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에 쓰는 발전적 역사”
옆집 노인에게 한국전 아느냐고 물어보라
참전용사들 우리의 모습에서 자부심 얻어
“많은 이들이 우리가 거기에 갈 필요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들의 전쟁은 그들이 치르게 하자고. 우리 병사들은 그저 우리 땅에서 안전하게 있으면 된다고. 괜찮은 생각 같지만 그건 미국이 갈 길이 아니다. (중략) 그 곳서 싸운 병사 누구에게든 물어보라. 그들 모두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우리 모두는 기억해야 한다. 용사들이 지켜온 어디에든 오랜 영광의 깃발이 나부낀다. 우리 자유 정신과 용기를 가진 사람들의 땅 위에.”
존 헬슬리씨는 해군으로 한국전에 참전한 베테랑이다. 1930년생으로 미국이 대공황에 빠져 있던 시대에 태어났다. 그리 보면 한국전 참전 미군병사들은 미국이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때에 태어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미시간주 잭슨 출신으로 주급 40달러를 받고 백화점 가전제품 수리 서비스를 하던 중 1950년 초 해군으로 입대, 그 해에 한국전에 투입됐다. 위에 인용한 글은 그가 쓴 시의 부분이다.
주초 메모리얼 데이(5월31일)를 거치자 마자 6월로 접어들었다.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면서 한국과 미국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아픈 기억을 되새기게 하는 시간이다.
연휴의 끝에 열어 본 이메일에 한국의 모 일간지에 실린 기사가 하나 올라 있었다. 서울 상대 59학번 동기생들이 워싱턴 DC의 한국전 참전 기념비 앞에 매주 1, 2회 헌화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지난해 8월 광복절 때 부터 생화를 가져다 놓는데 꽃값이 1년이면 1만달러가 넘는단다. 매주 새 꽃으로 헌화하는 일도 쉽지 않은 정성이다. 흥남 철수작전 책임자였다는 참전미군 출신 노신사가 던진 맥아더 동상 철거 여부 질문에 충격을 받은 한 동기생의 제안에 따라 시작된 일이라고 한다. “우리는 당신들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한국 국민들로 부터”라는 글이 꽃과 함께 전몰 미군을 기린다.
미국 속 한인으로 살면서 만나는 미국인들 중 노년층 대부분은 한국을 한국전으로 기억한다. 문산이나 인천, 흥남 등 지명을 대면서 미국서 만난 코리안을 반긴다. 아주 흔한 일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비록 잊혀진 전쟁 취급을 받았지만 그들은 한국의 발전상과 미국 속 한인들의 성공적인 정착에서 보상을 받는 것 같다.
미국의 한국전 참전 결정이 단지 자유세계의 파수꾼 역할 때문 만은 물론 아니었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 후 국제질서의 재편과정에서 중심국가로 떠오른 미국이 공산주의의 무력 확대를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그렇다 해도 참전 용사들은 그게 아니었다. 참전하기 전 까지는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몰랐던 나라에 가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던 그들에게 갈등이 없었을까.
그들은 이제야 한국이 이만큼 발전한 모습에서 명분을 찾고 긍지를 얻고 전우의 희생을 헛되지 않은 것으로 기린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표현이 잘 들어맞는 경우다.
한국전은 한민족에게는 승자가 없는 전쟁이었다. 참전 용사들이 한국전에서 긍지를 느꼈다면 그건 한국의 발전이 가져다 준 선물이다. 전장을 떠날 때 그들의 기억에는 가난한 나라, 전쟁으로 더욱 척박해진 땅, 희망이 사라진 오지가 남아 있었다. 한반도 전체가 공산화 되는 걸 막았다는 거창한 역사 풀이가 아니었다.
그들은 한국서 한국인들을 만났다. 일본인이나 중국인과 잘 구별이 안 가는 동양인들, 거기에 아군도 있고 적도 있었으니 얼마나 헷갈렸을까. 국가나 국제정세 등을 떠나 그들은 거기서 다른 세계의 친구를 만났다. 굶주리고 헐벗어 미군의 원조에 기대는 사람들. 한국인에 대한 기억은 그러나 미국서 그들이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되었을 때 놀라운 반전을 이룬다. 골프장에서, 사업장에서, 학교에서, 정계에서 어디서든 만나는 한인들의 번듯한 차림새가 보기에 좋다.
어려울 때 도와준 친구가 이제는 성공해서 나타났다. 그들에게는 전쟁이라는 역사적인 대사건 보다는 그 안에서 마주 친 아주 개인적인 경험이 더 소중하다. 얼싸안고 싶을 것이다. 한국전 당시 전투에 참여했던 자랑도 조금씩 섞으며 엄지 손가락을 세운다.
미국에는 한인들의 친구가 많다. 한국전 참전 용사들은 모두가 친구라고 보면 된다. 한국전 이후 주한 미군 출신 까지 합하면 그 숫자는 더욱 늘어난다. 그들은 각자의 한국에 대한 경험을 매개로 우리와 금방 친숙해 진다. 공통의 화제는 이데올로기나 국제적 세력 균형, 자유 민주주의 수호 등이 아니다.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으로 밝혀진 요즘에는 북한의 무력 도발과 향후 대처라는 묵직한 주제가 대화에 끼어들기는 하겠지만 이것도 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오늘 옆집에 미국인 노인이 살고 있다면 물어보라. 한국전을 아느냐고. 금방 친해질 것이다.
미국은 여전히 한반도의 운명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나라다.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 중인 지금 그 비중은 더욱 커지고 있다. 우린 그런 나라에서 살고 있다. 여기서 한국의 비극적 역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친구로 만나고 있다. 그리고 메모리얼 데이와 한국전 60주년을 맞았다. 미국에 사는 우리는 참전용사들에게 자부심을 주는 것 만으로도 미국인 친구들과 함께 한국전 이후의 발전적 역사를 쓰고 있는 중이다.(2010.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