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30 정지은
어렸을때 어느 드라마에서 태몽을 꾸는 장면을 보고 궁금해진 나는 엄마께 나의 태몽을 물어보았다. 드라마 속에서의 태몽은 임신한 사람의 시어머니가 커다란 잉어를 맨손으로 잡는 꿈을 꾸었는데 나는 잉어보다 더 큰 용이나 호랑이를 잡았겠지? 하고 기대하면서 물어보았는데 꾸지 않았다는 소리를 듣고 어린 마음에 되게 속상해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조금 그렇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큰 장점은 건망증 이다. 물론 큰 장점이기도 하지만 큰 단점이기도 한데 친구와 싸우거나 선생님께 꾸중듣고 나서 상대가 사과하거나 아무일 없다는듯이 잘해줄때는 예전에 속상한 일을 잊고 금방 풀린다. 상대가 잘못이해하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표정관리 못해서 사이가 멀어지는것 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나의 첫 시련은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신날 인것 같다. 어렸을때 늘 시골에 가면 할머니와 같이 구부정한 허리로 마늘 까고 콩나물 머리 떼던 하얀 모시옷에 비녀로 쪽찐 기름칠한 머리의 할머니가 돈도 없으면서 매일 집갈때 마다 꼬깃꼬깃 오천원 천원 짜리라도 쥐어주던 엄지손톱이 다친 할머니가 병실에 누워 계실때 가슴이 찡했다. 벌써 돌아가신지도 8년이 다되가지만 기억에 남는다. 3월 아직 추운날씨에 돌아 가셨던 할머니 조금만 더 따뜻할때 돌아가시지 하고 생각도 많이 들었다. 그 때에 처음 나한테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 사라졌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게 밥먹다가 돌아가셨단 소리듣고 엉엉 울었던 기억이난다. 돌아가신후 시골이라서 상여를 타고 가셨는데 아직 추워 언 땅에 묻히실걸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아팠다. 내가 할머니 돌아가신일을 첫 시련이라고 생각한 까닭은 사람은 어쩌피 죽게되어있는데 무슨 호강을 누릴려고 공부하고 일 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tv에서도 모든걸 다 버리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있던데 인생은 공수래 공수거지 뭐 하고 초등학생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 하면 무서운 생각이였다.앞으로 창창한 초등학생이 벌써 그런생각을 해서 계속 그 마인드로 살아왔으면 지금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있었을까 ? 이런 생각을 버리게 된 계기는 흑인 여성방송인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그녀는 사생아로 태어나 내가 그 때나 지금이나 여자 들이 가장 수치스럽게 생각할 일을 당하고 마약에 빠져 산전수전 다 겪은 인물이다. 그러나 본인인생은 본인의 노력하에 이루어진다는 신념하나라 흑인들중 유일한 억만장자가 된 사람이다. 바로 오프라 윈프리이다. 그말을 듣고 예전에 내가 생각했던 것이 너무나 부끄러운 일인것 같았다. 정말 제일 멍청한 사람들이 하는 생각을 한게 너무 혼자 부끄러웠다. 내가 가장 와 다앟던 말은 "당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세요. 그럼 더 많이 갖게 될 거예요, 만약 당신이 갖고 있지 않은 것에 집중한다면, 당신은 절대 충분히 갖지 못 할 거에요." 정말 가슴에 박히는 말이였다 그런 계기도 있긴했지만 앞으론 모순은 살짝 있는 말이지만 오프라이즘 을 갖고 살아야겠다.
10808 나다운
나의 태몽은 남들과는 조금다르다. 사람들은 용이 여의주를 물고 나타났다는둥, 구렁이가 황금 왕관을 쓰고 있었다는둥, 무언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자리잡을듯한 꿈인데 나는 정말 웃기고 독특하고 개성넘치는 태몽이다.
엄마가 우연히 베란다에 나갔는데 그 베란다에 엄청나게 크고 잘생긴 호랑이 한마리가 어슬렁 어슬렁 걸어 오고 있었단다. 엄마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기분이 들어 호랑이를 다시 한번 쳐다보니 호랑이가 아빠의 알로하 꽃무늬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고 했다. 엄마는 너무 웃겨서 그 호랑이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호랑이가 갑자기 엄마주위를 뱅글뱅글 돌며 뛰어다니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애교를 부리며 엄마를 계속 따라다녔다고 했다. 그뒤 엄마는 꿈에서 깨어났고 처음에 그 호랑이가 너무 씩씩하고 용맹 스러워서 내가 남자아이인줄 알았다고 했다. 사실 나도 내 태몽을 듣고 정말 당황스러웠고 위트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정말 태몽부터가 남다른것 같다.
남보다 두드러진 나의 재능은 아무래도 미술에 대한 열정이 아닐까 싶다. 일단 미술은 언니가 어릴때 부터 언제나 나에게 그림을 가르쳐주고 같이 그리고 흥미를 가지게 해 주어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다. 강제로 미술학원에 다니며 시키는게 아닌 자발적으로 그림공부, 색칠 공부를 하고 표현하고 싶은것을 마음대로 커다란 종이에다가 그려 틀에 박히지 않은 사고를 가지게 된 것 같다.그 결과 초등학교때부터 포스터 그리기 대회, 상상화 그리기 대회에선 언제나 금상, 은상을 받았고 중학교때는 2학년 담임선생님께서 '예체능의 천재' 라고 불러줄 정도로 다양하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냈다.
어릴때부터 미술 작품에 많이 접해보았고 표정이 정말 생생하게 살아있어 나에게 그 심정을 전달 해 주는 책들과 만화 그리고 웹툰등을 보면서 웃기도 울기도 많이 했다. 이런것을 점점 보면 볼수록 나도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이렇게 생생하게 전달하고 또 나의 작품을 통해 감동을 받으면 얼마나 가슴 벅차는 일일까 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해보았다. 초등학교때까지만 해도 사용했던 그림 연습장이 책장 가득 있을정도로 나는 미술에 열정이 넘치고 그림그리면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것을 표현할때, 그리고 그 그림을 보고사람들이 감명을 받고 깨달은점을 얻어 갈 때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것같다.
나의 첫 시련은 꽤 최근에 있었던 일이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라올때 학습때문에 무척 힘들었다. 중학교때는 중상위권 정도 나왔는데 고등학교 첫 반배치에서 성적이 무척이나마 떨어졌기 때문이다. 아마 이번 강남여고 학생들이 공부를 잘해서 이기도 하지만 그 곳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두려움과 tv나 컴퓨터에서 본 입시 경쟁, 수능, 모의고사 라는 제도들을 처음 접해본 낯설음 이런것으로 어디서 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되는지도 모르겠고 달라진 교육 시스템에 대해 적응하기 어렵고 힘들고 내가 너무 늦었나 중학교때부터 준비해온 아이들과는 무척 다른가 라는 스트레스때문에 2주 정도는 눈물로 밤을 보낸것 같다. 정말 이렇게 우울하고 이렇게 자신감이 떨어진 적은 처음이라서 다시 본질적 나를 찾지 못할까 무서웠다.
하지만 나의 친구들과 가족들,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언제나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묵묵히 밤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며 함께 견뎌나갔다. ' 다만 출발선에서 조금 늦은것 뿐이지 공부는 마라톤과 같은 포기하지않는 마음만 가지면 성공할수 있다' 는 가족의 말과 친구들의 '당당했던 나다운이 이렇게 풀이 죽어서야 되겠어? 너는 정말 불가능이라는 것이 없는 아이가 아니였어? 너는 충분히 할수있어' 이런 위로 한마디 한마디가 힘이 되었고 공부하는 방법, 효과적으로 집중할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주신 선생님들로 인해 자신감이 상승하였고 정말 열심히 공부하였다. 나를 믿어주고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나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정말 열심히 공부하였다. 그래서 내가 지금 자신감을 가지고 수업도 열심히 듣고 성적도 많이 올랐다.
나는 다시 또 다른 꿈을 꾸기위해 노력하고 하루하루 달라지는 인생이 재밌기도 하고 흥미진진하기도 하다.
10922 이송아
내가 엄마에게 태몽을 물어보기 전에는 나 혼자 엄마가 꾼 나의 태몽은 뭘까하고, 혹시 용이 나타나서 하늘로 승천을 하는 태몽은 아닐까? 등등의 이런저런 말되 안되는 상상들을 해 보았다. 그래서 마음 속으로 기대를 품고 엄마께 내 태몽은 뭐였나고 물어보았는데 내가 생각하고 있던 으리으리한 대답들과는 달리 엄마의 대답은 달랑 한 단어였다. '강아지', '강아지 였어...', 그리고 '네 오빠는 돼지 나왔어' 솔직히 말하면 나는 엄마의 무심한 대답에 실망했다. 혹시 내 태몽이 안 좋아서 듣고 나면 내 기분이 상할까봐 일부러 말을 해주시지 않는 것일까? 그런게 아니라면 난 지금도 나중에도 쭉 '내 태몽은 강아지다' 이렇게만 기억할 것 같다.
남보다 두드러진 나만의 재능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렇게 어마어마한 것은 아닌데 나는 남보다 자신감을 백배천배로 더 많이 가지는 것 같다. 아마 남이 말할 때는 자신감만 많다고 할 것이다. 사실 나도 내가 자신감만 많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적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하지만 다시 생각을 해보면 내 기준으로는 나는 얼굴에도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질만하다고 생각하고 공부도 내가 안 해서 그렇지 하며는 성적은 물가 올라가듯이 올라갈 것 같고, 내가 뭘 하든 다 잘되고 어쩔 땐 좋은 일들이 나에게만 생기는 것 같기도 하다. 여기서 계속 늘어놓으면 이기적이다라고 말할 것 같아서 자신감! 나를 많이 사랑한다는 게 내가 가진 나만의 재능인 것으로 하겠다.
내가 겪은 첫 시련은... 사실 첫 시련이라고 하기에는 똑같은 첫 시련이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매년 학기 초마다 있었다. 그리고 아마 이 시련은 첫 시련이자 죽을 때까지 못 고쳐질 내가 안고 갈 마지막 시련이 되기도 할 것 같다. 이렇게 말하는 내 시련은 엄청 대단할 것이라고들 생각하겠지만 사실 별것은 아니다. 그 시련은 바로!!! 새로운 친구 사귀기이다. 친구 사귀는 게 뭐 어려운 게 있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한심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고, 찌질한 시련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닌가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아주아주 세상에서 제일 힘든 과제였다. 새로운 학교, 새로운 학년, 새로운 반,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선생님 이것들 중에서 사실 새로운 친구들 빼고는 다 상관이 없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내가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다른 아이들보다는 조금 많고, 더욱이 새로운 아이들과 친해지는 시간은 배로 들었다. 하지만 새로운 친구들은 내가 적응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고 내가 몇 번을 고민하고 생각해서 말을 걸어볼 수 있겠다는 용기를 냈을 때는 이미 나를제외하고 서로 다 친해져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한 첫 학기의 한 달 정도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그러다보니 원래 말을 잘 안하는데 더 안하게 되니까, 그럴수록 친구들과 친해지기는 더욱 어려워져만 갔었고, 웃을 일도 많이 없어서 무표정을 짓고 있을 때가 많았는데, 이건 친구들과 친해지고 나중에 들은 건데 내가 무서워 보였다고 했었다. 이렇게 오해를 하는 친구들도 꽤 많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겪어왔던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 분명히 확실히 모두 친해져있을 거라는 걸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지만 거의 혼자다시피 있는 한 달을 버티기 힘들어서 엄마, 아빠께 정말 말도 안 되는,, 학교를 휴학하고 싶다는 말도 해보고...그러다 많이 혼이 났지만, 그리고 중학교 점심시간에 같이 있을 친구가 없으니까 집에 와서 내가 너무 불쌍해서 자주 울기도 하였다.
이런 것들을 내가 어떻게 극복을 했냐면, 내가 내 스스로 극복해 보려고 시도와 생각도 많이 해봤지만 내가 만약 이 친구한테 말을 걸면 이 친구가 반가워하지 않고 냉랭하게 답해주면 어떻하지? 나를 싫어하면 어떻하지? 등의 들어맞지도 않은 추측들과 쓸 때 없는 생각들과 걱정이 많았기 때문에 내가 극복을 하지는 못했고 반친구들이 먼저 나에게 다가와 주고, 친근하게 대해주고해서 내가 첫 학기 한 달 동안과는 정반대로 남은 날들의 반에서의 생활은 아주 활발하고 모두 모두와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철 없이 내가 그러면 엄마, 아빠의 마읍 어떨까하고 생각도 해보지 않고 그저 나만 생각하고 행동을 해서 정말 죄송하고, 지금까지 나에게 잘해주고 왕따의 길에 한 걸음 내딛으려는 순간 나를 구해준 친구들에게 너무 고맙고, 나는 해준 것도 없고 튕기기도 많이 하고, 그저 친구들이 주는 친절과 사랑만 받아서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