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st Bowl
현재 미국이 중병을 앓고 있는 경제 상황에 대해 한 경제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불황은 대공황이 우리의 아버지들과 할아버지들에게 가한 것과 같은 상처를 우리 소비자 세대에게 남기게 될 것이다.”
대공황 이래 최악의 경기침체로 전 국민이 몸살을 앓고 있는 요즘 생각나는 소설이 존 스타인벡이 퓰리처상을 받은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다. 그는 이 소설을 대공황의 말미인 1939년에 썼는데 1930년대 은행과 가뭄에 의해 농토와 집을 잃은 미 중서부 출신의 이주 농장노동자들의 고난과 불굴의 생존 의지를 그렸다.
주인공 조드 일가는 현존하는 최고의 컨트리가수 멀 해가드의 노래 ‘머스코기의 오키스’(Okies from Muskogee)로 잘 알려진 오키스다. 오키스는 흙바람으로 유명한 더스트 보울 오클라호마 출신의 이주 농장노동자를 천박하게 부르는 이름.
‘분노의 포도’는 대공황 때 살 곳을 잃은 오키스인 조드 일가가 남부여대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인 캘리포니아를 향해 가는 동안 겪는 굶주림과 차별 대우와 투쟁 그리고 시련을 통한 인간성에의 자각의 얘기다. 책은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기소하고 사회주의 이념에의 요구를 표현하면서 아울러 사람과 흙에 대한 사랑을 강조한 내용으로 미 역사상 ‘탐 아저씨의 오두막’ 이후 가장 논란거리가 된 바 있다.
스타인벡은 글을 쓰기 위해 직접 오클라호마에서부터 캘리포니아까지 오키스와 함께 여행하면서 농장노동을 했는데 오키스의 대장정은 성경의 출애굽기를 생각나게 만든다. 조드 일가 중 중심인물은 살인죄로 4년간 옥살이 끝에 막 출소한 탐. 글은 무지하고 개인적인 보잘 것 없는 소작농 탐이 고난의 여정을 통해 비로소 개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 간의 연대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내면적으로 재생하는 얘기이기도 하다.
소설이 강조하는 점은 ‘We Are the People’(우리가 사람들)이라는 것으로 조드 가족의 기둥인 탐의 어머니 마는 소설 말미에 이렇게 독백한다. “우리는 계속해 나아갈 게야. 우리야말로 생존하는 사람들이지. 누구도 우리를 쓸어버리지 못해. 우리는 영원히 나아갈게야. 우리가 사람들이기 때문이지.”
소설은 출애굽기 외에도 성경의 내용과 비슷한 데가 여럿 있다. 조드 일가와 함께 여행하는 믿음을 잃은 전직 시골 목사 짐 케이시는 예수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도중에 착취 받는 노동자들을 규합해 노조를 결성하려다 경찰에 맞아 죽는다. 그의 죽음은 예수의 죽음과도 같은데 탐은 짐의 죽음을 통해 인간적인 각성을 하게 된다.
특히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눈물이 나도록 격한 감동을 준다. 아기를 사산해 반 실성하다시피 한 탐의 여동생 로샤산이 헛간에서 굶주림에 지쳐 쓰러진 남자의 입에 퉁퉁 부은 자신의 젖을 물려 허기를 채워 주는 모습이 마치 마돈나의 모습을 연상시키듯이 성스럽고 아름답다.
‘분노의 포도’는 글이 쓰여진지 70년이 지난 지금 대량실직과 주택차압으로 고통당하는 암울한 상황에서 우리들이 지켜야 할것과 함께 고난을 통한 내면 각성을 일깨워주는 지침서와도 같다.
소설은 출간된 이듬해 폭스에 의해 영화(위 사진)로 만들어졌다. 존 포드(영화로 오스카상 수상)가 감독하고 헨리 폰다가 탐 조드로 나오는 불후의 명작이다. 진지하고 강건하며 웅변적인 연출과 그렉 톨랜드(‘시민 케인’)의 극적 충격이 강렬한 혁명적인 기록영화식 흑백촬영 그리고 폰다와 마역의 제인 다웰(영화로 오스카 조연상 수상)의 뛰어난 연기 등이 어우러져 내놓은 경이로운 작품이다.
영화가 사회문제를 고전적 포토플레이로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정직한 작품으로 싸구려 감상이나 섣부른 사회 비판을 삼가고 있다. 포드는 비극을 비극으로만 묘사하지 않고 비록 땅과 집을 잃었으나 감정과 영혼이 건재하고 미래와 아메리카에 대한 변치 않는 믿음을 지닌 조드 일가를 통해 비극을 낙관적인 것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영화에는 미국 민요 ‘홍하의 골짜기’가 자주 흐르면서 작품에 우수가 깃든 서정미를 채색하고 있다.
촬영은 스타인벡의 고향인 북가주의 채소와 과일 생산지인 소도시 살리나스에서 했다. 나는 20여년 전에 이곳을 방문했었는데 온 동네가 스타인벡을 신주 모시듯 하고 있었다.
탐은 짐을 죽인 경찰을 죽이고 가족을 남겨둔 채 정처 없이 떠난다. “어디에 있겠니”라는 마의 물음에 탐은 “굶주리고 학대 받는 사람들이 있는 모든 곳에 있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나는 탐의 이 말을 생각하면서 오바마를 머리에 떠올렸다. 당신은 과연 우리의 탐 조드인가.
- 필자 : 박흥진 (Koreatimes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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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처음 스타인벡의 설리너스를 찾아 갔던게 벌써 30년 전이다. 강보에 쌓인 딸을 안은 아내와 갓 킨더가든을 들어간 아들을 태우고 아주 심각한 얼굴로 이 실패한 신문기자, 별장지기였던 스타인벡의 문학의 고장을 찾아가야 하는거는 내게는 숙원이고 의식이었던 거다. 마치 칠십노구를 무릅쓰고 지난 겨울 찬비 내리는 파리를 헤매었듯. 그만큼 <분노의 포도>는 내 젊은 날을 사로잡았던 소설이다. 십년전 아내와 다시 찿아 갔을때는 감동은 한결 줄었지만 아름다운 몬터레이와 그림같은 꿈의 코스 페블비치, 17마일스 드라이브를 마음껏 즐겼다.
다시 웰빙은 커녕 Being 자체를 걱정해야할 시간에 섰다. 내가 아니고 내 자식들과 내 후손을 생각하며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를 다시 읽어야할 시간이다.
내 후손들의 손에 오클라호마의 가뭄과 흉년에 찌든 흙먼지 풀풀 묻은 밥그릇, Dust Bowl이 쥐어지는 시간에 들어선것 같아 심히 걱정이다. 창조적 파괴를 서슴치 않는 자본주의가 또 한번 기존 질서를 인정사정 없이 무너뜨리고 역동적으로 쓰나미 처럼 우리를 덮친다.
70년만에 다시 찾아온 이 공황을 이해할려고 나는 요즘 다시 책을 들었다. 지금 3권 째 읽는데 솔직히 말해 나는 경악하고 있다. 앞으로 전개될 시간들은 새로운 문법, 전연 낯선 세상이란걸 피할길 없다. 문명의 축이 바뀌고 있다.
- 안양 촌노 씨야
♪** 홍하의 골짜기(Red River Valley) - Billy Vaughn Orchestra |