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창녕인물비사 ⑧
충과 효와 열부, 전공판서 신사천 일가 멸포 참극
창녕군 도천면에 충, 효, 열을 기리는 삼강려三綱閭가 있었으니 고려 때 낙동강으로 올라와 갖은 약탈과 만행을 자행했던 왜구의 침탈 역사를 후세에 잘 알려주고 있다.
곡강曲江 신사천辛斯蕆은 고려 공민왕 1358년에 무과에 급제한 장수였다. 영산 신씨는 대대로 무인 출신이 많았으니 신사천도 선조의 혈통을 물려받아 무예를 익혀 무과에 급제하고 이내 낭장으로 경상도에 출몰해 약탈을 자행하던 왜구(왜인 해적) 토벌에 진력하였다. 신 장군은 여러 번 왜구와 싸워 많은 공을 세우니 봉익대부 전공판서(정3품)에 올랐다. 벼슬자리에서 물러나자 고향 영산현으로 돌아왔다.
신 장군이 은거한 곳은 영산현 오가리(지금의 오호리) 곡강으로 문성산 서편 마을인데 예전에 오가이향이 있었던 곳이다. 앞은 낙동강 강물이 굽이치며 동쪽으로 흘러 기곡(길곡) 하내 앞을 흐르니 곧 멸포나루와 인접하였다.
우왕 8년(1382) 여름, 왜구가 또 침탈하여 강을 거슬러 올라오며 강 양안의 마을을 습격해 양식이나 보화를 약탈하고 살인을 자행하니 피해가 막심하였다. 이때 고려 조정에서 전법판서 조준趙浚을 경상도 체복사로 삼아 대적하게 하였다. 그때 왜구가 매우 강성하여 여러 고을이 소란해 백성들이 모두 산골로 도망쳤다. 그러니 나라에 기강이 없고 장수들은 싸우지 않고 방관하니 적세는 날마다 성하였다.
왜구가 오호리에 배를 대고 도천, 영산으로 몰려갈 때 신 장군은 마을 젊은이들과 창칼을 들고 지켰다. 그러나 해적들은 칼싸움에 익숙하니 싸움이 붙자 패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왜구는 별다른 공격 없이 영산으로 몰려갔다.
“안 되겠다. 저 놈들이 영산으로 갔다가 되돌아오면 난리가 날 테니 모두 산속이나 강을 건너 피난하자!”
신 장군은 사람들에게 다시 왜구가 몰려오면 막을 도리가 없으니 피란하라고 고함쳤다. 그리고 신 장군도 가족을 이끌고 피난길에 오르기로 하였다. 강을 건너가기 위해 가족들을 배에 태우고 멸포나루를 출발했다. 그때 왜구 50여 구寇(도적)가 쫓아왔다. 급박한 상황이라 아들 신급열辛及悅이 급히 노를 저었다. 마침 여름 장마로 강물이 불어 물살이 급했다. 힘껏 노를 졌는데 그만 노를 연결했던 줄이 끊어져 버렸다. 그 바람에 배가 급류에 휘말려 하내 앞 강가 모래밭에 얹혀버려 꼼짝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배가 움직이지 못하게 되자 배에 탔던 신 장군과 아들, 남자들이 쫓아온 왜구를 맞아 힘껏 싸웠다. 결국 왜구는 배에 있던 사람들을 거의 다 죽였고 신 장군도 결사 항전 끝에 살해당하고 말았다.
신 장군의 셋째 딸이 배에 타고 있었는데 왜구 한 놈이 처녀를 보았다. 놈은 욕심이 생겨서 신씨를 잡아 배에서 끌어 내리려 했고 신씨가 있는 힘을 다해 발버둥을 치며 끌려가지 않으려 항거했다. 적이 뻔적이는 칼을 뽑아 들고 베려고 시늉했다.
“이 년아 ! 내 말 들어라꼬! 아이문 죽이버릴끼다!”
이에 신씨(三女)는 큰소리로 꾸짖기를,
“도적놈아! 죽일 테면 죽여라! 네놈이 이미 내 아버지와 오라비를 죽였으니 너는 나의 불공대천 원수다. 차라리 죽을지언정 네놈을 따르지 않겠다!”
하며 달려들어 놈의 멱살을 움켜잡고 발로 차 거꾸러뜨렸다. 놈이 성이나 칼을 휘둘러 신 장군의 딸을 죽이니 꽃다운 나이 열여섯 살이었다.
한편 영산현을 졸지에 습격한 왜구 대군이 영산, 도천을 도륙하고 약탈했다. 이때 신 장군의 둘째 사위 낭장 김우현金遇賢은 기동군起東軍 장수로 왜구를 많이 격퇴한 용장으로 힘껏 싸웠다. 그러나 중과부적이라 거듭 왜구에게 패해 나중에는 어딘가 숨어야했다.
왜구가 김우현의 아내 신씨를 잡아 군영으로 끌고 가니 왜장 우두머리가 김우현의 행방을 캐물었다.
“네년 남편이 어디 숨었나? 숨은 곳을 말하면 니는 살려줄 끼다.”
신씨(二女)는 죽음을 각오하고 남편이 어디로 피신했는지 말하지 않았다. 왜구는 여자가 바른말을 하지 않자 매를 때렸다. 신씨는 조용히 결연하게 말했다.
“이것이 만일 상을 탈 일이라면 남편 있는 곳을 가르쳐 주겠지만, 이제 남편을 잡아 죽이려 묻는 바에야 어찌 차마 그것을 사실대로 가르쳐 주어서 남편이 죽임을 당하게 하겠는가.”
신씨의 대답에 왜구는 무자비하게 매를 때렸다. 아무리 매를 때려도 종시 말하지 않고 마침내 신씨는 맞아 죽었다. 김우현도 아내의 참변 소식을 듣고서 분노해 왜구를 공격하다 역시 전사했다.
조준이 그 일을 진달하고 아뢰기를,
“세 사람의 절개와 효도가 이와 같으니, 그 문門에 정표旌表하여 후세 사람을 권면하소서.”
三人節孝如視 可旌其門 以勤來者 遂立石記其事(→고려사절요)
하니, 드디어 삼강려와 비석을 세우고 그 정렬을 기록하였다.
이 일이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 실려 조선 시대에 널리 알려졌다.
삼강려는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없어졌다고 한다. 그후 비석만이 보존되어 있었다.
왜구에 항거하다 순절한 신사천 유허비가 길곡 오호리 신촌에 섰는데 비문에 의하면 유체遺體가 유실되어 무덤에 모시지 못했다고 한다. 숙종 때 도천서원에 배향되었다.
지금 도천리의 <열효신씨지려>가 경상남도문화유산으로 보호되고 있다. 우여곡절을 많이 겪은 정려비 ‘창녕열효신씨 정려비’와 ‘절부신씨리’ 비석 2기를 발굴, 1994년 삼강재려비 비각과 사당(곡강재)을 복원하니 <고려사절요>에 3부녀 충효 열부로 도리를 다했다는 사연과 기록이 지금도 뚜렷이 전해지고 있다.
2025년 7월 14일 자 <창녕신문> 연재
첫댓글 누구를 만나든 그의 장점을 보려는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남을 많이 칭찬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안녕하세요~?? ♥"
정겹고 소중한 남녀 친구 님~!!!愛
♥빵긋~!!! 방가워요~★愛 쵝오@!@~♥♥`!!
좋은 사람. 아름다운 향기를 지닌
사람과 더불어 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아름다운 향기를 지닌 사람과
더불어 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오늘도 고운 미소 마음의 여유와
함께 행복한 웃음의 휴일 보내세요~乃
자신의 삶에 만족을 느낀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 ) __맛있는 빨간 허브 꽃잎 차 한잔*
┃-/.┃┓건강한 마음으로
┃▦┃┛여유로움 갖이시고
┗━┛힘찬 하루 행복한 하루 되세요~♡♡
겸손하고 마음을 아름답고 따스하게
나 자신을 대접하는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愛♡♡>>>--LOVE*-▶.사랑해*♥♥♡愛
나의 따뜻한 말 한마디로 다른 이의 슬픔에
위안이 될 수가 있고
함께 나누는 마음에 우리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인연 하나로 맑고 무한한 정이 넘쳐 나길 바라며
상큼하게, 행복하게, 소중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사랑합니다"о♧ Have a Good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