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을 찾아서|배태건 시 해설
슬픔의 정체
황정산(시인, 문학평론가)
배태건 시인의 시는 슬프다. 슬픔에 대해 직접 말하거나 비통한 상황을 제시하거나 애절한 사연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아도 그의 시의 행간에는 슬픔이 짙게 배어 있다. 시어와 시어 사이,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에 슬픔의 정조가 안개처럼 퍼져 있어 전체적으로 그의 시는 슬픈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다. 가령 다음과 같은 시를 보자.
가지에 얹힌 가로 등불 골목 그득 일렁인다
어둠도 하늘하늘 봄바람에 얹혀 흔들린다
꽃자리 자리 자리에 펼쳐놓는 이름 하나
작은 입술 오물오물 봄 향 그득 조물조물
달무리 지던 그 밤 첫 순정 그리던 밤
목련꽃 터지는 봄밤이면 허공 가득 돋는 너
- 「목련꽃 밤하늘」 전문
밤하늘을 배경으로 순백색으로 피어 있는 목련꽃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 충만한 아름다운 풍경을 시인은 “가지에 앉힌 가로 등불 골목 그득 일렁인다”라고 감각적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그 일렁임이 환희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이름을 떠올리게 하고 누군가를 그리워하게 한다. 목련꽃의 살짝 벌린 꽃잎을 보고 시인은 그 그리움을 수줍게 발성하는 순정의 여인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런 순정이 실현되지 못하는 것이 속세의 현실이다. 그것은 “달무리 지던 그 밤”의 추억으로만 남게 된다. 순수한 사랑에 대한 꿈과 그것을 실현하려는 우리의 욕망은 어김없이 좌절된다. 목련은 아름다운 첫사랑의 순정을 떠올리지만 그런 순정은 이제 현실에서 사라지고 없다. 이 시가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북적거리는 재래시장
앞서가던 흰머리 남자 양손에 든 검은 비닐봉지가 터진다
여기저기 흩어져 바닥에 나뒹구는 복숭아
...(중략)...
쪼그려 마주 앉는 길손들
흠집이 좀 있으면 어때요
깊고 덜큰한 향이 좋은데요
복숭아를 주워 건네며
복숭아씨처럼 깊이 패인 남자의 세월을 다독인다
희뿌연 낮달이 내려다보는 한여름 낮
노포 오일장 맛집 간판 위에 옹기종기 앉아 있던
비둘기들이 날아들어 기웃거린다
- 「낮달이 내다보는 한낯」 부분
언뜻 보면 참 따뜻한 이야기이다. 노신사가 치매 걸린 어머니를 위해 복숭아를 사 가다 떨어뜨리고 그걸 본 주변 사람들이 주워 건네주고 위로하는 장면이다. 어머니를 위한 노신사의 마음도 그것을 도와주는 주변 사람들의 행위도 모두 따뜻한 인간애를 느끼게 해 준다. 그런데 왜 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 슬픔의 정조가 들어 있을까? 이 점이 배태건 시인의 시들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닌가 한다. 이 시에 등장하는 것들은 다 오래되고 결국 사라져 갈 것들이다. 재래시장도 그렇고 “노포 오일장 맛집”도 그렇다. 그리고 이 시의 주인공인 퇴직한 흰머리 노신사도 그의 치매 걸린 어머니도 모두 다 오래된 그래서 머지않아 저물어 갈 그런 인물이다. 그들을 위한 과일인 복숭아 역시 노인을 생각하게 하는 과일이다. 부드러운 과육과 신맛 없는 달콤함은 노년의 입맛에 딱 어울린다. 이런 모든 것들이 어울러져 슬픈 정조를 일으킨다. 거기에다 “낮달이 내다보는 한낯”이라는 제목이 이 슬픔을 좀 더 분명한 이미지로 만들어 준다. 한여름 낯에 떠 있는 낯달은 그 존재 자체로 슬픔을 느끼게 한다. 시간을 잘못 선택에 떠오른 달은 자신의 광휘를 보여주지 못하고 희미한 모습으로 결국 사라져 갈 것이다. 그런 낯달이 초로의 신사를 보며 함께 하고 있다. 노신사도 달도 그것을 함께 보는 시인도 아련한 슬픔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황사가 새벽을 밀고 왔다
가뜩이나 먼 풍경의 산봉우리를 가리고
아침을 열어주던 파랑새는 기척이 없다
밤새 바람에 맞서다 꺾어진 마른 솔가지로
마당에 쪼그려 앉아 새를 그렸다
...(중략)...
나뭇가지를 가만가만 흔들어 주던 바람결
맑은 햇살은 먼지 끝에 묻혀 가려지고
황사 바람이 부는 아침
소나무 가지 어디엔가 숨어 앉아
파랑새가 소리소리 멀어진다
네 희망은 그만 숨이 막혀 사라지련다
- 「파랑새의 언어」 부분
파랑새는 꿈과 희망의 상징이다. 그러나 황사에 묻힌 하늘에서는 이 파랑새를 만날 수 없다. 기후 위기와 환경 파괴가 싱싱한 자연의 힘을 앗아가고 결국 우리의 희망마저도 요원하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마당에 앉아 새를 그린다. 희망을 구체화하려는 시인의 노력이다. 하지만 파랑새는 보이지 않고 그 울음소리마저 멀어지고 만다. 결국 “희망은 그만 숨이 막혀 사라지”고 만 것이다. 시인은 아름다운 꿈을 상징하는 파랑새마저 슬픔의 이미지로 변화시키고 있다. 파랑새가 가지고 있는 희망과 행복은 채울 수 없는 욕망의 좌절로 귀결되리라는 것을 이 시는 우리에게 에둘러 알려주고 있다. 파랑새가 슬픔의 이미지로 바뀌는 이유이다.
다음 시에서 시인은 아름다운 꽃에서조차 슬픔을 생각한다.
잠시 꽃그늘 아래에서
쏟아지는 꽃비의 황홀함에 젖어
세상을 까마득하게 잊어갈 때
문득 들려오는 소리
흐느낌을 쏟아내는 소리
피는 꽃만 꽃이더이까
지는 꽃만 꽃이더이까
이 세상 태어난 줄 모르게 태어나
이 세상 떠나는 줄 모르게 떠나는 이름들
몸살처럼 솟아오르는 가시도 있더이다
저릿한 몸 혼미하게 펼치고
솟구치는 이름들 받아 안는 바닥 날개
숲마다 언덕마다 꽃그늘을 키우는
꽃의 이면은 날개의 이면을 알까
- 「꽃의 이면」 전문
시인은 꽃을 보고 꽃의 흐느낌 소리를 듣는다. 그 흐느낌은 꽃의 이면에서 나오는 울음소리이다.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수많은 가시들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피는 꽃이건 지는 꽃이건 그 꽃의 아름다움을 탐하지만 꽃을 피우기 위한 한 존재의 시련의 시간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 시련의 시간들이 “몸살처럼 솟아”올라 가시가 되었다고 시인은 생각한다. 꽃의 흐느낌은 이 가시들의 울음이고 이 가시로 겪은 고통의 소리일 것이다. 아름다움 속에는 고통이 배어 있다는 것이 시인의 생각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시의 시학이기도 하다.
그의 이런 슬픔의 시학은 다음 시에서 잘 드러나 있다.
글썽글썽 저를 뜯어내는 통기타 곁으로
어둠의 발길들이 멈춰 선다
기울어진 술잔처럼 엇박자 노래를 흘리는
허술한 몸짓
날개 접은 밤 비둘기도 구구구구 모여든다
가늘고 굵은 줄들이 퉁겨 뱉아내는 이야기
포개 얹은 종이박스 몇 장에 올라앉아
펄럭거리는 지폐 몇 장을 누르고 있다
...(중략)...
으슥한 도시의 한쪽을 갈아 끼우며
어디에든 틀어 앉으면 둥지가 된다
흐느적거리는 통기타를 향해 시집 한 권이 다가간다
머뭇머뭇 쓰다만 시의 행간에 끼워 넣은
지폐 한 장도 따라간다
새 이름을 붙이며 노숙의 밤이 몇 페이지 더 늘어난다
- 「낭만 노숙」 부분
시인은 스스로를 낭만 노숙인이라 칭하고 있다. “으슥한 도시의 한쪽”에서 지폐 몇 장을 위해 노숙하며 노래를 부르는 방랑 가객처럼 시인 역시 가난과 방랑을 운명처럼 타고 태어났다. 노숙인 가객과 시인 자신의 동류의식을 “흐느적거리는 통기타를 향해 시집 한 권이 다가간다”고 표현하고 있다. 시인이나 노숙인 가객이나 할 수 있는 것은 “엇박자 노래”와 “허술한 몸짓”이다. 그래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종이박스 위에 놓인 지폐 몇 장일 뿐이지만 그들 곁에는 “어둠의 발길들”이 모여 멈춰 선다. 모두 다 “글썽글썽 저를 뜯어내는 통기타”를 듣기 위해서이다. 시인은 이 슬픔의 노래를 부르는 노숙인 가객과 같은 사람이다. 그래서 시인은 슬픔의 시를 통해 어둠 속에 살아가는 존재들과 함께 하고 그들을 위로한다. 배태건 시인의 시가 슬프지만 따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황정산|1993년 《창작과비평》으로 평론 활동 시작했으며 2002년 《정신과표현》으로 시작 활동을 했다. 저서로는 『주변에서 글쓰기』, 『쉽게 쓴 문학의 이해』, 『소수자의 시 읽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