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내 아들 딸과 함께 '인디시네'를 찾아서, 독립영화인 다큐멘타리 <워낭소리> 를 감상하다...
'워낭'은 소의 목에 매단 방울을 말하고, 그러니 '워낭소리'는 소가 움직일때 나는 그 방울소리이다,
우리 어릴때 자란 촌에서는 요령,혹은 요랑소리 라고 부른 걸로 기억된다,
가령,사내가 아주 급하게 뛰는 것을, 흔히 '봉알에 요랑소리 나도록 달린다' 라는 비유를 하기도 했다.
영화 <워낭소리> 는 무려 30 여년을 넘게 , 촌부 그리고 그의 아내와 동고해온 늙은 소가 주연인 영화.
그 '늙다리 소' 는 수의사로부터 일년여의 잔여수명을 선고 받고, 영화는 바로 이 늙다리 소의 마지막 일년여의 세월을 담고있다,
일반적으로 소의 자연수명은 대략 평균 20 여년으로 알려져있으니,
영화에서 암시되는 그 늙은 소의 나이 40 살은, 사람으로 치면 거의 150 세는 되는 셈이다.
사실, 지금 사육당하는 소들, 그 소들의 존재이유가 오로지 사람의 단백질 공급원이 되어버린 소들이야,
송아지를 생산하기 위한 어미소들을 제외하고는 대충 20 개월, 30 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도살당한다,
20 개월령, 30 개월령 이라는 말들은 지난 졸속적이고 굴욕적인 미국쇠고기 수입협상 사태때, 귀에 못이 벡이도록 들은 말이지 않은가...
아,물론 소의 나이가 중요한건 아니다,
이건 '인간극장'도 아니고, '세상에 이런일이' 라는 티비 프로도 아니니까.........
나는 이 영화 <워낭소리>를 크게 세가지의 주체,혹은 객체의 시선으로 본다,
하나는, 소와 인간의 결합으로서 보고,보이는 것,
또 하나는, 사람에게 있어서의 소,
다른 하나는, 소에게 있어서의 사람,
먼저,
소와 사람의 결합 혹은 공동체로서의 시각,
전통적으로 싸움소가 아닌, 일소는 '느림' 을 그 특징으로 갖는다,
걸음걸이, 되새김질, 눈 꿈박거림(소는 눈을 깜박이는게 아니라, '꿈벅'거린다), 그리고 등짝에 붙은 파리를 쫒을때의 그 꼬리짓도 매섭게 빠르지 않고 느긋하다,
'누런 소의 하품'은 그 자체가 느림의 미학에 대한 절묘한 시적 표현이다,
'워낭소리' 도 이런 소의 느림 때문에,경보사이렌 처럼 호들갑스럽지 않고,죽비소리 마냥 청량한 소리가 되는 것,
때문에, 무인은 말을 타지만, 문인은 소를 탄다.
이 측면에서, 나는 영화 <스트레이트 스토리> 가 떠오른다,
잔디깍는 기계를 타고, 임종에 가까운 형을 찾아 떠나는 노인의 긴 여정을 그린 영화......
<워낭소리> 에서는, 잔디깍는 기계가 소와 소가 끄는 달구지로 대체되어있다,
<워낭소리>가 다큐멘타리의 형식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영화 <스트레이트 스토리>는 극영화이다,
극영화에서의 '느림의 미학'은 연출되는 것이지만,
다큐에서의 '느림의 미학'은 오히려,느린 대상에게 감독이 연출당한다, 즉, 느림에 대한 미학적인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
물론, 사실 지아무리 다큐라 하더라도, 연출은 불가피하게 개입되기는 한다,
주제나 소재의 선택, 프레임, 카메라 앵글, 그리고 결정적으로 편집에 이르기 까지.....
그러나, 그 연출은 극영화에 비해서, 대단히 많이 한계지워지고, 때문에 다큐의 감독은 그 한계를 관용할줄 아는 사람이다.
현대인의 강박관념, 우리시대의 신탁이 되어버린게, 바로 '효율성' 이라는 것인데,
따지고 보면, '효율성'은 '속도' 아니,더 나아가 '가속도'와 동의어이다,
즉,생산과정을 미분한 것에서의 접선의 기울기가 바로 우리시대의 '효율성' 이라는 것이고,
그 기울기가 더 큰 것을 우리는 '효율적' 이라고 말한다,
영화 <스트레이트 스토리> 에서는 노인이, 비행기로 가도 몇시간이나 걸릴 거리를 사람의 걸음걸이와 비슷한 속도의 잔디깍는 기계를 타고 느리게 가고,
<워낭소리>에서의 노인의 삶의 속도도 그 늙은 소의 느린 보행속도에 달린 종속변수이다.
물론, 가끔 노인이 회초리로 소를 재촉하기도 하겠지만, 그래봤자다..............
사실, 일소를 부릴때 농꾼이 하는 말인, "이랴, 저랴", 라는 말은 방향의 제시이지 속도의 재촉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소에게 간혹 내려치는 채찍도 소가 완전 정지하여, 풀이나 작물을 먹을때, 사용할 뿐이다,
해서, '주마가편' 이라는 한자성어는 있어도, '보우가편' 이라는 한자성어는 없다.
대신, '우보천리' 라는 한자성어가 있는데, 이것은 느리게 관조하면서 더 길고 깊게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애정어린 잔소리꾼(?)인 할머니가 끊임없이 노인을 타박하지만, 노인은 그저 소처럼 듣고 흘린다,
할머니에게는 노인이나 소에게 하는 말이 공히, '우이독경' 인 셈이다.
할머니가 잔소리하며 요구하는 '사료먹이기' 와 '기계사용' 이, 바로 '효율성'의 신탁이다,
물론, 할머니도 효율을 위해서 말하는건 아니고, 그저 노인과 늙은 소의 노동이 애처롭고 답답해서이지만....
하지만, 노인은 그저 늙은 소의 보폭에 맞춘 자신의 삶의 속도를 묵묵히 관철하고, 카메라는 그 느린 걸음을 그대로 따라간다,
그렇다고 해서, 이 다큐의 감독이 우리더러 다시 그런 소의 속도로 삶을 살기를 훈계하는 것은 아니리라,
다만, 光速 을 향해 수렴해가는 狂速의 세상을 한번 되돌아보기를 바라는 것이리라, 마치 소가 반추하듯이....
이런 의미에서, 다큐 <워낭소리>의 제작사 이름이 ' 스튜디오 느림보' 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 이름 '느림보' 가 은연중에 제기하는 문제의식이야 말로, '느림의 미학' 이겠기 때문이다,
이때의 '느림'은 그들 제작영화의 미학적 주제이기도 하겠거니와,
어쨋든, 효율성을 강제받는 산업의 일종인 영화의 생산,유통,소비 와 같은 전 과정에서도,
다른 일반적인 상업영화보다는, 더 '느리게' 갈것이고, 그 느림에서 입을수 있는 상대적인 손해를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
사람에게 있어서의 소. 물론 영화 <워낭소리> 와 비슷한 상황의 경우이다,
내 나이쯤 되는 사람(40 대) 이상의 연배들은, 이런 말을 할수 있을 것이다,
"나를 키운건 팔할이 소였다..."
흔히, '우골탑' 이라는 말로 비유되는 소들의 희생 위에, 우리의 학업이 이어졌다,
소는 죽도록, 등이 휘어지도록 일했고, 그 소를 부리는 사람인 우리 부모님들은, '소처럼' 일했다,
소는 농군과 그 가족을 위해 일하고,송아지를 낳고, 농군은 그 소를 멕이기 위해 꼴을 베고, 그 꼴로 쇠죽을 끓일 나무를 하기 위해, 들로 산으로 누비며, 꼴과 나무를 지어날라야 했다.
영화 <워낭소리> 에서의 그 노인도,
그 늙은 소의 노동과 더불어, 자식 9 남매를 공부시키고 성장시켰다,
그렇게 장성한 아들 딸들은 하나 둘씩 노인을 떠났지만, 소는 늙고 병든채 노인 곁에 남는다,
그리고, 이제 노인은 그 소마저 떠나보내야 한다,
소는 돼지나 닭,염소 등속과 같은 다른 가축과 의미가 다르다,
그 이유는 소는 농군과 세트로 노동을 하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농군의 입장에서는 소와의 파트너쉽이야말로, 농사일의 관건이 되는 것인데,
이런 연유로 소는 어떤 면에서 마누라 보다도 애틋함이 더 가는 존재, 이종족의 식구인 셈이다,
하여, 영화 <워낭소리> 에서도, 늙은 할미는 소를 향해 귀여운 질투를 드러낸다...........
그렇게, 거진 반평생을 함께해온 늙은 소가 그 힘든 발걸음을 더 이상 떼지 못하고, 아예 네발로 일어서는 것 조차 힘겨워 할때,
노인은 자신에게 덮친 병과 더불어, 아파한다.
하지만, '아프다' 라는 신음은 노인의 몫일 뿐이다, 아니, 어쩌면 노인의 그 "아파..." 하는 소리는 소의 아픔을 대신 표현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기어이 소는 노인 곁을 영원히 떠나간다,
노인의 속깊은 슬픔을 뒤로 한 채.........................
마지막으로,
소에게 있어서의 사람,
일소의 몸에 사람이 부착하는 각종의 악세사리를 보자,
꼬뚜레,굴레, 고삐, 멍에, 워낭................
따지고 보면, 모두가 예속과 굴종의 상징어이다.
실제로, 그 청아한 워낭소리 조차도, '딸랑거리다' 또는 '딸랑이' 라는 말처럼, 굴종을 의미하는 뜻으로 의미전화가 되어있지 않은가?
소는 이렇게 사람에게 예속당하고, 굴종당해왔다,
이걸 사람들은, 그렇게 평생을 부려먹는 그 소에게 미안한 감정을 그냥 '업' 이라는 말로 변명한다,
영화 <워낭소리> 에서도, 그 '업' 이라는 말들이 수시로 나온다,
그리고, '인연' 을 말하기도 한다,
영화에서,그 귀여운 잔소리꾼 할미가 줄곧 푸념한다,
"에고, 소는 주인을 잘못만나고, 자기는 영감 잘못만나서 죽도록 고생만 한다..." 라고.
그게, 다 소의 업장이라고...........
그 늙은 소는 더 이상 일어서지 못하고, 죽음에 임박해서야,
드디어, 자기를 인간에게 예속시킨 모든 굴레로 부터 해방된다,
노인은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늙은 소의 코뚜레를 풀고, 고삐를 자르는 것으로, 소를 해방시킨다,
그리고, 소는 죽음으로써, 평생을 짊어지고 온 모진 업장으로 부터, 완전히 해탈된다.
우리 사람은????
우리도 사실 , 소의 처지와 다를게 없다,
우리 역시, 평생을 돈에 코꿰이고, 출세에 굴레입고, 성공에 멍에지고, 봉알에 요랑소리 나도록 바삐 딸랑거리며 살지 않는가?
너나, 내나......................
영화 <워낭소리> 는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그냥, 조용히 눈을 감고 귀로서 '소리들' 을 감상해도 좋은 영화이다,
워낭소리를 따라서 가만히 가다보면, 새소리며 비소리며, 노인의 신음이며, 할미의 투정이며,
노랫가락도 들린다,
자, 이제 조용히 워낭소리를 따라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