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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 14
S#1. 혜원집 음악실.밤.
-선재 혼자 소파에 앉아 있다.
-바깥쪽에서 사람들 떠드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지만, 누가 가고 누가 왔는지 모르겠다.
좀 전까지 양 옆에 준형과 혜원이 앉아 있었다는 것 말고는.
-문이 조금 열리고 종수가 들여다본다. 떠드는 소리 좀 더 크게 들린다.
종수 : 야... (대답 없자, 어라? 들어서서 문닫는다) 이선재,
선재 : 네, (선다)
종수 : 너, 너무 오래 멍때린다?
선재 : 아아... (그랬나봐요)
종수 : 나가봐, 민우 환송회 2차 여기서 하구 있어.
선재 : 저기 형,
종수 : 뭐,
선재 : 제 옷 좀 갖다 주실래요?
종수 : 뭘 갈아 입어...
선재 : (간곡) 아니요, 형,
종수 : (그럴만도 하지) 알았어.
-종수, 나가고, 선재, 막막하다. 악몽 속편.
S#2. 거실/주방.
-소파에 가득 둘러 앉은 준형 부부, 인서 부부와 정희, 한석이 왁자지껄 웃음. 고교 시절 어떤 선생님 얘기를 하는 듯.
‘이러구(귀 잡힌 시늉)끌려 갔잖아’ (한석) ‘교문에서부터’(혜원) ‘애들이 창문에서 다 내다 보구’(지수) ‘대박 웃겼지’(인서),
‘살려주세요! 그러면서’(정희), ‘한심한 놈’(준형)...
(앉은 위치는, 준형이 1인용 소파. 혜원은 그 곁 바닥에 앉아 준형의 소파에 살짝 기댄 자세.
3인용에 지수와 인서 정희, 나란히. 한석, 스툴에)
-탁자 위에 와인과 안주 접시. 정희 앞에만 주스(차 때문에).
-문이 열려 있는 혜원 서재에서 민우와 세진이 잡지를 보며 뭔가 얘기 중인 모습이 보이고, 주방에선 미순이 접시에 뭔가를 담고,
-종수가 계단 끝에 놓인 선재의 옷을 집어 음악실로 가는데,
-준형이 종수를 부르고, 다들 아랑곳없이 계속 떠든다(그런 것 같지만 정희와 지수가 각기 다른 뜻에서 혜원 눈치 살핀다)
준형 : 어, 종수야, 선재 깨워라.
종수 : (멈칫) 네?
혜원 : 뭘, 놔 둬.
준형 : 아냐. 나와서 인사 해야지.
종수 : 네,
S#3. 음악실.
-선재가 등보이고 서서 급히 바지를 올려 단추를 채우고, 종수가 오디오 앞에 엉거주춤 앉아 씨디들을 건성 살피며,
종수 : 너 잠깐 잠든 걸로 돼 있으니까 알아서 해.
선재 : 네.
종수 : 야, 너 근데 왤케 바짝 쫄았냐? 아까부터?
선재 : 쫀 게 아니라, (준형의 옷을 집어 소파 팔걸이에 걸쳐놓고 급히 나간다)
종수 : (자식, 쯧쯧)
S#4. 거실.
-드높던 얘깃소리 웃음 소리가 잦아들면서,
-선재가 좌중을 향해 꾸벅 절.
한석 : 오오, 너구나?
선재 : (얼핏 보며 목례. 뉘신지는 모르지만)
혜원 : (한석에게) 맞어, 너만 첨 보는 거네?
준형 : (혜원 어깨에 손을 얹은 채) 잘 봐 둬. 뒤풀이 후원 없체 사장님이시다.
선재 : (그 손 좀 내리시지)
한석 : 우리 가게 와서 이름 말해. 공짜로 주께.
정희 : (손을 들어 보이는) 안녕, 우린 구면이지?
인서 : 인터뷰 했다며,
한석 : 그런 거 재미없지?
선재 : (일일이 응대 할 수 없어 시선 떨구고 서 있을 뿐인데)
준형 : 그것두 다 공부야. 일루와 앉어.
지수 : (손을 들며) 라면 먹을 사람!
인서 : 나,
혜원 : (얼른 일어서며 서재 쪽 향해) 너네두?
-혜원 서재 쪽, 고개 내민 세진과 민우, 종수. ‘네’
혜원 : (주방으로 가며) 아주머니...
미순 : (통조림 뜯다가 밀어놓고) 네...
-주방. 들어서는 혜원, 등 뒤가 당긴다.
-선재가 준형 옆 스툴에 앉고 있다. 다들 뭐라뭐라 선재에게 한마디씩 하느라 시끌짝. 민우와 종수도 다가가 앉고,
-커다란 들통을 불에 얹는 미순, 라면 봉지 뜯는 혜원. 세진이 다가온다.
세진 : 제가 할게요.
혜원 : 아냐, 아냐, 종수 심심하잖어.
세진 : (애 쓰시네요)
-거실. 사람들 속, 섬처럼 앉아 있는 선재.
S#5. 혜원 집 외경. 밤.
-흥겨운 소음. 민우의 가벼운 연주 소리와 함께 웃고 떠드는 소리 흘러나온다.
S#6. 혜원 집 거실/ 주방/음악실/ 밤.
-거실. 방방이 문 다 열려 있다. 음악실에서 민우, 연주 중.
-계단 옆 복도. 식당 쪽에서 나오는 준형들. 냅킨으로 입을 닦거나 물잔을 들고.
-식당. 세진, 빈 라면 그릇들 국물 비우고 포개서 쟁반위에 얹는다. 종수가 거든다. 위의 수저며 김치 그릇들 모아 주는.
선재, 엉거주춤 행주 두 개 들고 서 있다.
-주방, 미순이 과일을 씻고, 혜원, 와인 셀러를 연다.
세진 : (작게) 놔두구 가 봐. 교수님 또 부르기 전에.
선재 : 아니요,
혜원 : (다 들려. 화이트 와인 두 병 들고 라벨 살피는 척) 냅 둬.
세진 : 네.
선재 : (혜원 힐끗)
-거실, 준형이 떠들고, 정희는 주방의 혜원 동정 살피는.
준형 : 글쎄, 오중주를 하는 건 좋은데, 레파토리가 선재랑 맞질 않아요.
브람스가 드보르작을 높이 평가하는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지만, 솔직히 뭔가 뽕끼가 있지 않냐?
한석 : 에이, 무슨,
인서 : 감상적이라는 거야?
준형 : 감상이 아니라 애상이지 마, 아주 그냥 쥐어짜잖아.
지수 : 개인의 취향이지 뭐.
준형 : 내가 지금 취향을 말하는 게 아냐.
-혜원, 나온다.
혜원 : 가벼운 걸로 마감해. (간다)
준형 : 앉지 또 어디 가.
혜원 : (계단 쪽으로) 이 딲으러.
준형 : 대충하구 내려와.
정희 : (본다)
준형 : 그러니까 내 말은, 구성주의에 애상을 우겨 넣어가지구 뽕짝이 돼버렸단 거야.
인서 : (마개 따고 오프너 박는다)
한석 : 그걸 그렇게 말하믄 안되지.
지수 : 한석이 너 신기하다. 난 다 까먹었어.
정희 : (주방 쪽 힐끗)
-계단 올라가는 혜원.
-계단 굽이 유리벽 저쪽, 식탁 위 박박 닦다가 고개 드는 선재.
-혜원, 굽이 돌아 이층으로.
-선재, 다시 닦는다.
S#7. 침실.
-혜원, 들어와 파우더 룸 향하다가 멈칫.
-침대 위, 리흐테르가 엎어져 있다.(3분의 1 지점)
-선재가 봤구나!
S#8. 주방.
-선재, 종수, 세진과 함께 치워진 식탁에 앉아 있는데,
준형 : 선재야!
선재 : (엉거주춤 일어선다)
세진 : 거 봐.
S#9. 침실.
-혜원, 무릎에 책을 펼쳐 얹은 채 물끄럼... (P.197에 새로운 밑줄)
선재 소리 : 우리는 차를 타고 떠난다. 피아노를 실은 차가 뒤따른다. 전염병을 피하듯, 고속도로를 피해서 달린다.
어느 작은 도시 귀퉁이에서 연주를 한다. 극장이 될 수도 있고, 학교가 될 수도 있다.
정말 좋은 점은, 사람들이 속물 근성 때문이 아니라, 오직, 연주를 들으러 온다는 것이다...
-책장 넘기는 혜원. 눈이 멈춘다. 또 다른 밑줄.
선재 소리 : 나는 미친 놈이 아니다...정상이다...그런데 어쩌면 미친 놈이 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혜원, 눈 앞을 본다. 눈물 그렁.
-노크 소리.
혜원 : (황황히 책을 접어 내려 놓는다) 네.
-지수가 들여다 본다.
혜원 : (웃음) 왜, 나 또 찾어?
지수 : (이것아...) 이게 뭐야...감당두 못할 거면서...
혜원 : 그러게. (눈물 후두둑)
S#10. 거실.
-준형이 선재의 어깨를 감싸안고 한 말씀 중.
-지수와 혜원이 내려온다. 준형이 옆에 앉으라 손짓하고, 혜원, 준형 곁에 앉는다.
-웃으며 잔을 드는 준형과 혜원.
-숨죽여 견디는 선재.
S#11. 서회장 집 서재.
-인겸이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 컴퓨터 들여다 보고(비서의 이메일), 소파의 영우와 성숙, 차를 마시며 인겸의 눈치 살피는.
-이윽고,
인겸 : 우선 내일부터 기사 조금씩 나갈 거예요. 타이틀은, ‘서한 재단 연루설’, 내용은, 국내 예술 재단 운영 실태와 외국 사례 비교,
그런 게 될 겁니다.
성숙 : (웃음) 무슨 소리야?...
인겸 : 놀라실 거 없습니다. 분위기 조성이죠. 실명 거론 없이, 오혜원이가 자신을 겨냥 하고 있다는 것만 알면 되니까.
성숙 : 말 좀 이쁘게 해 줘. 내가 뭐 감추는 거라두 있는 거처럼 몰아가지 말구.
인겸 : 그럼 된 거죠.
영우 : 그래서, 뭘루 그 앨 찔리게 할 건데?
인겸 : 학력 및 경력 중에 문제 삼을 만 한 건, 대학원 시절 뉴욕 휘트니 미술관 인턴쉽 근무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과
석사학위 논문 표절 의혹이예요.
영우 : 그건 아닌데? 내가 알지. 같이 살았는데.
인겸 : (본다. 너 딱해)
성숙 : 기구 아니구가 뭐 중요하니? 사람들 뇌리에 일단 박히면 되는 거지?
영우 : 글쎄 그 정도로 걔가 겁을 먹겠냐고.
인겸 : 일단 띄워 보고 반응 보죠.
성숙 : (무선 전화기 집어 내선 번호...) 어, 그거, 김전무 갖다 드려...응... (끊으면)
영우 : 뭘?
성숙 : 문건이 하나 있지. 경고용으로 정리해 둔 거.
-장비서가 서류 봉투 들고 들어온다.
-인겸이 봉투 받고, 장비서 나간다.
성숙 : 오혜원 비리 목록이야.
인겸 : (찬찬히 본다)
영우 : 혜원이두 알아요?
성숙 : 아니. 사람 통해서 이선재 여친이라는 애한테만 보여줬어. 니 애인 뺏어간 여자가 이런 사람이라구.
영우 : 진짜 치사하다. 애들까지 써먹냐. (전화기 꺼내며) 죄 받어요.
성숙 : 어차피 다 죄 덩어리야. 한 숟갈 더 먹는다구 어떻게 되겠어?
영우 : (문자 본다...) 난리 났네.
성숙 : 뭐니?
영우 : (보여준다) 얘들 연기가 아주 죽인다는데?
성숙 : (본다)
정희 소리 : 오혜원 강준형, 둘이 지금 천상의 커플 연기 중.
S#12. 혜원 거실/주방.
-음악실. 민우의 흥겨운 연주.
-혜원 서재에서 내다보는 정희.
-인서, 한석과 지수가 얘기 중(드보르작 오중주, 난 보로딘하구 리흐테르 께젤 좋던데.
어, 특히 1악장. 피아노 파트는 3악장이 죽이지. 피날레도. 등등)이고,
-취한 준형, 과일 한쪽 찍어 혜원에게 내민다. 혜원, 손으로 받으려 하자, 준형, 굳이 입에 넣어주려,
-선재, 일어나 간다. 비켜 드리지.
-혜원, 입으로 받아 먹으며, 무참한.
S#13. 서회장 서재.
성숙 : 그거 보여 줄려구 집으루들 불렀겠지. 너두 가지 그랬니?
영우 : (핸드폰 집어 넣으며) 재미없어요.
인겸 : 이걸 토대로 구체화 해보죠.
성숙 : 정기 감사 결과랑 대조해 봐. 참고가 될 거야.
인겸 : (봉투에 넣으며) 그러죠... 두 여성 동지께서는 당분간 팀웍 지켜 주세요.
성숙 : 그래야지. (영우에게 손 내민다)
영우 : (쳇, 마주 잡는)
성숙 : 화목하다, 그치?
S#14. 혜원 거실/주방.
-주방, 식탁의 세진과 종수. 주스 한잔씩 들고 거실 쪽 보며 나직나직. 미순도 조리대 위 정돈하며 힐끗.
세진 : 불안해서 못보겠다... 그거 땜에 저러는 거니?
종수 : 아니면 뭐겠냐. 학장한테 조종당하는 거야. 불쌍하지.
세진 : 오실장님이 더 안됐지 않어?
-거실. 민우의 연주.
준형 : (인서 잔에 술 따른다. 흘려가며) 너는 애들한테 저런 것좀 하지 말라 그래.
인서 : (준형 손 받쳐 주며 웃음) 왜...
준형 : 뭐냐? 정통 째즈두 아니구,
인서 : (선다) 알았어, (음악실 쪽 향하며) 민우야!
S#15. 음악실.
-민우, 연주 멈추고, 소파의 선재가 일어선다. 인서가 문간에서,
인서 : 너두 여깄었어?
선재 : 네.
인서 : 곧 갈 거야. 좀만 참어.
선재 : (진심 고맙다)
민우 : 왜요, 교수님?
인서 : 강교수님이 정통 클래식 치랜다.
민우 : (웃음) 좋죠. (작은 별 변주곡 시작하며) 정통 클래식.
-민우, 계속 연주하고,
-인서, 선재 한번 보고 간다. 선재, 앉는다.
S#16. 거실.
-작은별 변주곡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인서가 온다.
인서 : 됐수?
준형 : 선재 거깄냐?
한석 : 제자 되게 밝히네.
인서 : 지들끼리 놀게 둬.
준형 : 그 넘은 내 얘기 좀 들어야 돼. (일어셔려다 풀썩)
지수 : 선배 취했다.
혜원 : (뼈아프다. 내꾀에 내가 넘어간 거지)
-준형과 인서들, 민우 연주에 대해 얘기하고
(인서, 너무 이쁘게 친다는 게 흠이라면 흠. 지수, 인제 달라지겠지. 혼자 객지 생활 하다보믄. 준형, 그게 달라지냐? 등등)
-혜원, 선재가 무섭게 혼난 뒤 저 곡을 쳤었지...
S#17. 회상.
-작은별 변주곡 연주하며 혜원 기색 살피는 선재.
-선재 등 뒤에 앉아 혼자 웃는 혜원.
S#18. 음악실.
-민우, 연주하고,
-선재 역시 그 날 밤 생각.
-어느 새, 지수, 인서, 한석, 세진, 종수, 들어와 듣고 있다.
S#19. 음악실.
-민우 연주 마치면 다들 박수.
-민우, 일어서서 인사하고, 선재에게 피아노 앞에 앉으라 손짓. 너도 해.
-선재, 선다. 인서, 본다. 니가 할 말이 있지?
S#20. 거실.
-준형과 혜원만 남아 있다.
준형 : 이선재, 너두 보여 줘!!
혜원 : (외면. 처참하다)
S#21. 음악실.
준형 소리 : 보여 주라고!!!
-피아노 앞의 선재, 건반에 손 얹는다. 불쌍한 그녀를 위해.
S#22. 거실.
-준형, 옆으로 고스라지고, 혜원, 물끄러미 보는데,
-선재의 연주 들려온다.
S#23. 음악실.
-선재의 연주. 거칠고 강렬한 변주.
-세심하게 지켜보는 인서.
S#24. 거실.
-미순이 곯아떨어진 준형의 머리 들고 쿠션을 받쳐주며 혜원 힐끗.
-혜원, 물끄러미 턱을 괴고 선재의 연주 들으며 간신히 삼킨다.
S#25. 음악실.
-선재의 연주.
S#26. 거실.
-혜원, 목이 멘다.
S#27. 음악실.
-마치며 일어서는 선재. 오혜원, 들었나요?
S#28. 혜원 집 앞. 밤.
-세진과 민우, 선재가 먼저 나오고, 그 뒤, 혜원, 한석, 지수, 인서, 정희가 나와서 계단 내려가며,
한석 : 야, 뭐 또 이렇게 쫓아내냐...
혜원 : 너는 말을 해두,
지수 : 준형 선배 취했잖아...
인서 : 우리집으루 가.
정희 : 애들 다 깨워서 가족 음악회 하게?
S#29. 혜원 거실.
-거실. 소파의 준형이 일어서려다 풀썩 주저 앉는다. 어후.
준형 : 다 어디 갔어...
미순 : 방금들 나갔어요.
준형 : (다시 일어서려다 또 풀썩)
미순 : 올라가 주무세요. 인사 다 나누셨는데.
준형 : 그랬나?
S#30. 집 앞.
-위에서부터 종수 차, 정희 차, 인서 차, 순으로 서 있다. 종수 차는 언덕 위쪽 향해서.
-세진과 종수, 한석이 종수 차에 타고, 정희도 자기 차에.
-각각 한마디씩 하느라 시끌시끌. 먼저 갈게요(세진), 지민우, 잘해라(종수), 자주 좀 보자(한석), 먼저 간다(정희),
그리고 혜원과 인서 부부, 민우의 대답.
-종수 차, 정희 차 떠나고,
-인서 부부와 민우, 선재, 혜원만 남았다. 선재는 두어 걸음 떨어져 선.
지수 : 아우 정신 없어. (선재에게) 너 오늘 완전히 벌 섰다.
인서 : 어른들 노는 것두 별 거 없지?
선재 : (어색) 아니요,
혜원 : (잠깐 눈길)
민우 : 만나서 좋았어. 갔다 와서 보자.
선재 : 어.
민우 : (혜원에게) 공항에서 전화 할게요.
혜원 : 뭘... 가서 잘 해야지.
민우 : 네.
인서 : 선재 우리 차 타.
선재 : 아니요, 저는 걸어가면 돼요.
지수 : 그래두 같이 가.
혜원 : (선재에게) 그럴래? (하는데)
-준형이 위태롭게 계단 내려온다.
준형 : 이선재...
-다들 돌아 본다. 선재도.
준형 : 당신, 차 좀 빼지? 이 놈 델다 주게(비틀)
지수 : 어머, 어떡해, (넘어지겠어)
-선재가 얼른 다가가 부축한다. 싫지만.
민우 : 진짜 많이 취하셨나봐요.
혜원 : (이마를 잠깐 짚고는 지수 어깨 돌려세우는) 가라.
인서 : 괜찮겠어?
혜원 : (인서 등까지 민다) 얼른 가시라고...
지수 : 알았어.
-인서들, 걱정스레 차를 향하고, 혜원, 준형의 한 팔 잡는다.
혜원 : 들어가요.
준형 : (선재에게 기댄 채 혜원 손 뿌리친다) 아니지.
혜원 : (그 서슬에 움찔 물러서고)
준형 : 우리 둘이 사이좋게, 이 놈 태워다 주자구. 그래야 완벽하지.
선재 : (한 손으로 준형의 팔 올려 어깨에 건다) 저 괜찮으니까요, 들어가시죠.
준형 : 차 꺼내라고!...
혜원 : (딱해) 알았어. (선재를 한번 보고 집안으로)
선재 : (혜원 뒷모습 한번 보고는 준형에게) 괜찮으세요?!
준형 : 괜찮냐고?
선재 : (네)
준형 : 허허허, 니가 나한테, 괜찮냐고?...
선재 : (할 말이 없잖아!)
S#31. 차고.
-혜원, 급히 나와 리모콘 버튼 두 개 누르고 차에 탄다.
-차고 문 올라가고, 시동 걸리는 소리. 헤드라이트 켜진다.
-차고 문이 웬만큼 올라가자 선재가 준형을 걸머메고 들어온다. 운전석의 혜원, 조수석 연다.
-준형, 선재를 뿌리친다.
준형 : 너, 뒤에 타.
-혜원, 선재, 불안하게 지켜본다.
-차에 타려다가 풀썩 주저 앉는 준형.
준형 : 아후, 이거,
혜원 : 안되겠다.
선재 : 모시구 들어갈게요.
혜원 : (외면) 어.
-혜원, 악몽을 견디려 가만히 앉아 있다. 선재가 준형을 끌고 쪽문 들어서는 것이 백미러에 잡히자, 고개 돌린다. 악몽이 너무 길다.
S#32. 현관.
-선재, 미순에게 축 쳐진 준형을 건넨다.
S#33. 차고.
-차갑게 굳은 혜원, 시동 버튼 끄고, 내린다.
-쪽문 열고 들어가는 혜원.
S#34. 차고 계단.
-혜원, 들어서다 멈칫.
선재가 층계참에 서서 서서 보고 있다. 눈이 말한다. 슬픕니다. 아픕니다. 벽에 고개 기대며 내색치 않으려는.
혜원 : ...부끄럽다...
선재 : (알아요)
혜원 : (올라서서 마주 본다. 글썽. 선재 얼굴 싸쥔다) 너한테 못할 짓 시켰어. 내가 잘못 생각했어. 오만했다. 이러믄 안되는 건데.
선재 : (미동 없이 혜원을 볼 뿐)
혜원 : (목을 끌어 안는다) 뭐라구 말 좀 해.
선재 : (할 말이 없어요)
혜원 : 제발, 선재야, (입을 맞추려)
선재 : (혜원을 밀어 떼낸다. 끌어 안는다) 제발 자기를 불쌍하게 만들지 마세요. 불쌍한 여자랑은 키스 못해요.
혜원 : (울먹) 그렇게 말하지 마.
선재 : (떼낸다) 주무세요...
혜원 : (이대로 갈 거니?)
선재 : (그래야죠...)
S#35. 혜원 서재.
-혜원, 무너진다.
S#36. 거리.
-선재, 걷다가 결국 담벼락에 기댄다. 북받쳐 소리 없이 흐느낀다. 이게 뭐야. 미안하다며 매달리는데, 그럴 건 뭐야...
-하지만 설움이 터진다. 오래 운다.
S#37. 음대 연습실. 아침.
-선재 혼자 퀸텟 피아노 파트를 치고 있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라. 악보를 넘겨가면서.
-한참.
-종수가 들여다 본다. 한참 보다가 다가간다.
-선재, 멈추고 엉거주춤 섰다가 앉는다.
종수 : 마, 그거 하지 말래잖아.
선재 : 못들었는데요?
종수 : 그럼 지금 다시 전한다. 하지 말래.
선재 : (잠시 생각) 형이 알아서 적당히 말해주면 안돼요?
종수 : 마, 내가 뭘 알아서 말해.
선재 : 그냥,
-시은과 태진, 푸름, 규현이 조심스레 들어온다. 혹시나 했는데, 미리 와 있다니. 마주 보며 반갑고 고맙지?
종수 : 야, 니들, 연습실 신청두 안해놓구.
선재 : 그거 내가 형 책상 위에 써놓구 왔어요.
종수 : 뭐?
선재 : 그랬다구요.
-시은들, 조용히 악기 꺼낸다.
종수 : 알았어, 마. (나간다)
선재 : (일어서서 꾸벅)
-시은들, 악보 펴놓고 각자 앉으면,
-선재, ‘라’음 연타. 시작하자고.
-각자 튜닝.
규현 : (소리 내다가 쩝) 내가 들어두 후지다.
태진 : (현 감으며) 그 정도믄 좋은 거지. 가격 대비.
시은 : 김은수 교수님은 예고 때 전교에서 젤 싸구려 쓰셨대. 그걸로 유학 오디션두 하구, 다 했다더라.
푸름 : 그 분만 계셨어두 우리가 이렇게 찬밥 신세 안됐을 거래.
선재 : (듣기만 하다가) 시작해두 돼?
시은 : 어.
-다들 연주 자세, 선재를 본다.
-선재, 눈 맞추고, 연주 시작.
-첼로가 들어오고...
-바이얼린 비올라.
-어제보다 합이 좋다. 흥이 오른다.
S#38. 아트 센터. 아침.
-전화벨 소리,
-직원들 답변, 정신없다.
-‘저희는 모르는 일입니다’ ‘담당자가 자리에 없습니다’ ‘이사장님은 관련이 없습니다’ 등등.
S#39. 아트센터 혜원 사무실.
-책상. 혜원, 모니터 본다. 곁에 세진. 괜히 미안하다.
세진 : 외부 전화 차단 부탁했어요. 이것두 안보시믄 좋겠네요.
혜원 : 뭘. (마우스 스크롤)
-화면속 기사 제목들. ‘서한그룹 비자금, 예술재단과 관련 있나’ ‘예술 재단은 회장님 비밀 금고?’
‘한성숙 이사장, 오른팔은 아트센터 부대표’ ‘예술재단 막후 실세 오모씨는 누구인가’ 등등.
혜원 : (픽 웃으며 그 중 하나 클릭)
-노크 소리.
세진 : 어머, (급히 문 쪽으로) 현팀장님인가봐요.
-편집장이 들어오고, 세진이 맞이 한다.
세진 : 어서 오세요...
편집장 : 안녕하세요.
혜원 : (모니터 밖으로 고개 뺀다) 어서 오세요...
편집장 : 나 너무 놀래가지구...
혜원 : (일어서며 웃음) 왜? 내가 너무 떠버려서?
편집장 : 많이 놀라셨죠...
혜원 : (소파로) 놀라긴요.
세진 : 앉으세요.
편집장 : 네, (앉는다)
혜원 : (앉는다) 세진씨, 우리 그 티 마시까? 토핑은 알아서.
세진 : 네,
S#40. 까페.
-세진이 차를 주문한다. 토핑 뭐뭐뭐...
-직원이 차를 준비하고,
-세진, 앉아서 기다리다가 전화 받는다.
세진 : 네, 왕선배님...네?...
S#41. 이사장실 앞.
왕 : (책상 위 정리 하며) 나 오늘 이리 바루 나왔거든?...들어오면서 너 봤어. 간 김에 내껏두 하나 부탁하자.
S#42. 까페.
세진 : (벙) 네...그럴게요...네...네... (끊으며) OOO 하나 추가할게요.
직원 : 네.
S#43. 이사장실 앞.
-왕비서, 통화 중이고, 세진이 급히 와서 차를 하나 놓아주고 간다.
왕 : 사실과 전혀 다른 건 또 아니죠. 그런 전화는 오혜원 부대표 방으로 돌리던가.
세진 : (가면서 중얼) 대단하다.
S#44. 혜원 사무실.
-혜원과 편집장, 차 마시며 얘기하고, 세진, 종수의 문자에 답. ‘기사 봤어?’ ‘여기 완전 전화 폭주’
편집장 : 기사 내용이 다 저질이예요. 강경하게 대응하세요.
혜원 : 대응은 안할 거구요, 혹시 문제 된다면, 우리 기사 안 내두 돼요. 강교수는 좀 서운하겠지만.
편집장 : 실은 그래서요...저희보다두, 두 분께 죄송해서요...누가 될 수두 있구...
혜원 : 신경 쓰지 마세요...
편집장 : 그럼, 일단 보류 할게요. 상황 봐서 다음 달에 내던가.
혜원 : 그러세요. (웃어주는)
S#45. 서회장 침실. 같은 시각.
-서회장이 환자복 갈아 입는다. 장비서가 거든다. 검찰에 조사 받으러 가는 날.
-성숙, 영우, 인겸이 서서.
서회장 : 이런 거 입구 사진 찍히는 거 싫은데. 아둔해 보이잖아.
성숙 : 그러게 말예요. (인겸에게) 꼭 이래야 해?
영우 : 혜원이랑 후딱 담판 지어서 아빠 대신 들여 보낸다더니?!
서회장 : 어린 놈이랑 바람이 났다구 했던가.
성숙 : 그렇대요.
영우 : 스무살.
인겸 : 그 카드를 섣불리 쓸 수 없는 이유를 말씀 드리죠. 서씨 집안 일원, 모두가 거기 돌 던질 수 없고,
그걸 오혜원이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겁니다.
서회장 : 험,
성숙, 영우 : (새침)
인겸 : 가시죠.
서회장 : 그러지.
-다들 나간다. 서회장, 장비서(서회장의 외투와 담요를 든), 인겸이 앞서고, 성숙과 영우가 뒤따르며 서로 나직히 할퀸다.
성숙 : 이번 기회에 너두 어린애들 정리 좀 해. 낯 뜨거워.
영우 : 다 늙은 구렁이, 칙칙하지두 않아요?
S#46. 아트센터 이사장실 앞.
-성숙이 오고, 왕비서가 문을 연다.
성숙 : 백선생 왔니?
왕 : 네.
성숙 : 차는 됐구, 내 전화 연결 하지 마.
왕 : 네. 그런데 기사 관련, 문의 대응 매뉴얼을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성숙 : (짜증) 알아서 해야지! (들어간다)
왕 : (아오, 실수했네...)
-앉아서 마작 책을 펼친다. 컴퓨터 화면, 마작 인강 번갈아 보는.
S#47. 이사장실.
-성숙과 백선생, 마주 앉아.
백선생 : 오혜원이 넘겨준 자료들 살펴 봤는데, 차명 계좌들, 확인 할 길이 없어요. 우리가 모르는 계좌가 많은 걸 보면,
분명 분산 처리 했을 거예요.
성숙 : 그럴 거 같더라니.
백선생 : 아직은 덮어 둬야 하는데.
성숙 : 그렇죠? (전화, 단축 번호 누른다) 어, 나...강교수 옆구리 좀 찔러 봐...응...응... (끊는다)
백선생 : (활짝 웃음) 그렇지요...
성숙 : (끄덕)
S#48. 학장실.
-민학장, 준형.
민 : 이건 오혜원 답지 않아. 버틸수록 손해야...
준형 : (곤혹) 그럼 제가 어떡하면 좋을까요.
민 : 도와 줘야지... 지금 오혜원을 고소할 수 있는 사람은 자네 뿐인데... 형법 제241조. 그건 배우자한테만 제소 권한이 있잖아.
준형 : 저, 그것만은 안하구 싶습니다...
민 : 글쎄 그러라는 게 아니라, 좋게 얘길 하라고... 설마하니 자네 와이프가 그걸 모르겠어?
적시에 들어가 줘야 순교자 대접을 받는다는 거, 누구보다 잘 알텐데.
준형 : (그렇죠)
S#49. 아트센터. 오후.
-혜원, 기획실 직원들에게 업무 지시 마친 참이다. 세진과 직원들 두엇 나가고 혜원 문까지 배웅하며 격려.
혜원 : 각자 자기 자리만 지키면 돼요. 다음 달엔 마스터 클래스두 있구,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직원들 : 그러니까요, 알겠습니다,
혜원 : 기운들 내구, 응?
세진 : (서류철 들어보이며) 총무과에 전하구 올게요.
혜원 : 어.
-혜원, 직원들 등 두드려 내보내고 돌아서서는데,
-문자 도착 신호.
-혜원, 확인. 준형의 문자.
준형 소리 : 당신 오늘 많이 힘들지?...
혜원 : (미간 좁히며 눈 감는다. 징그럽고 축축한 게 몸에 닿는 것 같다)
-혜원, 책상 앞에 앉아 있다. 냉정하게 따져보기로 한다. 만나는 게 득이다.
준형 소리 : 위로해 주구 싶은데, 저녁 같이 할래?...예약은 내가 할게.
-사이. 혜원, 답전. ‘좋아. 고마워’ 찍어 보내고는, 단축 번호 목록 누른다. 뷰티샵.
혜원 : 네, 안녕하세요..... (웃음) 그래서 오늘 갈려구요... 얼굴두 보여 드릴 겸.
-노크 소리.
혜원 : 잠깐만요, (전화기 떼고) 네...
-지수가 들여다 본다. 혜원, 잠깐 멈칫.
지수 : 혼자 있어?
혜원 : (어색) 어,
-종이가방을 든 지수가 들어오고, 혜원, 다시 통화.
-지수, 종이가방을 소파 앞 탁자 위에 올려 놓는다.
혜원 : 아, 죄송해요, 손님이 오셔서...네시 쯤에, 마사지부터요...네..네에. (끊고 소파로) 웬일야?
지수 : 냉장고에 넣어 놓구 한병씩 꺼내 마셔.
혜원 : 앉어.
지수 : 아냐, 가야지. 차 앞에다 그냥 세워 놨어.
혜원 : (짐짓 웃음) 말 해.
지수 : (정색) 걱정돼. 기사두 장난 아니구. 아침부터 내 전화 완전 불났잖어.
혜원 : 그랬겠지.
지수 : 너, 강준형이랑 계속 연극 해라. 선재 그애두 살살 달래서 맘 돌려놓구, 응? 세상에서 젤 끔찍한 게 마녀사냥이야.
오천만이 다 재판관,
혜원 : (자른다) 마사지 갈래? 예약 했는데.
지수 : 됐구, 암튼 다시 생각해 봐.
혜원 : (지수 돌려 세워 민다) 그럼 가. 나중에 전화 하께.
-혜원, 지수 어깨 안고 문으로.
지수 : 나 니 편인 거 알지?
혜원 : 알지...
지수 : 내 말 들어, 응?
혜원 : (웃으며 글썽) 어..
S#50. 학교 연습실. 오후.
-선재, 구석에서 핸드폰 들여다본다.
S#51. 뷰티샵 마사지실.
-마사지 끝내고 가운 입는 혜원. 맛사지사가 거든다.
혜원 : 샴푸실 박다미 좀 불러 주실래요?
마사지사 : 아, 네. (간다)
-혜원, 탁자 위 주스 마신다.
-의자에 앉아 있는 혜원. 반쯤 마신 잔을 들고.
-다미가 들어온다. (마음이 복잡해서 골이 난 것처럼 보인다)
혜원 : (담담히) 안녕...
다미 : (깎듯이 인사) 안녕하십니까...
혜원 : 왜 그래... 다미씨랑 화해 할려구 불렀는데.
다미 : (눈 맞추지 못한다. 혜원이 너무 담담해서) 그동안 별별 소리 다 들었습니다.
혜원 : 그랬을 거야...
다미 : 잡혀 가실 거라는 말두 있던데요.
혜원 : (웃고는) 근데, 그거 뭐였어? 토나와서 안 깠다는 거?
다미 : (입술 말아문다)
혜원 : 말하기 싫음 관두구.
다미 : 사진이나 뭐 그런, 허접한 거 아니예요.
혜원 : (그래?)
S#52. 회상. 동 샴푸실.
-다미, 의아한 표정으로 직원한테서 서류 봉투 건네 받는다.
S#53. 마사지실. 현재.
다미 : 거기 높은 분이 누구 시켜서 보낸 거래요. 제가 봐야 한다구.
혜원 : (이사장 짓이구나...)
다미 : 저 그거 보구 완전 빡쳐서, 찾아갔던 거예요.
혜원 : 잘 했어.
다미 : 저, 선재한테, 그랬어요. 그 아줌마가 다 버리구 너한테 가믄 믿어주겠다구요.
혜원 : (웃음) 멋있네...
다미 : 진심이예요...
혜원 : (보다가) 그거 선재한테 보여 줘. 꼭.
다미 : 네?!
혜원 : (선다) 샴푸는 안해두 돼. 바로 머리 손질 할 거야.
다미 : (벙하니 본다)
혜원 : 또 보자?
-혜원, 나가고, 다미, 혼란. 이게 뭐지?
S#54. 동 미용실.
-원장, 혜원의 머리 만져주며 아무 것도 묻지 않는다.
혜원 : (웃음) 정말 대단하시네. 어떻게 한 마디도 안물어 보세요?
원장 : 저는 들은 얘기 없답니다. 나 귀 없다, 하구 살죠. 그러지 않음 이 일 못해요...
혜원 : 하긴... 성공하신 분들은 다 이유가 있다니까?
원장 : 저녁 모임 있으신 거죠?
혜원 : 모임은 아니구, 밥 먹기루 했어요. 강교수랑.
원장 : 그럼 여기 쪼끔 살려볼게요.
혜원 : 네...
S#55. 레스토랑. 저녁.
-준형이 기다린다. 식전주로 나올 샴페인이 미리 준비돼 있다.
그런 그윽한 분위기 속에서 잔머리 굴린다. 오혜원을 어떻게 구워 삶을까.
따지자면 오혜원의 남편으로 살면서 얻은 게 훨씬 더 많다. 뿐인가. 나에 대해 그녀만큼 아는 사람 또 누가 있나.
치질, 무좀부터, 그보다 더 지저분한 내 뱃속까지, 그녀는 다 안다. 그거 믿고 그냥 울어볼까? 빌어볼까?
-웨이터가 혜원을 모시고 온다. 세심하게 치장한 모습. 우아하다.
준형의 저녁식사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준형의 말과 태도에서 민학장과 성숙의 속셈을 읽을 수 있을 것이므로.
-준형, 환하게 웃으며 일어선다. 혜원도 다가오며 웃어준다.
준형 : 차 많이 밀리지?
혜원 : 여유있게 왔어.
준형 : 잘 했네.
-둘, 앉는다.
혜원 : 이거 뭐야?
준형 : 돔 페리뇽.
혜원 : 좋지.
준형 : (웨이터에게) 조용히 따 줘.
-샴페인 두 잔 채워진다.
-준형과 혜원, 잔을 마주 든다.
S#56. 학교 연습실. 밤.
-연습 중. 피아노와 태진, 규현이 맞춰 본다. 2악장 한 대목.
-구석에서 김밥과 음료수 먹는 시은과 푸름.
-다시 오중주.
S#57. 레스토랑. 밤.
-식사 끝무렵이고, 반주는 와인.
-먹는 동안 준형이 주로 떠들었다. 속셈 감추고 끝없이 빙빙 돌려 말했다.
인제 준형은 거의 바닥이 난 상태, 게다가 약간 취하기도 했는데, 계속 떠든다.
혜원, 아직은 참을만 하다는 듯 들어준다.
준형 : 난 그거 좀 반대야. 음악가는 음악만 해야 되나? 그게 순수한 거야? 이 나라 예술 정책 입안자들, 몰라두 너무 몰라.
대체 우리가 언제까지 그런 무지한 행정가들 손에 끌려다녀야 하냐고...폴란드의 파데레프스키, 그 사람 봐.
피아니스트 출신으로 총리까지 했잖아. 인제 한국 음악계에도 그런 사람 나올 때가 됐어.
혜원 : (작게 웃음) 원대하다.
준형 : 남들 눈에는 내가 정말 이상한 놈으로 보일 수도 있지. 모든 사람이 다 아내와 제자 사이를 의심하는데, 나만 희희낙락이잖아?
그런데, 그것들이 모르는 게 있어요. 슈만이 말야, 브람스를 얼마나 아꼈나. 질투, 그런 거 전혀 없었지.
아니, 그럴 틈이 없었어요. 심각한 정신 질환에 시달리면서, 자기 세계를, 자기가 아는 모든 걸, 어떻게든 이 젊은 친구한테
다 가르쳐 줘야겠다, 그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구 안타까운데.
혜원 : 내가 졸지에 클라라가 됐네?
준형 : 혜원아...
혜원 : (마신다. 본론이 나오겠군)
준형 : 인제 그만 내려놔...
혜원 : 민학장이 그러래?
준형 : 만에 하나, 실형 살게 된다 해도 나 기다릴 수 있어. 선재 잘 돌봐 줄 거구, 그 놈이 원하면 유학도 보내줄수 있어.
근데 그게 다, 내가 힘이 있어야 가능해요. 안할 말로 내가 당신, 그걸로(간통죄) 고소하면 선재는 어떻게 되겠어.
그 이쁜 놈이 순식간에 상간, (목이 멘다) 그런 더러운 굴레를 쓰게 된다고...
혜원 : (잔 받침 만지작)
준형 : (제발, 응?)
혜원 : 당신두 나두 미쳤다... 아직은 그래두 명색이 부분데, 어떻게 이런 말을 아무렇지두 않게 주고 받겠니...
준형 : 그만큼 절박하다는 거지...
혜원 : 이왕 미친 거, 쪼끔만 더 기다려 봐. 원하는 걸 얻을래믄 참을 줄도 알아야지.
준형 : 야, 너 지금,
혜원 : (손을 들어 웨이터 부른다) 여기요... 계산서 좀.
준형 : (잔 들어 벌컥벌컥)
혜원 : (이렇게 끔찍할 줄은 몰랐네)
S#58. 교정. (혹은 복도)
-앞에 규현과 푸름, 태진이 연습 관련, 트레몰로 땜에 손목이 아퍼. 악력기 너무 많이 해서 그래. 그거 뻘짓이야, 등, 얘기 하며 가고,
-뒤쳐저 시은과 선재.
시은 : 아침에 너 보니까 진짜 반갑더라. 고맙구.
선재 : 어어, 그냥... 좀 일찍 일어나서... (개인적인 대화는 아직 어색. 아직 대학 생활이라고 할 수도 없고)
시은 : 당연히 예심 통과 할 거라구 하던데?
선재 : (선다) 저기,
시은 : ?
선재 : 조교 형이 그러는데, 너 학교 관둘 거라며.
시은 : (씁쓸) 이유두 들었어?
선재 : 어...
-앞에 가던 친구들이 돌아본다.
시은 : (친구들 향해) 가구 있어.
푸름 : 응.
-친구들 다시 가고, 시은, 선재를 본다.
시은 : 이길 수 없을 때는 피하는 게 낫지 않니?
선재 : 그건 잘 모르겠구, 암튼, 관두기 전에 이거 한번 잘 해볼래?
시은 : 우리 다 그러구 싶지... 너만 계속 같이 해준다면.
선재 : 할 거야.
시은 : 그럴 수 있어?
선재 : (여러 가지 생각 스치는 중에 끄덕인다) 어...
시은 : 교수가 대회 준비 하라구 안해? 넌 재단 장학생이잖아. 예심두 신청 했다며.
선재 : 상관 없어. 난 그냥 이거 하면 돼.
시은 : (어떻게?)
선재 : (조금 웃음) 한다고...
S#59. 교문 앞.
-선재와 시은들 헤어진다. 안녕, 내일 봐. 가라, 등등.
-시은, 친구들과 가면서 갸웃. 쟤는 재단 장학생인데 왜?
-선재, 가면서 전화기 꺼낸다.
-아무것도 없다.
-다시 터덜터덜.
S#60. 준형 서재.
-준형, 초조하게 서성인다.
S#61. 혜원 서재.
-혜원, 늘어져 누워 있다. 손에 핸드폰.
-문이 벌컥 열리고 준형. 혜원, 일어나 앉는다.
준형 : 그냥 출두 해, 썅! 집행 유예 받아 준다잖아! 넌 나를 위해서 백번 희생해도 모자라! 당장 들어가라고!
-준형, 간다.
S#62. 혜원 침실.
-준형, 알약 입에 넣고 물 마시고 나가려다, 에잇, 혜원의 화장품 쓸어버린다.
S#63. 서회장 집 서재. 밤.
-인겸, 성숙.
인겸 : (혜원 관련 자료들 가방에 넣는다) 조사가 길어지면 불리해요. 이사장님 서한 어패럴 주식 매입 자금 출처도 드러날 겁니다.
전력이 화려하시다보니 단연 눈길이 갈 수 밖에요.
성숙 : 그래, 뭐, 인정해. 근데 나 전혀 부끄럽지 않아. 수많은 현업 종사자들이 날 닮고 싶어 하지만 원한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
인겸 : (가방 잠그며) 존경합니다.
성숙 : 땡큐.
인겸 : 그런데 인제 시간이 없어요. 어떻게든 현장 나오게 유도 해주세요. 법 적용 이전에, 가장 뼈아프게 수치심을 줘야죠.
성숙 : 곧 둘이 따로 만나지 않을까? 수행자가 고기맛 야동맛을 봤는데, 못참지... 얼마나 보구 싶겠어?..
인겸 : (힐끗 보고 전화기 단축 버튼 누른다) 어... 기획팀 점검해 둬. 항시 대기.
S#64. 식당. 밤.
-다미, 장호, 선재. 찐달걀 까면서 말이 없다가.
장호 : 너 진짜 안보구 싶어?
선재 : 어.
장호 : 꼭 보여 주랬다는데?
선재 : 어.
다미 : (눈치) 나 좀 쫄리더라. 그 얘길 너무 아무렇지두 않게 하잖아.
선재 : (달걀 우물우물) 그게 왜 쫄리는데.
다미 : 니가 그거 보구 실망해서 도망가길 바라나, 뭐 그런 생각두 들구.
선재 : (삼키고 물마신다) 거기 뭐라구 써 있는진 모르지만, 꼭 봐야 아냐?
장호 : 아냐. 내가 봐두 이런 진짜 나쁜 엑스,가 막 나오더라. 별 거 다 있어. 청소용역비 떼먹은 거부터, 부정입학 알선, 공금 횡령,
다미 : (고만 하라고 눈짓)
장호 : 너 학교 짤리는 거 아니냐? 장학금두 토해내구?
선재 : 하게 되믄 하는 거지. (냅킨 뽑으며 일어선다) 간다.
다미, 장호 : 야아...
선재 : (나가면서 주방의 옥진에게) 저 가요.
옥진 : 어... (보다가, 다미와 장호에게) 그런 짓 하게 생기지 않았던데.
다미 : (선재가 걱정돼서 뚱) 생긴 건 완전 귀티 나죠.
S#65. 주방.
-혜원, 양주를 한잔 따라 마신다. 독하다. 잔을 싱크대에 넣으려다 또 한잔 따라 마신다.... 후우...
-선재 문자.
선재 소리 : 집 앞에 있어요. 따뜻하게 입고 나오세요.
-혜원, 쿵 내려앉는다. 막상 선재가 다미한테서 뭔가를 받아봤을 거라고 생각하니.
-답을 하려는데 손이 떨려서 멈춘다. 어떡해야 하나.
S#66. 혜원 집 앞. 밤.
-선재, 오토바이 세워 놓고 기다린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