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향원을 짓고 2년 후 내게 큰 기회가 주어졌다. 그렇게도 바라던 한옥 한 채를 제대로 지을 기회가 주어졌다. 이 얘기를 하려면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홍성군 조응식가옥 사랑채를 보수하기 위해 현장에 머물고 있었다. 인근에 개인적으로 친분을 쌓고 있는 예당큰집(한식당) 주인과 점심을 먹고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분이 불쑥 내게 어디에 누가 소나무를 잔뜩 수집해 놓은 것이 있는데 그걸 처분하려고 사람을 찾고 있다며 내게 그 물건을 보고 구입할 수 있으면 하라는 거였다. 내친김에 소나무를 소유하고 있다는 분과 전화 연결까지 해주었다. 난 얼떨결에 나무 상인이 되어버렸다.
소나무가 보관돼 있다는 장소에 내가 먼저 도착했다. 그곳은 사과나무를 재배하는 과수원 초입에 위치했다. 주인이 오기 전에 먼저 소나무가 보관돼 있는 하우스를 들여다보고 크게 실망을 하였다. 비닐하우스는 여기저기 뜯겨 나가 바람에 펄럭거렸다. 소나무가 빗물에 노출되어 부식되어 있었다. 이런 경험이 내겐 몇 차례 있었다. 누가 좋은 재목감이 있으니 봐달란 말을 듣고 가보면 목재는 좋은데 보관을 제대로 못해 군데군데 버섯이 피고 부식된 채 방치돼 있었다.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주인은 만나고 가야 할 것 같아 기다렸다. 잠시 후 농약 냄새를 풀풀 풍기며 주인이 반갑게 다가왔다. 방금까지 사과나무에 농약을 살포하고 왔다는 것이다. 내가 먼저 나무 상태를 봤다고 말하였더니 그는 내 속을 빤히 들여다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나무 상태가 별로 지유, 근데 그건 며칠 전에 큰 바람으로 비닐이 찢어져서 비에 맞아 그런 거라며 몇 개 걷어내면 속은 깨끗 해유” 그는 그것이 사실이라는 걸 확인시켜 주려고 일부러 불량해 보이는 소나무 몇 개를 걷어내고 속을 보게 하였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내포지역을 강타한 태풍 매미로 인근 송림의 굵은 소나무들이 맥없이 자빠지는 일이 벌어졌단다. 그는 장비(굴삭기)를 소유하고 있어서 버려질 위기의 소나무들을 헐값에 사들였고 자신도 언젠간 근사한 한옥 한 채를 지을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나무는 직재보다 휘어진 것이 더 많았다. 강원 산간에 자라는 소나무는 곧게 자란다. 기후조건이 맞는 것이다. 고산지대가 아닌 중부권 일대에서 자라는 소나무는 곧은 나무를 찾기가 쉽지 않다.
당시 제재소의 목재구입비에 비해 3배 정도 싼 가격으로 소나무를 구입해 일단 고향으로 옮겨와 동네 후배의 밭 한 귀퉁이를 빌려 가설창고를 짓고 보관하였다. 그때까지 내 이름으로 된 땅 한 평도 없었다. 그렇지만 수중에 재목감을 가지고 있으니 맘만 먹으면 금방이라도 집을 지을 것 같았다. 창고를 오가며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하나님 집 지을 재목감은 수중에 들어왔는데 정작 집을 지을 땅이 없습니다. 제게 집을 지을 땅을 주세요.‘ 그러던 어느 날 창고를 짓도록 허락해 준 동네 후배가 밤중에 자신의 친구 어머니의 장례식장엘 다녀오다 그만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하필이면 창고를 지은 그 밭을 담보로 융자를 받은 것이 있는데 소유자가 사망했으니 빚을 갚을 길이 없자 경매에 넘어갔다. 경매로 넘어간 땅을 내가 다시 웃돈을 주고 구입하였다.
인연이란 어떨 땐 참 무섭다. 나무 둘 곳이 없어 후배에게 땅을 빌려 거기에 가설창고를 짓고 보관했는데 그 땅이 내 땅이 될 줄을 누가 알았으랴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응답해 주셨음에 감사하면서도 안타까운 죽음을 통해 먼저 간 후배가 내게 자신의 땅을 맡아달라고 부탁한 것 같다. 그를 위해서라도 집을 잘 짓고 오래도록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2008.12.01. ~ 2009.8.15. 9개월에 걸쳐 이우재를 지었다. 설계(본인이 직접 설계하고 친구 건축사를 통해 건축허가 진행) 기간을 합치면 1년이란 기간이 된다. 상량식을 하던 날 고 신영훈 선생님과 한옥문화원 원장님과 문하생들이 현장에 찾아와 축사와 함께 아낌없는 응원을 해주셨다. 호불호가 있지만 문화유산 전문가 중 고 신영훈 선생님을 평소 사모했던 나로선 그분의 축사가 큰 영광이었다. 2020년 안타깝게도 신영훈 선생님의 부음을 들었다. 마침 코로나로 모든 발이 묶여있던 터라 마지막 가시는 길에 인사를 올리지 못한 게 죄스러웠다. 축사 말미에 나를 바라보시며 “이제 자네의 소원대로 한옥을 지었느니 유례를 써봐라” 하셨다. 처음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그러다 나중에서야 그 말이 한옥을 짓는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 놓으란 걸 알고 글을 썼다. 기회가 주어진 다면 책으로 묶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한옥 한 채 갖고 싶다'는 꿈만 같던 일이 현실로 이루어졌다. 물론 집 짓고 ‘8천만 원’이란 빚을 갚느라 5년 동안 죽을힘을 다 했다. 꿈은 절대로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란 걸 배웠다. 한 번은 빚 갚는 것이 너무 힘들어 집을 팔려고 내놨었다. 중계업자가 한옥에 직접 찾아와 실사를 하였고 제시한 금액대로 팔아주겠다고 했다. 막상 내 앞에서 팔아주겠다고 하자 그동안 한옥을 그렇게도 갖고 싶어 했던 일과 집을 소유하기까지 겪었던 수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도저히 팔 수가 없었다. 재산을 마련하는 것도 어렵지만 그것을 지키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란 걸 그때 깨달았다. 그래서 부자 삼대 못 간다는 말을 하나 보다. 결국 매매는 없었던 일로 하고 현재에 이르렀다.
누구나 꿈을 꾼다. 그러나 실행에 옮기는 것은 별개인 것처럼 생각한다. 문화유산에 입문하고서 한옥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한 지 약 20여년 만에 난 한옥을 소유하게 되었다. 만약에 일찌감치 꿈을 포기했더라면 지금의 한옥을 소유하지 못했을 것이다. 평상시 한옥을 갖고 싶다는 욕망은 꿈으로까지 나타나 집을 짓고 그 안에 들어가 한옥의 정취를 마음껏 누리는 자신을 여러 번 경험했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난 단연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꿈을 현실로 만들려면 그 꿈을 절대로 포기하면 안 된다. 꿈을 한꺼번에 이루려 하지 말고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 준비하고 가까운 지인들 앞에서 자신의 꿈을 말해야 한다. 그게 헛말처럼 들릴지라도 자꾸 자신의 꿈을 밖으로 들어내고 그걸 증명하기 위해 실제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 물론 뻥쟁이로 끝나면 안 된다.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말만 해선 절대로 안 된다. 말한 것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주 중 절반은 고향 한옥에서 절반은 도시 아파트에서 출퇴근을 한다. 아직은 아내 없이 나 혼자 한옥에서 지낸다. 아내는 도시가 좋단다. 게다가 바로 윗집이 시댁이다. 그러니 오고 싶어도 시부모님 때문에 맘이 편치 않단다. 이해한다. 인생이란 100%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지지 않는 법이다.
아파트에 들어가면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는 게 유일한 낙이다. 그러나 한옥에선 할 일이 너무나 많다. 집도 집이지만 정원을 좋아하는 터라 돌봐야 할 것들이 한 둘이 아니다. 잡초를 뽑고 화초를 가꾸는 일은 시도 때도 없이 이어지는 일이다. 잠시라도 게으르면 병충해로 화초들이 시들시들해진다. 물 관리, 잡초제거, 화단 정비, 연못 물고기 관리, 마당 쓸기, 우중 배수관리, 겨울 동해관리... 어려서부터 농촌에서 자란 몸이라 그나마 내겐 친숙한 일들이라서 어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돌볼 정원이 있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작년엔 좀 더 정원에 대해 깊이 알고 싶어서 정원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알고서 하는 일과 모르고 하는 일엔 엄청난 격차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무엇이든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진행해야 훨씬 효과적이다.
한옥에 들어오면 봄부터 가을까지 정신없이 지낸다. 그러다가 추운 겨울이 오면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다. 이럴 땐 아궁이에 군불 지피고 뜨듯한 아랫목에 누워 뒹굴댄다. 서실에 꽂힌 책을 골라 밤이 맞도록 읽거나 멍을 때린다. 아파트에선 누릴 수 없는 온돌의 혜택을 한옥에서 마음껏 누린다. 돌아보면 내가 한 건 아무것도 없다. 빈 손인 걸 알면서도 흔쾌히 한옥 짓는 일에 정성을 다해 준 존경하는 분들의 덕택이요 이를 이루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임을 난 잘 안다. 그래서 더욱 겸손하게 살려고 한다. 누구든 한옥에 대해 알고 싶어 찾아오면 성심을 다해 가르쳐 주고자 하는 이유도 그래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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