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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행복의 오아시스 -신비롭고 사랑스런 그 이름
김홍숙
<1> ‘행복의 오아시스’, 도대체 ‘행복’이란 무엇이고 ‘오아시스’란 또 무슨 말인가. 신비롭고 사랑스런 그 이름들을 차제에 한번 짚고 넘어가는 것도 의미가 클 것 같다. ‘행복’이란 한자로 ‘다행 행幸’에 ‘복 복福’자를 쓴다. 그런데 이 말의 어원은 ‘손에 수갑 찰 일이 없는 다행스러운 삶을 즐긴다.幸’는 뜻이다.
거기에 ‘병에 술이 가득한 복’, 다시 말해 술과 제물을 풍성하게 차리고 신께 정성껏 제사함으로 복을 누리게 된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단어이다. 그리고 영어의 ‘Happiness’는 삶의 정황에 적절한, 아주 즐겁고 기쁘며, 또 다행스러운 일이 일어나 운이 좋은 상태란 말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어쨌든 쉽게 보면 한자어의 ‘幸福’이나 영어의 ‘Happiness’나 그 말이 그 말이다. 한데 좀 깊이 되새김해 본다면 둘 사이엔 조금 다른 뜻이 내포돼 있다.
말하자면 서양의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자기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부富의 소유’라 했고, 셰익스피어는 ‘최선의 현재적 상태’라고 단정했다. 반면 채근담에서는 ‘마음의 온기溫氣에 가득히 차서 도덕적으로 안심安心의 상태가 된 것’이라 정의한다.
그 다음에 오아시스란(oasis)란 말은 역시 명사로 그 의미는 첫째로 사막 가운데서 물이 솟고 수목이 자라는 곳을 말한다. 이는 곧 취락聚落의 형성과 대상隊商들의 휴식에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생명의 근원지란 의미이다. 그 두 번째는 인생의 위안이 되는 것이나 장소에 비유한 생명의 새 출발지를 상징한다. 그런데 여기에 ‘행복의 오아시스’라고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정말 행복의 극치가 될 것이다. 왜냐 하면 이것은 ‘행복+오아시스(oasis)=천국’과 같은 이 세상 최고의 낙원이나 그같이 놀라운 성자(희생)적 사랑(삶)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예수님 같은 사랑과 나눔과 섬김의 표본 자를 말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분이 이 세상에 과연 존재할까? 그렇다. 이 삭막한 세상에도 확실히 존재한다. 그것도 아주 예수님을 많이 닮은……. 나는 놀랍고 감동적인 인물을 소재로 글을 써보려 한다.
먼저 차분히 서론부터 풀어보면- 말할 것도 없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복잡다단한 세상에서 혈연적 인맥들에 기타 등등으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간다. 따라서 미처 소통이 잘 안 될 경우엔 흔히들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로 위안 받으며 아무 일도 없는 듯 살아간다. 나도 우리 집도 다 그렇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편안히 조용히 지내오던 중- 지난 7월 15일 이슥한 저녁 무렵인데- 이 웬 일인가? 갑자기 비상 사이렌처럼 여기저기에서 전화벨이 불나게 요란했다. 내 막내 동생의 사건을 알려주려는 다급한 경보 전화가 동서남북 여기저기에서 마구 급하게 빗발쳐댔다. 집 전화로, 휴대폰으로, 음성 메시지로 정신없이 따르릉 따르릉… 띠링 띠링 띠리링……. 전화벨 소리까지도 사뭇 호들갑을 떨며 자못 시끄러웠다. 내용인즉 “큰일 났다.”며, 지금 빨리 서울대병원으로 와보라, 가보라는 등 야단들이었다.
“뭐라고? 왜? 왜 그러는데? 누가 다쳤어?”
“글쎄, 그냥 빨리 가보시라구요! 빨리요!”
가까스로 숨 좀 돌리며 자세히 알아보니- 글쎄 막내 동생이 장모님께 간을 기증하기 위해, 지금 간이식 수술 준비 중이라는 전화들이었다. 뜻밖에 청천벽력 같은 말들에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 듯,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내미는 그 뚱딴지같은 말들에 적잖이 놀래고 당황했었다. 순간 기절할 뻔도 했었다.
“안 돼! 안 돼! 그놈을 내가 어떻게 키운 놈인데! 누구 맘대로! 내 젖동생인데…….”
사전에 무슨 힌트라도 좀 들었다면 덜 놀랬을 텐데, 전혀 눈치도 아무런 낌새도, 영문도 몰랐었기에 그냥 한참을 멍하니 말 못하는 벙어리에 마네킹이 되었었다.
오래 전 소천하신 부모님께서 늘 하시던 말씀 중 “진정한 사랑은 선을 행하는 것”이라고 하셨던 교훈이 불현 그리웠다. 그래서 “늘 착한 바보로 살고 있는 당신의 막내아들을 굽어보시고 위로와 격려를 좀 해주세요! 지금 서울대병원 병실에 누워 대기 상태랍니다. 어부이! 이제 날이 밝으면 수술대에 오른답니다!”라고 중얼거렸다.
그리곤 밤새 뜬눈으로 시계바늘만 지키다가 이른 새벽에 콜택시를 불러 병원으로 향했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여기요!’, ‘저기요!’ 손짓하며 달려온 동생들의 열성에 오감을 느꼈다.
나는 이어 수사반장처럼 조심조심 경험해보지 못했던 사건을 찾느라 이곳저곳을 두리번대며 병실 안들을 훔쳐보며 드나들었다. 그때다. “당사자(동생)로부터 알리지 말고 빨리 진행해 달라는 부탁이 있었다.”며 가족 모두를 병실 밖으로 쫒아냈다. 우리는 별 수 없이 쫓겨나 황무지의 여우들처럼 웅성웅성 장시간 상황만 엿보았다. 온몸의 비곗살이 서너 근은 녹아내린 듯 힘이 축 빠졌다.
효심이 지극한 젖동생의 아내(올케)의 동정을 살피며 친정어머니의 투병상태를 들어보았다. 70대 중반의 노인인데다 늘 합병증으로 고생이 심했다는데, 그 와중에도 생명의 애착은 많으셨단다. 찜질방 같은 칠월 여름밤에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 내리며 훈훈한 공간을 찾아 잠시나마 걱정 한 짐 내려놓고 곰곰이 생각을 해본다.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갔던 심청이도 생각나고, 삼복더위 후덥지근한 7월 하순 서울대병원에서 동생은 기대할 수 없는 십자군 전쟁터에 총대를 메고 희생 제물로 뛰어드는 것 같아 눈물만 나오기도 했다. 더불어 동생 처가의 유전자들을 더듬어본다. 노 친모가 낳은 자식들 4형제에 큰처형 내외분은 그림자도 볼 수가 없어 내심 궁금하고 섭섭하였다. 왜 그 많은 살붙이들을 다 내어두고 하필이면 내 젖동생이란 말인지? 혹시라도 타의(권유)로 남편을 내어주고픈 올케의 뜻에 동생이 그만 비켜갈 구멍조차 찾을 길 없이 응하게 된 것은 아닌지- 아무리 생각을 해도 궁금증만 커지고 답은 안 나왔다.
어쨌든 이제 착한 동생은 수술대에 오를 준비로 1분 1초의 긴장 속에도 “장모님도 내 어머니”라며, 생명은 소중한 것이라 “기쁜 마음으로 후회 없는 결정을 한 것이니 걱정 말고 기도나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며 동생은 지금 “속전속결로 박차고, 뛰어들지 않으면 장모님이 돌아가신다.”며 애타 하였다.
수술 중에 세상을 버릴 수도, 수술 후에 1개월, 아니 1년도 채 못 살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일지라도 장모님을 살리고자 하는 동생의 그 간절함은 정말 대단하고 놀라웠다. 동생은 이제 본격적으로 수술준비에 바빠 온몸에 한기를 느끼며 환자복을 겹겹이 끼어 입고 센머리에 무장을 하고 고개를 떨어뜨린다.
그리고는 성경에 나오는 이삭처럼 장모님과 나란히 수술실로 행진한다. 이때 오해인지- 수술 당일까지도 우왕좌왕하는 사돈댁이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많은 자식들에 사위들까지 합해 8명이나 된다는데 어째서 그 7명은 다 마다하고 유독 “둘째 사위의 간을 이식 받으면 더 힘이 나겠지!”라며 쾌히 승낙을 했는지, 정말 기가 막혔다.
사돈댁은 아마도 천사같이 평화롭고 깨끗한 ‘부예수님’의 장기를 받고 싶으셨겠지 라는 생각으로 나를 위로하며 달래었다. 그러나 천국에 계신 어부이는 과연 잘했다 웃으실까 안 됐다 우실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2>
옛말에 “표사유피豹死留皮 인사유명人死留名”이라는 말이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뜻이다. 맞다. 호랑이는 죽으면 그 값 비싼 가죽虎皮을 남기는데, 사람은 죽어도 남길 게 없으니 아름다운 이름이라도 남을 수 있도록 부끄럽지 않게 잘 살자는 말일 것이다.
그만큼 이름은 곧 ‘명예’요, 명예는 존귀하고 그 명성은 길이 빛나기 때문일 것이다. 하여, 아침에 태어났다가 저녁에 죽는다는 하찮은 미물에도 하루살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나보다. 그래선지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간에 이 땅의 모든 만물들도 저마다의 이름을 갖고 살고 있다.
하물며 우리는 성도이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귀한 천국 백성들이다. 그렇다면 계명에도 “여호와 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하였듯이 우리의 삶도 기왕이면 보다 아름답고 신실하게 살면서 우리 하나님의 이름도 거룩하고 존귀하게 해야 할 줄로 믿는다.
이름은 우선, 문법적으로는 명사, 곧 이름씨이다. 첫째는 사람의 성 아래에 붙여 다른 사람과 구별하는 명칭을 뜻하고, 두 번째론 어떤 사물의 개념을 대표하고, 따라서 그 사물과 딴 사물과의 차이점을 쉽게 구별하기 위한 칭호이다.
그래서 사람은 물론, 자기가 기르는 애완견 및 동물에도 거의 다 이름을 붙인다. 검둥이, 바둑이, 누렁이 같은 한국식 이름이나 존, 메리, 톰 같은 서양식 이름 등등을 비롯해 곰, 돼지, 여우, 늑대, 호랑이, 사자 등 동물은 물론, 심지어 조금은 혐오감을 느끼는 뱀, 악어 같은 파충류에 이르기까지도 일반화 되었다.
늦은 저녁, 차분히 막내 동생의 마음을 살펴본다. 어릴 적부터 연한 순처럼 겸손하고, 예의가 바르며 용모도 준수한 착한 동생이었기에 안타까우면서도 아주 장하고 대견스럽기도 했다. 더욱이 별명이 부예수님인 현직 목사이기에 동생은 분명 자신의 신앙 양심에 따라 간절한 마음으로 결정을 했을 것이라 짐작되었다.
그런 입장에서 택한 기증이라면 어쩜 그리 놀랠 일도 아니다. 응당 부예수님 같은 결정이요, 도리 같았다. 그러나 결코 아무나 할 수 없는, 생살에 칼을 대는 희생적 ‘사랑’임에는 틀림이 없어 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동시에, 평소부터 “간이란 놈은 멀쩡해서 좀 떼어내도 아주 잘 자란다는 말”도 회자했었고, 거기에 또 한국 최고의 서울대병원이라는 데 조금은 안정되고 안심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동생 나이 이제 겨우 한참 일할 4학년 8반의 청장년인데- 그 때문에 ‘혹시나’ 하는 노파심으로 걱정도 많이 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생살에 칼자국을 남기며 빨간 자두알 만큼만 남겨 놓고 장모님의 소중한 생명의 지킴이를 택한 그 갸륵함은 영원히 기록에 남을 고귀한 ‘사랑의 행함’이 아닌가! 길이 후대에 존경받을 이름으로, 자격으로, 빛나고 자랑스레 양 가문이 화목하고 발전했으면 좋겠다.
일찍이 야고보 사도도 말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되고 이미 죽은 믿음이라(약2: 14~26)”고. 그렇다. 실제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웅변이나 달변이 아니다. 그보다는 먼저 ‘진실’이고 ‘행함’이다.
행복은 이렇듯 진실과 순수의 사랑에서 나오는 법! 그것이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질 때 오는 것이다. 옳다. 참 행복의 올가니즘은 바로 그런 진실한 마음과 따뜻한 사랑에서 무조건 나누고 베풀며 섬김에 있는 것이다.
동생은 언제나 그렇게 산 사람이다. 이기적인 사람들과는 달리 유난히 남을 위해 예수님처럼 ‘부예수님’으로만 살아왔던 주의 종이다. 그러므로 이후로는 평소의 그 모든 나눔과 섬김이 갑절로 보상 받으며 여생이 행복할 수 있도록 부디 성공적인 간이식 수술을 간절히 기도드린다.
그 결과로, 양 쪽이 다 같이 웃으며 건강하게 퇴원해 더 많은 ‘행복한 오아시스’의 삶을 영위하면서, 가문에 흐르던 그 향기로운 피가 영원히 넘쳐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 충남 아산 출생
* 장로교 총회신학대학원 졸업, 서울 시민대 문학창작과 수료
* 나사렛문예대 성서와 문예창작과 수료
* 「시조문학」 시조로 등단(2010년), 한국민족문학가협회 이사
* 분당구 금곡동 두산위브아파트103-1303호
내가 살던 빨래터 집
엄순현
빗소리가 세차다. 깜짝 깨어 창문을 여니 비는 아니 오고 대문 옆 작은 폭포수(?) 쏟아지는 소리다. 지난 며칠 초가을에 때 아닌 장맛비가 억수처럼 퍼붓더니 엇갈리게 세운 대리석 기둥사이로 진주알 포말이 넓적한 반석위에 일제히 튕기며 쏟아진다.
봄이나 가을 갈수기에는 돌기둥 밑 반석이 물이끼로 덮여 그 사이로 물이 조금씩 쫄쫄 내려온다. 물받이 바위 확은 꼭 바가지 하나 들어갈 만큼 파놓아 물이 고이면 흘러내린다. 걸레라도 빨 양으로 대야에 물을 떠보면 새빨간 실지렁이들이 서너 마리가 C자,S자로 꼬부랑거린다. 처음에는 소름이 끼쳐 물을 몇 번 받았다 버렸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재미도 있었다.
어느 날 바위 밑에서 “꽉꽉” 무슨 소리가 나서 깜짝 놀란 적도 있다. 바위틈에서 만들만들 2개의 올챙이 알(?)같은 것이 빠꼼히 보여 자세히 보니 두꺼비의 두 눈이 아닌가? 이 동네에서 오래 살던 할머니들의 증언으로는 가끔 가재가 떠내려 와서 손에 받아 다시 상류(?)로 보내주었다고도 하셨다.
여름, 한 차례 장마가 지고나면 흙탕물이 가라앉고 옥수 같은 물이 돌기둥 사이로 포물선을 그으며 쏟아진다. 그리고는 그 물에 실려 온 노오란 모래가 수북히 작은 언덕을 이룬다. 퇴근하던 아들이 그 물에 손과 얼굴을 씻고 모래를 퍼다 마당 수돗가에 질퍽한 진창을 덮어도 주었다. 별로 달가와 하지 않는 남편을 채근해서 이불과 요를 커다란 고무함지에 날라다가 발로 밟아 달라고 해서 빨기도 했다. 나중에는 그 일에 재미를 들였는지 그 때쯤 되면 “이불 빨래 언제하지?” 라고 묻곤 하였다. 간혹 물건을 배달하거나 우편물을 배포하던 집배원 아저씨들이 지나가다 땀난 얼굴을 씻고 “어! 시원하다” 하면서 주위를 돌아보고 신기해하기도 했다. 결혼을 하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고향에 내려가 살다 다시 서울로 올 때 편리한 공동주택과 이곳 빨래터 집을 놓고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이 집으로 마음을 정한 나의 결정에 가족 모두가 따라주었다.
서울 한 가운데 집 담벼락을 고궁과 공유하며 온갖 고목이 우거져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며 눈을 뜬다. 담 터진 곳으로는 다람쥐, 청설모, 노란족제비까지 넘나들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기차여행을 하다 지나치는 강과 냇물에 발을 담그고 손수건이라도 빨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집 마당을 지나 대문만 열면 원도 한도 없이 그 일을 할 수 있었으니까.
원래 이곳 물이 흘러나오는 곳은 궁중안 사람들이 밖에 꼭 필요한 볼일이 있을 때 지키는 군졸에게 은가락지 정도를 주고 비공식적으로 출입하던 곳이었단다. 여기 흘러나오는 물은 궁에서 식수로 쓰던 옥류정의 물과 산자락에서 흐르던 물을 담 아래를 돌기둥으로 세우고 물이 흘러내리게 한 것이란다. 자그마한 철 대문 위로 아치형 구조물을 타고 능소화가 여름부터 깔대기 모양의 황홍색 꽃을 서리가 내릴 때까지 피운다. 그 옆에 인동초도 노란색, 흰색의 꽃이 나도 질까 보냐고 은은한 향기를 퍼뜨린다.
무더운 여름 옆집 담 사이로 토란잎도 덩달아 너울너울 부채질을 한다. 꽃밭 한 켠에 주렁주렁 초롱을 달고 섰는 한무리의 둥굴레꽃 무리, 가지의 겨드랑이 사이에 꽃분홍빛 보라꽃을 끼고 익모초가 자리를 잡았다. 대청마루로 올라가는 계단 층계에는 타원형 커다란 화분에 한련화가 다섯 가지의 선명한 색을 다투듯 뽐내며 피고 진다. 찌는 듯한 무더위가 사위어질 때면 담 벽을 기어오르던 담쟁이 넝쿨이 제일먼저 붉고 자색의 단장을 시작한다. 그 앞으로는 대리석 좌대 위에 석고 성모상이 상그레 수줍은 미소를 짓고 서 있다.
그 발치에는 노오란 수선화 열 세포기가 주님의 고난 일을 상징하듯 나붓이 고개를 떨구고 필 때면 봄은 기지개를 켠다. 담 벽 위 하늘을 뒤덮을 듯 팽나무가 수만의 꽃송이를 달고 떡 버티고 있고 은은한 꽃향기는 담을 넘어 온 집안을 채우고... 그 집에서 살 때는 아름답고 향기로움에 취해서 저절로 찬송가가 불러졌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 ” “묘한 세상 주시고 아름다운 하늘과 ... ” 그러다 그곳을 떠나 교통이 편한 역세권으로 이사 올 때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어떤 차편으로나 내려서 10분 정도를 오르막길을 올라가야 하는 불편함에서 벗어나니 한결 좋기도 했다.
언젠가는 그 빨래터에서 이웃할머니가 방망이로 빨래하는 모습을 구청에서 사진을 찍어갔었다. 아마 서울에 두어군데 남아있는 빨래터여서일 것이다. 그 후 그 곳이 못내 그리워 서너 번 들러 문틈으로 집안도 기웃거리고 밖에서 물 흐르는 것만 물끄러미 보다 오기도 했다.
지금도 비가 제법 많이 와서 홈통으로 물 쏟아지는 소리가 “쏴아” 하고 나면 꿈결에 깜짝 놀라 깨어 그곳에 살던 때로 타임머신을 타고 잠시 돌아가 보곤 했었다. 아마도 안방에서 냇물이 폭포가 되어 쏟아지는 소리를 듣는 유일한 곳에서 잠이 들고 깨었던 그 때를 지금도 가끔 그리워하는 나를 돌아보며 미소 짓는다. 꽃보다 곱게 황금색 등을 주렁주렁 달고 섰는 어느 집 울안의 감나무를 내려다보며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
첫댓글 이글도 강서문단에 올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