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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겨울비와도 같은 봄비가 며칠간이나 을씨년스럽게 추적추적, 행사 전날 밤까지도 세찬 바람과 함께
줄기차게 내렸습니다.
밖에 나가 목이 빠져라 하늘을 쳐다보고, 해남지방에 접속하여 마르고 닳도록 일기예보를 들으며 들락날락
거린지가 어언 몇시간, 드디어 자정이 넘어갈 무렵 서서히 하늘의 구름이 벗겨지고 있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모든 24회 친구들의 염원이 하늘에 가 닿았는지 하늘은 결코 우리들 마음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두어시간 눈을 부쳤을까, 새벽에 다시 하늘을 바라보니 구름은 커녕 하늘은 화창하게 개어 있었습니다.
남도 천리길이라, 엊저녁 준비해놓은 배낭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성동초등학교를
향해 등산화 밑창에 탄내나도록 부리나케 달렸습니다.
5시 20분, 정확한 시간에 출발한 버스는 로타리에서 몇명의 친구들을 태우고 무거동을 경유하여 양산과
부산, 창원에서 나머지 인원을 모두 태우고 목적지인 전남 해남의 두륜산을 향해 출발하였습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신영희 산행대장님의 인삿말에 이은 경과보고..
마이크가 익숙되지 않아 여러분 앞에 서면 떨린다고 심하게 엄살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어 24회 김치권 동기회장님의 인삿말..
오늘 이렇게 많은 인원이 참석한데 대해 치사와 더불어, 24회 산악회의 발전을 위해 성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관광버스비를 본인이 부담하겠노라고 하였습니다.
산악인들을 태운 버스가 어느듯 광양을 지나 순천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산에 오르기 전에는 간단한 워밍업 차원에서 한바탕 흔들어 몸을 풀어야 한다네요.
남도의 봄은 확실히 빠르긴 빠른가 봅니다.
차창 너머로 매화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순천에서 얼굴 자랑말고, 벌교에서 주먹자랑 말고. 여수가서 돈자랑하지 말라 했습니다.
벌교부근 휴게소에서.. (요즘도 담배 피우는 사람이 있네요.. ^ ^);;
날아가는 새x을 보나, 모두들 고개를 들고 뭔가를 열심히 보고있길래 눈길을 따라가보니..
그건 하늘을 나는 새도 아니고 그렇다고 비행기도 아닌, 새파란 하늘을 배경삼아 보는이를 압도하는 아름드리
낙락장송이었습니다.
5시간 30분을 달려 이윽고 목적지인 대흥사 주차장에 도착..
대흥사 사하촌 주차장 옆에 세워져 있는 심호 이동주 시비.
<강강술래>
- 이 동 주 -
여울에 몰린 은어(銀魚) 떼
가아응 가아응 수우워얼레에
목을 빼면 설움이 솟고
백장미(白薔薇) 밭에
공작(孔雀)이 취했다
뛰자 뛰자 뛰어나 보자
강강술래
뇌누리에 테이프가 감긴다
. 열두 발 상모가 마구 돈다
달빛이 배이면
술보다 독한 것
갈대가 스러진다
기폭(旗幅)이 찢어진다
강강술래
강강술래
심호 이동주 시인(1920~1979)은 해남군 출신으로 '강강술래' '혼야' '새댁' '대불' 등 주옥같은
서정시로 남도의 멋과 한을 높게 승화시킨 시인으로서 시비에 새겨져있는 시 '강강술래'는 한국의
100대 명시로 꼽히고 있는 시이기도 합니다.
마치 봄소풍이라도 가는 양 발걸음도 가볍기만 합니다.
지금 흘러나오는 노래, 봄날에 <꽃사러 가는 길>도 아마도 이런 기분일테지요.
보무도 당당히, 발걸음도 사뿐사뿐..
이곳은 유명한 여관촌으로 지금은 유선여관 하나가 있습니다.
유선여관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여관이라 합니다.
TV '1박2일'에 소개된 이후 꽤나 유명세를 타고 있기도 합니다.
유선여관 내부..
두툼한 눈섶의 주인인 듯한 남자가 이불을 털고 있네요.
유선여관 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워낙 유명한 여관이라 일찌감치 예약을 하지 않으면 방을 구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겨우내 얼었던 시냇물이 녹으며 힘차게 다리 아래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두륜산 대흥사 입구에 들어서니 귀신의 접근을 막는다는 금귀대장군(禁鬼大將軍)이 두 눈을 부릅뜨고 오가는
이들을 살피고 있습니다.
대흥사 일주문 앞에서 단체촬영.
일주문은 한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문이 아니라 한일자 선상의 기둥이 놓여진 문입니다.
속계에서 수미산으로 가는 첫번째 관문인 일주문은 세속의 잡다한 번뇌를 떨치고 일심(一心)으로
진리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서산대사 부도.
부도(浮圖)란 덕이 높은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넣고 쌓은 둥근 돌탑을 말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대흥사 길따라 동백꽃이 만발합니다.
동백꽃 하면 이곳에서 그리 멀지않은 선운사 동백꽃이 특히나 유명하지요.
언젠가 이맘때 쯤 선운사에 들른 적이 있었는데 꽃은 이미 다 떨어지고 피빛과도 같은 새빨간
꽃잎들이 절골 매운바람따라 산지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습니다.
<선운사 동구>
- 미당 서정주 -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니다.
대흥사 입구.
저멀리 노승봉과 가련봉이 보이네요.
초의선사(1786-1866년)는 ‘다도(茶道) = 초의선사라고 할 만큼 다도의 역사에서 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초의선사는 우리나라 차(茶) 문화를 중흥시켰기 때문이지요.
초의선사는 조선시대 정조 10년(1786년)에 태어나 무안에서 15년을 살다가 나주 운흥사로 출가,
뒤에 해남 대흥사로 옮겨 수행하며 명성을 떨쳤는데 조선 후기 불교계에 선풍을 일으키고 명맥만 유지하던
우리 차와 다도를 중흥시켰습니다.
다산 정약용에게 다도를 가르쳤고 평생 친구인 추사 김정희, 소치 허련등과 폭넓은 교유를 가졌으며
동다송(東茶頌)을 지어 우리 토산차를 예찬한 바 있는데 초의선사의 사상은 선(禪)사상과 다선일미(茶禪一味)
사상으로 집약되는데 다선일미 사상은 차 안에 부처님의 진리와 명상의 기쁨이 녹아있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북미륵암에 도착.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 (국보 제308호)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은 신라하대(新羅下代, 850~932) 무렵에 조성되었다.
마애여래좌상의 도상(圖像- 부처의 형상을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한 상)과 조각수법은
한국 불교조각의 최성기인 8세기 양식을 계승한 수작이다. 오랫동안 미륵으로 불려온
이 마애불의 입지는 서남해안을 마주하고 있다.
조성 당시 신라는 중앙귀족의 분열과 호족의 발호로 매우 불안하고 혼란스런 시대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 마애여래좌상의 조성 주체는 알 수 없으나 그 계기는 아마도 이 같은 상황에서 야기되는
외침을 견제하려는 호불성(濩佛性)이 작용한 듯하다.
이 마애여래좌상은 본존을 중심으로 좌우상하 사방에 공양비천상(供養飛天像)이 배치되었다.
본존의 존상은 후덕하고 원만한 체모(體貌)로 형형한 눈매는 근엄하고 위의(威儀)가 넘치며,
두툼한 입술과 살이 오른 양뺨은 자애로움이 가득하다.
특히 마애불 상하좌우의 공양천 인상은 자세와 지물(紙物)이 매애불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도상이며, 뛰어난 양감과 자연스러운 신체조형은 통일신라 전성기 조각양식에 비견할 만 하다.
마애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는 용화전(龍華殿)을 배경으로 - 상엽, 정희, 동우, 상철, 영희..
전망대가 있는 윗쪽의 북미륵암 동삼층석탑 앞에서..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동삼층석탑
자연 암반 위에 기단부와 탑신부를 조성한 신라 양식의 3층 석탑이다. 전체 높이는 4.65m이다.
원래는 3층 옥개석(지붕돌)이 파손되어 있었으나 1995년 요사체 중수 때 함께 복원하였다.
자연 암반은 뒷면에서 보면 평평하지만 앞에서 보면 92cm의 높은 층단을 이루고 있어 지대석
(기단을 만들기 위해 쌓은 돌) 역할을 하고 있다.
암반과 기단 사이의 빈틈으로 빗물이 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15cm 가량의 홈을 파놓았다.
기단부 옆에 파놓은 것도 같은 역할을 한다.
이 탑은 단층기단이나 각 부위가 정제되고 탑신의 체감율이 알맞아 우아하고 안정된 느낌을 준다.
조성연대는 경내에 있는 보물 제301호 심층석탑과 비슷한 10~11세기로 보고있다.
만일재를 향해 출발.
만일재 가는 길목에서 만난 천년수(千年樹)..!!
천년수(千年樹)의 유래
수종 : 느티나무(괴목)
수령 : 1,200~1,500년
흉고 : 9.6m (둘레)
수고 : 22m (높이)
전설에 따르면 아주 옛날 옥황상제가 사는 천상(天上)에 천동(天童)과 천녀(天女)가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어느날 천상의 계율을 어겨 하늘에서 쫓겨나게 되는 무서운 형벌을 받게 되었다.
이들이 하늘에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은 한가지 밖에 없었다. 그것은 하루 만에 바위에다 불상을 조각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루만에 불상을 조각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해가 지지 못하도록
만일암(挽日庵 - 해를 당기는 암자)터 앞 천년수 나무에다 끈으로 해를 매달아 놓고 천녀는 북쪽바위인
북미륵암에 좌상(座像)의 불상을, 천동은 남쪽바위인 남미륵암에 입상(立像)의 불상을 조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천녀는 앉은 모습의 미륵불을 조각하였기 때문에 서있는 모습의 미륵불을 조각하는 천동보다 먼저
불상을 조각하였다. 미륵불을 완성해놓고 한참을 기다려도 완성하지 못하는 천동을 기다리다 못한 천녀는
빨리 올라가고 싶은 욕심으로 그만 해를 매달아 놓은 끈을 잘라버리고 혼자서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이로 인해 천동은 영원히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이 미륵은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수목이다.
북미륵암의 조성시기가 고려시대 전반기인 11세기경이며 여러 구전과 수목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천년수의 수령은 1,200~1,500년인 것으로 추정된다.
천년수 아래에서 단체 촬영.
24회 친구들, 천년수와도 같이 천년만년 살고지고..
동기회장님, 흐뭇하시겠습니다..
해남 대흥사 만일암지 오층석탑
두륜산 정상부인 가련봉 아래 만일암지에 조성된 석탑이다. 만일암지의 흔적을 말해주듯 주변에는 석등,
부재 등 많은 석재들이 흩어져 있다.
석탑의 현 상태는 단층기단의 5층이나, 정확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단층기단이라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또한 1층 탑신을 보면 한번 해체되었음을 알 수 있다.
상륜부(탑의 꼭대기 부분)은 남아있지 않고 석등의 부재가 올려져 있다. 전체 높이는 5.4m이다.
이 석탑은 튼튼한 기단부의 구성, 오층 탑신을 세로로 세워서 결구한 기법, 옥개석(지붕돌) 상면 네 귀퉁이의
우동마루를 도드라지게 한 기법이 옛 백제석탑의 건축적인 요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조성연대는 고려시대 중반기(12~13세기)로 보고있다.
교차로에서 만난 이정표가 나그네의 발길을 붙듭니다.
산죽터널을 지나고 드디어 만일재에 올라서다.
식사준비를 합니다.
왼쪽으로 노승봉, 가련봉이, 오른쪽으로 두륜봉이 우뚝 솟아있습니다.
계곡을 타고 올라 온 바람이 만일재를 지나 바다쪽으로 거세게 몰아칩니다.
앞으로는 해남의 드넓은 평야와 망망대해가 눈에 사로잡힐 듯이 펼쳐져 보이고..
우와~~ 많이도 준비했네..요..
미역에 톳나물과 펄떡개비, 미나리, 고추, 돼지수육, 기다리, 김치, 오이, 찰밥과 시락국, 뭐, 뭐..
나머지는 몰라서 못적습니다.
대한민국 어디간들 돈주고도 절대로 맛보지 못할 바로 이 맛!!
시장이 반찬이라지만 친구들의 정성이 듬뿍 베어있기에 맛은 한층 더합니다.
저 뒤쪽으로 식사 후 우리가 넘어갈 두륜봉.
캬~~ 바로 이 맛 아닌가베..
와이레 맛있노.!!
엉게불통 개미삽통...(*&$#@~??)
여학생 친구들, 밤새워 여러가지 먹을거리 준비하느라 대단히 수고가 많았습니다.
다음에는 남학생들에게도 한 번 기회를 주기를 바라마지 않겠습니다.
노승봉(능허대)을 배경으로..
어이.. 밀지마라..!!
구름다리 올라가는 철계단 위에서..
가만보자.. 눈고하니.. 동우, 정희, 귀잔갑네..
그 유명한 두륜산 구름다리..
자연의 묘미에 신비로움만 더합니다.
앞에서 끌어주고, 조심, 또 조심.. (폭이 좁아 대단히 위험합니다)
구름다리 위에서, 영철, 영희..
앞쪽의 영철, 뒷쪽의 용옥..
어, 그러고보니 둘이는 한이불 덮고자는 사이네.. (언제부터 그랬노?)
인순, 말순, 상철, 태자, 익곤..
그옛날 앞마당, 뒷마당, 디깍단, 앞각단 동무들입니다. (성내 인순 빼고..)
노승봉과 가련봉..
좀 더 땡겨봅니다. 꼭대기에 여러 사람이 올라가 있는 모습이 눈에 띕니다.
원래 오늘 저 봉우리를 넘어 이쪽으로 올 계획이었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그러지 못해 못내 아쉬움이
큽니다. 언젠가 다시 올 기회가 있겠지요.
앙상한 나무에 매달린 오색리본들이 세찬 바람에 춤을 춥니다.
두륜산 두륜봉 정상에서 24회 단체 기념촬영..
24회 산악회가 또하나의 족적을 남깁니다.
점점 산꾼이 다되어가는 정인순님.
백두대간을 종주한 경력의 진정한 산악인 홍정희님.
누구보다 산을 사랑하고 계절마다 변하는 산의 색깔에 늘 감동하는 신영희님.
오랜 경력의 베테랑 산악인 정수은님과, 이제 점차로 산꾼으로 변모해가기로 노력하는 차동우님..
이번엔 여학생들만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구진팀이 없는 24회 산악회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내팀..!!
진하팀과 더불어 드러나지 않게 모든 준비는 물론, 궂은일들을 도맡아 하고있기에 여러분들이야말로
24회 산악회를 책임지는 진정한 산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도 있다네.. 남학생팀..
하지만 망게 내세울게 없네요.. -_-;;;
.. 만일재 바람 안고 독야청청 하리라..
저멀리 고계봉..
케이블카가 오르내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저멀리 크고 작은 섬들이 손에 잡힐듯 다가오고..
아직은 춥기만 한 산 꼭대기와는 달리, 산 아래에는 봄의 따스한 기운이 맴도는 듯 느껴집니다.
내려오는 길에 진불암에 도착하였습니다.
진불암을 거쳐 하산길에 갑자기 길한가운데로 뛰쳐나가 온 몸을 흔들며 장단 맞춰 품바춤을 추는 정수은 학생..
배낭 뒤에 매단 쓰레기 봉투도 덩달아 춤을 춥니다.
역시 모범 산악인이라 아니할 수 없다고, 아니 할 수 밖에 없네요..
서산대사를 모신 사당, 표충사에 도착.
이곳은 임진왜란 떄 승병을 일으켜 왜적 격퇴에 앞장 선 서산대사를 모시는 사당으로 조선 현종
10년(1669)에 건립되었다.
서산대사는 어려서 고아로 자란 후 출가하여 선가의 법을 체득하였다.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8도 16종 도총섭이 되어 유정, 처영과 함께 왜적을 물리
치는데 커다란 공을 세웠다.
이 건물은 조선 정조 12년 (1788)에 대사의 높은 공을 기리기 위해 왕이 친히 사액 (사액-임금이 사당,
서원 등에 이름을 지어서 그것을 새긴 액자를 내리는 일)을 내리고, 직접 정조대왕이 표충사라는 현판
글씨까지 썼으며, 나라에서 세금을 면해주는 특혜를 받았다.
이후 관아의 보호를 받으면서 인근의 선암사나 송광사와 견줄만한 지위로 향상되었다.
서산대사의 유품인 금란가사, 발우(밥그릇)와 정조 임금이 하사한 금병풍 등이 유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서산대사의 영정들..
책에서 본 낯익은 그림들입니다.
대광명전 앞 연리근 앞에서..
연리근(連理根) - 천년의 인연, 만남, 약속
연리근이란 가까이 자라는 두 나무가 서로 만나 합쳐지는 현상을 말한다.
오랜 세월을 함께하며 햇빛을 향해, 바람에 따라 서로 부대끼고 겹쳐져 비로소 하나가 되는 것이다.
뿌리가 만나면 연리근, 줄기가 겹치면 연리목(連理木), 가지가 하나되면 연리지(連理枝)라 부른다.
이렇게 두 몸이 하나가 된다는 뜻으로 각각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연인의 사랑에 비유되어 일명 '사랑나무'
로도 불린다.
연리나무 앞에서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면 사랑의 소원이 성취되고, 마음 속에 바라는 소망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작년 24회 산악회에서 등반했던 무척산에서도 소나무의 가지가 하나가 된 두 그루의 연리지를 본 기억이 납니다.
대흥사 대웅전.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고 쓰여있는 현판의 글씨가 예사롭지 않네요..
대흥사 윤장대(輪藏臺).
윤장대란 경전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달아 회전하도록 만든 나무로 된 책상입니다.
이것을 돌리기만 하면 경전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을 쌓을 수 있다고 하는데, 절마다 다르지만 보통
삼월 삼짇날과 9월 9일 중구절(중양절)날 일반인들이 윤장대를 돌려볼 수 있다고 합니다.
대흥사 법당 너머로 오늘 우리가 넘어온 만일재와 두륜봉 일부분이 보입니다.
원점으로 회귀하였습니다. 대흥사 일주문.
주차장에 도착하여 파전을 안주하여 한사발의 막걸리를 들이킵니다.
어이, 고선생, 한추바리 하거라..
이제 모든 일정을 소화하고 귀갓길에 접어 듭니다.
김선자 친구가 언제 준비했는지 한복으로 갈아있었습니다.
뭔가 예사롭지않다는 예감이 번떡 든 것이 바로 이때였습니다.
아예 차 안에서 죽기아니면 살기로 놀아보자 작정한 모양입니다.
온 차안을 이리저리 휘젓고 있네요.
수건에 수북히 꼿힌 지폐를 다 들어내고 다시 새 수건을 머리에 둘렀습니다.
24회 모두의 지갑을 바싹 말려버릴 작정이네요..
시집 갈 때 입었던 한복인데, 24회 동기회에 기증할 용의가 있답니다.
(땀에 절여있는 낡은 저 한복을 누가 받아줄거라고..);;
내 이래도 수렴 할배들 꽉 잡고있다 아이가..
한 덩치가 움직이기에 무대가 비좁기만 합니다.
종길친구를 보면 늘 이기택 전 국회의장이 생각납니다.
머리 앞쪽 가운데 머리가 하얗게 센모습이 꼭 닮아서 그렇습니다.
이별은 마도로스, 남포동의 밤거리..
산행대장님도 뒤늦게 시동이 걸렸습니다.
와이레 술이 오르노..
내사마 모리겠다, 음냐,음냐..
날도 춥고해서 준비한 식사로 차 안에서 저녁을 먹기로 하였습니다.
이번 메뉴는 비빔밥인듯, 이것저것 넣어가지고 심하게 비벼대네요.
점심도 그랬지만, 차 안에서 먹는 비빔밥 또한 일미입니다..
어나, 수육 더 가져가거라..
식사시간이 끝나고 산행대장님의 요청으로 동기회장님이 마이크를 잡고 한 곡조 읊습니다.
배호의 '비내리는 명동'을 완전 멋드러지게 불러 제낍니다.
내 젊은 야생마..
선그라스를 끼고 장단을 맞추고 있는 한병훈님의 포즈가 예사롭잖지요..?.
'동백아가씨'를 부르는 김영수 학생..
모범학생 차동우와 오상철님..
김상엽 친구는 '뿐이고.."
가지마오 가지마오, 나를 두고 가지마오..♪
너무합니다, 너무합니다.. 당신은 너무 합니다..♬
만약에 하늘이 하늘이 내게, 천년을 빌려 준다면..
그 천년을 당신을 위해 사랑을 위해, 아낌없이 모두 쓰겠소..♬
우리 만남은 하늘에서 맺어주신 천생연분일세..♪
듀엣, 김영수, 신영희님..
24회 동기회장님과 총무님..
너무나 정답게 보이지 않습니까? 마치 오누이 마냥..
박영철님..
목숨보다 더 귀한 사랑이건만..♬
"친구들아, 모두들 반가웠다.
다음에 건강한 모습으로 또 만나자.."
아쉬움을 뒤로한 채 북부산 톨게이트에서 하차하는 홍정희님.
조금 더 지나 양산에서 내리는 김익곤님..
24회 동기생 여러분, 오늘 정말로 수고들 많았습니다.
이번 행사를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수고한 신영희 산행대장님, 그리고 여러가지 지원을 아끼지 않은
여러 여학생님들, 비록 함께 자리하지는 못했지만 지원과 격려를 보내준 많은 친구들,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이번 행사를 계기로 더욱 알차고 우정이 넘치는 동기회를 유지하고자 노력할 것을 약속드리며
끝까지 아무 탈없이 무사히 움직여 준 동기생 여러분께 다시한 번 진심으로 고마움을 드립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첫댓글 세상에~~~! 바쁘고 피곤할텐데 많은 자료와 함께 벌써 즐거운 순간 순간의 친구들 모습을 올렸네요.. 늘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그저 무작정 이렇게 기분 좋은 날 표정들이 한결같이 방실방실~~~!!!
성동 24회 산악회 홧팅!!
집행부와 여학생들이 먹을 거리를 많이 준비했어, 차동우 몸무게가 또 +1.5kg 안타까워 어떻게 뺀 살인데......^^
작가님 때문에 즐거워 든 순간들 감상 잘하고 갑니다. 준비한다고 고생했던 여러 벗님 고맙습니다.
해남두륜산에 남여동기생과 산행을하니 참말로 좋군요. 또갈래요 .집행부여성분 많은음식을 준비한다고 고생이많았요. 아무튼 요번산행에 아무련사고없이 잘놀고 많은 추억도 만들고 왔서 기분이 짱........화이팅....고작가 고생했슈........
새롬 새롬 그 날이 아련히 떠오릅니다.오며 가며 차안의 시간, 몸 아끼지 아니하고 한바탕 굿거리 정말 재미있었습니다.이때까지 몰랐던 친구들 더 가까이 다가설수 있었습니다.이것 저것 준비하느라 여학생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시원찮은 몸으로 따라가서 민폐나 안끼쳤나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2012년 봄맞이는 확실히 했습니다. 거듭 고맙습니다.
그러고보니 이전 산행은 성동 24회가 처음으로 함께한 매우 뜻깊은 산행이었습니다.
아직 한 번도 동기회 차원에서 함께 한 적이 없었습니다. 계중을 통해서는 몇 번인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고 자주 만날수록 친구들과의 우정은 더욱 깊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앞으로 24회의 무한한 영광이 늘 함께하기를 바라겠습니다.
모두모두 수고가 많았습니다.
대단들하지 ㅎㅎㅎ 생각할수록 기쁨이 우리 한 달 동안은 얼굴에 웃음이 묻어 있겠제 다들 멋졌다는것 그리고 고작가님 고맙고 너가 내 친구라는것이 참 기쁘다 한번더 웃고 우리 우정이 두터울수록 한발은 가까워진것 같아라 다들 환절기 감기조심하고 또 만날때까지 안녕
사진 보니까 인간들 날리 났네!
보고싶은 친구들 얼굴 사진으로 잘 보았네요
찍사의 중요함을 절실히 느끼지 친구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