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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에게 파칭코는?
자정이 넘은 시간에, 짧은 수면에서 깬 후 달아난 잠을 불러들일 길이 막막했다.
숨어버린 잠을 찾느라 낭비하느니 그 에너지를 활용하자.
파칭코장에 간 이유다.
남아있는 헨로미치에 관한 자료들을 들고 불 밝은 파칭코 휴게실로 간 것.
남은 45개 레이조의 분포 거리가 다양한데, 당장에(9월28일) 2일이 소요되는 70km길이다.
그밖에는 44곳 중 레이조간(間)거리가 2자리 수(10km이상)인 곳이 총 11곳이다.
그 중에서 21km이상인 곳은 5, 31~40km 2, 41km이상이 1곳 뿐이다.
대부분의 레이조간 거리가 1자리수 km다.
만만하다는 뜻이다.
파칭코장을 들락거리는 일본인들 눈에는 내가 기이한 영감으로 보였는가.
도박과는 전혀 무관한 짓을 하고 있으니.
궁금증을 참지 못하겠는지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한국의 81세(2014년 당시) 헨로상이라는
내 대답이 어떻게 반영되었을까.
까미노에서는 "꼬레아는 몰라도 산띠아고 킴할아버지(Santiago Kim abuelo)는 결코 잊혀
지지 않을 것"이라는 뻬레그리노스가 대부분이지만(꼬레아를 모르기 때문에), 한국을 모를
리 없는 저들에게 나는?.
80대 늙은 헨로상이 일본인이 아닌 것(한국인인것)을 못내 아쉬워하는 일본인도 있으니까.
목숨걸고 있는 듯 진지하게 매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장바구니 든 채로 들어와서 잠시
구슬을 굴리다 가는 여인이 있다.
주말이라 그런가 온가족이 나들이 나온 듯 유소년까지 끼인 팀이 있고 떼로 몰려와서 잠시
요란스럽다가 어디론가 함께 사라지는 젊은이들도 있다.
승용차로 오는 사람, 트럭을 세워놓고 들어갔다가 오래않아 돌아가는, 일 마치고 귀가중에
들른 듯한 사람도 있다.
자전거를 세워놓고 들어가는 사람, 집이 지근인지 걸어서 오는 사람도 있다.
중고생 연배의 청소년도 있다.
파칭코는 일본의 도박 게임이다.
이곳에 있는 잡지에서 얼핏 본 통계에 의하면 일본 전역에 17.000여개의 파칭코장이 있다.
종업원이 44만여명이며 연간 매출액이 29조 y(300조원)이라는데, 이 금액은 한국의 제1, 2
재벌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합산한 연간 매출액을 상회한다.
기호 인구가 1.700만~3.500만명이라면 1억2700만 인구의 13%~27%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규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면 일본인들의 자기절제를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적은 비용으로 즐기고 소위 스트레스 해소용 게임으로 정착했다면.
내가 몇시간 지켜본 소감이다.
깍듯이 공대하며 이들 중에는 늙은 헨로상에게 음료수를 대접하는 사람도 있다.
사양할 분위기가 아니고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 마시며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들기도 했다.
이 심야의 이 곳에서는 독보적인 늙은이가 하는 생각.
장유유서(長幼有序)는 양의 동서나 문화와 문명의 척도 이전에 인간의 자연현상이다.
윤리 또는 도덕이라는 단어로 묶고 재단하려 하는 것은 속박이며 횡포다.
유,무식은 표현의 차이일 뿐 인간의 본성은 장유유서의 질서를 깨려 하지 않으니까.
그러므로 일시적, 찰나적 이해되지 않는 행위는 본성과 무관한 돌발일 뿐이다.
이 시대에 대한 관대가 아니라 자유롭기 위한 나의 당위다.
신새벽에 숙소(?)로 돌아올 때까지 한결같은 파친코장의 분위기.
달라진 것은 대낮처럼 밝았던 밖이 지척도 분간 못하게 안개로 덮여가고 있는 것이다.
아침 일을 걱정하다가 들은 잠이 깬 시각은 2시간여 만인 아침6시.
일요일이라 후다쇼들이 몹시 붐비겠지만 70km 전방의 레이조와 아무 상관 없는 날이므로
내 페이스만 지키면 되는 구간이며 하루다.
헨로미치에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다
출발한 시각은 2014년 9월 28일, 일요일 아침 6시 10분.
헨로미치와 56번국도가 일부 구간들에서 길을 달리 하는데 안개가 완전히 걷히고 사방이
분간될 때까지는 국도를 따를 작정으로 길을 떠났다.
그러나 이런 다짐은 오리지널 헨로미치나 까미노 앞에서는 무의미하다.
아무리 자욱한 안개로 인해 분간이 되지 않는다 해도 기어히 그 길을 가야 하는 내 성벽을
당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출발해서 100m도 가지 못하여 방향을 틀었다.
지도에서 뒤늦게(간밤에) 발견한 코야가 지척인 이면로(오리지널 헨로미치)변에 있는데도
짙은 안개를 이유로 확인하지 않는다면 정상적인 걸음이 되겠는가.
코앞까지 닥아가야 분간하게 되는 악조건에서 어렵사리 찾아낸 이 코야는 방금 나온 코야
와는 대비할 수 없도록 안정되고 안락한 집이다.
그렇다 해서 아쉬움이 남게 하는 집은 아니다.
간밤의 코야는 이 코야가 할 수 없는 그것 나름의 큰 역할을 했으니까.
출발한 코야에서 2km지점인 카모우편국(加茂/宇和町) 앞에 도착하는데 1시간이 걸렸다.
안개 때문에 시야가 없는 길을 걷는 애로를 말해주고 있는 소요시간이며 진도가 부진할
것이 염려되는 아침이었다.
더구나 가능하면 오리지널 헨로미치를 확인하며 가기 때문에 더 많이 지체되지만 지켜야
하는 예약이 있거나 시간을 지켜야 하는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아무러면 어떠냐.
사거리에 '안전기원대'(臺)가 있고 대 위에는 꽃을 한아름씩 들고, 안은 동자승들이 앉아
있는데, 정녕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의 안전을 빌어주고 있으리라.
안개에 뭍혀 있기 때문에 분간이 되지 않아 코앞까지 다가가서 확인하였는데 저들 덕분에
이 하루도 무사하리라 생각하며 고마운 마음을 남기고 떠났다.
아침해에도 일요일이 있는가.
해를 믿고 사는 사람들이 그까짓 안개에 기를 펴지 못하는 해인 줄 모르고 모두 늦잠들어
있는지 7시반이 넘었는데도 모두 죽은 듯이 고요한 마을 길을 걷고 있는 이역 늙은이.
코야에서 1시간 20분이 지난 시각에 우와 세토마을회관(瀨戶集會所) 앞에 당도했다.
여기에도 백합을 비롯하여 활짝 핀 여러 꽃으로 장식한 대 위에 보살이 앉아 있는데, 그도
같은 기원을 하고 있을까.
아무튼, 안개에 눅눅해진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세토 마을회관 발 2분 거리에서 헨로미치는 V자로 분기한다.
그 지점에 세운 작은 건물의 판자벽에 붙어있는 글귀가 보일 만큼 안개가 걷혔다.
"キリストは十字架で人の罪を負った"(크리스토는 십자가에서 사람의 죄를 짊어지셨다)
이 글귀를 보게 하려고 안개가 걷힌 것은 아니겠지만 안개가 걷히므로서 시야가 넓어졌고
그래서 보게 된 것만은 틀림 없다.
안개로 인한 불편함을 말해주는 한 신(scene)으로 정리하면 되지만 이 글귀는 엉뚱했다.
안개 때문에 답답할 뿐 무료한 아침에 환갑의 세월이 지난 때의 장면들을 불러왔으니까.
6.25민족동란 중, 중학생으로 시작한 피난생활을 정리하고 수복은 되었으나 피폐된 수도
서울에서 대학생활이 시작된 해의 브활절 칸타타(Easter Cantata)의 장면들이다.
참담하고 절박한 현실의 극복에는 신앙이 절대적이던 시기에 부활절을 맞게 되었다.
정상적이라 해도 이즈음에 비하면 원시적이라 할 수 밖에 없는데 전쟁의 참화 직후다.
유수한 교회들이 합심하여 어렵사리 갖는 행사라 주제도 간절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
시코쿠는 일본 기독교의 거목 카가와 토요히코(賀川豊彦)의 출생지다.
JA共濟, JA全農 등 후대를 위한 그의 불후의 역작들은 건재한데도 코보대사에게 밀렸는가.
교회는 희귀한 상태다.
한데, 그의 기념관 이후 2번째로 맞대하는 기독교 성구가 60년 전의 칸타타 주제다.
외빈내실(外貧內實)을 기대할 수 없는, 어떤 창고 또는 개인의 차고 쯤으로 보이는 건물의
외벽에 붙어서 늙은 길손의 아침을 무겁게 하고 있다.
아무와도 만날 수 없는(幽明을 달리했거나 이민이기 때문에) 늙은이가 홀로 걷고 있는데.
영감의 오셋타이 100y과 타스키가 지켜주는 헨로 안전
56번국도에 합류와 분기를 반복한 헨로미치는 페트(Pet)추모공원(愛媛總合ペット靈園)의
입구를 지난다.
개를 비롯하여 모든 애완동물의 안식처(?)다.
생전에 마땅한 삶터를 갖지 못한 사람의 사후는 더 어려운가.
사람은 물론 죽은 페트에도 밀려야 하다니.
페트의 유택 마련 때문에 우리의 자연에도 별난 수난시대가 코앞이겠다.
오호라, 바야흐로 삼복(三伏)이 개들의 수난일이던 시대는 거(去)하고 내(來)한 것은 견공
의 영령에 사람이 읍(泣)하는 시대로다.
인심 후한 회사(酒六冷藏株 宇和工場)라고 박수치던 손이 부끄럽게 되었다.
사원휴게실을 헨로상 휴개소로 개방하는 것이라며 편히 쉬라면서도 문이 잠겨 있으니.
아침 8시 10분인데다 일요일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헨로상도 휴일에는 쉬고 이른 아침에도 걷지 않고 쉬는가.
아침 8시 반인 시각에 도착한 코야는 지나온 메이세키지10.4km, 곧 통과해야 하는 토사카
(鳥坂)터널2.3km지점에 있다.(ひじ川源流の里)
인근의 소학교(多田小學校) 6년생12명의 초상화를 부착했다는데 그림을 통해 심리상태를
파악하는 심리학자의 눈에 걸렸다면 어떤 평이 나올까.
내 눈에는 하나같이 유소년기의 천진하고 순수한 면은 없고 불만이 팽배해 있는 모습이니.
5.5km의 헨로미치가 터널 개통으로 2.1km로 단축되었고, 소요 시간도 60분에서 25분으로
줄었으니까 택일하라는 안내판 앞에 선 나는 고민 없이 후자를 택했다.
까미노라면 어땠을까.
당연히 전자다.
24회 글에서 밝힌 대로 빨리 끝내고 돌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진퇴 양난의 길에서 헨로의 도중하차를 면한 조건은 내년에 까미노에 다시 가는 것이니까.
이같은 내 심란을 달래라는 현시를 꿈에서 받기라도 했는가.
안개 자욱한 이 아침에 100y 동전 1개를 주기 위해 코야까지 나오다니.
옆마을(宇和町久保?) 영감이 자기의 꼭 쥔 손을 펴고 동전을 꺼내어 내 손에 쥐어주었다.
77세라는 이 영감도'오셋타이'라는데 이른 아침부터 거절하는 야멸찬 모습이어야 하는가.
34번 타네마지(種間寺)에 이어 2번째다.
내 길의 무사를 확실하게 빌어주는 일본인 영감 2명을 확보했으니 기분 좋은 일이리라.
길이 1천m 이상의 터널이라면 긴 터널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지나온 1.600m대, 1.700m대의 터널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지만, 긴 터널의 위험도를
낮추기 위함인가.
터널 입구의 커브 지점에 타스키(たすき/襷/어깨띠) 박스가 있다.
터널에 진입할 때 이 반사(형광?) 타스키를 메고 터널을 통과한 후 벗어놓는 것이다.
통과 차량이 많은데도 분리된 인도가 없기 때문에 헨로미치 중에서 가장 위험한 구간으로
지목되어 있다는데도 근본적 대책을 수립하지 않고 이같은 편법을 쓰고 있다.
일본인들의 성정과 다른 액막이짓이지만 없는 것 보다는 나을 것이다.
헨로상에게 왜 터널이 필요한가
이 시점에서 짚고 가야겠다.
헨로미치에, 헨로상에게 왜 터널이 필요한가.
당시에는 바닷길 외에는 발로 걷는 것이 대중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기 때문에 걸었을 뿐
그 때에도 차량이 있었다면 그들도(코보,쿄키 등) 이즈음처럼 차량을 이용했을까.
13c 전의 일이라 의미 없는 가정이지만 분명한 것은 차량이 있었다면 헨로미치가 없다.
그렇다면, 터널은 헨로미치가 아니며 헨로상이 터널을 걷는 것은 각종 차량을 이용하는 것
과 다르지 않은 편법일 뿐이다.
세이요 시(西予市)에서 진입했지만 터널을 나오면 오즈 시(大洲市)다.
국도는 토사카 고개를 넘어온 오리지널 헨로미치를 차단하고 내려간다.
(옛 헨로미치는 아랑곳 없이 왼쪽의 국도를 내려다보며 자기 길을 가지만)
내리막 국도변의 정자는 신선 야채 무인판매대 농가의 오셋타이?
설마, 헨로상들을 고객으로 보는 것은 아닐텐데 활짝 피어서 하늘거리는 코스모스로 담을
친 정자가 맘에 들었으나 아침부터 꽃놀이를 위해 나선 것이 아니잖은가.
까미노에도 무인판매대가 간혹 있다.
거기에는 뻬레그리노스에게 당장 필요한 음료수, 간식류들이 있다.
여기는 국도변이니까 터널에서 내려오는 차량들이 고객이겠는데 그들도 궁금한지 힐끗거
릴 뿐 정지하는 차량을 보지 못한채 내려가야 했다.
야채 무인판매소에서 4km쯤(?) 내려온 지점에 휴게소(札掛/pocket park)가 있다.
대규모인 타이요농장의 휴게소로 짐작되는데 헨로상들에게 개방한 것으로 보인다.
직원 휴게소를 개방한다고 홍보하면서도 문이 닫힌 곳에 비하면 24시간 개방하는 이 곳이
명실 상부한 것 같다.
이 일대는 발룬티어(volunteer) 휴게소 지역인가..
대규모 농장지역의 내적 필요에 따라 만든 휴게소들이 헨로상들에게 요간하게 쓰인다면
일석이조라 하겠는데 단지 휴식만을 위해 멈추는 대형버스가 얼마나 될까.
걷는 헨로상과 소형승용차에게는 고마운 장소가 되겠다.
국도변 일부가 옹벽으로 되어 있고 가교 아래로 그린이 보이고 위로는 육교가 있는 것으로
보아 골프장 지역(大洲?)을 지나는 듯 했다.
정녕 옛 헨로미치가 도로에 끊기고 골프장에 찟기는 등 박살난 지역일 것이다.
다운타운 위를 관통하는 마츠야마(松山)자동차전용도로?)가 시야에 잡히는 것으로 보아
오즈(大洲) 시내에 접근하는 듯 한데 헨로 표지가 나타나지 않아 긴장이 되었다.
까미노에서는 500m 이내에 나타나지 않으면 되돌아가서 확인하는 훈련이 되어 있지만.
바로 이 때, 왼쪽 길가 작은 돌기둥이 출현했다.
마치 나도 밤나무... 하듯이.
오르내리는 차량들의 매연과 세월의 때가 잔뜩 낀 시코쿠헨로 표석이다.
오즈 시 댜운타운에 진입한 헨로미치는 키타타다(北只)우편국앞에서 현도441번으로 갈아
탔다가 국도56번과 이합을 반복하고 있으나 부질없는 짓이다.
1.200년전 허허한 땅을 걸었는데 취락이 형성되고 도시로 발전하면서 갖가지 이름의 길에
편입되었는데 그 길을 기어히 찾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걸으면서도 아직 모르겠다.
오즈 시의 명소라는 가류산소(臥龍山莊/국가중요문화재)를 경유하게 되어 있는데 메이지
(明治) 40년에 지은 집과 코보와는 아무 간련도 없는데도.
코보가 걸었던 길에 건물을 세운 것인가?
국도56번을 따라 히지 강(肱川)을 건넜다.
세이요 시에서 건넜던 강을 다시 건넌 것.
국도를 따라 발전했는가 분포된 취락을 기준으로 도로를 만들었는가.
국도56번을 따라서 길게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꽤 지루하게 느껴졌다.
한데 웬 학교가 이리 많은가.
궁금증을 안고 그냥 걸을 수 있는가.
도로변의 대형서점(明屋書店大洲店)에 들어갔다.
고객으로 봤는지 공손히 인사하는 직원에게 스미마센(すみません/미안합니다).
즉시 한 책(大洲市誌?)을 꺼내어 내게 알려준 것은 소학교22, 중학교10, 고등학교6 등.
히지강의 범람(1943, 1945)과 지진(1946/南海大地震) 등의 대천재들을 극복하였다는 인구
44.000의 소도시에 각종 학교가 36개나 되니 그들의 교육열을 가늠할 수 있다.
만교귀일(萬敎歸一) 성소가 된 우치코 초의 오헨로무료야도
오늘의 첫 목표지 토요가하시(十夜ケ橋)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2시 25분.
방가이 레이조(番外靈場)는 시코쿠88레이조에 들지는 못해도 버금간다는 뜻인가.
20개 방가이 레이조 중 하나로 전체적 규모가 작을 뿐 분위기는 레이조와 다르지 않은 이
절(토요가하시)에도 츠야도가 있다 하나 너무 이른 시각이라 목적지를 수정했다.
14km쯤 전방(長岡山터널 지나)에 있다고 되어 있는(지도에) 젠콘야도까지.
사용할 수 있는 남은 시간(낮)은 3시간 정도다.
두리번거리거나 쉬지 말고 시종 빠른 걸음이어야 하는 무거운 일거리를 스스로 만들었다.
만일의 경우, 비박(bivouac)에 대비해 충분히 준비한 후 즉시 시행에 들어갔다.
이런 경우에는 유혹이 더 많다.
우치코선(內子線) 열차역 니이야(新谷)를 지나 "흰 벽의 거리가 숨쉬는 마을 우치코" 앞을
지나가는 시각은 17시 14분.
웬만큼만 시간이 되면 '일본의 인사동' 이라는 거리에서 숨 한번쯤 쉬어 보고 갈 만도 한데
다급하게 걷는 중에도 아쉬움은 있었다.
어차피 비박한다면 하고싶은 일 다하며 쉬엄쉬엄, 여유롭게 걸어도 되겠지만 그것은 순례
길(pilgrimage)이 아닐 경우다.
절제와 극기, 설정한 목표의 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도 필그림(pilgrim)의 길(spirit)
이니까.
좌우 돌이켜 볼 것 없이 걷기만 하면 되는 국도379번으로 갈아탄 시각이 17시 20분.
마침내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었다.
하얀 벽 거리를 걸어보러 되돌아갈 수는 없지만.
완만하게 오르는 마지막 구간을 더욱 힘있게 걸어 터널을 통과한 시각은 18시 전후.
곧, 땅거미가 지는 시간에 '오헨로무료야도(お遍路無料宿) 앞에 도착했다.
인기척이 없는 껌껌한 집에 첫 느낌은 불안이었으나 순순히 열리는 문.
플래쉬로 찾은 스위치 온(on)에 온 방을 밝혀주는 전깃불 등 만사 OK!
시장기가 와락 덮쳐왔으나 배낭을 풀기 전에 나는 이미 성소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불당(佛堂)도 되고 교회(敎會)도 되고 사당(祠堂)도 되는 성소(聖所) 같은 곳.
까미노에서도 , 이 헨로미치에서도 아직껏 느껴보지 못한 초유의 경험이다.
부지불식간에 내가 일본의 신흥종교 '生長の家'(생장의 집)의 만교귀일(萬敎歸一) 사상에
몰입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벽에 붙어있는 여러 글이 낙서 수준 같으나 씹을 수록 맛이 나는 음식 같았으니.
'세이초노이에'는 1930년에 타니구치 마사하루(谷口雅春)가 창설한 종교다.
일본 신토(神道),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유태교 등의 가르침에 철학과 심리학 등을 가미,
융합한 신흥종교로 만교귀일은 그들의 교의(敎義) 중 하나다.
입적하기(1927~2004)전 세계 4대생불로 불린 한국의 숭산(嵩山) 스님도 만교귀일을 설파
했는데 동설(同說) 여부는 모르지만 아무튼 나는 그 설파장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모든 종교의 진리를 하나로 인식하고 있는(萬敎歸一) 종교, '생장의 집'(生長の家/House
of Growth/Hogar del Progreso Infinio)의 신도인 듯 한 주인.
인생이 정토를 향한 여정이라면 걸음걸음에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것 아니냔다.
부처님이, 신부와 목사가, 공맹자가 왜 필요한가.
이 하나의 진리면 만사 OK인데.
오즈의 슈퍼마켓 코스모스에서 사가지고 온 저녁거리에는 모처럼 김치가 포함되어 있고
캔맥주도 1캔 있다.
가장 비싸고 가장 맛 없는 김치도 제 구실을 하는 식사를 끝낸 후 바깥을 살펴봤다.
오즈가도(大洲街道)로 이름 바꾼 국도56번과 달리 379번은 국도지만 차량이 한가롭다.
에히메현의 행정구역이 오즈 시에서 키타 군(喜多郡)으로 바뀐 우치코 초(內子町)의 마을
이요키(五百木)의 밤 하늘 역시 별들의 세상이지만 싸늘한 공기에 들어왔다.
시코쿠헨로에서 오랜만에 성취감을 느끼는 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