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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가 화성탐사 우주선 '스피릿'과 '오퍼튜니티'호에서 최근에 도착한 데이터를 근거로 화성에 생물이 존재하는지, 화성에 현재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하는지 등 과학계의 이슈를 가지고 강연을 합니다. 질문 시간이 되면 여러 사람들이 질문을 합니다. 강의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교양강좌라면 질문의 내용도 간혹 천문학자가 보기에 심하게 엉뚱한 것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질문들처럼.
" 아폴로 우주선의 달 착륙을 비롯해서 지금까지의 우주탐사는 모두 스튜디오에서 찍은 가짜라는 말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지구는 둥글지 않다. 편평한 판 구조이다. "
" NASA의 비공개 X-파일에 의하면 지구에서 보이지 않는 달의 뒤편에는 우주인의 기지가 있다고 한다. 천문학자의 견해는? "
" 1950년대 아담스키 박사는 이미 금성인과 화성인등의 초청을 받아서 그들의 우주선으로 태양계내의 여러 혹성을 여행했다. 배스트셀러인 그의 저서와 저서에 실린 사진들이 증거이다. 그럼에도 화성에 생명체가 없다고 단정할 수 있는가? "
제가 천문학자라면 그런 질문들에는 므흣한 미소로만 화답할 것입니다. 아마 다음 날 조선일보에는
"천문학자 아무개, 공개석상에서 망신당하다 !!" 이렇게 나올지도 모릅니다. 진도 나갑니다.
긴장성 두통(tension type headache)
긴장성 두통은 제목 그대로 긴장과 스트레스가 주요 유발 요인입니다. 주로 오후에 발생합니다. 환자들이 호소하는 두통 양상은 '머리에 띠를 두른 듯 아프다.' ' 꾹꾹 누르는 듯 아프다.' '묵직하게 아프다.'등으로 나타납니다. 영어로는 'dull' 'tightening' 'band like' 'tensive' 이런 표현들이 등장하지요.
편두통과의 차이점이 몇가지 있어서 감별 포인트가 됩니다. 우선 혈관확장과 상관이 없기 때문에 두통의 양상이 박동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욱씬욱씬', '지끈지끈', '펄떡펄떡'이런 양상을 보이지 않는 것이 긴장성 두통의 특징입니다.
두통 지속 시간도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편두통 반열에 오르려면 4시간 이상 두통이 지속되어야 하지만 긴장성 두통의 진단기준은 두통지속시간 30분에서 7일입니다. 긴장성 두통은 양측성이 보다 일반적이며(60%) 주로 앞머리와 뒷머리에 잘 오는 두통입니다.
하루종일 후배에게 치받히고 선배에게 갈굼 당하면서 일하는 경우에 긴장성 두통이 오기 때문에 주로 오후에 찾아오는 두통입니다. 그래서 후배를 거느릴 나이가 되어야 오는 두통입니다. 중년 이후에 호발합니다. 반면에 편두통은 이미 젊은 시절부터 두통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편두통이 찾아오면 모든 일을 올스톱 하게 되지만(움직이기만 해도 머리가 뽀개지는 느낌이 오니까...) 긴장성 두통은 걷거나 움직이거나 통증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수평선을 긋고 내가 얼마나 아픈지 생각해보는 VAS로 평가해보면 통증의 강도는 5-7 점 정도로 편두통보다는 강도가 좀 약합니다. 구토나 오심은 거의 동반되지 않으며 빛이나 소리가 두통을 약화시키지 않습니다.(하루종일 치받히고 갈굼당한 마당에 뭐가 들리고 보일 리 없지요.....)
이러한 양상을 보이는 두통이 한 달에 하루 이상, 일년 총합으로 12일 이상 발생했다면 긴장성 두통의 진단 기준을 충족합니다.
치료는 원인이 그러하니 일단 쉬면서 스트레스를 풀면 낫겠지요. 혹시 후배가 퇴근 후에 '충성의 술 한 잔' 쏘거나, 선배가 '사랑의 술 한 잔' 사주면서 면서 좋은 곳(?)으로 모시면 완벽하게 치료될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물론 다음날에는 숙취로 인한 두통이 문제가 되겠지만....)
급성기 치료에는 술보다는 가격이 싼 약을 씁니다. ibuprofen(대표 상품명: 부루펜)과 naproxen(대표상품명 : 낙센)이라는 소염진통제가 추천되는 약입니다. 하루 2-3알이면 효과를 봅니다. 여러 소염진통제가 다 효과가 있지만 긴장성 두통에는 이 두 가지가 선호됩니다.(약 선전 하는 것 같아서리...) 하늘의 별만큼이나 다양한 성분으로 시판되는 소염진통제도 각각 고유한 특성이 조금씩 다릅니다. 위의 두 가지는 그나마 소염진통제의 고질적 부작용 중 하나인 위장관 부작용이 적다는 잇점이 있지요.
긴장성 두통에도 잦은 재발이 문제가 되면 역시 예방치료를 시도합니다. 편두통 예방 치료에는 베타차단제를 비롯한 여러 요원들이 작전을 뛰지만 긴장성 두통의 경우 가장 유용한 요원은 삼환계 항우울제(tricyclic antidepressant,TCA)입니다. TCA는 긴장성 두통환자에게 효과적인 예방치료제이자 급성기 치료에도 효과적인 약제로 알려져 있지요.
신경정신과 영역에서 사용하는 항불안제, 항우울제에 대해서 사람들은 선입견과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독"과 "부작용"이 기피정서의 가장 큰 이유라고 봅니다. 그리고 정신병에 대해서 "미친*"으로 터부시하는 국민정서도 한 몫 할 것입니다.
경찰특공대와 SWAT 요원들이 대테러 작전에 MP5 기관단총과 스턴(섬광) 수류탄을 애용하듯, 의사들도 자신의 전문영역에서 '작전을 뛰려면' 무기가 있어야 합니다. 약물요법은 외과의가 아닌 저에게 있어서 중요한 치료수단이지요. 기관단총과 수류탄은 위험한 무기입니다. 그래서 요원들은 부단한 훈련을 반복합니다. 의사가 약물 요법을 시행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시면 됩니다. 정신과 영역의 약이라고 다를 것은 없습니다.
TCA의 예를 들자면 많이 애용되는 성분이 amitriptyline인데 한 알 용량이 10mg 정도입니다. 긴장성 두통의 경우 통상적으로 투여되는 하루 용량이 5-10mg에서 20mg 전후이고, 점진적으로 증량할 때 부작용 발현 용량은 75-150mg 이상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다 민감한 듯 하여 신경과에서는 하루 50mg 이상을 쓰지 말라고 추천합니다. 약을 사용했을 때 이득과 위험도의 저울질을 통해서 적정 용량을 결정해 나가는 과정이 의사넘들이 비싼 진료비 받고 병원에서 환자랑 하는 일 중 하나입니다.
이제 제가 어제 착각으로 잘못 올렸던 내용이 나옵니다. (부끄 & 쑥쓰....) TCA로 예방 치료에 효과를 못
보면 구원 투수격으로 항우울제, 항불안제로 쓰이는 약제인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차단제(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 SSRI)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뇌신경안에서 신경전달 물질로 쓰이는
'세로토닌'이라는 물질의 농도를 올려주는 약입니다. 전체적인 부작용 발현율은 TCA 보다 적다고 하지만(순한 약이라는
의미...) 긴장성 두통의 예방 효과 역시 TCA에 비해서 떨어집니다. 가격도 문제입니다. TCA는 한알에 10-20원,
SSRI는 600-1000원 정도 하니까요.
여담 한마디)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은 요즘 의학연구에서 아이돌 스타처럼 자주 등장합니다.
예를 하나 들지요. 사랑에 달뜬 청춘남녀들과 우울증 환자의 공통점은?
정답 : 세로토닌 결핍.
첫사랑을 잊지 못해 괴로워하신다면 세로토닌을 증가시키는 약을 드세요.
사무치는 그리움의 첫사랑 어여쁜 그녀가 더 이상 당신의 꿈에 찾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군집두통(cluster headache)
군집두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의 표현은 '깊이 찌르는 느낌', '후벼파는 느낌', '도려내는 느낌'입니다 꼭 한쪽으로만 오고 눈 주위와 측두부(옆머리)통증이 흔합니다. "빨갛게 달아오른 부지깽이로 눈 속을 후벼파는 느낌"으로 압축됩니다. 영어로는 "deep", "boring", "piercing" 류의 단어들이 등장합니다.
두통의 지속시간은 15분에서 세시간으로 짧은 편이지만 대신에 군집두통은 하루에도 여러 차례(8번까지도!) 올 수가 있습니다.('고통의 신'은 공평한가 봅니다...) 수평선을 그어서 보여드리면서 '얼마큼 아프세요?'라고 묻는다면 거의 8점이상의 심한 두통을 호소합니다.
군집두통의 또다른 양상은 자율신경 증상이 동반된다는 점입니다. 아픈 쪽의 눈이 붓거나, 충혈되거나, 눈물이 나기도 하며, 코가 막히기도 합니다. 자율신경 증상은 군집 두통 진단에 있어서 의미가 크지요.
편두통이 여자들의 병이라면 군집 두통은 40-50대 남자들의 병입니다. 악화요인 중에는 수면도 있어서(잠자면 아프데요...)잠을 자다가 새벽 1-2시경에 눈이 빠질듯한 두통으로 잠이 깨어 구토등의 증상이 함께 옵니다. 게다가 눈 붓고, 눈물나고, 코 막히고...결국 환자는 응급실로 옵니다.
군집두통의 급성기 치료는 '산소흡입'입니다. 산소 마스크 씌우고 분당 7L의 속도로 산소를 틀어주지요. (참고로 통상적인 산소 흡입 치료는 분당 2L의 속도이지요.) 마스크 쓰고 10-15분 사이 10명 중 8-9명 정도가 증상의 호전을 보입니다.(밤에 졸면서 응급실 지키는 병아리 의사가 명의가 되고, 자기가 입은 가운에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에피소드가 됩니다...^^) 약물치료로는 편두통에서도 작전을 뛰는 ergotamnie을 사용합니다.
우발적 편측통(paroxysmal hemicrania)
우발적 편측통은 군집두통의 축소판이라고 보면 됩니다. 통증의 양상이나 자율신경 증상 동반은 똑같은데 지속시간이 짧고(2-30분), 짜증나게 자주 옵니다.(진단기준 : 하루 최소 5회 이상) 5회 이하로 와도 하루 총 두통지속 시간이 30분 이상이면 진단이 가능하지요.
군집두통과 또 다른 차이는 여자들에게서 많고, 치료에 있어서 "indomethacin"이라는 소염진통제 성분에 극적으로 반응을 보인다는 점입니다. 진단 기준에 indomethacin 투여로 호전되는 가의 여부도 포함될 정도이니까요. 군집두통이나 우발적 편측통은 한번 발생하면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통증이 심하고, 또 하루에도 여러 번 습격하는 '징헌 놈'이기에 일단 진단이 되면 수주에서 수개월간 지속적인 약물치료를 하라고 권합니다.
지속 반두통(hemicrania continua)
제목 그대로 지속적으로 반쪽 머리가 아픈데 역시 indomethacin에 잘 듣는 두통입니다.(병의 정의 자체에 "responsive to indomethacin"이라는 구절이 있네요...) 중간 정도의 통증이(그러니까 그나마 버티겠지요...) 쉴새 없이 3개월 이상 지속되면서 가끔 가다 심하게 악화됩니다. 군집 두통/우발적 편측통과 같이 자율신경 증상도 동반됩니다.
신생 매일 지속 두통(new daily persistent headache)
두통의 양상은 긴장성 두통과 유사한데 매일 발생하며 두통이 없는 기간이 3일 이상 간격이 벌어지지 않는 두통입니다. 3개월 이상 월 15일 이상의 두통이 지속되는 경우입니다. 불행하게도 신생 매일 지속 두통 환자는 이미 마지노선을 돌파하신 분들입니다. 가방 안이나 냉장고에 "한국인의 두통약"과 판*린을 박스 단위로 비축해두신 상태까지 가신 것이지요.
개인병원 수준에서 치료하려고 덤빌 두통이 아니라고 합니다. 치료의 처음 시작은 박스단위로 비축한 약을 서서히 감량하면서 끊고, 예방 치료약을 먹는 것인데(한마디로 선수교대이지요.) 이 과정은 마약을 끊는 것과 같은 수준의 고통을 수반합니다. 예방치료제의 효과가 나오는 시기도 박스 단위로 오랜 기간 먹던 약의 축적효과가 사라지는 순간부터입니다.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최소 한 달이상은 걸립니다. 한마디로 외래치료가 불가능한 병입니다. 두통 전문 크리닉에서 입원치료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거대 세포 동맥염 혹은 측두동맥염(giant cell or temporal arteritis)
일차성 두통은 아닙니다, ASH님 글에 보면 면역질환이라는 개념이 잘 나옵니다. 옆머리(안경을 쓰면 안경테가 지나가는 바로 그 자리..)에 있는 측두 동맥에 면역질환이 발생하는 원리와 비슷하게 염증이 생기면서 두통을 유발하지요. 거대세포 동맥염이라는 병명은 동맥을 조직검사 해보면 무지 큰 세포(그래봤자 현미경 시야에서...)가 동맥벽에서 보이기 때문에 붙은 이름입니다.(이 세포도 면역세포의 일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70대 이상이 노인에게서 흔하고 옆머리나 눈 주위가 아프다고 하는데 측두동맥 주위의 조직이 위축되어서 혈관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입니다. 하루 종일 펄떡거리는 두통이 지속되고, VAS 점수는 7-8점 정도로 강도가 센 두통입니다. 환자는 두통의 진행에 따라 시력저하를 호소합니다. 죽는 병은 아니지만 치료를 하지 않으면 실명하므로 빨랑 병원에 가서 면역억제 치료제의 1번 타자인 스테로이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거대 세포 동맥염은 이렇게 보인다는 거지요...
주제 하나를 잡으면 한편에 끝내지 못하는 고질병은 어쩔 수가 없네요. *.zip 파일 생성 능력이 애당초 저에게는 없나
봅니다. 여러 책들을 짜깁기해서 어설프게 올리는, 의학을 소재로 한 잡설 수준의 글이지만 언제나 우리 주위를 배회하면서
시도때도 없이 우리를 못살게 구는 두통을 이해하시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