 임재를 받도록 강요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말씀은 지금, 여기서 바로 그것을 듣고 믿는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살아있는 것으로 루터는 생각한다.
루터에 의하면 말씀이 예전을 만드는 까닭은 성만찬의 떡과 포도주는 하나님의 말씀이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한 아무런 의미도 없기 때문이며 예전의 제정의 말씀에서 주어진 약속에 대한 신앙과 결부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은 신앙을 돕고 촉진시키는 표적에 불과한 것이며 말씀에 대한 신앙 없이는 예전은 무익하다고 보는 것이다. 모든 것이 말씀에 의존하고 말씀이 성찬에서 그리스도의 임재를 선포하는 것이니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그리스도가 현존하신다고 보기 때문에 루터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큰 보고는 없을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말씀이 없는 성만찬은 있을 수 없고 말씀은 주님의 임재와 구원의 은총을 전달하는 방편이 된다.
루터는 그리스도의 몸의 편재성을 주장하였다. 즉 떡과 포도주는 물질이요 상대적인 요소로서 그 아래에 그리스도의 참된 살과 피가 존재하고 있지만 그러나 은폐된 모양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보이지 않으나 그 본질을 이루고 있다. 이 성물질이 그리스도의 몸에 관한 신비스런 관계를 해명하기 위하여 루터는 가열한 철을 비유로 든다. 즉 철과 열은 별개의 것이지만 가열된 때에는 철은 열과 일체가 되며 특수한 존재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루터는 이 비유에서 그 공재가 어떠한 모양으로 실현되는지는 설명하지 않고 그리스도 자신이 믿는 자들과의 인격적 친교 가운데 임재하신다고 현실 임재의 교리를 채택하였다. 루터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란 용어는 교회 안에서 선포되는 산 말씀을 가리키지만 이 말씀의 진리는 기록된 말씀에 의존해야 된다는 조건으로 제약되어 잇다. 루터는 의식문의 용어를 상징적으로 해석함은 불 경건하다고 한다.
루터의 성찬의 개념은 본질적으로 사귐이며 예물도 희생제물도 아니며 이것은 개인의 영혼이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와 직접적인 연합에 의하여 만나고 사귀는 것인데 이 개념은 말씀이 두 가지 기능을 이룸을 말한다. 그 기능의 하나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으로서의 말씀을 통해서 주님의 영광과 은혜가 예배자들에게 나타나며 또 하나는 주님께서 그의 말씀으로 신도들의 영혼에 임재하시고 회중의 신앙을 끌어내어 발전시켜 성령과 함께 살며 주님께서 교회 안에 있는 예배자들의 심령에 직접적으로 계시한다는 것이다.
루터는 그리스도께서 성찬에 직접 주인으로 임재해 계셔서 그의 몸과 피를 사람들에게 주시며 은혜를 주시는 것이므로 곧 하나님의 역사라 하였으나 덕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라는 것을 긍정하면서도 화체설은 거부하였다. 그리스도의 몸은 하늘에만 국한하여 계실 수 없고 하나님의 오른편이란 말이 전 우주를 지배, 포섭하는 그의 오른손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몸은 돌이나 불이나 물 속에도 있을 수 있으며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것을 우리에게 지시하는 곳에 있게 된다고 루터는 그리스도의 편재를 설명한다.
루터는 말씀과 그리스도, 또 신앙과 그리스도를 언제나 결부시키고 있으므로 이 편재설은 범신론이 아니고 어디나 말씀이 계시는 곳에 그리스도가 계시고 어디서 찾든지 인간이 찾는 곳에 그가 계시는 것을 말한다.
b. 츠빙글리
츠빙글리는 성찬 의식문의 말씀을 몸과 피를 의미하는 말의 동의어로 보고 성찬식의 그 말씀은 상징적인 것이라고 한다. 츠빙글리가 말하는 표상은 성찬식에 계시지 않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을 말한다. 그는 지리적 관념을 가지고 부활하여 승천하신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기 때문에 지상의 성찬의 장소에 동시에 계실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요한 6:22-59의 만찬을 영적 음식의 의미라고 하고 성찬을 믿는 형제들과의 공동식사로 간주하였고 그리스도는 본질적으로나 실제적으로 임재하시지 않고 단지 신앙의 명상에 의해서만 임재하신다는 것이다. 성찬에서 먹고 마시는 외부적 행위는 내적으로 먹고 마시는 행위의 부가물에 지나지 않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자요 그의 지체라는 것을 고백하는 선서와 충순의 행위이며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행사인 동시에 아들을 보내사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라고 한다.
성찬에 신자가 참여하여 그리스도의 살을 먹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그의 죽음에 의지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성찬의 특별한 요소로 신앙을 강조하므로 인간의 육이 무익하다는 사실과 천상적인 것과 지상적인 것 사이의 어떠한 일정한 결합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함으로 상징설을 주장하였다.
2. 성만찬의 효과
a. 루터
루터는 성만찬의 은사가 그리스도의 새 언약의 은사라고 강조한다. 곧 우리가 은사를 받는 예전이지 많은 사람이 생각하듯이 미사를 일종의 인간이 드리는 희생이나 선행으로 생각할 것이 아님을 지적한다.
루터는 성찬이 모든 성도들의 친교와 사랑이 축복을 주니 것 것이라 말한다. 모든 성도가 전체의 몸에 속한 지체들로서 교통하는 것인데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들과 더불어 친교하는 것이고 다음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모양으로든지 가능한 대로 피차에 연합하는 것인데 그리함으로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모든 영적 재산을 공유하며 자기 추구의 사랑을 버리고 전체의 공동의 유익을 구하며 같은 떡과 잔으로 같은 몸을 이룬 단체가 서로 사랑하는 사랑으로 형제애를 실현하는 것으로 말한다.
그러므로 카톨릭 교회에서 잔은 신부만이 받고 평신도는 받지 못하는 것은 이 친교를 그륵되게 한 것이며 루터는 이 관례를 철폐하였다. 다음으로 성찬은 사죄의 은사가 된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우리를 위하여 주시고 흘리신 것이므로 그것을 통하여 우리가 용서를 받고 우리의 영혼의 양식을 얻는다. 그리고 성찬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기억함으로서 우리의 신앙이 힘을 얻고 소망을 굳게 가지며 열심히 사랑하는 생활의 은사를 받는 것이다.
루터의 소교리문답에서 “죄의 용서가 있는 곳에는 또한 생명의 구원이 있다”고 한 것이 곧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성찬은 죄를 구하는 약인 동시에 또한 영혼의 약식이 되어서 새 사람을 길어주고 힘을 주는 것이다. 루터는 성찬이 영혼에만 은사를 주는 것이 아니고 육신에도 은사를 주는 것임을 말한다. 루터의 대요리 문답에는 “죄의 용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또 죽음과 악마와 불행을 막는 보초와 피난처의 힘이 모든 은사를 가지신 성령을 함께 가져다 주시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즉 영혼과 육신을 합한 전인이 그리스도의 몸의 혜택을 입은 것이므로 사람의 육신은 그 은혜를 받는 것이다. 성찬이 육신과도 상관되어 있는데 곧 장래의 몸과 부활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예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루터는 어떻게 그렇게 된다는 것을 해명치 않고 다만 그리스도의 몸과 피와 사람의 영광스러운 장래 사이에는 연결이 있다는 것을 앎으로 만족했다.
성찬의 의식 그 자체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공덕이 된다는 것을 반대하고 오히려 의식을 행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어야 됨을 강조하고 성찬의 은혜로운 것만큼 그것을 오용하면 더 큰 해가 된다고 루터는 말한다. 하나님을 위하여 세워진 것이 아니고 우리가 그것을 사용하며 우리의 신앙을 실천하기 위하여 세워진 것이므로 성찬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찬 의식은 행하는 자의 실천을 고려해야 하며 기계적으로 의식을 행하기만 하면 그것으로 그 의식은 완료되고 그 목적이 완성된다는 생각은 마술적인 의식을 말하는 것이다.
b. 츠빙글리
츠빙글리에 의하면 예전은 선택된 자 들에게 아무것도 전달해 주시 못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신앙에 의하여 선택과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확신은 확실한 담보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더 굳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전은 각자 내적으로 이미 소유하고 있는 은총에 대한 공식적인 증거인 것이다. 예전에 참가함으로 각자는 교회의 일원임을 고백하며 예전은 초자연적 내용을 갖고 있지 않고 내적으로 이미 성취된 것을 나타내는 외적 상징이라고 한다. 츠빙글리는 예전이 가진 사죄나 신령한 은혜의 방편을 무시하고 단순한 교회의 의식으로 간주한다.
츠빙글리는 의식문의 말씀이 윤리적 상징적 의미를 가진 것이라고 하여 믿는 자에게 그 떡은 윤리적 효험이 있다고 한다. 츠빙글리는 신앙으로 먹지 않는 것은 무효라고 생각했으므로 “격분의 식사”를 믿음 없이 먹음으로 저주를 일으키는 사상을 거부한다. 무신앙으로 먹으면 무효여서 떡은 떡으로 소화될 뿐이라고 한다.
Ⅲ. 칼빈의 성찬론
A. 성찬론의 역사적 배경
성찬에 대한 칼빈의 교리는 다른 개혁자들과 마찬가지로 로마 카톨릭교의 비 성경적인 성찬론에 대한 반발에서 출발하였고, 루터파와 츠빙글리파의 대립된 논쟁 상황 속에서 마틴부처의 중도적 입장을 이어받아 만들어 졌다. 성찬의 교리를 세우는데 있어서도 그는 교부들과 자신보다 앞선 개혁자들의 견해를 광범위하게 인용하였다. 또한 칼빈은 루터와 부처의 저서들을 면밀하게 연구하였고, 특히 루터의「교회의 바빌론 유수」,「신앙고백과 성례」등은 칼빈의 성찬교리인 “영적 임재설”을 정립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1536년판「강요」의 ‘반(反) 로마교회 논쟁’에서도 루터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칼빈의 성찬에 관한 견해에 있어서 츠빙글리 보다는 루터 쪽에 훨씬 가깝게 머물러 있음을 볼 수 있다.
B. 성찬론의 특징
칼빈은 “만약 우리 주의 거룩한 식탁이 그 안에서 자주 베풀어지지 않고 거기에 자주 출석하지 않으면 잘 운영되고 지도를 받고 있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며 ‘교회를 본질적으로 성만찬 공동체’로 이해한다. 칼빈의 성찬론은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이것은 루터와 쯔빙글리를 모두 포함 할 수 있는 사상인데, 이를 위해 성만찬에 참여하는 성도들의 믿음과 성령의 역사가 강조되었으며, 자연히 성찬의 의미에 있어서 신비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
1. 믿음의 중요성
칼빈은 성찬에서 참예하는 사람의 믿음을 강조한다. 이것은 그가 카톨릭의 화체설이나 루터의 공제설과는 달리 영적임재설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체설은 성찬에 참석해서 떡을 먹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몸을 먹는 것이고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를 마시는 것이다. 하지만 칼빈에게서는 성찬에서 성도가 먹는 것은 떡을 먹는다. 다만 그것이 진정한 의미가 있으려면 떡과 포도주에 참석하는 사람이 믿음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아무도 먼저 그의 믿음을 고백하지 않는다면 성찬에 참여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성례는 그 전체를 믿음과 관련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2. 성령의 역사
칼빈은 가장 심혈을 기울여서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영적 양식을 통해서 성령의 역할을 삼위일체 신학으로 확대하려고 하였다. 따라서 성만찬에서 성령의 역할은 그이 성만찬 전체를 지배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루터에게서 설명할 수 없는 개인적인 신비의 경험을 성령의 역사로 이해한다. 구속의 사역을 성취하는 분은 그리스도이지만 그것을 우리에게 적용하는 것은 성령의 사역이라는 것에 근거를 둔다.
우리는 성령이 영생하는 주님의 몸과 피의 실체로 우리를 먹이시며, 우리가 그것들에 참여함으로 생명을 얻게 하신다. 칼빈에게 성찬에서 신자와 그리스도의 연합이라는 신비는 성령의 비밀한 권능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3. 신비한 경험
칼빈은 성찬이 단순한 성례의 하나가 아니라 비밀스런 신비로 이해한다. 물론 이것은 성령이 역사하기 때문이다. 칼빈이 성찬론을 신비라고 하는 것은 하늘에 계시는 성자 그리스도와 지상에 있는 신자와의 연합의 길을 성만찬을 통해서 제시하기 때문이다.
칼빈이 말하는 이 연합의 신비는 그리스도가 또 다시 성육신 하여 육체로 임하거나, 떡의 본질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하거나, 떡에 임하여 우리와 연합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우리와 연합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영적 임재설’ 이라고 한다.
C. 성찬의 의미와 기능
1. 성찬의 의미
칼빈은 성례를 기존의 로마카톨릭 교회의 일곱가지 성례를 부인하고 세례와 성만찬을 인정한다. 그리고 이 성례전은 하나님의 언약의 표징으로 이해하고, 성례의 의미를 믿음을 돕는 수단이요, 복음 선포와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그는 성례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성례전은 우리의 약한 믿음을 붙들어 주기 위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그의 선하신 뜻의 약속을 우리의 양심에 인치시는 외형적인 표징이고, 우리편에서는 그 표징에 의해서 주와 주위 천사들과 사람들 앞에서 주께 대한 우리의 충성을 확증하는 것이다. 성례전은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외형적인 표징에 의해 확인하는 증거이며, 동시에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충성을 증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위의 칼빈의 성례전에 대한 정의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성례전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하나님의 수단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미 믿음을 가진 성도가 그 믿음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새로운 충성을 유발하는 은혜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칼빈은 성례전의 목적은 “약속을 확인하고 인치며 우리에게 더욱 분명하게 하고 어떤 점에서 그것을 비준하는 것이다”고 했다. 그러므로 성례전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확인하기 위해서 필요하기보다는 그 말씀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확립하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했다.
칼빈은 이렇게 성례전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를 하고 있지만 성만찬을 정의하지는 않는다. 성만찬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이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그의 성만찬은 믿음을 가진 성도들의 성령과의 비밀스런 교제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말하는 성만찬의 다른 모든 의의와 효과들은 성령과의 비밀스런 교제를 통해서 성령이 주시는 은혜들이라고 볼 수 있다.
칼빈은 성만찬을 다루면서 계속해서 믿음을 강조한다. 성찬에서 그리스도는 그 자신과 아울러 그의 모든 복을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는 믿음으로 그를 받는다. 이와 같이 우리는 믿음으로 그에게 참여하는 것이다. 그런데 칼빈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관련된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성령의 선물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칼빈은 그리스도가 그의 영과 분리될 수 없다고 한다. 그는 성만찬을 설명하면서 곳곳에서 믿음과 성령의 역사를 말한다. “성령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수준으로 낮아지시고 동시에 우리를 자신에게로 높이신다. 이러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은 말씀과 성령의 꿰뚫는 능력으로 연결된다. 이 성령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하고 연합하며, 그 결과 몸, 마음, 영혼에 있어서 우리는 바로 그리스도의 것이 된다.” 칼빈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영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포도주를 마실 수 없다”는 것은 성찬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 준다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칼빈에게서는 믿음을 동반한 성령의 사역이 없는 성만찬은 의미를 상실한다.
2. 성찬의 기능
칼빈의 성찬 이해는 주로 그가 말하는 성찬이 주는 유익을 설명함으로 이해할 수 있다.
a. 그리스도와 연합의 효과
칼빈의 견해에 있어서 성만찬은 신자들의 그리스도와 연합을 나타낸다. 성만찬은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갖는 연합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스도에게 참여함을 가시화 하는 것이다. 하지만 칼빈은 이러한 연합은 단순히 상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는 이것을 신비라고 말한다(엡5:32). 칼빈도 그리스도와 신자의 연합을 신비로 보고, “이 신비는 본래 불가해한 것이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적은 능력에 가장 적합한 가시적 표징으로 그 신비를 보여 주신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가 그 신비를 마치 눈으로 보는 것처럼 확실히 알게 하시는 것이다”고 한다.
칼빈은 이 연합의 신비를 인정하면서 그리스도와 우리의 연합이 그의 육체와 하나가 됨을 통해서 이해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면 이 연합의 신비가 어떻게 이루어 질 수 있는가? 칼빈은 이 연합은 마치 부부 사이의 연합으로 하나가 되는 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과 살이 아니므로 그리스도가 우리와 같은 인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가 우리를 그의 몸에 접붙임으로 그로부터 우리가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성령의 비밀한 권능이 우리와 그리스도를 결합하는 띠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이 가능한 것도 우리가 단지 성만찬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
b.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희생의 죽음에 대한 확신
성만찬은 그것에 참여하는 믿음을 가진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죽음의 능력이 신자들 안에서 효력을 나타내리라는 믿음의 확신을 가지게 한다. 말씀을 통해 선포된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한 인간의 연약함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건을 경험으로 알기를 원하다. 이러한 신자들에게 성만찬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흘리심을 경험적으로 알게 해 준다.
신자들은 성찬에 참여함으로 2000년전의 사건을 눈으로 보듯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신자가 설교를 통해서 말씀으로 들어오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확실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칼빈은 한 걸음 더 나가서 “이 명령은, 우리가 그 몸에 참여할 때, 생명을 주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능력이 우리 안에서 효력을 나타내리라고 우리가 확신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고 한다.
c. 성도들의 양육을 위한 기능
성찬의 다른 기능은 우리의 영혼은 양육하는 것이다. 떡과 포도주가 육체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과 같이 우리의 영혼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양식으로 삼는다. 우리의 육신의 양식이 떡이 되는 것처럼 성만찬에서 나누어 먹은 그리스도의 살이 우리 영혼의 떡이 된다고 했다.
칼빈은 성찬에서 나누어지는 떡과 피가 상징을 보여줄 뿐 만 아니라 상징을 보여 줌으로 본체도 보인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찬에서 먹는 떡과 포도주는 신자들의 영혼에 생명을 주고, 살찌우고, 힘을 주는 실재의 그리스도로 이해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으로 거듭나게 한 그 생명 안에서 우리를 지탱하고 보존하는 양식을 계속해서 공급하심으로써 선견지명이 있는 가장의 역할을 이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찬은 그리스도를 통한 연합으로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실제로 주시는 양식을 먹는 일로 설명될 수 있다. 하지만 칼빈은 성찬에 참여하여 먹는 떡과 포도주가 마술적인 힘을 가지고 잇는 어떤 주술적인 힘으로 서술하고 있지는 않다. 신자가 성찬에서 그리스도의 실재를 경험하는 것은 예수께서 약속하신 것을 성령이 효과적으로 성찬에서 성취시킨다는 것을 보여주심으로 이루어진다고 여겼다.
d. 그리스도와의 교제
칼빈은 성찬을 영적인 잔치라고 했다. 물론 이 잔치는 그리스도와 성도들이 누리는 것이다. 성찬에서 베풀어지는 영적인 참 양식인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것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영적인 교제가 이루어진다. 이처럼 성찬에서는 영적인 양식을 먹고 마시고, 그 잔치를 통해서 신랑이신 그리스도와의 교제가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성찬에서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진정한 기쁨이 있다. 그 교제의 기쁨이란 그리스도의 구속의 약속에 대한 확신으로 얻는 기쁨을 회복하는 것이다.
칼빈에게서의 그 교제의 중요한 측면은 그 교제가 그리스도와 하늘 영광과 천상에 있는 그리스도와 교제에 있다. 칼빈은 하늘에 성육신 하신 몸으로 계신 그리스도가 오르신 이후에 교제하는 수단으로 성찬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거은 우리가 성령의 능력에 의해 영적으로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 올라가기 때문이다.
e. 성도들 간의 연합과 교제
칼빈은 성찬을 다루며 성도의 교재를 많이 다루고 있다. 그는 고전 10:16-17을 인용하면서 우리가 우리 형제를 멸시하고 학대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상하게 하고 멸시하고 학대하는 것이라고 강력하게 말한다. 왜냐하면 형제들은 우리의 지체이며, 몸의 일부가 고통을 당하면 그 고통이 전신에 퍼지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지체가 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연합되었기 때문이다.
주님과 연합과 동시에 신자들은 신자들 상호간에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연합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성경적인 원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성찬에서의 성도의 교제는 참석하는 신자들의 사랑을 권한다. 성도간의 교제는 사랑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성찬은 신자들의 사랑에 특별히 적용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성찬에서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그 사랑은 권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성찬은 사랑의 띠라고 불려 진다.”
f. 성도들의 삶을 격려하여 성화의 삶을 살게 하는 기능
성도들의 삶을 격려하는 힘은 그리스도와 교제이다.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통해서 그가 하시는 권면을 듣고 실천하는 삶이 영적인 삶이다. 그런데 “주님은 성찬이 우리에게 일종의 권면이 서게 하셨다. 그것은 순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고 사랑과 화목을 실천해야 함을 우리에게 일깨우시고 각성시키는 가장 강력한 방법일 수 있다.”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성도 개인의 삶을 살피고, 그리스도와 동행하고 있음을 상기시키므로 성화의 삶을 위한 바탕을 마련하는 것이다.
g. 교회 일치의 기능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일치의 한 표현으로 성찬을 외형적으로 시행한다. 하지만 칼빈은 그러한 외형적인 일치를 떠나 어거스틴이 성찬을 “사랑의 띠‘라고 부른 것을 인용하면 그의 안에서 모두 하나가 되게 하시는 것보다 더 날카롭게 우리로 하여금 서로 사랑하게 하는 자극물이 없다고 했다. 성찬시 나누어지는 떡은 많은 낱알이 섞여 서로 구분할 수 없게 하여 만드는 것과 우리도 한 마음으로 일치 단결해서 어떤 불화나 분열도 침입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칼빈은 이처럼 분열에 대해서 강력하게 말하면서 성찬의 떡을 통해서 우리가 연합되고 일치해야 할 것을 말한다.
h. 예배로서의 기능
칼빈이 카톨릭의 희생제사적인 미사를 격렬히 비판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칼빈은 성찬 예식은 기념과 감사의 성례로 정의되었다. 총체적인 강조점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고 구원을 감사함과 영적 연합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성찬식은 예배의 한 속성으로 이해된다.
칼빈은 성찬식이 그 은혜를 우리 손에 쥐어 주고 우리가 그것을 깨닫게 가르치며, 그것을 잊지 말고 합당한 찬양으로 그것을 세상에 선포하며 감사함을 축하하라고 충고한다. 또 성만찬을 행함으로 생명과 구원에 대한 우리의 확신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에 의존한다는 것을 사람들 앞에서 고백하며, 우리의 고백으로 주께 영광을 돌리고, 다른 사람들도 주께 영광을 돌리도록 우리의 모범으로 권고하는 것이다. 칼빈의 성찬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성찬이 예배의 속성으로 들어간다.
특히 성찬에 대한 식탁은 그리스도인들이 집회를 위해서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진설되어야 한다고 했다. 매주 성찬을 권한 것은 예배 시에 성만찬이 함께 행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실제로 칼빈은 성만찬 예배시 말씀 선포 이후에 성만찬을 예배 순서에 그대로 삽입하고 분리하지 않았다. 이것은 칼빈 자신도 성만찬을 예배의 요소로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Ⅳ. 결 론
필자는 지금까지 본 소고를 통하여 제Ⅰ장에서, 칼빈의 성찬론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은 무엇인지에 대하여, 그리고 연구의 범위와 방법에 대해 나의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제Ⅱ장에서는 칼빈의 성찬론을 논하기에 앞서서 성찬론의 역사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해보았다. 이 장에서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초대교회사)’와 ‘교부들의 성만찬에 대한 이해’는 어떠했는지를 정리하였다. 더 나아가 중세시대의 성찬논쟁들에 대하여 살펴보고, 앞선 개혁자인 위클리프와 후스의 성찬이해를 통하여 과연 칼빈은 어느 시대, 누구의 성찬에 대한 견해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지, 또한 칼빈의 성찬론의 ‘역사적 라인’에 대해 파악해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또한 칼빈의 스승이며, 그 보다도 한 세대 앞선 종교개혁자 루터와 츠빙글리의 성찬론에 대하여도 간략한 정리를 통해, 칼빈의 성찬론의 독특성과 차이점은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먼저는, ‘교부들의 성만찬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교부 이레니우스, 예루살렘의 시릴, 터툴리안, 오리겐, 테오도레트, 어거스틴 등을 살펴볼 때, 꼭 그렇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충분히 칼빈의 영적임재설과 교감이 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중세시대의 성찬논쟁들에 대하여 살펴보고, 앞선 개혁자인 위클리프와 후스의 성찬이해를 살펴보며 필자는 놀라기까지 하였다. 이미 9세기의 성찬논쟁에서 라바누스 마루스, 라트랄누스, 그리고 11세기의 베렝거와 앞선 개혁자였던 위클리프와 후스의 성찬론을 통해 루터의 공재설, 츠빙글리의 상징설, 칼빈의 영적임재설 등의 종교개혁가들의 모든 주장들의 충분한 자료가 있음 살펴볼수 있었으며, 칼빈의 ‘성찬론’은 유구한 역사 속에서, 꼭 누구라고 지목하고 거명 할 수는 없겠지만 칼빈보다 앞선 많은 선각자들이 진리를 추구하는 개혁자에게 전하여 준 ‘역사를 통한 섭리적 선물’임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11세기의 베렝거와 그의 뒤를 따른 위클리프와 후스의 성찬론은 칼빈의 성찬론을 충분히 품어줄 수 있는 ‘모태’ 였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연스러운 궁금증에서 시작한 ‘성찬론에 관한 역사적 고찰’은 뜻밖에도 많은 흥미로운 결과물을 가져다 주었다. 루터도, 쯔빙글리도, 칼빈도 모두 그 역사의 품안에 있었으며 순간 이들의 성찬론이 손에 잡히는 듯한 느낌을 갖게되었다.
필자는 제Ⅱ장 마지막 부분에서 루터와 츠빙글리의 성찬론을 비교함으로 계속되는 칼빈의 성찬론과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도록 정리하였다. 제Ⅲ장에서는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중심적으로 구체적인 ‘칼빈의 성찬론’을 소개하려고 한다. 필자는 이 장을 통하여 칼빈의 성찬론의 특징, 그리고 성찬의 의미와 기능들에 대하여 나름대로 구체적으로 정리해 보았다.
칼빈은 자신의 성찬론을 전개함에 있어서, 성서와 삼위일체론, 기독론, 성령론을 바탕으로 ‘성만찬’의 문제에 접근하면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견해를 세워나간다. 칼빈은 소위 ‘좌파’사람들의 주장들에 대해 반대하였으며, 동시에 극단적인 ‘우파’에게도 경고하는 논증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성찬’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실제적으로 어떻게 연합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하여 ‘신비’임을 말함으로 그의 주장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또한 그는 루터와 츠빙글리와의 많은 논쟁을 벌인다. 결국 ‘루터와 연합하는 일’에 있어서도 ‘성찬론’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여 좌초되고 만다. ‘성찬론에 대한 역사적인 접근’을 시도한 나의 마음 한구석이 개운하지 않다. 칼빈에 대한 Philip Schaff의 “칼빈은 그가 자신의 성찬론의 사실상 기초가 되는 츠빙글리의 성찬론을 모독한 것은 불공정한 것이었다”는 지적은 역사적인 근거와 타당성이 있다고 본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전주교회 목사 이한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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