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이화령-조봉-황학산-백화산-곰틀봉-이만봉-희양산-구왕봉-은티마을(1박)-주치봉-장성봉-버리미기재-곰넘이봉-불란치재-촛대봉-대야산-밀재
*참가자 : 이재근, 이인식, 옥영동, 윤재희(4명)
산행일시 : 2006년 3월 10일~11일
꽃샘추위로 옷깃을 동여매고서
남녘에는 매화 축제가 봄의 서곡을 알리고, 훈풍이 살랑거리며 봄은 우리 곁에 찾아온다. 오는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로 인해 풀었던 옷깃을 다시 동여매고 5시에 지하철 동래역을 출발한다.
예나 다름없는 도로를 따라 문경새재 IC를 통과하여 새재에서 아침을 해결한다. 다시 3번 국도를 따라 이화령에 도착하니 안개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일행보다 먼저 도착한 부부 대간 팀을 만난다. 이들은 대구에서 온 분들인데, 은티마을에서 이화령으로 구간이 잡혀있다. 이화령에 주차를 하고 택시를 불러 은티마을로 향한다고 한다. 8시30분 우리는 산행 준비를 마치고 이화령 군부대 초소 옆을 통과하여 조봉을 향해 오른다. 10여분쯤 걸었을 때, 차량 열쇠가 없음을 알고 배낭을 벗어놓고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열쇠를 꽂아둔 채 문도 잠그지 않고 출발했던 것이다. 문을 잠그고 배낭을 내려놓은 곳까지 뛰어 오르니 숨이 할딱거린다.
능선에 오르니 왼편으로 이화령 터널 구간이 보이고 두 줄기의 국도와 고속도로를 따라 차량들이 시원스레 달린다.
황사와 짙은 안개가 자욱한 대간을 따라
안개 가득한 길은 촉촉이 젖어 육산의 진면목을 느끼게 한다. 짙뿌연 안개로 인하여 가시거리가 짧고 더구나 황사현상에 강풍까지 몰아친다고 하니 악천후이다. 무명봉 몇 개를 넘어 09시30분 갈미봉 옆 777봉을 넘는다. 근처에는 수맥이 통과하는지 습지가 잘 발달하여 억새가 군락을 이뤄 잘 자라고 있다. 또한 낙엽송 수목이 잘 자라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각서리 갈림길(←각서리 1.2km(약30분), ↑백화산 6.5km(2시간 30분), ↓이화령 1.5km) 이정표를 지나서 10시13분 황학산(915.1m)에 도착한다.
고갯마루를 넘어서자 다시 안말 마을 갈림길(←분지(안말), →흰두뫼 50분, ↑백화산 80분, ↓이화령)이 나타난다. 오르막에는 아직도 잔설과 낙엽 속에 숨겨진 얼음이 있어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바위지대를 지나고 얼음 비탈길을 조심스레 올라 11시05분 백화산(1063.5m)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에는 삼각점과 돌표지석이 있고 주변에는 억새가 많이 자란 헬기장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안개의 농도는 진해지고 반경 5m 밖의 사물을 분간하기가 어렵다. 오로지 발밑만 보고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안개로 조망도 없는 따분한 길을 걷는 숭악의 전사들
잠시 후 나타나는 암봉(1,012m)은 걷는 속도를 낮추게 한다. 11시53분 평전치에 도착한다. 날씨가 맑다면 이 지점에서 북쪽으로는 부봉(935m)과 주흘산(1,106m) 그 너머로 월악산(1,094m)까지 보이고 남서쪽으로는 멀리 속리산 주릉이, 북동쪽으로는 운달산(1,097m)과 성주봉(925m)이 눈에 들어올 것인데 아쉬운 마음뿐이다. 12시20분 평평한 낙엽 위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는다. 추운 날씨 탓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12시45분 다시 내리막을 따라 사다리재로 향한다. 계속되는 비탈이라 속도를 낼 수 있다. 13시15분 드디어 사다리재에 당도한다. 이화령에서 남동쪽 방향으로 대간 마루금을 따라 걷다가 백화산 정상에서 방향을 돌려 북서 방향으로 돌아 시루봉 어귀까지 ⊃ 모양으로 걷는다. 다시 암릉이 시작되고 20여분을 오르니 이름도 희한한 곰틀봉에 이른다.
13시50분 다시 앞에 보이는 이만봉(990.7m)에 힘들게 오르니 대리석 표지석이 서 있다.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서둘러 내리막을 내려간다. 마당바위와 용바위를 지나 돌길을 따라 시루봉 갈림길에 다다를 즈음 아침에 만나 우리와 반대로 대간을 하는 부부팀과 만났다. 이때 시간이 14시30분이다. 은티마을에서 여기까지 오면서 힘든 곳은 없는지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는데 걱정이 앞선다. 희양산 주변에서 길을 잃어 1시간을 헤매다가 이제 왔으니 야간산행을 감안하면 이화령에는 빨라야 밤10시는 넘길 것 같았다. 14시45분 시루봉 갈림길에서 얼음길을 피해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으며 지나간다. 15시 은티마을로 가는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잠시 원기를 회복하고 성터를 향해 오른다. 이곳은 분지 형태로 되어 있어 길을 주의해야 한다. 내려오는 길에서 곧바로 직진하여 산죽 사이로 직진하면 905봉으로 가는 길이다. 봉우리를 넘어 완만한 내리막을 조심스레 내려오면 은티산성이라고 하는 성벽 갈림길에 닿는다. 이때의 시간이 15시35분이다.
특별수도원 봉암사가 있는 희양산 구간을 거쳐
등산을 금지하는 문구와 함께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묶어 만든 어설픈 장벽이 앞을 가로 막는다. 왼쪽 안성골 갈림길을 따라 내려가면 산기슭에 봉암사가 자리를 잡고 있다. 입산통제문에는 “봉암사는 특별 수도원으로서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스님들께서 매일 희양산을 통제하십니다. 일반인의 희양산 및 봉암사 출입을 일절 금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잠시 봉암사에 대해 알아보면, 봉암사는 불기 2526년(1982)부터 종립선원으로 희양산 남쪽 너른 터에 자리하고 있다. 희양산은 백두대간의 단전에 해당하는 높이 998m의 거대한 바위산으로 서출 동류하는 30리 계곡을 끼고 있어 천하 길지로 이름나 있다. 멀리서 보면 우뚝한 모습이 한눈에 영봉임을 알 수 있는데 봉황과 같은 바위산에 용과 같은 계곡이 흐르고 있어 예로부터 봉암용곡이라 불렀다.
봉암사는 지금부터 약 1100여년 전 신라 헌강왕 5년에 _지증국사께서 창건한 고찰로서 선종산문인 구산선문의 일맥인 희양산문으로 그 사격이 매우 당당하다. 당시 이곳은 신라 문화의 정수인 선풍을 크게 일으켜 구산선문 가운데 희양산파의 주봉을 이루었던 곳이다. 특히 신라 제 49대 헌강왕은 화풍으로 소폐하고 혜해로 유고할 유신정치를 뜻하고 있었는데 이런 헌강왕의 개혁 의지에 이념을 제공한 것이 지증대사의 선, 그 후 봉암사는 고려태조 18년 정진대사가 중창하였는데 고려시대에도 많은 고승을 배출하여 불교중흥을 이룩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던 대선찰이다. 그런데 조선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사찰 건물이 소실된 것을 불기 2499년(1955) 금색전을 비롯해 여러 건물을 다시 건립하였으며 최근의 도량으로 모습을 일신하게 되었다.
이 산은 암벽이 병풍처럼 사방에 둘러쳐져 있어 봉황의 날개가 구름을 흩는 것 같고 강물이 멀리 둘러 쌓여있는, 즉 뿔 없는 용의 허리가 돌을 덮은 것과 같은 모습이라고 한다. 1982년 6월3일 종단에서 봉암사를 특별수도원으로 제정, 공고하여 봉암사 희양산 일대를 성역화 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시 산죽 길을 따라 올라 16시10분 희양산 갈림길에 다다른다. 여기서는 스틱을 접어 배낭에 넣고 80도가 넘는 경사로를 밧줄을 잡고 조심스레 내려와야 하는 세미클라이밍 코스이다.
희양산 바위자락 100여 미터 길이의 밧줄에 의지하여
밧줄을 가랑이 사이에 넣고 총 길이가 100m도 넘는 바위 틈새를 내려오니 이번에는 결빙 구간이 우리의 앞을 가로 막는다. 고문님은 다시는 희양산을 찾지 않겠지만, 다행히도 내리막길이라서 힘이 적게 들었노라고 한다. 부지런히 길을 재촉하여 지그재그로 내리막을 내려서면서 전망이 좋은 바위를 만난다. 이 바위에서 구왕봉을 바라보니 웅장한 바위며, 바위 위로 흐르던 물이 그대로 얼어붙어 장관을 이룬 모습이 희뿌연 안개 사이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16시45분 지름티재에 도착한다. 이곳에는 서낭당이 설치되어 있고 구왕봉 방향으로 감시초소와 희양산 입산 저지선이 둘러져 있다. 오늘 남은 산행은 앞에 보이는 구왕봉을 넘어서면 된다. 마지막 남은 구왕봉은 암릉 급경사 구간으로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오르기가 대단히 힘이 든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남은 힘을 다해 오르다가 중간에서 간식을 먹고 다시 힘을 내어본다. 17시05분 구왕봉(898m) 정상에 도착한다.
구왕봉을 넘어 은티마을로
구왕봉에서의 저무는 노을에 비치는 희양산 조망은 아주 웅장하면서도 수려하고 보기 드문 암벽으로 구성된 산이다. 안개가 남아 있어서인지 시간에 비하여 어둠에 물든 희양산이 뚜렷하지 못함은 아쉬움이 남으며, 숭악 일행이 함께 하지 못함은 더욱 아쉽기만 하다. 오른편 산 아래 보이는 은티마을을 반나절 이상 감싸 안고 도는 형국이다. 17시55분 은티마을로 내려가는 갈림길에 이른다. 이곳에는 묘1기가 있고 은티마을까지는 20분이라고 적혀있다. 오른편 숲길을 따라 계곡을 따라 거친 길을 걸어 20분 만에 마을 어귀에 도착하였다. 다시 비포장 농로를 따라 10여분을 걸어 18시30분 은티마을에 당도한다. 영풍택시를 불러 이화령으로 향한다. 내일 아침 이른 식사와 함께 도시락 준비를 해야 할 곳을 물색하기에 좋은 곳을 찾아야한다. 우리는 수안보로 향하였다. 19시30분 수안보에 도착하여 온천여관에 숙소를 잡고 인근의 황제식육점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아침은 그 옆에 있는 24시 해장국집으로 정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시 주치봉을 넘어 악휘봉으로
04시30분 모닝 벨에 부스스 눈을 뜨고 모든 준비를 한 후 식당으로 향했다. 예나 다름없이 아침 식사 후 달걀 완숙 프라이에 공깃밥을 도시락에 담고 수안보를 출발하여 어제 산행을 마친 은티마을의 주차장에 내렸다. 이때의 시각은 06시15분이다. 조용한 은티마을은 정적이 감돌고 있다. 이 마을은 오지로서 재난이 없었다고 한다. 07시 어제의 능선에 당도하여 갑자기 고도를 높이며 주치봉(683m)을 거쳐 얼어붙은 내리막을 따라 07시24분 은치재에 당도하였다. 이곳에도 봉암사로의 등산을 금지하는 저지선이 설치되어 있고, 서낭당에 새끼줄이 달려 있다. 여기서 은티마을로 가는 길은 어제 우리가 내려간 길보다 넓고 평탄해 보였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악휘봉으로 향하는 암벽과 암릉 구간을 조심스레 걷는다. 아래에서 바라볼 때엔 오르기 싫은 험한 준봉이다. 722봉에 오르니 맑은 아침 햇살에 가시거리가 멀어 희양산의 전경은 더없이 웅장하다고나 해야 할지? 그 모습을 잊지 않으려 자꾸만 뒤돌아본다.
악휘봉으로 오르는 암릉 구간에는 바위틈에 오래된 큰 고사목들이 보인다. 이처럼 큰 나무들이 어떻게 살았을까하는 의구심이 들고 더불어 생존을 위해 얼마나 몸부림을 쳤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08시45분 암릉은 끝이 나면서 악휘봉으로 가는 갈림길에 도착하였다. 이제부터는 걷기에 편한 육산이 전개되고, 완만한 내리막이 이어진다. 가야할 길이 멀기에 잰 걸음을 내딛는다. 오른편에 보이는 악휘봉(845m)도 암산으로 가보고 싶은 산이다. 악휘봉 정상 아래에 있는 선바위는 그 위용이 놀랍다. 주변의 소나무와 어우러져 멋있는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낸다.
매서운 바람에 온 몸이 꽁꽁 얼어붙다.
장성봉까지는 2시간이라는 안내가 보인다. 그저 평탄하면서도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한 끝에 11시15분 장성봉(915.3m)에 오른다. 장성봉에 이르기 전에 막장봉(887m)으로 가는 갈림길을 주의해야 하는데 부회장과 나는 막장봉 길목에서 후미를 기다리다 뒤늦게 장성봉으로 가는 길이 아님을 알고 후퇴하여 장성봉으로 가는 길에서 후미와 만났다. 장성봉에서 본 희양산 전경은 바위에 햇살이 반사되어 더욱 하얗게 보인다.
버리미기재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했으나 장성봉까지 오느라고 체력이 소진되어 이내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11시20분 장성봉 아래 애기암봉으로 가는 갈림길 바위에 걸터앉아 희양산을 바라보며 점심을 먹었다. 강풍을 피해 자리를 잡았건만 옷깃을 여미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바람에 도시락과 가벼운 물건들은 꽁꽁 숨겨두거나 잡고서 식사를 해야 했다. 너무나 추워 앉아 쉴 겨를도 없다. 11시40분 버리미기재를 향해 다시 출발한다. 바람이 더욱 세차게 불어오면서 추위를 느낀다. 오른쪽 계곡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인해 귓불과 얼굴에는 감각이 없고 장갑을 낀 손마저 얼어붙는다. 한 겨울 산행에도 이런 추위를 느껴보기가 어려운데 강풍주의보마저 내린 탓일까?
저 아래 보이는 버리미기재를 지나 멀리 보이는 곰넘이봉까지 이어지는 능선의 오른쪽은 탁 트인 골짜기이니 걸어갈 일이 꿈만 같다. 장성봉에서 버리미기재까지 오르막은 1시간10분 거리인데 내리막이라서 40분 만에 버리미기재에 도착한다. 버리미기재에는 대간 산행을 하는 일행이 세워 둔 봉고만이 주차되어 있고 대야산 방향으로는 입산금지를 알리는 플래카드만이 떨고 서 있다.
버리미기재에서 불란치재를 거쳐 촛대봉까지
버리미기재를 지나 오르막에는 낙엽송 숲이 잘 조성되어 있고 바람은 더욱 세차 오버트라우저를 꺼내 보온을 하고 바람막이를 하기 위해 덧입어야만 했다. 숲길이 끝나면서 암벽이 시작되고 스틱을 접어둔 채 양손으로 바위를 잡고 오르지 않으면 안 된다. 우여곡절 끝에 13시07분 곰넘이봉(733m)에 이르니 촛대봉과 대야산이 한 눈에 들어오고 뒤로는 희양산을 비롯하여 어제와 오늘 우리가 걸어온 능선이 들어온다.
웅장한 대야산은 암봉으로 되어 있고 아무리 봐도 전면에서 오르는 길은 없어 보인다. 촛대봉에 이르려면 잠시 내리막을 가야 한다. 지금가지 소요된 시간이 만만치 않아 서둘러 길을 재촉한다. 13시35분 불란치재에 이르니 이곳에도 탈출로가 보인다. 왼쪽으로는 완장리로 향하는 길이고, 오른쪽으로는 속리산 국립공원 매표소로 향하는 탈출로이다. 하지만 길이 뚜렷하지는 않아 보인다. 미끄러운 길과 낙엽을 밟으며 14시06분 촛대봉에 이르러 바람을 피해 휴식을 취한 뒤 다시 내리막을 조심스레 내려간다.
밧줄에 의지하여 대야산 암봉을 기어오르다.
대야산 하반부의 육산 지역이 끝날 무렵 결빙구간이 나타나고 거센 바람이 양 볼을 스친다. 능선 암벽에 도달하자 위로 보이는 밧줄이 여러 개 줄이어 있는 것이 아닌가? 도상에는 개구멍바위라고 되어 있는 암벽을 밧줄에 의지한 채 힘껏 당겨야 한걸음을 옮길 수 있다. 더구나 능선에는 바람이 강하여 밧줄을 잡고 있는 몸이 날린다. 바위에는 결빙이 되어 얼어붙은 얼음위에 발을 지탱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고문님은 밧줄을 지탱할 팔 힘도 부치는 듯하다. 아득하기만 하던 정상도 올라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생각 앞에는 어쩔 수 없나 보다. 20여분의 사투에 가까운 안간힘에 정상은 우리의 발아래에 놓인다.
15시25분 대야산(930.7m) 정상에 오르니 속리산 국립공원이 한눈에 들어오고 발아래에는 암봉들로 어지러울 뿐이다. 웬만한 산을 오르는데 어려움이 없던 일행이 모두 혀를 내두른다. 암벽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추천을 하고 싶은 난구간이다. 백두대간을 하면서 이처럼 어려운 구간은 처음이다. 대부분의 산행객 중에 이 구간에서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내려가는 길도 걱정이 앞선다. 사방이 온통 암벽이니 바위틈으로 난 길을 따라 밧줄에 의지하며 내려간다는 것도 쉽지 않다. 밀재까지는 40분 거리라고 적혀있다. 남은 과일을 모두 꺼내어 먹고 체력을 보강한다.
제일 어려운 속리산 구간을 마무리하며
이제 밀재를 거쳐 용추로 내려가야 한다. 비탈길과 암벽 위에 설치된 밧줄을 잡고 한 걸음 한 걸음 힘들게 내려간다. 오른편에 보이는 암봉도 거대하여 오르기가 쉽지 않은 산이다. 밀재에 도착한 시각은 16시16분이다. 이제 왼편으로 꺾어 돌아 계곡으로 난 길을 따라 용추까지 내려간다.
17시15분 용추에 도착하여 송면 택시를 불러 놓고 차량이 오기 전까지 맥주 한잔을 마신다. 차량으로 은티마을까지 돌아가 45번 중부내륙고속도로를 따라 북상주에 도착하였다. 상주 시내의 목욕탕에서 땀을 씻고 19시50분 다시 상주를 출발하여 부산에 도착한 시간은 21시50분이다. 화명동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오늘 저녁은 옥영동 교감이 부담하였다.
이번 산행을 마치면서 백두대간을 하는 동안 소요시간이 너무 길고 최대의 난구간이라서 어려움이 증대되었다. 앞으로는 이처럼 어려운 구간은 없으리라 생각하건만, 어찌 우리의 마음과 같을지 두고 볼 일이다. 매주 이어지던 산행도 다음 주에는 달콤한 개인 휴식기간을 갖게 된다. 체력 보강을 하여 다음에는 더욱 건강한 몸으로 좋은 산행이 되도록 할 것이다. 끝까지 힘든 산행을 서로 도와가며 진한 정을 느끼게 해 준 대원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산행기를 마감합니다. <숭악사관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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