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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30 구요셉목사님
‘이런 목사 만나면 반드시 지옥 간다’란 제목으로 여러분과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주엔 마태복음 24장을 통해 거짓 선지자, 거짓 목자를 만나면 너희는 독수리에게 먹힌다는 의미로 말씀드렸습니다. 제자들은 마지막 때 일어날 징조에 대해 질문했는데,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와 거짓 그리스도, 그리고 거짓 목자를 주의하라고 하셨고, 마지막 때 불법이 성행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불법이 무엇인지 알면 거짓 선지자나 거짓 목자를 구분할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오늘은 불법이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메시지를 전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조심하지 않으면 너희는 멸망당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7장 22절 – 27절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많은 사람이 주의 이름, 곧 예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했다고 나옵니다. 선지자 노릇의 정확한 번역은 ‘예언을 한다’는 뜻입니다. 또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고,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합니다. 권능도 정확히는 기적을 행하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수도 없는 기적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에 이런 간증이 넘쳐납니다. 직접 예수를 만났고, 금가루가 떨어졌다느니, 금이빨이 생겼다느니, 차의 기름이 떨어지니, 차가 붕떠서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등, 온갖 이적 기사가 일어났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기적과 예언의 말을 듣고 그 목자를 따라간다고 해서 구원을 받을까요? 예수님은 이들을 모른다고 하십니다. 예언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고 각종 기적을 행한다는 그런 목사를 따라간다고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거짓 목자들은 주의 이름으로 수많은 병 고침과 예언, 기적을 행하니 자신들은 당연히 천국 간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날에 그때 내가 저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를 도무지 모른다’고 말씀하십니다. 완전 부정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이름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내가 구원을 받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구원과는 무관합니다.
예수의 이름은 권능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이름으로 행할 때, 수많은 기사과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지만 그 역사를 일으킨 자와 구원은 무관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불법을 행한자들아 내게서 떠나라’고 하십니다. 놀랍게도 그들이 불법을 행했다고 하십니다. 불법을 행한 목사를 따라가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교회에 오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구원받고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불법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를 그리스도로 시인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불법입니다. 듣고 행해야 함에도 듣고 시인하는 것으로 그치고 있습니다.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다고 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 곧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렇게 행할 때 구원을 받았다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정확히 구원을 받았다가 아니라, 집을 짓는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의 집을 짓는 사람들입니다. 날마다 집을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으니 나는 구원 받았다로 결론을 내는 것은 바로 말씀에 비추어 볼 때 불법인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매일 집을 지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집을 지은 사람은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 때, 즉 환란이 올 때 이런 사람들은 아무 염려가 없습니다. 그러나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자들, 곧 말씀 따라 행하여 살아가지 않고, 나는 예수 이름으로 예언하고, 병을 고치고, 수많은 이적 기사를 행했다는 것에 붙잡힌 자들, 내가 무슨 일을 했습니다에 집중하는 자들, 이들은 다 불법을 행한다고 말씀합니다.
‘내가’ 무엇을 했다는 것에서 ‘내가’가 빠져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행했기 때문에 예수와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따라가는 것이 예수와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과 함께하니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는 말들,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예수님이 어떻게 응답하셨다는 자기 간증을 늘어놓는 분들, 이런 행동이 모두 불법입니다.
예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이 나와 관계를 맺은 자라고 주님은 말씀합니다. 그렇게 나의 뜻대로 살아가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자며, 자신은 집을 멋있게 지었다고 생각하지만, 환란 때, 곧 심판 때 그 집은 다 무너집니다. 구원과 무관합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 하나님을 전하고 예수를 믿게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적과 기사, 예언 등이 구원과는 무관하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마태복음 5장 17절 – 20절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율법을 완전케 하러 오셨다고 하십니다. 율법의 의미는 ‘가르침’입니다. 따라서 불법은 가르침대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가르치지 않고 다른데 주목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말씀을 완전케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 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는다고 하십니다. 즉 불법을 행한 자들은 바로 말씀을 그대로 가르치지 아니한 자입니다. 말씀 중심이 아니라 이적 중심, 은사 중심, 성령 중심이 바로 불법입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영입니다. 그러나 은사 중심이 되면 까딱 잘못하다간 예수님이 사라집니다. 예언 중심,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는 게 중심이 되고, 이적과 기사들이 중심이 되면 구원을 받을 수 없으므로 예수님은 나의 가르침을 그대로 가르치라 하십니다.
성도의 입장이라면 잘 이해 못하실 수도 있고, 실수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목사는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그대로 밝히지 않으면 저는 천국에서 여러분보다 작은 자가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예수님은 계속해서 행하라고 하십니다. 믿음은 행함이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이신칭의’라는 교리를 앞세워 행함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고 말하면, 행위 구원론자라 하며 이단으로 매도를 합니다. 이것은 말씀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행함을 말씀하셨음에도 로마서의 일부 문구를 가지고, 그것도 배경과 환경에 대한 이해없이,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산상수훈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행함으로 증명됩니다. 행하며 가르치는 자가 되십시오. 가르치는 자도 그냥 가르치면 본인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제가 아무리 여러분에게 잘 가르쳐도 제가 행하지 않는다면 저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행함이 있어야 그 믿음을 예수님이 인정해 주십니다. 우리가 인정하면 뭐 합니까? 예수님이 인정해 주셔야 합니다.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여기서 의란 무엇일까요? 의는 Righteousness로 보통 정의로 번역하는데 정확히는 ‘의로운 행위’를 말합니다. 너희의 의로운 행위가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 낫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과연 우리가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 의롭게 행동하고 있습니까? 마태복음 5장 말씀은 계속 우리의 행위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의로운 행위는 내가 어떤 의로운 행위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행위 구원론입니다. 의로운 행위는 바로 예수입니다. 예수가 하신 의로운 행위를 본받아서란 의미입니다. 20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말씀은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자기는 율법을 지킨다고 하는데, 그 율법을 지키는 그들의 행위보다 예수를 따라가며 예수를 믿는다는 너희 행위가 올바르지 아니하다면 너희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의 의로운 행위, 곧 의는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 3절 – 10절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팔복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5, 6, 7장에서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첫마디부터 천국에 대해 말씀합니다. 산상수훈은 여러분이 천국 가도록 주신 천국 복음입니다.
(첫번째)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단순하지만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가난하다는 히브리어 [아니님]으로 ‘정상에서 벗어났다’는 뜻입니다. 구약에서 정상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가난하다고 하실 때 항상 고아, 과부, 나그네를 언급합니다. 그래서 이들을 잘 돌봐주라고 말씀합니다. 첫째, 고아는 아버지를 잃어버린 자, 부모를 잃어버린 자입니다. 즉 내가 하나님 아버지를 잃어버렸음을 깨닫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도로 찾으려 합니다. 둘째, 과부는 남편을 잃어버린 자입니다. 우리의 진짜 남편은 예수님입니다. 내가 예수를 잃어버렸음을 깨닫는 사람입니다. 셋째, 나그네는 객지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객지에 있으니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은 내 집이 아닙니다. 천국이 내 집입니다. 이런 자들이 복이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를 다시 찾읍시다. 우리 남편을 다시 찾읍시다. 그리고 우리 집으로 돌아갑시다. 이것이 심령이 가난하다는 뜻입니다. 먼저 아버지를 회복하고, 남편을 찾고,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온 마음을 다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복이 있는데, 그 복은 천국입니다. 너희는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너희 심령, 마음이 그렇게 돌아오려고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너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전제로 아래에 나오는 복을 말씀하십니다. 성경 전체는 3절 말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너희 것임이요’라는 말씀 속에 다 포함됩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을 찾읍시다. 하나님께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찾는 것입니다. 아버지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수많은 일을 한다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에게서 나오는 권능과 혜택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찾고, 예수를 찾고, 우리의 소망이 이 땅이 아니라 천국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다음절로 이어집니다.
(두번째)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애통은 회개가 아닙니다. 애통이란 어떤 사람의 죽음을 슬퍼한다는 뜻입니다. 누가 죽었습니까? 예수가 우리 대신 우리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다시 찾으려니까, 천국을 되찾으려 하니까 누가 필요합니까? 예수가 필요합니다. 결핍한 자들은 그 결핍을 채우려 합니다. 결핍을 채우려 했더니 누가 필요해요? 예수가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늘 내 마음속에 애통이 되는 자는 위로를 받습니다. 예수의 십자가를 늘 기억합시다. 이것이 첫사랑입니다. 첫사랑을 잃어버리지 않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에베소 교회에게 잃어버린 첫사랑을 찾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십자가입니다. 모든 것을 다 잘할지라도 십자가를 잃어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린 예수로 인해서만 구원을 받습니다. 그 십자가를 굳게 붙잡읍시다.
(세번째)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온유하다는 것을 보통 마음이 순하고 착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온유는 헬라어로 [프라우테스]라 하는데 ‘길들여진 야생마’란 뜻입니다. 내 뜻대로 살던 야생마가 길들여진 것입니다. 기수가 가자면 가고 서라면 서는 기수의 뜻대로 순종하며 따라가게 된 것입니다. 본성이 있어 화가 나기도 하고, 욕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예수님의 말씀 따라 본성을 이기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사람의 본성은 잘 안 변하지만, 길들여져야 합니다. 예수의 말씀이 들어오면 변합니다. 말씀 따라 순종할 때 복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도 잘되고, 하늘나라에서도 기업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말씀은 여러분이 이 땅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네가 무엇을 하고, 주를 위해서 무엇을 많이 해야 상급이 있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온유하면 하늘의 상급이 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할 때 천국에서 거부가 됩니다. 일하는 것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며 따라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네번째)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의는 예수의 의로운 행위로 우리를 위하여 우리 죄를 대속하시려고 하나님께 순종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입니다.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입니다. 그러므로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습니다. 십자가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를 애통하고, 십자가에 주목해야 하는데, 권능의 예수, 능력의 예수, 병 고치는 예수, 예언하는 예수, 이런 예수를 만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신 예수를 찾아야 합니다. 그 예수를 찾으면 여러분은 예수를 만나고 예수님 뜻대로 살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이것은 기도하는 삶입니다. 온유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행하는 것이라면,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은 기도하는 것, 예수를 찾고 예수를 만나게 하는 기도의 행위입니다. 그냥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기초 위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생활을 놓치면 안됩니다.
(다섯번째)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이 말씀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말씀합니다. 온유나 의에 줄이고 목말라 예수님을 찾는 것이 모두 자기 자신과의 싸움인데, 자신과의 싸움이 끝나면 이제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로 나가게 됩니다. 긍휼은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라 하십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겨 주었듯이, 너도 상대방을 불쌍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긴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 사람을 이해하고 속 깊이 알고 이해하고 용서한다는 것입니다. 용서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은 우리가 우리의 죄를 사한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우린 반드시 용서해야 합니다. 그래야 용서를 받습니다. 이것이 행하는 것입니다. 행한다는 것이 재산을 바치고, 예수를 위해서 밥을 푸고, 자꾸 무엇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행하는 것은 이웃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웃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TV나 신문을 보다 보면 분노가 올라오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분노로 마음을 내주면 안 됩니다. 반드시 사랑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보복하려 하지 마십시오. 인터넷에는 보복이 난무합니다. 자기 말을 하고, 보복을 하면 정의가 설 줄 알지만 예수님은 이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용서를 기뻐하십니다.
(여섯번째)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말씀에 순종하며 따라가고, 예수를 찾으며, 예수를 의로 여기고 사랑하면 점점 마음의 청결로 나가게 됩니다. 자신의 탐심과의 싸움입니다. 소유, 돈에 대한 욕심이 내 속에서 충동을 일으킵니다. 하나님을 찾고, 예수를 되찾고, 천국을 되찾으려 하는데도, 자꾸 이 땅에 소망을 두게 하고, 이 땅에서 무언가를 추구합니다. 자꾸 땅에 마음이 꽂히려 합니다. 마귀는 우리가 땅에 소망을 갖도록 속삭입니다. 그러나 이것과 싸워 이기라는 것입니다. 그것들과 내가 싸워 이기는 자는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청결해집니까? 예수를 통해서입니다. 성령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따라서 말씀의 순종으로 살아갈 때 우리 마음이 청결해질 줄 믿습니다. 위에서 말씀한 복을 누리는 삶을 다 실천하다 보면 마음이 청결한 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들이 바로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볼 것이라 하십니다. 하나님을 보고 싶은 사람은 위의 것을 다 지키셔야 합니다. 바로 온유한 자, 말씀에 순종하여 길들여진 야생마가 되야 하고, 예수님을 찾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그런 자들을 내가 데리고 가겠다는 말씀입니다. 청결은 깨끗하고 순수하다는 뜻입니다. 죄를 미워하고 죄와 싸우는 자는 복이 있어 하나님을 볼 것이라 하십니다.
(일곱번째)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이 말씀은 온 세상에 예수를 전하란 말씀입니다. 화평케 하시는 분은 예수입니다. 예수가 ‘의’ 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전하여 사람과 하나님 사이를 화평케 하는 자, 주의 길을 평탄케 하는 자가 복되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전합시다. 땅 끝, 곧 이스라엘까지 전합시다. 그런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습니다. 휴거된 자들, 그 중에서도 14만 4천에 속한 자, 장자들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 되어 아버지의 전에 들어가는 자가 됩시다.
(여덟번째)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8, 9, 10절 말씀은 마지막 때에 관한 말씀입니다. 올려져 가고 나면 남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환란에 들어가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아야 됩니다. 목숨을 내 놓아야 합니다. 그런 자가 천국에 들어갑니다. 앞의 다섯가지 복은 어떻게 믿음 생활을 해야 하는가에 관해, 뒤의 세가지 복은 그 결과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반드시 아버지께 올려 갑시다. 마음이 청결하고, 어린양의 피에 옷을 씻어 희게 합시다. 앞에서 행하라는 다섯가지 복을 실천합시다.
마태복음 5장 13절 – 16절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이라 하십니다. 소금과 빛은 바로 다섯가지 복을 지켜야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착하게 될 수 있을까요? 말씀에 순종하여 사랑하며,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본다는 뜻은 마음이 가난해지는 것입니다. 죄인 되는 것입니다. 나는 죄인인데 하나님이 용서해 주셨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죄인은 낮은 자입니다. 발바닥입니다. 그런데 발바닥이 남에게 나처럼 하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까? 내가 나쁜 놈인데, 다른 나쁜 놈을 욕할 수 있습니까?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한 것을 먼저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6장, 7장의 말씀은 팔복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나쁜 놈이고 죄인이기 때문에, 다른 죄인을 욕하지 못합니다. 똥 묻은 내가 겨 묻은 사람을 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낮아지고, 순종하여 따라가며 예수를 찾고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깁시다. 심령이 가난해집시다. 성경의 대의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자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 하십니다. 그렇게 살 때 선한 행위가 나옵니다. 자칫 자신의 선한 행위에 주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한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로 인해 구원받는 것입니다. 예수로 인하여 순종하여 살아가다 보니까 다른 사람이 봤을 때 내가 소금이 되고, 빛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소금이 되고, 빛이 되라고 하시지 않고 결과를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소금이다. 빛이다’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21절 – 26절
21.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25.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사과, 합의)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우리가 높아지고, 내가 주인 되면 노하게 됩니다. 가인은 제물을 드려 제사하면 하나님이 이 땅에서 복을 주고 잘 되게 할 줄 믿었습니다. 그렇게 믿고 제사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제사를 안 받아주십니다. 그런데 가인은 내 제사는 안 받아주고, 왜 아벨 것은 받아주냐며 분노합니다. 삶의 주인이 자기일 때 분노하게 됩니다. 분노가 살인으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왜 이러십니까? 사람들은 나한테 왜 이래? 내가 뭘 잘못했다고? 많이 들어보지 않으셨나요? 여러분이 그러고 있지 않습니까? 노하지 말라는 말씀은 주인을 예수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예수의 십자가 앞에서 나는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분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든 감정을 예수께 맡기고 온유한 자 되라는 것입니다. 화가 나도 욕하지 말고,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전 세계가 분노와 보복으로 꽉 차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 말씀에 순종하고 예수께 맡깁시다. 내가 해결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맡기십시오.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 급히 사화하라고 하십니다. 네가 화내고 열받아 하면 상대방도 가만히 있지 않고 너를 송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웃과 화해하라고 하십니다. 부부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고개를 숙이시고 상대방과 화해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감정을 잘 다스려야합니다.
마태복음 5장 27절 – 32절
27.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29.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31.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것이라 하였으나
3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너의 본능과 욕구를 하나님께 맡기라 하십니다. 남자들 눈에 예쁜 여자들이 보입니다. 본능입니다. 그러나 그것에 휩싸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29절, 30절, 31절을 통해 이렇게 본능적으로 눈이 돌아가면, 그 다음은 손이 가고, 마지막으로는 결국 아내까지 버리게 된다고 하십니다. 본능에 내맡기면 이런 순서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능 때문에 사랑하는 아내, 사랑하는 이웃에게 악한 짓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능을 처음부터 절제하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33절 – 37절
33. 또 옛 사람에게 말한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5.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36.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본능에 대한 말씀이 남자에 대해 말씀하셨다면 이 말씀은 여성에 대한 말씀입니다. 여성의 언어 중추는 남자의 세배로 발달되어 있습니다. 사실보다 말이 부풀려질 때가 많습니다. 그것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화난 감정을 절제하고, 본능적 욕구를 절제하고 언어를 절제하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38절 – 42절
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주님은 첫째, 감정, 둘째, 본능, 셋째, 언어, 넷째는 이웃과의 관계에 대해 절제하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듣는 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또한 상대방의 행동에 대해 좋게 생각하기 보다는 나쁘게 생각하는 경향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똑같이 갚지 말라고 하십니다. 악한 자를 대적하고, 싸우지 말라고 하십니다. 자기 감정을 억제하고 대해야합니다. 악에게 대응하지 마십시오. 온유에까지 이르십시오. 참고 인내하며 물질적 손해까지 입히려 해도 겉옷까지 주라고 하십니다. 물론 부당한 사기꾼까지 용납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다투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하는 자에게 주며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불쌍한 사람이 있으면 도우며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43절 – 48절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팔복의 내용은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를 본받아, 그의 법을 따라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기 힘든 것들에 대해서 하나하나 말씀하시면서 그것들을 돌파하여 가라는 것입니다. 예수께 맡기며 그것들을 돌파해가서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심같이 온전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죽은 것 같이 너희도 신중하게 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사랑이 안됩니다. 예수님께 순종할 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어주신 사랑 때문에 우리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되어 사랑하면 내 어깨가 올라갑니다. 그러나 예수께 받은 사랑 때문에 나도 따라 사랑할 때 나는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복의 전제를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고아된 자, 과부된 자, 나그네된 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야 구원받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7절 – 12절
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심령이 가난한 자라면 주님께 무엇을 구하겠습니까? 아버지를 구하고, 남편을 구합니다. 천국을 구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재물이 아니라 우리가 구할 것은 아버지요, 천국입니다. 그런데 뒤에 놀라운 말씀이 이어집니다. 그냥 준다고 하시지 않습니다. 네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너희도 작은 예수가 되어, 반드시 사랑하고 용서하고 온유하고 겸손히 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그 길이 좁은 문, 좁은 길로 가는 길이라 하십니다
마태복음 7장 13절 – 14절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남을 대접하며 사는 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천국의 문은 좁습니다. 하지만 이 좁은 문은 좁은 길을 따라가면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를 따라가는 것,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합니다. 그러나 말씀 따라 살면 우린 예수를 만나고, 천국에 이를 줄 믿습니다.
마태복음 7장 15절 – 21절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20.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주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주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너희가 나를 진짜 믿는다면 내 말씀에 순종하여 따라가는 자가 되라 말씀하십니다. 천국을 소망하며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따라갑시다. 반드시 좁은 문으로 들어갈 줄 믿습니다. 그 길을 주님이 지키시고 동행하실 줄 믿습니다. 야생마 같았던 자기를 길들여 순종하여 따라가면 주님이 책임지십니다. 이 땅에서도 기업을 주시며, 하늘나라에서도 기업을 허락하십니다.
사랑하는 주님
오늘은 천국을 어떻게 갈 수 있는가를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가 이제 불법을 따라가지 않겠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아닌 다른 것에 절대 주목하지 않겠습니다. 주님께서 그것들은 불법이라고 말씀하셨사오니 그것들은 결과물이지 구원받는 표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사오니, 예수님 말씀 따라 순종하며 남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내 감정을 절제하고 예수께 맡기고, 그리고 내 욕구를 예수께 맡기고, 내 욕심을 예수께 맡기고, 내 입을 절제하며 살겠습니다. 주님, 우리와 함께하여 주옵소서. 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