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등장한 두바퀴 탈것에 증기엔진을 얹어 스스로 달리게 해보자는 아이디어는
1860년대에 미쇼형 자전거에 소형 엔진을 얹는 것으로 실현되었다.
뒤이어 오디너리와 세이프티가 나오고
80년대 중반 휘발유엔진이 완성되자
이들의 결합이 오토바이와 자동차를 등장시켰다.
1890년대 후반에는 헨리 포드도 첫 자동차를 네바퀴 자전거를
뜻하는 콰드리사이클이라 이름지을 정도로 자전거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1890년대 유럽의 자전거 전성시대는 상류와 중류층이 주도한 유행으로,
사람들의 행동범위를 크게 늘려주고 여권운동에서 힘이 되는 등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와 함께 자전거는 하나의 기계로 완성되어,
엔진의 힘으로 움직이는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뒤따라 탄생하는 데서 직접적인 길잡이가 되었다. 새로 나타난 두바퀴 탈것에 증기엔진을 얹어 스스로 달리게 해보자는 아이디어는
1817년 독일에서 카를 폰 드라이스가 드라이지네를 내놓은 바로 뒤에 나타났다.
그러나 성능에 비해 덩치가 크고 정교하지 못한 19세기 초의 증기엔진을
작은 드라이지네에 다는 것은 생각에 그쳤다.
자전거에 증기엔진이 처음 실린 것은
1860년대 초 프랑스에서
앞바퀴에 페달이 달린 피에르 미쇼의 벨로시페드(본 쉐이커)가 나온 뒤다.
이 무렵에는 증기엔진의 성능이 좋아져 산업 여러 분야에서 원동기로 쓰이고,
육상교통에서는 철도 기관차 외에 검은 연기와 요란한 소음이 말썽이었으나
증기엔진 버스로도 주목받고 있었다. 자전거를 기본으로 개발된 오토바이와 자동차1868년 프랑스에서 루이 페로는 벨로시페드에 증기엔진을 써서
고속으로 달리는 탈것을 만들었다.
안장을 높게 하고 그 밑에 알콜을 연료로 쓰는 증기엔진을 얹은 이 자전거는
가죽벨트로 뒷바퀴를 굴려 시속 30km의 빠른 스피드를 자랑했다.
그러나 엔진이 내는 열과 쓰러질 때의 큰 위험 때문에
페로는 두 바퀴 대신 안전한 세바퀴차 트라이시클로 실험을 계속했다. 한해 뒤인 1869년 미국에서 실베스터 로퍼는
철제 프레임과 나무바퀴로 된 벨로시페드에 석탄을 태우는 증기엔진을 실은 자전거를 선보였다.
좌석 뒤쪽에 세로로 엔진을 얹은
이 차는 비교적 안전해 축제와 서커스 등에서 혼자 구르는 자전거로 큰 인기를 누렸다.증기엔진을 쓰는 자전거는
1880년대 초에 앞바퀴가 크고 가벼우면서 튼튼한 오디너리(빅휠)가 나오자 크게 주목받았고
오토바이와 자동차 등장으로 빠른 걸음을 걷는다.
여기서도 주로 이용된 것은
트라이시클(세바퀴차)과 네바퀴차여서 바퀴가 둘인 오토바이는 조금 처지는 모습을 보인다.
이때 크게 활약한 이가
자동차시대 초기에 이름을 떨치는 알베르 드디옹 백작과
죠르즈 부통이 손잡은 드디옹-부통이다.
1883년 이들은 오디너리를 이용한 네바퀴차에 소형 증기엔진을 싣고
경쾌하게 달려 파리시민들에게 좋은 볼거리를 제공했다.
드디옹-부통은 다음해 트라이시클에 같은 엔진을 얹어 더 빠른 스피드를 얻었다.여러나라에서 많은 기술자들이 증기엔진을 얹은 두바퀴 탈것,
트라이시클, 네바퀴차들을 실험적으로 만들던
1880년대 초반은 증기의 힘 대신 실린더 안에서 기화된 휘발유를 점화·폭발시켜
동력을 얻는 엔진(내연기관)이 거의 완성된 시기였다.
증기엔진 대신 내연기관으로
탈것을 움직여 보자는데 주력해서 휘발유엔진을 만들어 뜻을 이룬 이가
독일의 카알 벤츠와 고트리프 다임러다.
저마다 따로 휘발유엔진을 완성시켰는데,
다임러는 두바퀴 탈것에 이용해 오토바이 발명가가 되었고
벤츠는 세바퀴차,
다임러는 다시 네바퀴차를 만들어 함께 (휘발유)자동차 발명가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다임러는 1885년 나무를 주로 쓴 두바퀴 탈것에 휘발유엔진을 얹어
현대 오토바이의 출발점을 만들었다.
그는 처음에 보트나 마차에 쓰려고 생각했으나
출력이 작아 나무로 된 두바퀴 탈것을 쓰기로 했다.
본 쉐이커를 조금 튼튼하게 만든
다임러의 오토바이는 두 바퀴 사이 아래쪽에 1기통 264cc 0.5마력 엔진을 달고
체인으로 뒷바퀴를 굴려 시속 12km로 달렸다.
이 오토바이에는 불안정한 두바퀴 탈것의 특성을 생각해서
뒷바퀴 양쪽에 작은 보조바퀴를 달아놓았다.
다음해 1886년은 자동차가 태어난 해다.
카알 벤츠는 휘발유 엔진을 세바퀴차에 얹었다.
좌석 뒤쪽에 놓인 벤츠의 엔진은
1기통 984cc 0.9마력으로 시속 16km 이상으로 달리게 해주었다.
같은 해 다임러는 네바퀴차에 휘발유 엔진을 얹은 차를 만들어
벤츠와 함께 독일 정부로부터 특허를 얻어 자동차 발명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휘발유 자동차가 나온 뒤에도 한동안은 증기엔진을 얹은 세바퀴차와 네바퀴차가 만들어졌으나
1880년대 중반 세이프티가 등장하고
90년대에 공기타이어가 널리 이용되자
자전거 메이커들과 다임러, 벤츠, 드디옹-부통 같은 자동차 메이커들은
다투어 세이프티 자전거가 가진 장점을 살린 휘발유 자동차와 트라이시클을 만들었다.
이처럼 오토바이와 자동차 탄생에서 자전거와 자전거 만들기 기술은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1870년대와 80년대에 자전거 메이커들은 오디너리와 세이프티로 진화되면서
오토바이와 자동차에 필요한 재료와 기술을 마련해 놓았다.
가볍고 튼튼한 철파이프(튜브), 철선 스포크, 체인 드라이브, 단조기술, 볼 베어링과
롤 베어링, 믿을만한 브레이크, 공기 타이어 등이다.
이밖에 오토바이에는 필요없지만
자동차만을 위한 기술로 디퍼렌셜, 애커먼 스티어링 등 트라이시클과
네바퀴차에 쓰인 것들도 있다.
이 무렵 자전거산업은 첨단기술이었다.자전거 업체들이 자동차 제작에 뛰어들어 자전거와 자동차의 관계는 푸조와 로버 등이 자전거 회사에서 자동차 만들기로 발전했고,
사라진 수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자전거 회사로 성공한 뒤
자동차 생산에 뛰어들었다는 사실로도 쉽게 알 수 있다.
1896년 첫 자동차를 내놓으면서 헨리 포드가 차 이름을 ‘네바퀴 자전거’로 직역되는
콰드리사이클(Quadricycle)로 지은 것도 이 모델이 가볍고
날렵한 세이프티형 공기 타이어 바퀴 넷을 이용해서 차체를 꾸미고
소형 엔진을 썼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초기에는 ‘말 없는 마차’라고 했지만 ‘엔진 얹은 네바퀴 자전거’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자전거는 오토바이와 자동차 탄생을 직접 이끌었으나
이들의 관계는 쉽게 뒤집히고 만다.
세기가 바뀌어 20세기가 되자,
유럽과 미국 상류와 중류사회의 자전거 열기는 별안간 식어버린다.
잠시 롤러스케이트 선풍이 일었으나
이들의 관심은 새로 등장한 오토바이와 자동차에 쏠렸다.
용감한 젊은이들 일부가 오디너리 때처럼 오토바이에 심취했으나
대다수 젊은이와 나이든 이, 여성들은 스스로 달려주는 자동차에 미쳐버렸다.
1910년 전후에 자동차의 성능과 품질이 쓸만하게 좋아지자
자전거는 90년대의 열광을 뒤로 한 채 일반인들의 발구실로 새 길을 찾게 되었다.
오토바이와 자동차 등장에서 큰 구실을 한 자전거,
특히 보조엔진 자전거는 뒷날 다시 부활한다.
2차대전을 겪은 유럽 여러나라는 경제사정이 어려워
자전거에 휘발유 보조엔진 달기가 크게 유행해 국민들의 소중한 교통수단이 되었다.
1950년대 중반까지 널리 이용된 보조엔진 자전거는
사회와 경제가 안정되면서 1~2인승 거품차(자동차),
다음에는 폴크스바겐 비틀, 피아트 친퀘첸토(500), 르노 4CV, 시트로엥 2CV 같은
이른바 국민차에 자리를 내주면서 유럽의 모터리제이션이 이뤄졌다.
유럽의 보조엔진 자전거는 10여년의 생명을 유지했으나
일본에서는 이와 같은 탈것이 세계적인 오토바이/자전거 메이커를 탄생시켰다.
바로 혼다다.
피스턴 링 등을 만들다 일본이 패전하자 1년을 쉰 혼다 소이찌로는
1946년 9월, 친구집에서 일본 육군이 쓰던 6호 무전기 발전용 휘발유 엔진을 보게 되었다.
자동차 정비에도 능숙한 혼다는 이것을 자전거 보조동력으로 쓰기로 했다.
한달의 연구 끝에 완성된 혼다 소이찌로의 보조 엔진 자전거는
엔진소리를 따서 ‘바타바타’라는 별명과 함께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엔진은 500개밖에 없어 혼다는
곧 자전거 전용인 2사이클 50cc 0.5마력 엔진(A형)을 개발해 자전거에 달았다.
이번에도 큰 성공을 거둔 혼다는
49년 오토바이 드림형을 내놓아 오토바이 메이커로 입지를 크게 높였고,
이를 기초로 60년대에 자동차 제작에 착수했다.
세계적인 자동차/오토바이 메이커인 혼다의 출발점은 보조엔진 자전거 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