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방 안의 아이
이우승
(순천향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4학년)
아이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온다고 말했다. 실습 일정을 마치고 폐쇄 병동을 나가려던 금요일 오후의 일이었다. 지난 한 주간 같이 이야기하며 친해진 그 아이는, 심한 우울증과 반복된 자해 시도로 입원한 환자였다. 왜 이 일을 주치의 선생님께 말씀드리지 않았냐고 조심스레 물어보니, 아이는 선생님이 바쁘신데 귀찮아 하실까 봐 그랬다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기를 귀찮아할까 봐, 싫어할까 봐 죽고 싶다는 생각도 말을 못 한다니… 아이의 마음은 죽는 것보다도 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을 잃는 걸 더 겁냈으리라. 손목을 그으면 남이 볼까 봐 남몰래 허벅지를 그었다는 아이. 네 몸에서는 얼마나 많은 피가 흐르고, 마음에서는 얼마나 많은 눈물이 흘러나왔을까. 혼자서 상상해보는 아이의 눈물에 머리가 저릿해졌다. 여기서 우울증을 치료하고 나간다 해도 아이를 상처입힌 주변의 환경은 그대로일 텐데, 아마 또 많이 아프고,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 텐데. 그 시간을 이 아이가 다시 견딜 수 있을까? 그런 상황 속에서 정말 병이 완전히 나을 수 있을까? 결국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을 것만 같다는 무력감이 차올랐다. 그런 생각에 빠진 채, 나는 폐쇄 병동의 닫힌 문밖으로 나왔다. 아이의 한껏 움츠린 그 모습은 나를 따라 나와, 나와 오랫동안 함께 걸었다.
그해 여름, 나는 2주의 외부 병원 실습 기간을 어느 소아청소년정신과에서 보내기로 했다. 더 많은 아이들을 만나 보고 싶다. 그리고 그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을 찾고 싶다. 오랫동안 머리에서 맴돌던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그런 소망을 품고 실습에 임하기로 했다.
병동에서 맞은 월요일 아침, 환아들이 모두 나와서 아침 운동을 하고 있을 때였다. 병동환자 보고를 들으며 집중하던 차에, 의국 옆에서 갑자기 크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격리실에 있던 한 아이가 낸 소리였다. ‘무슨 일로 격리실에 들어갔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 때, 문이 열리고 열 살이 채 안 되어 보이는 아이가 나왔다. 그리고는 아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기 병실로 걸어갔다.
“아스퍼거예요.”
아침 회진이 끝난 후, 주치의 선생님은 자폐장애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함께 아이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아이의 가장 특이했던 점은 자신의 생각을 반복적으로 확인받길 원한다는 점이었다. 실습하며 병동에서 일과를 보내는 동안, 나는 그 아이가 간호 스테이션으로 쪼르르 달려와 질문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볼 수 있었다. 질문은 보통 이런 식이었다.
“선생님. 제가 ㅇㅇ이 머리를 때리고 싶은데, 이건 나쁜 생각인 거죠?”
“선생님. 배가 너무 아픈데 이건 제가 나쁜 생각을 해서 그런 건가요?”
“선생님. 저 지금 너무 불안한데 이건 선생님이 저를 그렇게 만든 건가요?”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하루에도 열댓 번씩 그런 질문들이 반복되었다. 그러다 아이가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을 땐 잠시 격리실에 들어가 쉬도록 했다. 실습이 끝난 첫날, 나는 질문을 계속하던 그 아이가 신경이 쓰여 책을 펴고 아스퍼거 증후군을 찾아보았다. 언제나 그렇듯 교과서에는 담담한 문체로 암담한 이야기들이 쓰여 있었다. 이 질환이 있는 환자는 증상이 평생 유지될 수 있고, 일상생활이나 직업을 가지는 데 어려움이 있고, 예후가 좋지 않다는 그런 이야기들 말이다. 이 아이는 나아질 수 있을까.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 나는 무얼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해봐도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 문제였다.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나는 소원대로 많은 환자들을 볼 수 있었다. 녹록지 않은 현실을 보며 고민은 점점 늘어갔지만 말이다. 아이들의 상태는 심각했다. 병이 나아질 수 없는 유전적, 가정적 환경에 처해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아이들은 몇 번이나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곤 했다. 책으로 배우고 시험지에 써 내릴 때엔 간단히 병을 고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던 치료법들은 그 하나하나가 일종의 도전과 같았다. 마치 험준한 산맥을 오르고 또 오르는 일과 비슷했다. 학교에 갈 나이가 되어도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언어치료 수업에서, 선생님은 아이에게 한 단어라도 더 가르치기 위해, 1분이라도 더 앉혀 두기 위해 이틀처럼 느껴지는 두 시간을 분투하며 보냈다.
“오늘은 OO이가 전보다 더 얌전하고, 친구들과도 잘 지냈어요.”
오늘은 진도를 얼마나 나갔느니, 단어를 몇 개를 더 외웠느니 하는 이야기 없이도 그것만으로 아이의 할머니는 기뻐하며 선생님께 연거푸 감사하다고 했다. 또 다른 날에는 자폐 아동의 폭력 행동을 고치기 위한 교정치료를 참관하였다. 선생님들은 아이의 두 팔을 붙잡고 난동을 부리지 못하게 막았다. 그렇게 팔을 잡고 아이를 무릎에 앉힌 자세로, 선생님은 몇 시간 동안이나 그림 카드를 이용한 표현치료를 계속했다. 수십 번의 난동과 수십 번의 제지 끝에, 아이는 지쳐서 반항하기를 포기했다. 힘이 다 빠진 채 치료를 마친 아이는 어머니에게 안겨 치료실을 나갔다. 이 치료는 수십 회, 시간으로는 몇 달에서 길게는 몇 년까지도 계속될 수 있다고 했다. 하루만 해도 이렇게 힘들어하는 치료를 몇 년이나 계속해야 한다니.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먼 길이었다. 입원 중인 환아들에게 매일 새로이 생겨나는 문제들과,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힘든 치료들과, 쉴 틈도 주지 않고 반복되는 아이의 질문들에 시달리다 보면 하루가 다 지나갔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변함없이 막막한 하루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시간을 보내며 나는 마음이 무거워져 갔다. 애초에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닌 것만 같았다. 결국 증상 조절을 위한 약물 처방과 치료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바꿀 수 없는 문제들은 제쳐 두고, 지금의 불편함과 증상을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어디겠냐는 합리화의 결과였다. 격리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도 마음이 아프지 않게 되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어떤 약을 주어야 저 증상을 조절할 수 있을까’와 같은 문제들에만 관심을 두게 되었다. 아이가 뭐라 이야기하든, 그냥 자폐증 때문에 그런 거겠거니 쉽게 생각하고 넘겨버리며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어김없이 격리실 문 너머로 질문들이 들려왔다. 며칠 사이에 익숙해진 나는 그저 그 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앉아 있었다.
“선생님. 제가 이렇게 불안하고 자꾸 질문하고 싶은 건 제가 아스퍼거여서 그런 건가요?”그 질문에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아이는 자기가 아스퍼거인 걸 알고 있었다. 아직 어리니까, 그리고 자폐증이 있으니까 자기 병을 모를 거라는 나의 무심한 판단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이는 평소처럼 크게 웃었지만, 그건 기필코 즐거워서 웃는 게 아니었다. 아이는 모르지 않을 것이다. 자기한테 닥친 문제들과 불안들이 자기가 가진 병 때문이라는 것을. 어쩌면 앞으로 아이는 병으로 인한 고난들을 겪으며 병을 미워하고, 더 나아가 그 병을 가진 자신을 미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왜 몰라 줬을까. 나는 왜 그리 쉽게 눈을 돌렸을까. 한동안 나를 따라다녔던 고개 숙인 아이의 모습이 다시 떠오르면서, 격리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와 겹쳐졌다.
실습 마지막 날, 나는 고해성사를 하듯 교수님께 나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아이들의 병은 평생 나을 수 없을 것만 같고, 나는 거기에 질려 아무것도 못 한 채 쉽게 포기하고 도망치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내 이야기를 들은 교수님은 웃으셨다.
“아이들의 삶은 긴데, 학생은 잠깐만 보고선 모든 문제를 평생 해결할 수 없다고 단정 짓고 있네요.”
그렇게 말씀하시며 교수님은 책장 위에 세워 둔 그림을 가리켰다. 그 아이가 그려줬다고 한다. 몇 년 전 처음 입원하던 때에는 면담하러 왔다가 책상도 엎어버리려 하던 아이였는데, 이제는 면담하러 와서는 얌전하게 그림도 그려주고 다른 아이들과 같이 놀기도 한다면서 웃으셨다.
“병은 나아질 수 있어요. 물론 입, 퇴원을 반복할 수 있죠. 처한 환경이 힘들어서 다시 돌아올 수도 있고요. 그래도 아이들은 여기 있는 동안 힘을 얻어요. 그래서 다시 밖에 나갔을 때 문제들을 더 잘 이겨낼 수 있죠. 힘들면 다시 와서 기운 차리면 돼요. 힘들 때 도와주는 게 우리 일이에요. 그러면서 아이들은 점점 자라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다. 그렇지만 내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분명히 있었다. 병을 이겨낼 것을 믿기. 그리고 지칠 땐 기대게 해주고 힘이 되어 주기. 아기가 혼자서 걷다 뒤돌아보았을 때, 언제나 거기서 손 흔들며 서 있는 어머니처럼.
병동을 나오면서 나는 닫힌 방 안의 아이를 생각했다. 그 아이는 폐쇄 병동에서도 죽고 싶다는 말을 힘겹게 꺼내던 아이였다. 그 아이는 격리실 안에 틀어박혀 자신의 병에 대해 불안해하던 아이였다. 그 아이는 무력감에 빠져 스스로 벽을 세우고 방 안에 숨으려던 아이였다. 질병은 무한하지 않다. 언젠가 아이들은 닫힌 방의 문을 열 것이다. 그렇게 자라 열린 세상에서 다시 만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