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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서예3월호 월간서예포럼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이 서예전을 연다. 취재기자 장화정
서품식 제단 앞에 엎드려 있는 나에게 그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부터 너는 방주 한 척을 만들 것이다.”서품 때 나에게 방주 한척을 지으라고 명령하신 그분의 뜻에 순종하며 그분과 동행하며 살아 온지 어느 덧…25년… 아직도…방주는 미완성이지만… 하느님의 명령을 받은 지난 25년의 중간보고를 미완성인 방주 안에 조심스럽게 담아 보았다. 강론을 준비하면서 성경 구절을 묵상했던 것들… 본당 식구들 피정을 하면서 했던 강의 내용들… 성경 구절을 가지고 매년 사목목표를 썼던 것들… 신자들을 면담하면서 깨달았던 하느님의 응답들을…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부족하지만 정성스럽게 엮어보았다. 남들보다 더디게 가는 걸음으로 준비한 부족한 작품이지만… 하느님께서는 나의 부족함을 은총으로 채워주시리라 믿는다. 이제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앞으로 내게 주어진 사제생활 동안 끝까지 하느님의 명령을 지키며, 그 분과 동행하며 살기를 소망하고 방주가 완성되는 날. 많은 하느님의 백성들이 그 안에 모여들기를 또….소망한다. 훗날…주님 앞에서 … '당신이 명령하신 구원의 방주를 다 지었노라' 고… 자신 있게 봉헌 수 있기를 무릎 꿇어 기도하고…또…기도해 본다. - 2011년 3월… 개나리가 피어 있는 창가에 앉아… 수유동 성당에서 이 강구 마르코 신부 -
하루를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매우 부지런한 분이시라는 것이 정평이다. 신부님의 일상을 여쭈어 보았다. “저는
매일 5시에 기상을 해서 일과를 시작합니다. 오전에 미사를 봉헌하고 낮에는 주로 단체모임을 갖고 오후에는 개인적인 시간을 갖습니다.”
“요즘은 곧 있을 개인전을 위해 사제관의 서재에서 작품을 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매일 조금이라도 시간을 내어 서예를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모포를 깔고 먹을 갈고 준비를 하는 시간이 매번 너무 아깝고 그만큼 마음먹기도 힘듭니다. 그래서 언제나 마음
만 먹으면 글을 쓸 수 있도록 특별히 지필묵을 항상 깨끗하게 준비해 두지요.”
이번 전시는 다른 전시와 달리 작품 하나 하나가 마르코 신부의 25주년 사제생활을 성경구절에 빗대어 표현했다. 실제로 작품을 들여다 보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많이 접해 보지 못했던 성구들로 사제로서의 삶을 살면서 깨달음을 주었던 구절을 작품으로 표현하고 묵상을 가미 시켜 작품을 구성하였다. 때문에 신부님의 이번에 만든 출판물은 도록이 아니라 이강구 신부의 묵상록에
작품도판이 나열되어 더욱 정감을 깊숙하게 끌어들이고 있다.
너는 방주 한척을 만들 것이다.’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가장 보시니 좋았던 사람이 너무나 많은 죄를 짓기 시작하자 이 세상을 벌하시기 전에 흠 없는 사람 ‘노아’를 선택하셨고 새로운 세상을 위해 구원의 방주를 짓게 하신다. 노아는 100년 동안 방주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자르고 역청을 칠하고 끊임없이 노력해 큰 방주 한척을 만들었다. 하느님의 명령으로 구원의 방주를 만드는 100년의 세월 동안 노아가 겪었을 수많은 갈등과 번민을 사제로 살아가면서 늘 가슴에 깊이 묵상하며 살았다고 한다. 이 구절이 신부님한테는 끊임없는 채찍의 말씀으로 자리하게 되었고 올해 은경축년을 맞이하여 25년 동안 신자들을 위해 얼마나 노력해 왔는가를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구절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사제로서의 삶이 묻어나는 작품들로 구성하였다고 한다. 사제로서 신부로서 또 다른 이름을 같는 것도 드문일이다. “一也”라는 호에 대하여 여쭈어 보았다. 서예를 시작한지 1년이 되던 해 선생님과 도봉산에 다녀와 사제관에서 서예를 함께 배우는 분들과 만찬을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선생님께 호를 받게 되었는데, 선생님께서는 붓을 들어 한참을 생각하시다가 ‘一’자를 쓰셨습니다. 무슨 뜻인지 아니면 계속 글자를 만들어 가실지 몰랐는데 그냥 글자를 옮겨 ‘也’자를 써 주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선생님은 ‘더 이상 드릴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一也’ 라고 해서 굳이 번역하자면 ‘하나니라’라는 뜻인데, 처음엔 시큰둥하게 생각했습니다. 멋진 한자들도 많은데 왜 이렇게 간단한 호를 지어 주셨을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호에 대한 의미를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는 종교적인 의미로 ‘一’의 개념은 한 분이신 하느님만을 흠숭하라는 유일신앙을 뜻합니다. 두 번째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를 몰 때 ‘이랴’라는 구호를 사용합니다. ‘아! 이것은 걸 맞는 또 하나의 내 이름이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혼자서 생각을 해도 여지껏 그 일야에 대한 의미는 계속 나오고, 몇 박 며칠을 이야기해도 끝이 없는 의미인 듯합니다. 선생님께서 저에게 우직하게 밭을 가는 소처럼 서예에 증진하라는 의미로 지어주신 호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한자의 ‘一’은 하늘과 땅을 포함한 우주를 담고 있는 심오한 글자라고 생각합니다. 이같은 세 가지 이유로 아주 간단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보배롭고 여기에 견줄만한 호가 또 어디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 성당 신자 중에 산 꼼장어 집을 하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아주 맛있는 꼼장어 집이라 자주 들르곤 했는데 어느 날 장사가 너무 잘되는 바람에 배가 아팠던 건물 주인이 자신이 직접 장사를 한다고 신자를 내쫓았습니다. 겨우 근처에 터를 구해 장사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저에게 ‘신부님께서 간판을 좀 써주셨으면...’ 하는 겁니다. 그래서 흔쾌히 OK! 하고 집에 돌아와 막상 생각해보니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고 평소보다 훨씬 공을 들여 간판 글씨를 완성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꼼장어 맛이 나는 간판을 만들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했는데, ‘장어’라는 글자에서 ‘ㅇ’을 하는데 처음 붓을 꾹 눌러 대고 ‘홱~’ 돌렸는데 살아있는 꼼장어 맛이 났습니다. 그래서 이걸 갖다가 간판글씨를 사용하였는데 제법 산 꼼장어의 느낌이 물씬 묻어나는 간판이 완성이 되었고, 식당오픈과 함께 제 글씨로 만든 간판이 내걸렸죠. 그 식당은 손님이 이전보다 훨씬 많아졌습니다. 가게 주인은 ‘신부님 간판 덕에 장사가 잘된다고 하면서 제가 가면 칙사대우를 해 주십니다. 허허……. 그 식당을 갈 때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뿌듯해지고, 제 글씨에 자부심이 생기게 되는 계기가 되었죠.” 이시대의 캘리그라피를 활용하는 선두 주자인 것 같았다. 언제나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안색에 다정하고 정감있게 대하시는 모습에서 이번 전시가 더욱 기대가 된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자신의 서예작품과 그동안 자신의 서예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야 이강구 신부의 눈빛은 매서워 보일만큼 열의에 차 있었다. 사제로써 50주년이 되는 금경축 행사에서는 더욱 훌륭한 작품으로 전시를 준비하는 모습을 기대해 보며...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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